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는 무엇이었나.

bkjn review

애당초 AI는 지식에 경계를 치는 교과서와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AI 교과서는 무엇이었나.

2025년 8월 26일

최근 일선 학교에서는 교과서 한 종류가 사라졌습니다. 2025년 1학기에 시범 도입되었던 ‘AI 디지털 교과서’ 얘깁니다. 불과 한 학기 만에 ‘교육 자료’로 격하되었습니다. 당장 AI 교과서를 개발했던 발행사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헌법 소원과 행정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겁니다. 그럴 만합니다. 발행사들이 AI 교과서 개발에 투입한 비용은 약 8000억 원으로 추산됩니다. 교육부 예산도 만만치 않게 썼습니다. 2024년에는 4900억 원을 지출했고, 올해 잡아 둔 예산은 8830억 원입니다.

물론 올해는 예산 집행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겁니다. 이제 더 이상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AI 교과서일 뿐, 학교 재량으로 활용 여부를 결정하는 교육 자료이기 때문에 학교 예산으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즉, 채택률이 낮아지면 AI 교과서 개발과 도입 시도에 들어간 돈이 그대로 매몰되는 겁니다.

사실, 학교에 다니는 학생 당사자거나 해당하는 학생의 학부모 입장이 아니라면 좀 먼 얘기처럼 들릴 수 있는 이슈입니다. 하지만 AI 교과서의 개발과 도입을 둘러싼 이 모든 과정은 지금 우리 사회가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술의 이해부터 적용까지, 한국 사회는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민 개개인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AI는 신기술이다.

AI 교과서란 무엇일까요. AI‘를’ 배우는 교과서일 수도 있고, AI‘로’ 배우는 교과서일 수도 있습니다. 교육부가 추진했던 AI 교과서는 후자입니다. AI를 이용해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AI란 생성형 AI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AI와 교과서는 서로 어울리는 개념이 아닙니다. 애당초 교과서라는 것이 18세기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적인 의미의 학교와 교실이 생겨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략 18세기 후반 정도에 닿습니다. 당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등은 ‘국민 계몽’을 국가 과제로 삼으면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시민을 길러내는 보통 교육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의 권력에서 국가의 권력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를 위해 동일한 가치와 언어로 국민을 묶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성경 바깥의 지식과 이념을 국가 단위로 표준화하는 도구가 필요했죠. 그게 교육 정책이었습니다. 근대 국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토대였죠.

이때 지금과 같이 정해진 시간표나 학년제, 국가가 정한 커리큘럼 등의 표준화된 교실 운영이 제도화됩니다. 많은 아이들이 한 공간에 줄지어 앉았고, 교사의 강의와 평가라는 교육 방식도 자리 잡았습니다. 칠판도 이때 발명되었습니다.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한 학교 교장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러니까, 현재의 교육 현장은 18세기의 산물입니다. 표준과 통일이 국가적 과제였던 시대 말입니다.

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보통 교육이 시행되면서, 어떤 지식을 가르칠 것인지에 관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즉, 근대 교육에서의 교과서는 모든 학생이 동일하게 배워야 할 지식의 최소 단위입니다. 그래서 국정 교과서, 검정 교과서는 국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와 세계관, 역사관을 담는 매개체로 기능합니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 교과서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18세기의 근대 국가적 교육이 여전히 강력하게 기능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되죠.

AI는 한계가 없다.

즉, 현재의 교실은 국가가 지정한 지식을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학습하는 공간으로 설계된 것입니다. 모두가 한곳을 보게끔 배치된 칠판과 교탁, 책상은 이러한 방식의 교육에 최적화된 것이고요. 이 안에서 교과서는 양면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우선 교육의 최소치를 규정합니다. 교과서에 담긴 지식은 사회적, 경제적 계급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제공됩니다. 반면, 교과서 밖의 지식은 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따라서 교과서는 교육의 범위에 한계를 만드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성형 AI에는 한계나 범위라는 것이 없습니다. 챗GPT는 백과사전이 아닙니다. 지식을 저장해 둔 데이터베이스도 아닙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능입니다. 정해진 정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학습한 데이터와 추론 능력을 바탕으로 정답을 ‘생성’해 냅니다. 시험 범위 바깥이 이야기도, 모범 정답이나 해설지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까지도 확장합니다. 애당초 AI는 인공적인 ‘지능’입니다. 지식에 경계를 치는 교과서와는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AI 교과서의 정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되짚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올 상반기 시범 적용되었던 AI 교과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교육부와 교과서 제작사들, 에듀테크 회사들이 내린 결론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학생들에게 더 잘 숙지시키기 위한 도구입니다.

먼저, 학생에게 진단고사를 실시합니다. 각 단원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 학습 콘텐츠를 추천해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 이런 방식의 교육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구몬 수학’과 같은 학습지입니다. 학습지를 풀고 나면 오답을 분석해 잘 못하는 부분의 문제를 계속 풀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단점을 보완하고 학교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학습 교재입니다.

AI는 개인 교사다.

교육부와 발행사들은 이런 방식을 ‘맞춤형 교육’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페이지 수에 한계가 있는 교과서보다 효율적인 학습이 가능합니다. 선생님 입장에서도 학생별로 취약한 부분이나, 추가 설명이 필요한 단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야기하고요. 학생별 학습 수준에 따라 교과서가 유연하게 변형되는 셈이니 잘 쓰면 유용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무엇’에 유용한지가 문제입니다. 그 많은 돈을 투입할 가치가 있었느냐는 겁니다.

이런 교과서는 시험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을 기르기에 유용합니다. 18세기에 처음 교실이 발명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교실에 앉아 있는 모든 학생이 똑같은 내용을 얼마나 완벽히 숙지할 수 있는지를 겨룹니다. 그런데 이건 학생에게 맞춘 교육이 아닙니다. 교육 과정에 학생이 잘 맞춰 갈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일 뿐이죠. AI 교과서는 21세기의 기술로 18세기식 교육을 보조하는 기묘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만약 생성형 AI의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 맞춤형 학습을 기획한다면, 교육의 목적을 완전히 백지에서부터 다시 그려 볼 수 있다면 AI 교과서의 모습이 지금과 같았을까요? 모두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학습의 경계가 사라지고, 학생 각자의 흥미에 맞는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 상상력을, 누군가는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생성형 AI의 가능성은 학생을 더 잘 ‘관리’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학생이 교과서 바깥의 지식까지도 경계 없이 탐구할 수 있도록 보조할 수 있는 지능이라는 점이 교육 도구로서의 AI의 장점입니다.

오픈AI는 챗GPT를 통해 생성형 AI가 쓸모 있는 도구라는 점을 증명해 낸 인물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AI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도 하죠. 2023년 GPT-4가 발표됨과 동시에 오픈AI는 공공 교육 플랫폼 ‘칸 아카데미’와 협력해 교육용 AI 모델 ‘칸미고’를 선보였습니다. 교사를 보조하는 기능으로, 생성형 AI가 교육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칸 아카데미의 설립자인 살만 칸(Salman Khan)은 저서 《나는 AI와 공부한다》를 통해 생성형 AI가 어떻게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더 나은 교육의 기회가 더 많은 학생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를 상상합니다. 작문 과제를 예로 들어 보죠. 18세기식 학습에 생성형 AI를 이용하면, 일종의 부정행위가 됩니다. 주어진 작문 주제를 챗GPT에 프롬프트로 넣은 뒤, AI가 작성한 작문 결과를 복사해서 붙여 넣으면 끝이죠. 남이 쓴 글을 그대로 도용하는 것과 원칙적으로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육의 목적을 정해진 정답 바깥으로 확장하면 달라집니다. 챗GPT를 이용해 작문하는 과정을 배우는 겁니다. 챗GPT의 안내에 따라 참고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사실 여부를 검증합니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나만의 의견을 도출하고, 그 의견을 바탕으로 개요를 짜 피드백도 받습니다. 이 작문 과제의 최종 제출물은 글 한 편이 아닙니다. 생성형 AI를 이용해 글을 작성하는 전 과정을 제출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문장을 다듬어 달라고 요청한 내용, 초고를 작성해 달라고 한 뒤 이를 다듬고 편집한 과정 모두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개인 과외 선생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살만 칸은 오픈AI의 GPT-4o 모델 발표 영상에서 아들과 함께 등장해 멀티 모달 기능이 교육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 출처: OpenAI
AI는 혁신이다.

살만 칸의 상상력은 교육의 기회가 누구에게든 주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칸 아카데미의 설립 목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사실, 교육은 일종의 특권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였죠. 현명한 스승과 끝없이 토론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교육이었습니다. 제왕에게는 제왕의 교육을, 상인에게는 상인의 교육을 했습니다. 물론,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집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죠.

근대 국가에서 보통 교육이 실행되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 일종의 혁신이었습니다. 18세기식 교실은 당시로서는 첨단이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배울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되었죠. 이제 21세기식의 첨단, AI를 교육에 도입하면 어떤 혁신을 만들 수 있을까요. 이걸 먼저 고민해야 AI를 어떤 방법으로 교실에 이식할 수 있을지 결론을 낼 수 있을 겁니다.

빅테크들이 새로운 사옥을 지어 올리고 있는 텍사스 오스틴에는 ‘알파 스쿨’이라는 사립 학교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하루 2시간 AI 학습에 몰두합니다. 읽기나 수학 등 기본적인 과목들입니다. 학생들은 각자의 수준에 맞는 과정을 학습합니다. 6학년 학생이 8학년 수학, 9학년 읽기, 10학년 언어 과목을 공부하는 식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AI와 ‘가이드’가 함께하는 교과 외 과정에 할애합니다. 창업이나 발표, 금융 지식 같은 것입니다. 초등학교 과정 아이들은 푸드 트럭을 만듭니다. AI의 도움을 받아 예산을 책정하고 사업 계획을 세웁니다.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데이팅 앱을 만들어 론칭해 봅니다.

선생님은 없습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학습 과정을 안내하고 함께하는 가이드가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억대 연봉을 받습니다. 학비는 일 년에 4만 달러입니다. 생성형 AI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교육 혁신의 한 종류입니다. 이런 교육을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제공할 방법은 없을까요? 어쩌면 AI 교과서는 이런 가정에서 시작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AI는 이미 새로운 엘리트 교육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 출처: NBC News
AI는 기회다.

하지만 현실화하기 어렵습니다. ‘경로 의존성’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자리 잡은 시스템 때문에 ‘하던 대로 하는’ 현상입니다. 교원 양성 시스템, 지역별 교육청이 각 학교를 감독 및 관리하는 시스템, 정답이 있는 시험을 통해 학업 성취를 평가하는 시스템까지 현재의 교육 제도는 18세기의 사상에 근거한 시스템에 완벽히 결박되어 있습니다. 이걸 조금이라도 뒤트는 순간, 공정성 시비가 붙습니다. 혁신이란 걸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러니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는데, 이 기술의 가능성에 근거한 새로운 교육을 설계할 수 없습니다. 이건 교육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부문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까지 모든 부분에서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새로운 기술을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단기적 이익을 얻고, 사회 전체는 변화의 충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번 AI 교과서에서는 누가 이 기술을 기회로 삼았을까요.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근거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AI 교과서 발행사는 8000억 원을 투자해 AI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출판사들과 에듀테크 기업들이 이 사업에 사활을 건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AI 교과서의 과금 체계는 구독형입니다. 모든 학생이 6만 원 수준의 구독료를 매년 내야 합니다. 2025년 구독료 예산은 3100억 원입니다.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1, 고1 학생이 영어, 수학, 정보 과목에만 시범 도입해 사용했습니다. 한 과목이라도 채택한 비율은 32.3퍼센트였고요. 만약 AI 교과서가 예정대로 2028년 정식 교과서로 채택되어 보다 많은 학생들이 사용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됩니다. 큰 돈이 또박또박 들어오죠. 즉, AI 교과서 사업은 참여자끼리 보장된 이권을 나누어 갖는 판입니다. 물론, 예정대로 실행 되었다면의 이야기입니다.

이걸 애당초 밀어붙인 것은 지난 정권의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입니다. 이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며 디지털 교과서 사업을 벌였던 전력이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 큰 관심을 가진 행정가라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졌던 논란은 조금 다른 의심을 품게 합니다. 이 전 장관이 이사장을 맡았던 교육 관련 연구 법인에 몇몇 에듀테크 기업들이 억대의 후원금을 냈던 겁니다. 이 전 장관은 청문회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소명했습니다.

생성형 AI는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많은 부분에서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새로운 기술로 혁신을 만들어 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AI 교과서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실패작입니다. 일년간 개발해 3개월간 검정한 AI 교과서를 현장에 급하게 도입해 무엇을 이루고 싶었는지, 답변할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 생성형 AI의 도래와 함께 발생한 인간 실패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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