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가 끝난 지 몇백 년이 지났지만, 새로운 바닷길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북극 항로입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북극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멉니다. 남극보다 더 그렇죠. 하지만 북극이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곳입니다. 새로운 기회와 도래할 위험이 공존합니다. 인간이란 그 상자를 열어보고야 마는 존재죠.
한국도 중요한 플레이어로 새로운 개척에 뛰어들고자 합니다. 우리나라는 꽤 절묘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이 펼쳐져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동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일본, 오세아니아까지 펼쳐져 있습니다. 바닷길로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바닷길이 넓어지면 운신의 폭이 넓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북극을 주목하는 이유는 좀 더 구체적입니다.
힘의 북극
남극은 대륙입니다. 북극은 바다입니다. 평소에는 얼어 있어 배가 다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러시아가 물리적으로 만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강대국의 힘이 정면으로 부딪칠 수 있는 곳이죠. 더 구체적으로는 러시아와 유럽 간의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한 정치학자는 영국의《이코노미스트》를 통해 북극해에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와 유럽이 군사적 충돌을 일으킨다면, 그 발화점은 북극해의 일부인 바렌츠해, 혹은 북유럽과 중앙유럽 사이의 발트해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바렌츠해는 러시아 북해함대의 전략 핵잠수함 기지가 있고, 발트해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러시아 간 군사적 긴장이 높은 지역입니다. 실제로 러시아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NATO 가입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적이 너무 가까이, 코 앞으로 닥쳐왔다고 본 겁니다.
미국 입장에서 북극은 알래스카라는 미국의 최북단 국경지대입니다. 동시에 군사적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사실, 북극해는 냉전 시절부터 미국과 구소련의 전략 핵잠수함과 폭격기 루트가
교차하는 곳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중국, 러시아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폭격기를 쏘아 올린다고 가정해 보죠.
최단 루트는 북극을 통과합니다. 그러니까, 북극은 폭탄을 품은 곳입니다.
녹아내리는 북극
그런데 최근 북극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얼음이 녹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극해 남쪽 지역 일부를 제외하면, 북극 항로는 더운 여름에나 제한적으로 열리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북극해의 얼음이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같은 계절을 기준으로 작년보다
올해의 얼음이 더 얇은 겁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입니다.
얼음은 빛을 반사합니다. 그래서 지구 온난화를 늦추죠. 하지만 얼음이 녹아버리면 이 효과가 사라집니다. 더 많은 열을 흡수해 얼음이 더 많이 녹습니다. 악순환에 속도가 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얼음이 녹으면서 기회가 생겼습니다. 진짜 북극 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진 겁니다.
북극 항로는 아주 오랫동안 탐험가들에게 악몽이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얼음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면, 살아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845년 영국의 존 프랭클린 제독이 이끌었던 테러(Terror)호 원정대는 120여 명이 2년 치 식량을 준비해 탐험에 나섰지만, 얼음에 갇혀 전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