요즘 설악산이 심상치 않습니다. 케이블카 때문입니다. 1982년 처음 사업 추진이 시작되어 2023년 11월 착공식을 가진, 41년간 끌어왔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얘깁니다. 공사가 시작되었으니 다 끝난 얘기 아닐까 싶지만, 설악산에는 어떻게든 이 결정을 되돌리려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색 케이블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습니다. 2023년 2월, 환경부는 조건부 승인을 내줬고요. 공약 실행이었죠. 시간이 흘러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케이블카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국면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설악산과 지리산 케이블카에 특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신임 환경부 장관의 발언이 그것입니다.
케이블카를 타면 보이는 풍경
케이블카는 양양군의 꿈이었습니다. 1982년 처음 사업 계획을 세운 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청서를 제출했죠. 하지만 번번이 환경부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설악산 국립공원의 생태계가 손상될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환경부가 나서 반대할 만합니다. 설악산 오색지구는 5겹으로 보호받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천연 보호 구역, 산림 유전자원 보호 구역, 백두대간 보호 지역, 생물권 보전 지역, IUCN 카테고리 II(국립공원) 등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색 케이블카는 바로 이 지역을 관통하여 설치됩니다.
이곳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산양, 담비, 하늘다람쥐 등입니다. 빙하기부터 남쪽으로 내려온 북방계 식물이 터를 잡고 있습니다. 눈잣나무, 주목, 눈측백, 사스래나무 등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종입니다. 이곳의
생태계를 둘러싸고 양양군과 환경부, 환경 단체는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 양양군은 생태계 파괴가 없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케이블카가 들어설 곳에 산양 서식지가 없다는 식으로요. 환경부와 환경 단체는 생태계 파괴가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2015년 8월,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환경부가 케이블카 시범 사업안 심의를 통과시킨 겁니다. 조건이 달리긴 했습니다. 멸종 위기종 보호 대책 등의 7가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케이블카를 막아서던 환경부가 입장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몰고 왔습니다. 이유는 그 직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성공에 큰 관심을 쏟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4년 10월 박 전 대통령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 경기 지원 시설과 함께 “케이블카 등을 통해 세계인의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환경부를 돌려세웠던 것은 행정부 권력의 중심, 대통령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를 띄우기 위해 30년 넘게 지켜온 설악산 국립공원의 생태계를 포기한 겁니다. 실제로 환경부와 국가유산청이 2014년부터 양양군이 사업 심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지원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케이블카 공사를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 전에 완료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조금 다른 환경부 장관
정권이 바뀌면서는 다시 반전이 일어납니다. 2019년 원주지방환경청이 환경 영향 평가에 대해 부동의 결정을 내리면서 재차 사업이 중단된 겁니다. 그런데 또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은 한 번 더 뒤집혔습니다. 2023년 환경부가 ‘조건부 동의’를 통보하면서 사업이 재추진됩니다. 이러니 아무리 첫 삽을 뜬 공사라 하더라도 결정이 번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환경 단체는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부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결정을 끊임없이 뒤집어 왔습니다.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원점에서 재검토’나 ‘생태 영향을 고려해’와 같은 이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신임 환경부 장관은 기대와는 다른 발언을 내놨습니다. ‘케이블카 사업에 특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미 결정된 사항을 뒤집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환경부는 지금까지의 환경부와는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3선 의원 출신입니다. 이른바 ‘실세’ 장관이죠. 일반적으로 정치인 출신 장관이 학자 출신보다 조직의 ‘그립’을 잘 잡고 일을 추진한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김 장관은 이재명 정부의 기후 공약을 설계했고, 정권 출범 이후 별문제 없이 청문회를 거쳐 장관직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환경 관련해서는 크게 두드러지는 이력이 없습니다. 그런 김 장관이 기후 공약을 설계했다니, 좀 의외지요.
국회 활동을 보면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22대 국회에서 기후 위기 탈탄소 경제 포럼의 대표 의원으로 활동하며, 원전 폐기물 관리 특별법, 재생 에너지 3법 등을 주도적으로 발의했습니다. 즉, 김 장관은 환경이 아닌 에너지 정책에 전문성이 있습니다. 물론, 2025년의 에너지 정책이 환경 문제와 분리되기는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2025 환경부의 과제
각 부처에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중요한 정책 목표가 있습니다. 김 장관의 환경부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죠. 방향성은 타당합니다. 생성형 AI 시대입니다. 전기차의 시대, 로보틱스의 시대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매년 여름과 겨울 닥쳐오는 기후 재난을 견디기 위해서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즉, 에너지가 국가 경쟁력입니다. 실제로 미국 생성형 AI 섹터가 중국에 따라잡힐지 모른다는 공포는 전력 공급 부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요구를 상징하는 한 장면입니다. 우리도 대비해야죠.
기후에너지부는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정책을 연계해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구상된 조직입니다. 현재는 환경부가 기후 위기를,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를 나누어 담당하고 있죠. 정책이 맞물려 함께 가야 하는데 공격과 수비로 나뉘어 자꾸 엇박자가 납니다. 산업부는 우리 기업이 성과를 내고 경제 성장률이 뛰어올라야 평가를 받습니다. 반면 환경부는 탄소 저감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개발에 제동을 걸고요. 이래서는 일이 안 되겠죠.
그래서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확보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정책을 하나로 묶어낼 목적으로 기후에너지부가 고안되었습니다. 환경부의 기후탄소정책실과 산업부의 에너지실을 합쳐 별도 부처를 신설하는 방안입니다. 하지만 최근 환경부가 산업부의 에너지실을 흡수해 ‘기후환경에너지부’로 개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부처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보다 조직 운영 측면에서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즉, 김 장관은 환경부 장관이 아니라 기후에너지부, 혹은 기후환경에너지부 장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환경부 장관에게서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라는 발언이 나온 것도, ‘환경부가 규제 부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강조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환경 단체는 반발하지만, ‘소버린 AI’ 정책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데이터 센터 건설에 박차를 가할 이재명 정부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원전과 재생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믹스하겠다는 목표는 에너지 패권 시대와의 어쩔 수 없는 타협처럼 보입니다.
산양의 목소리를 들어줄 부처
생태계와 개발 사이의 줄다리기는 20세기식 프레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인류세’라는 용어가 상식이 된 요즘, 대체 누가 무분별한 개발에 동의할까 싶기도 하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흐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태를 희생해서라도 개발에 미래를 걸고 싶은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보는 것과 듣는 것, 읽는 것도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설악산의 오색 케이블카도 그래서 추진된 것입니다. 양양군은 지역 고유의 자원을 이용해 어떻게든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입장입니다. 케이블카가 정말 관광 수요를 창출할지, 지역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관광으로 나아질지 정밀한 계산 결과가 나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케이블카는 눈에 보이는 치적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성과로 남습니다.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도 훌륭합니다. 환경 보호의 논리로 개발의 열매를 수도권이 독점한다는 소외감도 작동하고요.
이 단단한 명분에 환경 단체와 시민들이 함께 대응했던 방법의 하나는
산양의 목소리를 등장시킨 것입니다. 환경에 최대한 부담이 덜 되는 공법으로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목소리에 맞서 케이블카 건설이 산양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문제라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케이블카 설치 용지에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고 현장 조사를 해 양양군의 주장과는 달리, 이곳이 산양의 서식지임을 밝혀냈죠.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침입에 항의할 수 없었던 산양 대신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그 결과 케이블카 건설 과정에서 ‘동식물 서식지 보존’이 중요한 조건으로 따라붙게 됩니다.
사실, 이런 활동이야말로 환경부의 역할입니다.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발목을 잡는 것, 비인간에 해가 되는 일이 아닌지 의심하도록 종용하는 것이 환경 부처의 일이죠. 정권에 휘둘려 ‘환경’의 정의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요. 이익을 바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큽니다. 피해를 당하는 존재의 목소리는 작습니다. 환경부는 그
작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부처입니다. 성과는 초라합니다. 기업의 발목을 잡고 지자체의 항의를 감내한 결과가 ‘보존’이니까요. 이런 일은 영리 기업이 할 수 없습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부처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겐 분명 기후에너지부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규제를 일삼는, 주목받지 못하는 환경 부처도 필요합니다. 산양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돈이 되는 지역 사업을 의심하는 그런 부처 말입니다. 정부 조직 개편 방향이 곧 잡힙니다. 정부 고유의 역할이 사라지는 결과만은 피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