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나왔습니다. 각론은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부조직법 개편은 역대 정부들의 조직 개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정부 조직 개편은 주로 정치적 시각에서 다루어졌습니다. 명분은 거의 대체로, 특정 부처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행정을 효율화하겠다는 겁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정부 조직은 50여 차례 개편되었습니다. 부처 이름과 권한은 거의 모든 정권마다 달라졌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정보통신부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해체되었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되살아났고, 문재인 정부 들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바뀌었죠. 조직도를 바꿔야 새 시대가 열리는 듯한 착각이 정치 의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치 의례에 공무원은 초대되지 않습니다. 정부 조직 개편의 정치적 상징성이 워낙 크다 보니, 정작 그 조직에서 일하는 수만 명은 협상 테이블에도 앉지 못합니다. 내 직장이 분할되거나 통합되고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할지도 모르는데, 당사자들의 의견은 묻지 않습니다. 뉴스를 보고 알아야 하죠. “까라면 까야 하는” 공무원이니까요.
정부는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독립시키기로 했습니다. 조직 개편 논의 과정에서 내부 의견 청취는 없었죠. 금감원 직원들은 지난 9일 회사 1층에서 상복을 입고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금융 감독 업무를 하려고 입사했는데, 금소원에 가게 되면 민원 응대만 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취업 사기”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공공의 적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해양 수도 부산’을 공약했습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수부는 원래 서울에 있다가 2013년에 세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또 부산으로 가라는 겁니다. 대통령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해수부 노조위원장은 “전·월세 계약이 1년 6개월 남은 직원이 있고, 자녀 학교 문제도 있다”라며 속도 조절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부산 이전을 12월까지 완수할 계획입니다.
민간 기업이었다면 노동 조건의 일방적 변경은 노조의 강한 반발이나 언론의 비판에 직면했을 겁니다. 하지만 공무원에게는 ‘국민의 혈세’로 월급을 받는 ‘공복(公僕)’이니까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이중 잣대가 적용됩니다. 공무원이 ‘무능한 철밥통’이라는 대중의 인식은 이들의 개인적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고는 하죠.
한국 공무원의 이미지는 극적으로 변해 왔습니다. 1960~1980년대 개발 독재 시대에는 경제기획원, 상공부 같은 엘리트 관료들이 국가 성장을 주도하는 유능한 전문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시민 감시가 강화되고, 삼성, 현대 같은 민간 기업이 급성장하면서 공무원은 둔하고 느린 존재로 대비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집니다. 민간 부문이 혹독한 구조 조정을 겪는 동안, 공무원은 신분이 법적으로 보장되면서 무능한 철밥통이라는 인식이 굳어졌습니다. 여기에다 관료들의 특혜와 전관예우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아예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 사회를 쥐 잡듯 잡는 행위는 대중의 지지를 얻는 손쉬운 방법이 되었습니다.
윌슨의 통찰
미국 정치학자 제임스 퀸 윌슨은 1989년에 《관료제: 정부 기관은 무엇을 하고 왜 그렇게 하는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정부 기관의 운영 방식을 연구한 고전인데요, 참고로 윌슨은 ‘깨진 유리창 법칙’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관료제의 비효율성이 공무원이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정부 기관이 가진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민간 기업은 단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추구합니다. 이윤 극대화입니다. 반면, 정부 기관은 사회 정의, 균형 발전, 환경 보호 등 광범위하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합니다. 목표가 모호하다 보니 성과 측정이 어렵습니다. 결국 관료들은 결과보다 절차 준수에 집중하는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실수하지 않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집니다.
윌슨은 FBI와 사회보장국을 예로 들며 본질적 차이를 설명합니다. FBI는 범죄 해결률 같은 명확한 지표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어서 목표 지향적인 문화를 가집니다. 그러나 사회보장국은 사회 정의 같은 모호한 목표를 추구해서, 실수를 피하고 규정을 따르는 데 집중하는 경직된 문화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대개의 정부 기관이 하는 일은 FBI보다 사회보장국에 가깝습니다.
윌슨은 관료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형적인 조직 개편이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고 관료들에게 자율성과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화와 규범이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그는 일선에서 국민을 직접 만나는 하급 관료(operators)의 역할에 주목하며, 그들이 현장에서 재량을 어떻게 행사하느냐가 정책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강조합니다.
공공 영역의 노동자
정부와 여당에서 말하는 조직 개편을 노동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노동 조건의 개편입니다. 부처 통합과 분할, 지방 이전은 수만 명의 공무원에게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동료, 새로운 문화, 새로운 지역에 적응해야 하는 일입니다. 배우자의 직장 문제, 자녀 교육, 주거 문제와 직결됩니다. 커리어 패스가 꼬일 수도 있고요. 이 관점에서 보면, 정부조직법 개편은 공무원이라는 거대한 노동 집단의 일과 삶, 정체성을 재편하는 과정입니다.
역대 모든 정권이 균형 발전, 격차 해소 같은 대의(大義)를 앞세우며 공직자 개인의 희생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질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말하는 선진국이 되었고, 무엇보다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니까요. 하나의 대의 말고 다양한 소의가 논의되어야 합니다.
통일 독일은 1991년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공무원 가족 이전 지원과 교육, 주거 보조를 충분히 제공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정부 조직을 개편할 때 공무원 노조와 협상을 필수적으로 거칩니다. 공무원을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할 공복이 아니라, 다른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할 노동자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 개편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이전 개편의 효과와 비용을 기록하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주요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할 때 공무원 가족의 분리와 행정 비효율성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 사회적 비용은 공식적이고 종합적으로 평가된 적이 없습니다. 공공 기관 지방 이전도 정치적 성과로만 소비될 뿐, 전문 인력 유출이나 성과 저하 같은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처를 쪼갰다가 합했다가, 계속 반복합니다. 제도적 학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5년 뒤에도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될 겁니다. 조직 개편이 행정 효율과 정책 성과, 서비스 품질, 재정 비용, 그리고 직원의 삶에 미친 영향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게 해야 합니다. 차기 정권은 이전 정권의 성과와 실패를 학습해 정부 조직을 꾸려야 하고요.
나아가 정부 기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형이 아닌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공직자를 공복이나 머슴이라는 구한 말에 어울릴 법한 수사에 가두지 말고, 전문성과 자율성을 갖춘 전문가 집단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공무원 편만 들었습니다만, 공직 사회 역시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성과와 책임을 중시하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정부가 진짜 혁신을 원한다면, 조직의 겉모습을 바꾸는 것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동기를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인수위 없이 시작했습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아 부처 개편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정부가 임기 초반을 지나 중반쯤 되었을 때는 정부조직법 개편 말고,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보수규정, 공무원 성과평가 규정, 공무원노조법 개편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