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천의 화두는 수도권 매립지 문제입니다. 올 연말을 끝으로 운영을 종료할 예정인데, 아직 대체 부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21년 이후 세 차례 대체 부지 공모를 진행했지만, 그 어떤 지자체도 매립지를 유치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2025년 5월 4차 공모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응모는 0건입니다. 마감일이 10월 10일입니다. 주민들은 대통령이 나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촉구합니다.
매립지 부지의 활용을 놓고도 갈등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사용이 종료된 2매립지 지역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을 짓겠다는 방침이 나오면서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거세진 겁니다. 원래 골프장과 같은 주민 편의 시설이 들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간 터라 반발이 더 심합니다. 주민들은 14년간 불편을 감내했는데, 또 기피 시설을 받을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긴장하고 있는 곳은 엉뚱하게도 강원권입니다. 수도권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한 쓰레기가 제천이나 단양 지역의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시멘트 공장에 쓰레기라니 좀 의아합니다. 그런데 쓰레기를 소각한 폐기물을 어느 정도 섞어 시멘트를 제조할 수 있습니다. 쓰레기를 유연탄 등의 연료 대체품으로 활용하기도 하고요. 이때 시멘트 공장 측이 일정 비용도 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도 추진 중입니다. 관련 환경 규제도 민간 소각장에 비해 느슨하니, 수도권의 생활 폐기물이 시멘트 공장 지역으로 몰려오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2025년 12월 31일까지 대체 매립지를 찾지 못하면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의 쓰레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인천에서는 수도권 매립지 사용 기한을 또 연장할까 봐, 시멘트 벨트 지역에서는 수도권의 쓰레기차가 줄줄이 들어올까 봐 불안합니다. 어쩌다 수도권은 스스로 만들어 낸 쓰레기도 처리할 수 없는 괴물이 되었을까요?
도시가 성장하는 동안
서울에는 땅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쓰레기 매립지로 쓸 땅이 없습니다. 아파트 지을 땅도 없는데 쓰레기를 묻을 공간이 어디 있겠나 싶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 쓰레기를 처리할 공간이 없다니 말입니다. 원래 마포구 상암동에 ‘난지도 매립지’가 있었습니다. 1978년부터 15년 동안 9200만 세제곱미터 규모의 쓰레기를 받아낸 곳입니다. 지금은 방송국 건물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멀끔한 모습이지만, 원래 난지도 주변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기반 처리 시설도 거의 없었으니까요. 쓰레기를 태울 땐 망원동 너머까지 연기가 차올랐습니다. 한강으로 악취를 풍기는 폐수가 흘러들었죠.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는 동안 서울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난지도는 쑥쑥 자라나는 서울이 버린 쓰레기를 받아냈고요. 그러는 동안 매립지의 용량이 수명을 다했습니다. 결국 1992년, 인천 서구에 수도권 매립지를 건립합니다. 쓰레기를 서울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매립지 주변이 허허벌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서울이 성장하는 동안 수도권도 함께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으로 청라 국제 도시, 한강 신도시 등이 들어섰습니다.
수도권 매립지는 인천시 서구와 경기도 김포시 일부 지역에 걸쳐 있습니다. 전체가 1~4매립지로 나뉩니다. 크기는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량인 16.18제곱킬로미터로,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소각 등의 방법으로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가 이곳으로 향합니다. 30년이 넘도록 그랬습니다. 하지만 인천시는 2025년 이후에는 쓰레기를 더 받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동상이몽
애당초 약속은 수도권 매립지를 2016년도까지만 사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주변 신도시 입주민들은 이 약속을 믿고 입주를 시작했고요. 문제는 그다음에 쓰레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015년에서야 환경부와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가 모여 운영 기한을 연장했습니다. 그 기한이 2025년까지라는 것이 인천시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서울시와 경기도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인천시가 못 박은 ‘2025년’이라는 종료 기한이 실제 합의 사항과는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현재 매립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수도권 매립지 3-1공구입니다. 1, 2매립지는 이미 사용이 끝났고, 3매립지의 일부 지역을 사용 중입니다. 2015년 합의에서 3-1공구가 포화할 때까지 수도권 매립지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예측으로는 그 시점이 2025년이었고, 그래서 인천시가 2025년까지를 기한으로 선언한 겁니다.
다만, 매년 쓰레기 매립량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수도권에서 생활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됩니다. 폐기물을 소각한 뒤 그 재만 묻을 수 있는 겁니다. 2015년 합의문에는 대체 매립지가 확보되지 않았을 때 수도권 매립지 잔여 부지의 15퍼센트 정도를 추가 사용할 수 있다는 부속 조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인천시가 양보한다면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수도권 매립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인천 민심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사정
서울시도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서울은 하루 평균 3200톤의 생활 폐기물을 발생시킵니다. 이 중 1200톤이 마포, 강남, 노원, 양천 등 4곳의 소각장에서 처리됩니다. 문제는 나머지 1000톤입니다. 이걸 민간 소각장으로 보내거나 인천의 수도권 매립지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마포구 상암동에 하루 처리 용량 1000톤 규모의 신규 쓰레기 소각장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현실화하면, 서울시는 생활 폐기물의 거의 100퍼센트를 자체적으로 소각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주민 반발에 부딪혀 난항 중입니다. 이미 소각장이 하나 있는 곳에 추가로 소각장을 건립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주민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신규 소각장까지 들어서면 상암동 소각장은 서울 쓰레기의 절반 이상을 태우게 됩니다. 상암동 인근 주민뿐만 아니라 소각장 연기가 흘러 들어갈 인근 고양시 주민까지 반발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소각장 건립 취소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했습니다. 현재 항소가 진행 중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고 꼬인 이야기를 따라오다 보면, 문득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인천시가 매립지를 좀 더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상암동 주민들이 신규 소각장을 받아들인다면 해결될 문제 아니냐는 생각 말입니다.
님비란 무엇인가
실제로 님비 현상은 문제입니다. 장애 학생을 위한 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과 그 앞에 무릎을 꿇었던 부모의 눈물 같은 장면으로 상징되죠. 그런데 인천시나 상암동의 주장도 비슷한 님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인지의 문제와 수도권이나 서울시의 쓰레기를 한 지역이 감당하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님비를 단순한 이기심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동네엔 안 된다’라는 주장은 ‘우리 동네에 들어오면 손해를 본다’라는 뜻일 겁니다. 즉, 나에게 손해인 일에 반대하는 겁니다. 이를 무조건 비난한다면,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은 일정 정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와 맞닿게 됩니다. 전체주의입니다.
인천시나 상암동의 주민 입장에서 생각해 보죠.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주택 소유를 적극적으로 장려해 왔습니다. 사회 통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 정책도 그렇습니다. 실소유 목적의 1주택 소유를 권장합니다. 신혼부부 특례 대출이나 디딤돌 대출 등을 통해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거주지의 안정성에 대한 기대는 단순한 사적 욕심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으로 고양된 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거주지 주변 환경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면 어떨까요. 좋은 변화가 아닙니다. 우리 집 옆에 쓰레기 처리 시설이 생깁니다. 그 기대가 꺾입니다. 내년이면 사라진다고 믿고 있던 매립지가 운영 기한을 연장합니다. 역시 기대가 꺾입니다.
병원은 서울에, 폐기물은 고령군에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는 공간적 해법(Spatial Fix)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대도시는 엄청난 소비와 생산 활동을 통해 성장하지만, 동시에 폐기물을 양산합니다.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벗어난 막대한 폐기물을 말입니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대도시는 매립지나 소각장 등을 외부에 건설합니다. 지리적 확장을 통해 문제를 임시로 봉합하는 겁니다.
이런 방식의 해결은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과잉 생산에 부딪히게 된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에 잉여 생산품을 밀어내고, 자원은 수탈해 와 다시 과잉 생산을 유지했습니다. 우리가 재활용 쓰레기나 전자 제품 폐기물 등을 해외로 보내는 것도 비슷한 행태의 지리적 확장입니다.
하비는 이러한 공간적 해법의 결과 불균등한 지리적 발전이 발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도시는 깨끗한 생활 환경과 부동산 가치를 지켜냅니다. 반면, 주변부 지역은 쓰레기로 상징되는 환경 부하를 떠안게 됩니다. 즉, 서울의 높은 집값은 이러한 방식으로 유지되고 고양됩니다. 반대로 지역의 가치가 서울로 흡수되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죠. 발전소를, 데이터센터를, 공장을, 쓰레기를 서울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대신 예술의 전당과 세종 문화회관, 청와대, 법원, 명문대학 등은 서울이 끌어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울이, 넓게는 수도권이 이런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시멘트 공장이 위치한 지역에서 수도권의 쓰레기차를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이번에도 갈 곳을 잃은 쓰레기가 도시의 경계를 확장해 어딘가로 이동할 것이라 예상하는 겁니다. 실제로 폐기물 처리를 두고 시멘트 업계와 민간 소각 업계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미 강릉, 동해, 제천, 영월 등 시멘트 공장 밀집 지역에서는 늘어나는 폐기물 처리 때문에 유해 물질 유출 등 환경 피해를
호소하고 있고요.
사실, 종량제 봉투에 담기지 않는 쓰레기를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의료 인프라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에 의료 폐기물이 묻힙니다. 고급 아파트는 서울에 올라가는데 산업 폐기물은 서울에 묻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 폐기물이 가장 많이 묻히는 지역은 경북 고령군입니다. 당연히 종합 병원 같은 의료기관은 전혀 없는 지역입니다.
비용을 따져서
해법으로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쓰레기 처리 기술도 발전시키자고 합니다. 역시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는 지구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입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쓰레기 문제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만든 쓰레기의 처리를 내가 감당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를 현실화하지 못한 대도시의 원죄 같은 것입니다.
만약 서울의 25개 구마다 쓰레기 처리 시설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자치구별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운영 비용은 자치구 세수로 충당하고, 인근 주민에게는 합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문화시설일 수도 있겠고, 공공요금 감면일 수도 있겠죠. 무엇이든 주민을 설득할 만큼 충분해야 할 겁니다.
이 방법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시설을 외곽에 크게 지어야 운영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인천시 서구의 주민이나 상암동의 주민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수준의 보상을 제시하는 것이 역시 순리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비용 계산을 다시 하는 것이 순서일 겁니다. 이런 논의 없이 부랴부랴 직매립 금지 유예를 검토하거나 시멘트 업계의 굴뚝을 못 본 체하는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저 퇴보일 뿐이며, 유예일 뿐이니까요. 기다린다고 방법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어쨌든, 주변을 어지럽히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