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떠난 사람들

bkjn review

일본 이시바 총리의 사임 뒤에는 중국 시진핑 정권이 있습니다.

중국을 떠난 사람들

2025년 9월 8일

일본의 총리가 바뀝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결국 사임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기대했던 우리 정부도 신임 총리가 취임하면 관계 정립을 바닥부터 다시 해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뀐 일본 내각이 지금보다 훨씬 우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부담입니다.

이시바 총리는 2024년 9월 말 사임한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뒤를 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가운데, 자민당의 부패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정권이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습니다. 소수파 출신으로, 비리나 부패와는 인연이 없어 보이는 깨끗한 이미지가 이시바 총리의 강점이었습니다. 일본은 의석수를 가장 많이 확보한 정당의 총재가 총리직을 맡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민당 총재의 임기는 3년이고요. 하지만 결국 1년도 채우지 못하게 되었죠.

이시바 총리를 끌어내린 것은 자민당입니다. 파벌과 관계없이 이시바 총리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구 아베파가 이번 사임을 주도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자민당 내부의 주류 세력입니다. 부패 스캔들의 중심에 섰던 터라, 이시바 내각에서는 중용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이시바 총리에게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준 의외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입니다.

潤日

지난 4월 일본에서 《潤日》라는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한자를 일본어 발음이 아닌 중국어 발음으로 읽어 ‘룬리(run-ri)’라고 합니다. ‘潤(룬, run)’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중국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래 ‘돈벌이’라는 뜻인데, 한어 병음이 영어의 ‘run’과 같다는 점에 착안해 생겨난 신조어입니다. ‘潤日’은 일본으로 도망치는 중국인을 의미합니다.

일본으로 향하는 중국인은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중국 북동부 지방이나 푸젠성 출신이 많았습니다. 연수생이나 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입국했고, 2010년에는 69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일본에 거주했습니다. 소득 수준과 자산 규모가 크지 않아 주로 일본의 농촌 지역이나 대도시 인근의 저렴한 교외 지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2008년도에 발표된 한 논문은 푸젠성 출신 유학생 다수가 불법 체류자가 되고 마는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푸젠성은 농지가 좁고 인구는 많아 해외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1980년대 이후로 저소득층 노동자나 연수생, 유학생들의 해외 이주가 많았죠. 이 때문에 일본에 정착한 초기 중국 이민자 상당수가 푸젠성 출신이었습니다. 일부 초기 이주민의 경우에는 학력을 위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않았는데 대학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입국하는 것이죠. 푸젠성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 해외에서 돈을 벌어 송금해 오는 일이 많다 보니, 불법 체류자가 되는 일도 흔했습니다. 논문은 큰 문제라는 인식도 갖지 못한 채, 일본에서 불법 체류자가 되고 만 푸젠성 출신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일본 내 중국 이주민의 모습입니다. 저소득 중국인이 일본에 입국하여 돈을 벌고, 중국으로 송금하는 형태죠. 그런데 2010년대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2015년도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일본 유학생은 대체로 중국의 ‘신흥 중산층’ 출신이었습니다. 엄청난 갑부는 아니지만, 자녀들의 일본 유학 초기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계층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5년 일본은 완전히 새로운 중국 이주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비교적 부유한 중국의 중산층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공포스러운 것

흔히 ‘’중산층을 두텁게 유지해야 한다’, ‘중산층이 줄고 있어 우려된다’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중산층은 한 사회의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윤택한 삶의 상징이죠. 그래서 중산층이 두터울수록 사회가 안정적입니다. 누군가는 중산층을 꿈꾸며 노력하고, 누군가는 중산층의 삶에 만족합니다. 중산층이 줄어든다는 얘기는 경제적으로 나빠지는 가구가 늘어난다는 얘깁니다. 삶의 수준이 악화하는 경험이 쌓입니다. 당연히 사회가 불안해집니다.

중산층이 이주를 결심하는 현상은, 그래서 위험 신호입니다. 2024년 유동 자산 100만 달러 수준의 중국인 자산가 중 약 만 2500명이 중국을 떠났습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중산층 사이에 불고 있는 일본으로의 이주 열풍을 다뤘고요. ‘潤’ 현상이 실체가 있다는 얘깁니다. 계기는 코로나19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의 중산층도 윤택한 삶을 누렸습니다. 그것도 첨단의 윤택함을 누렸죠.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를 가 보면, 마치 미래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죠. 엄청난 고층 빌딩부터 첨단 결제 시스템, 자율 주행 택시까지 말입니다. 단, 중국의 기술과 물질은 첨단일지 몰라도, 정치와 정책은 아직입니다. 이를 증명한 것이 팬데믹 당시의 전격적인 봉쇄 조치였습니다.

시진핑 정권의 안정적인 연장을 위해 코로나19는 철저히 관리되어야 했습니다. 대량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만은 막아야 했던 겁니다. 때문에 중국은 3년에 걸친 강력한 봉쇄 조치를 경험했습니다. 대도시의 부유층, 중산층도 예외는 아니었죠. 자유가 침해되고 때로는 사유 재산까지 침해당했습니다. 흰 방호복을 입은 관리들이 영장 없이 사람들을 임시 격리 시설로 연행하고 소독을 이유로 무작정 가정집에 들이닥쳐 여기저기 소독약을 뿌려댔습니다. 청년층은 당황했습니다. 내가 알던 중국이 아니었으니까요. 중장년층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마치 문화 대혁명이 다시 닥치는 것 같은 공포였죠.

도쿄의 중국인 커뮤니티

지금 중국을 떠나는 중산층은 정권에 반감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유라는 가치가 해외 이주의 목적지를 정할 때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이 인기 있는 까닭입니다. 영어 사용권이기 때문에 언어적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적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되면서 미국 비자 취득이 어려워졌습니다. 캐나다와 호주의 입국 비자 취득도 이에 따라 함께 어려워지는 추세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룬리들은 일본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일본의 경우, 500만 엔의 투자 자금을 준비해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면 경영 관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이민까지는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일본에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돈으로 약 4700만 원으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게다가 도쿄는 일종의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도 긍정적으로 작동했습니다. 이민자에 대한 폭력이나 혐오가 상대적으로 적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생각을 공유하는 문화도 깊습니다. 이를테면, 작은 서점이나 로컬 문화 공간 같은 것 말입니다. 사실상 일본으로 사상적 도피를 한 중국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곳에서 시진핑이 없는 세계를 논합니다. 중국 서점, 중국 문학 살롱, 중국 출신 이주민을 위한 문학 살롱 등이 도쿄 곳곳에 등장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쿄에서 ‘살기 위해’ 부동산을 사들이는 중국인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쿄의 일부 아파트 단지의 경우 약 20퍼센트의 매물이 중국인에게 판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국은 이미 부동산 폭락을 경험했습니다. 반면, 도쿄의 부동산은 크게 오르지 않지만 폭락하지도 않죠. 중국인의 입장에서 도쿄 부동산은 상대적인 ‘안전 자산’입니다.

결국, 일본인 퍼스트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을 일본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입니다. 일본 사회는 폐쇄적인 편입니다. 인플레이션 탓에 열심히 일해도 점점 가난해진다는 감각이 전 사회에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도심 지역, 혹은 그와 꽤 가까운 중산층 주거 지역에 중국인이 늘어납니다. 임대가 아니라 매매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문화적인 충돌도 일어납니다.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생겨납니다.

이걸 정치권이 가장 극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바로 참정당입니다. ‘일본인 퍼스트’라는 구호, 이민 반대와 외국인 규제 강화 정책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중국인의 부동산 매수와 관련해서는 ‘조용한 침략(静かなる侵略)’을 멈춰야 한다며 직접적으로 비판했죠. 그리고 이게 제대로 먹혔습니다. 2025년 7월 2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14석의 의석을 추가한 겁니다.

이 14석을 만약 집권 자민당이 가져갔다면 이시바 총리가 자리에서 내려올 일은 없었을 겁니다. 외국인 혐오 정서를 이용한 정당은 참정당뿐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몇몇은 참정당처럼 의석을 추가하며 약진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흐름을 자민당이 모를 리 없습니다. 자민당이 더욱 극적인 우클릭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거론되는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입니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자민당 안에서도 극우로 분류됩니다. 현재 일본 분위기에는 잘 맞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손발을 맞추기 껄끄러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일명 ‘펀쿨섹좌’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번 쌀값 파동 당시 빠른 대처로 일본 내 평가가 상승세입니다. 하지만 자민당 내에서는 세력이 약합니다.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보다 더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예측 불가능의 리스크는 우리 정부에게도 마찬가지로 부담스럽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시진핑의 권위주의 정부를 피해 일본으로 탈출한 중국 이주민들이 일본에서 극우 세력의 부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나라에도 무시할 수 없는 변화를 불러오겠지요.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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