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가 90년대에 갇혀 있는 이유

bkjn review

서울에 무인 택시가 다니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택시가 90년대에 갇혀 있는 이유

2025년 9월 4일

요즘 무인 택시 탑승 경험을 자주 듣게 됩니다. 주로 미국이나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현지에서 이용했던 경험담을 풀어놓는 겁니다. 한결같이 나오는 이야기는 ‘쾌적했다’라는 감상입니다. 덤으로 택시 요금도 절반 가까이 저렴합니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안전에 관한 우려가 있었던 이용객도, 탑승 후에는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탈 수 있는 무인 택시, 한국에서는 아직 불가능합니다.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관련 법규가 정비되지 않았습니다. 무인 택시를 빠르게 도입해야겠다는 의지가 우리 정부에는 없다는 얘깁니다. 뛰어드는 기업도 없습니다.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기업도 머뭇거리게 만드는 존재는 바로 택시입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관련 보고서를 냈습니다. 자율 주행 택시의 도입은 정해진 미래이며, 이에 따른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움직여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무거운 경고입니다. 우리가 택시를 이용할 때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는 까닭도, 택시 운전자 중 고령자의 비율이 압도적인 까닭도 한국은행의 경고와 전부 맞닿아 있습니다.

택시의 정체성

국가에 따라 택시 업계의 모습은 제각각입니다. 택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모호한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택시는 대중교통입니다.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해 주는 서비스죠. 공공재입니다. 반면 택시는 법인 택시라는 기업, 혹은 개인택시라는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사적인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승객 입장에서도 택시를 이용할 것인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각 나라는 각자의 사정에 맞춰 택시 제도를 마련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급격한 경제 성장이 시작되었던 1960년대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택시 산업을 키우게 됩니다. 서울로 상경해 일하는 사람은 많아졌는데, 대중교통 기반은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역과 청량리역 사이를 오갔던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은 1974년에야 개통되었습니다. 버스 노선도 턱없이 부족했죠. 사람들을 실어 나를 다른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택시였고요.

정부는 빠르게 택시를 늘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법인 택시의 형태로 운영하고자 했죠. 일종의 대중교통으로 관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엔 우리나라 경제력에 비해 택시 가격이 너무 비쌌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택시를 구입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본가는 거의 없었죠. 그래서 개인이 택시를 구입해 운영하면서 마치 법인 택시 회사에 소속된 것처럼 꾸미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일종의 ‘지입제’처럼 운영된 겁니다.

그래서 정부는 개인택시 면허제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택시 수를 급격히 늘리기 위해 개인택시 면허를 일종의 ‘자산’으로 만듭니다. 개인택시 면허를 상속하거나 타인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개인택시를 시작하려면 자동차도 사야 하고, 택시 면허를 받기 위해 자격 요건도 갖춰야 하죠.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은퇴할 즈음에는 자식에게 택시업을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면허를 팔아 노후 자금으로 쓸 수도 있죠. 게다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택시 기사의 평균 수입은 대졸자 초임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시장 경제로부터의 이탈

그런데 1990년대 이후부터 상황이 달라집니다. 80년대 택시는 수송량의 20퍼센트가량을 책임지는 대중교통이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는 8.8퍼센트까지 떨어집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에 대중교통 인프라가 촘촘히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노선도 늘어나고 지하철도 끝없이 개통되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자가용 보유가 늘어났습니다. 1980년 자동차 등록 대수는 50만 대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5년 100만 대를 넘어섰고, 1997년에는 1000만 대를 돌파했죠.

즉, 택시는 더 이상 대중교통 기반의 핵심 요소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개인이 선택하는 서비스 쪽에 가까워졌죠. 게다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았습니다. 정부가 택시를 대중교통의 한 축으로 인식해 제대로 관리할 요량이었다면, 늦어도 1990년대부터는 택시 감차에 들어갔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문제는 면허였습니다. 이미 개인 간 거래되고 있는 면허를 갑자기 몰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그렇다고 시장 가격대로 돈을 주고 회수할 하자니 예산이 걸립니다. 결국 감차 계획은 무산되고 신규 면허 발급을 중단하는 선에서 마무리됩니다. 이제 개인택시 영업을 하려면 자격 요건을 갖췄더라도 누군가 면허를 매물로 내놓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즉, 개인택시 영업이 일종의 특권화한 겁니다.

누군가의 출근길과 누군가의 인생 2막

2024년 서울 기준으로 법인 택시는 전체의 약 30퍼센트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개인택시죠. 전국적으로 봐도 비슷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택시는 이윤을 내기 쉽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습니다. 물가를 관리해야 하는 정부와 지자체는 택시 요금을 올리는 데에 늘 소극적입니다. 지금은 금지된 ‘사입금’ 등의 이슈로 법인 택시 회사가 이윤을 착취한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은 돈이 안 벌리니 회사와 법인 택시 기사가 함께 죽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택시를 업으로 삼고 싶은 이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특히 개인택시를 말이죠. 일한 만큼 돈을 벌고, 출퇴근 시간의 구애를 받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운전은 일반적인 육체노동에 비해 체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운전을 즐거이 여기는 이도 많습니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택시 운전은 누군가에게 천직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려면 면허를 사야 합니다. 마치 부동산을 구입하듯 말입니다. 돈이 있다고 언제든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팔겠다고 내놓아야 살 수 있습니다. 택시 면허의 가격이 오릅니다. 면허 가격이 오르고 또 올라 2024년 기준으로 서울에서는 1억 원이 좀 넘습니다. 이런 큰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만 개인택시 업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청년층은 아니겠죠. 개인택시가 은퇴자들의 직업으로 인식되게 된 배경입니다. 택시 기사 고령화의 주요 원인은 이 면허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은퇴자에게 개인택시는 꽤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택시 운행을 하면 많건 적건 수입이 생깁니다. 면허를 사기 위해 퇴직금을 모두 털어 넣었지만, 적어도 날릴 걱정은 없습니다. 면허를 되팔면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아 이윤을 남기고 팔 수도 있을 겁니다. 즉, 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연금이 쌓이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일단 아파트를 사면 가격이 오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투자가 자산 증식의 기본이었습니다. 택시 면허도 비슷한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메기의 등장

그래서 택시의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는 동상이몽이 생깁니다. 수요자는 승객입니다. 내 돈을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안전한 이동을 위해 합당한 요금을 제공했으니 승차 거부, 심야 시간대 택시 부족, 불친절 등의 불쾌한 경험은 부당합니다. 공급자는 고령자 중심의 택시 면허 소지자입니다. 크게 두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겠습니다. 최소한의 수익만 올리면 되는 경우와 어떻게든 많이 벌어 면허 비용을 포함한 투자 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상대적으로 피곤한 심야 운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후자는 돈이 되지 않는 단거리 승객을 태울 여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어느 쪽이든 승객에게 반드시 친절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문제가 생길 정도만 아니라면, 감정노동을 감수해서 얻게 되는 이득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택시는 우연히 잡힙니다. 서비스가 좋은 택시라고 돈을 더 많이 벌게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택시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가 흔합니다. 정말 필요할 때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거나, 단거리는 태워주지 않아 고생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이런 택시 판에 2018년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메기가 나타난 겁니다. 카카오모빌리티와 타다의 등장입니다. 플랫폼 사업이 택시 서비스의 기준을 바꿨습니다. 택시 서비스에 별점을 메길 수 있게 되었고, 돈을 더 내면 차량 내부의 청결부터 서비스의 질까지 표준 이상이 담보된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타다는 친절한 서비스를 ‘혁신’으로 내세우기도 했죠. 하지만 둘의 운명은 갈렸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국내 택시 산업계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타다는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에 밀려 사실상 퇴출되고 말았죠.
2019년 이전까지는 택시 서비스를 이런 방식으로 누릴 수 있다는 상상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출처: 타다
타다가 증명한 것

카카오와 타다의 결정적인 차이는 ‘면허제’를 인정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카카오는 면허를 사들였습니다. 이때 사들인 면허는 개인택시 면허가 아니라 법인 택시 면허입니다. 카카오 블루등 ‘직영 택시’로 간주되는 경우가 바로 이 면허에 기반하여 운영됩니다. 하지만 택시 총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시장의 가장 중요한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 선에서 시장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가 직접 기존 방식의 법인 택시 회사로 기능함과 동시에 택시 플랫폼 업자로도 기능했으니 반발도 적었습니다. 반면, 타다는 면허제를 비켜 가고자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승객은 렌터카를 빌리는 것이고, 타다는 렌터카를 대신 운전할 인력을 함께 배정하는 식으로 운영되었죠. 물론 승객으로서는 일반 택시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요. 

타다의 비즈니스 모델이 법적으로 인정되었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당시 개인택시 면허 가격 추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타다 서비스 등장 이후 1년 새에 10퍼센트 이상 떨어졌습니다. 이대로라면 퇴직금을 다 털어 넣은 택시 면허가, 우리 가족 평생 먹을거리라 생각해 전 재산을 털어 넣은 면허가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엄습합니다. 갈등은 심각했습니다. 논란이 가장 뜨거웠던 2019년에만 3건의 분신 시도가 있었고 이 중 2명이 사망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반발을 단순한 러다이트 운동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2024년 초 논란이 되었던 홍콩 H지수 ELS 불완전 판매 피해자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은퇴자들은 평생 거래했던 은행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개인택시 기사는 국토부와 지자체의 관리하에 오랫동안 유지되고 인정되어 온 택시 면허제를 믿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택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타다 금지법’으로 면허제는 생명을 연장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승객들은 쾌적한 택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어느 정도는 돈을 쓸 동기가 생겼죠. 이를 현실화할 기술력도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타다라는 메기는 연못에 파란을 일으켰지만, 거기까지였죠.

이번에는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한국은행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택시 산업이 갈라파고스화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뉴욕이나 런던, 싱가포르 등은 우버 등의 플랫폼 택시 비율이 85퍼센트 이상입니다. 전통적인 형태의, 도로를 배회하며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 비율은 15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반면, 한국은 완벽한 플랫폼 기반의 택시 비율이 6퍼센트 정도입니다. 94퍼센트는 콜을 받기는 하지만, 여전히 도로 위에서도 손님을 태우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택시 산업이 플랫폼에 종속되는 속도나 양상이 크게 다릅니다. 뉴욕에서는 우버에 밀려 옐로캡이 멸종했습니다. 한국과는 다르지만, 뉴욕 택시도 면허제로 운영됩니다. 우버 도입 이후 택시 면허 가격이 90퍼센트 이상 급락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전통적인 방식의 택시 운영과 모바일 시대의 고객 요구 사이에서 일종의 중재를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당장에는 업계가 감당해야 할 충격의 크기가 작지만, 변화를 영원히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자율 주행이라는 기술은 도저히 면허제와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타다 때와는 당국의 대응이 다를 겁니다. 당시에는 한 플랫폼 사업자와 택시 기사 사이에서의 선택이었습니다. 이번에는 AI 시대의 핵심 기술에 뒤처질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자율 주행 택시는 물리 AI(Physical AI) 중 가장 먼저 일상으로 들어올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차원의 전략 산업 분야이고요. 보고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자율 주행 택시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외국의 소프트웨어에 자동차를 맞춤 제작하는 추종자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개인택시 면허 거래제는 적은 비용으로 대중교통 기반을 빠르게 확충하고자 하는 정부의 고육지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잘못된 첫 단추였습니다. 90년대에, 2000년대에 그 단추를 제대로 다시 끼웠다면 지금처럼 손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은퇴 자금 1억 원을 투자한 개인택시 운전자가 서울시의 보조금 1500만 원에 면허를 포기할 리는 없습니다. 자율 주행 택시 상용화를 어떤 기업이든 시작한다면, 2019년 타다 사태 당시보다 더 큰 반발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연착륙을 준비하기에 이미 늦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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