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인 택시 탑승 경험을 자주 듣게 됩니다. 주로 미국이나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현지에서 이용했던 경험담을 풀어놓는 겁니다. 한결같이 나오는 이야기는 ‘쾌적했다’라는 감상입니다. 덤으로 택시 요금도 절반 가까이 저렴합니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안전에 관한 우려가 있었던 이용객도, 탑승 후에는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탈 수 있는 무인 택시, 한국에서는 아직 불가능합니다.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관련 법규가 정비되지 않았습니다. 무인 택시를 빠르게 도입해야겠다는 의지가 우리 정부에는 없다는 얘깁니다. 뛰어드는 기업도 없습니다.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기업도 머뭇거리게 만드는 존재는 바로 택시입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관련
보고서를 냈습니다. 자율 주행 택시의 도입은 정해진 미래이며, 이에 따른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움직여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무거운 경고입니다. 우리가 택시를 이용할 때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는 까닭도, 택시 운전자 중 고령자의 비율이 압도적인 까닭도 한국은행의 경고와 전부 맞닿아 있습니다.
택시의 정체성
국가에 따라 택시 업계의 모습은 제각각입니다. 택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모호한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택시는 대중교통입니다.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해 주는 서비스죠. 공공재입니다. 반면 택시는 법인 택시라는 기업, 혹은 개인택시라는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사적인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승객 입장에서도 택시를 이용할 것인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각 나라는 각자의 사정에 맞춰 택시 제도를 마련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급격한 경제 성장이 시작되었던 1960년대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택시 산업을 키우게 됩니다. 서울로 상경해 일하는 사람은 많아졌는데, 대중교통 기반은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역과 청량리역 사이를 오갔던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은 1974년에야 개통되었습니다. 버스 노선도 턱없이 부족했죠. 사람들을 실어 나를 다른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택시였고요.
정부는 빠르게 택시를 늘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법인 택시의 형태로 운영하고자 했죠. 일종의 대중교통으로 관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엔 우리나라 경제력에 비해 택시 가격이 너무 비쌌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택시를 구입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본가는 거의 없었죠. 그래서 개인이 택시를 구입해 운영하면서 마치 법인 택시 회사에 소속된 것처럼 꾸미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일종의 ‘지입제’처럼 운영된 겁니다.
그래서 정부는 개인택시
면허제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택시 수를 급격히 늘리기 위해 개인택시 면허를 일종의 ‘자산’으로 만듭니다. 개인택시 면허를 상속하거나 타인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개인택시를 시작하려면 자동차도 사야 하고, 택시 면허를 받기 위해
자격 요건도 갖춰야 하죠.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은퇴할 즈음에는 자식에게 택시업을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면허를 팔아 노후 자금으로 쓸 수도 있죠. 게다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택시 기사의 평균 수입은 대졸자 초임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시장 경제로부터의 이탈
그런데 1990년대 이후부터 상황이 달라집니다. 80년대 택시는 수송량의
20퍼센트가량을 책임지는 대중교통이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는 8.8퍼센트까지 떨어집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에 대중교통 인프라가 촘촘히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노선도 늘어나고 지하철도 끝없이 개통되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자가용 보유가 늘어났습니다. 1980년
자동차 등록 대수는 50만 대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5년 100만 대를 넘어섰고, 1997년에는 1000만 대를 돌파했죠.
즉, 택시는 더 이상 대중교통 기반의 핵심 요소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개인이 선택하는 서비스 쪽에 가까워졌죠. 게다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았습니다. 정부가 택시를 대중교통의 한 축으로 인식해 제대로 관리할 요량이었다면, 늦어도 1990년대부터는 택시 감차에 들어갔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문제는 면허였습니다. 이미 개인 간 거래되고 있는 면허를 갑자기 몰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그렇다고 시장 가격대로 돈을 주고 회수할 하자니 예산이 걸립니다. 결국 감차 계획은 무산되고 신규 면허 발급을
중단하는 선에서 마무리됩니다. 이제 개인택시 영업을 하려면 자격 요건을 갖췄더라도 누군가
면허를 매물로 내놓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즉, 개인택시 영업이 일종의 특권화한 겁니다.
누군가의 출근길과 누군가의 인생 2막
2024년 서울 기준으로 법인 택시는 전체의 약
30퍼센트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개인택시죠. 전국적으로 봐도 비슷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택시는 이윤을 내기 쉽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습니다. 물가를 관리해야 하는 정부와 지자체는 택시 요금을 올리는 데에 늘 소극적입니다. 지금은 금지된 ‘사입금’ 등의 이슈로 법인 택시 회사가 이윤을 착취한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은 돈이 안 벌리니 회사와 법인 택시 기사가
함께 죽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택시를 업으로 삼고 싶은 이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특히 개인택시를 말이죠. 일한 만큼 돈을 벌고, 출퇴근 시간의 구애를 받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운전은 일반적인 육체노동에 비해 체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운전을 즐거이 여기는 이도 많습니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택시 운전은 누군가에게 천직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려면 면허를 사야 합니다. 마치 부동산을 구입하듯 말입니다. 돈이 있다고 언제든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팔겠다고 내놓아야 살 수 있습니다. 택시 면허의 가격이 오릅니다. 면허 가격이 오르고 또 올라 2024년 기준으로 서울에서는
1억 원이 좀 넘습니다. 이런 큰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만 개인택시 업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청년층은 아니겠죠. 개인택시가 은퇴자들의 직업으로 인식되게 된 배경입니다. 택시 기사
고령화의 주요 원인은 이 면허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은퇴자에게 개인택시는 꽤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택시 운행을 하면 많건 적건 수입이 생깁니다. 면허를 사기 위해 퇴직금을 모두 털어 넣었지만, 적어도 날릴 걱정은 없습니다. 면허를 되팔면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아 이윤을 남기고 팔 수도 있을 겁니다. 즉, 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연금이 쌓이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일단 아파트를 사면 가격이 오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투자가 자산 증식의 기본이었습니다. 택시 면허도 비슷한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메기의 등장
그래서 택시의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는 동상이몽이 생깁니다. 수요자는 승객입니다. 내 돈을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안전한 이동을 위해 합당한 요금을 제공했으니 승차 거부, 심야 시간대 택시 부족, 불친절 등의 불쾌한 경험은 부당합니다. 공급자는
고령자 중심의 택시 면허 소지자입니다. 크게 두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겠습니다. 최소한의 수익만 올리면 되는 경우와 어떻게든 많이 벌어 면허 비용을 포함한 투자 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상대적으로 피곤한 심야 운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후자는 돈이 되지 않는 단거리 승객을 태울 여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어느 쪽이든 승객에게 반드시 친절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문제가 생길 정도만 아니라면, 감정노동을 감수해서 얻게 되는 이득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택시는 우연히 잡힙니다. 서비스가 좋은 택시라고 돈을 더 많이 벌게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택시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가 흔합니다. 정말 필요할 때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거나, 단거리는 태워주지 않아 고생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이런 택시 판에 2018년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메기가 나타난 겁니다. 카카오모빌리티와 타다의 등장입니다. 플랫폼 사업이 택시 서비스의 기준을 바꿨습니다. 택시 서비스에 별점을 메길 수 있게 되었고, 돈을 더 내면 차량 내부의 청결부터 서비스의 질까지 표준 이상이 담보된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타다는 친절한 서비스를 ‘혁신’으로 내세우기도 했죠. 하지만 둘의 운명은 갈렸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국내 택시 산업계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타다는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에 밀려 사실상 퇴출되고 말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