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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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그 어떤 모델보다 성능 좋은 AI 에이전트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롬의 가치

2025년 9월 3일

구글이 미국 정부와의 반독점 소송에서 사실상 승리했습니다. 앞으로도 크롬은 구글의 브라우저로 남습니다. 오픈AI도, 퍼플렉시티도 눈독을 들였지만, 구글은 크롬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송에서 미국 법무부는 검색 시장의 독점을 해소하기 위해 구글이 크롬을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구글이 분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고, 그다음의 온라인 생태계는 어떻게 요동칠 것인지에 관심이 몰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우려는 해소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방 법원은 구글이 애플이나 삼성 등의 스마트폰 제조 업체와의 거래를 계속할 수 있다고도 판단했습니다. 구글 검색과 크롬 브라우저를 기본 옵션으로 선탑재하는 대가로 돈을 내는 계약 말입니다. 크롬과 구글은 앞으로도 스마트폰 인터넷 브라우징과 검색의 표준일 겁니다. 시장이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장 마감 후 알파벳의 주가는 8퍼센트 급등했습니다. 그런데 이 승리 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승리의 이유입니다.

그때와 지금

소송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20년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 행정부 시절이죠. 당시 반독점 당국은 구글이 독점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사용해 왔다고 봤습니다. 초점은 검색 시장 독점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당시의 고소장에는 AI나 AI 챗봇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5년간 세계는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구글은 이제 검색이 아닌 생성형 AI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소송의 쟁점도 AI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법무부는 구글이 검색 지배력을 활용해 AI 분야까지 독점하려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색 데이터가 AI 훈련에 직접 활용되고 있고, 이 때문에 구글의 검색 사업과 제미나이 개발이 선순환의 구조를 구축한다는 겁니다. 이 선순환은 AI 분야의 독점을 강화하겠죠.

좀 더 구체적으로 보죠. 법무부는 ‘제미나이를 스마트폰에 선탑재하기 위한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AI 독점을 본격적으로 지적했습니다. 경쟁사도 거들었습니다. 퍼플렉시티의 임원 드미트리 셰블렌코는 구글이 사실상 시장을 통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갱단의 보스’처럼 말이죠.

연방 법원은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법원은 이번 판결의 근거로 생성형 AI의 부상을 들었습니다. 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진짜 막아야 할 독점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AI 기술이 검색 시장의 독점 구도를 흔들 잠재력을 지닌다고 봤습니다. 재판 초기에는 생성형 AI가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지만, 이후 새로운 경쟁 위험의 중심이 되었다고 강조하죠. 사실, 검색 독점을 해소하는 것은 이미 철 지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AI 독점을 막기 위한 결정이 나왔습니다.

지금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구글에서 크롬 브라우저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시장도 바로 그 사실에 반응하고 있고요. 하지만 크롬이 의미를 가지려면 인터넷 브라우저가 온라인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챗GPT나 퍼플렉시티와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도 크롬 창을 열어 접속하니까요. 하지만 AI 기업들은 미래에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술에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한 법이죠.

그렇다면 AI 독점을 막기 위해 크롬이 아니라 무엇을 묶어야 할까요? 법원은 데이터라고 봤습니다. 구글이 검색 데이터를 경쟁사에 한 차례 제공하도록 한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구글에 ‘오늘 서울 날씨’라고 검색한 뒤 구글이 제시한 검색 결과 중 2번째 링크인 ‘www.accuweather.com’을 클릭했다고 가정하죠. 이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한 번은 경쟁사에 제공하도록 한 겁니다. 그래야 다른 회사들도 이 데이터 세트를 활용해 자신들이 개발 중인 생성형 AI 모델을 학습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웹 제로의 시대

구글은 웹 시대의 승리자였습니다. 세계를 연결해 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한 기업이었죠. 저와 ‘www.accuweather.com’을 연결한 것처럼 말입니다. 무한한 연결 중에 무엇이 유용한지 순위를 매겨 보여주는 서비스가 구글 검색이었습니다. 학술 정보나 예술 작품도, 내 컴퓨터 안에만 머물던 업무용 서류도 구글은 모두 연결했습니다. 웹 바깥의 정보는 구글이 직접 웹으로 옮겼습니다. 지메일, 구글 워크스페이스, 아트앤컬처, 구글맵, 구글 스칼라까지. 구글은 세계를 촘촘하게 엮어 개인의 활동을 포섭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광고 수익을 올렸고요.

그런데 생성형 AI는 웹과 성격이 다릅니다. 2024년 가장 많이 언급된 용어 중 하나가 바로 에이전트 AI입니다. AGI의 등장은 언제 될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에이전트 AI는 코 앞입니다. 오픈AI 등 프론티어 AI 기업들이 속속 관련 기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곧 AI가 알아서 아마존에서 필요한 물건을 대신 검색하고, 주문해 주는 세계에 도착할 겁니다. 세계와의 연결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을 생성형 AI에게 맡겨두는 세계 말입니다.

이미 변화의 조짐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제로 클릭(Zero Click)’ 현상입니다. 앞서 예로 들었던 구글 검색 화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추가적인 정보를 더 원하지 않았다면, ‘www.accuweather.com’을 클릭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물론, 날씨는 기본 정보이기 때문에 ‘AI 오버뷰’ 도입 이전부터 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보여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더 개인화된, 더 자세한 내용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최근 구글 검색에서 AI 오버뷰의 정리만 읽고 추가적인 클릭 없어 넘어간 경우가 꽤 있으셨을 겁니다. 이미 수많은 이용자에게 챗GPT 등의 AI 챗봇은 네이버나 구글 등의 전통 검색 서비스보다 편리한 툴이 되고 있습니다. 구글은 AI를 검색 서비스 안에 도입하면서 쫓아가고 있고요.

그런데 AI 챗봇 외에도 요즘 검색에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입니다. 유튜브도 그렇고요. 이유가 있습니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검색 결과가 상대적으로 만족스러운 때도 있거든요. 여기서 챗GPT의 ‘메모리’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두드러집니다. 검색이든, 질문이든 가면 갈수록 챗GPT는 나에게 맞춘 답변을 내놓습니다. 예를 들어 문서 요약과 관련된 작업을 최근 많이 했다면, 뭘 묻든 답변 말미에 ‘이 문서의 내용만으로 짧게 정리된 내용과 도식화된 구조로 정리해 드릴까요?’라고 덧붙이는 식입니다.

에이전트 AI의 경쟁력

웹의 시대에는 구글이 촘촘한 연결을 통해 나를 파악했습니다. 이제는 생성형 AI가 나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내 필요, 취향, 명령의 목적 등을 파악합니다. 그래서 ‘구글이 크롬을 매각할 필요 없다’라는 판결은 절반만 맞습니다. 크롬은 사용자의 특성을 파악하기에 아직은 가장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생성형 AI는 자연어로 작동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어라는 것은 몹시 모호합니다. 프로그래밍 코드와는 달리 같은 말이라도 여러 뜻을 품을 수 있고요. 즉, AI 챗봇이 사용자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자연어로 된 명령에도 최적의 결괏값을 낼 수 있다는 얘깁니다.

오픈AI와 퍼플렉시티는 크롬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사실 자체 브라우저 개발을 빠르게 추진 중이었습니다. 오픈AI는 AI 브라우저 출시를 곧 예정하고 있고, 퍼플렉시티는 이미 ‘코멧(Comet)’이라는 이름의 브라우저를 출시했습니다. 즉, 크롬을 사겠다고 나선 이유는 브라우저 기능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죠. 크롬은 여전히 구글의 AI에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AI 브라우저로 거듭난다면 그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 질 겁니다. 연방 법원은 구글이 검색 데이터를 경쟁사들과 공유하도록 지시했지만, 개인 정보 침해 우려가 있는 부분은 제외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그 데이터는 일반론이 됩니다. 지금 생성형 AI가 필요한 것은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 소비 기록 같은 것인데 말이죠.

AI 시대의 사법 정의

판결문에는 법원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법원은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면서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here the court is asked to gaze into a crystal ball and look to the future)”라고 언급한 겁니다. 법원은 사법 기관입니다. 생성형 AI나 기술 공학 분야에는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AI 시대의 법원은 과거 사실에 기반해 분쟁을 해결하는 일반적인 역할을 넘어설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번 케이스가 그 어려움을 상징합니다.

시장은 이번 판결을 통해 구글이 리스크를 해소했고, 남은 제재 수준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입니다. 최근 이미지 생성 분야를 중심으로 선전하고 있는 구글의 생성형 AI는 그 어떤 모델보다 성능 좋은 AI 에이전트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크롬은 때로 사용자의 신용카드 정보까지 저장해 둡니다. 여기에 제미나이가 결합한다면 파급력은 엄청날 겁니다.

구글의 생성형 AI는 이번 판결로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2025년 3월 기준으로 제미나이의 일일 사용자는 3500만 명, 챗GPT는 1억 6000만 명 수준입니다. 오픈AI에 비해 구글은 빠르게 치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역전극이 곧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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