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광고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출품하고 수상하는 전 과정을 챙깁니다.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심사 위원들에게 더 잘 보여 줄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연간 국제 광고제 수상작 수가 열 개 내외에 불과했는데, 이제 백 개를 넘게 되었습니다.
매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크리에이티브로 인정받은 수상작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될 수는 없습니다. 브랜드가 처한 배경을 자세히 파악해서 명확한 메시지를 만들고, 소비자를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고, 꼼꼼하게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이들이 어우러져 의도했던 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 비로소 좋은 크리에이티브로 인정받습니다. 크리에이티브를 전개하는 모든 과정에서 아이디어 사이를 촘촘하게 구조화해야 합니다. 그 방법들을 이 책에서 20개의 시선으로 찬찬히 살펴보려 합니다.
칸 라이언즈(Cannes Lions)는 예나 지금이나 광고인들에게 ‘로망’입니다. 전 세계 광고인들이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캠페인들을 출품합니다. 이 캠페인들을 놓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크리에이티브 리더들이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약 3퍼센트 정도만 수상작으로 선정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칸 국제 영화제에 매년 약 2000편의 영화가 출품되어 60편 정도가 공식 경쟁작으로 선정되니 이 비율과 비슷합니다. 칸 영화제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비율이 0.5퍼센트 정도인데, 칸 라이언즈에서는 금사자상(Gold Lion) 이상이 이 정도에 해당합니다.
모든 영화인이 칸 영화제 수상을 목표로 하지는 않듯, 광고인 모두가 칸 라이언즈 수상을 꿈꾸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상을 받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도 명예로운 일인지는 누구나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수상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광고 회사에 다니는 동안 칸에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크리에이티브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리에이티브의 향연에 푹 빠져 보고 싶을 테니까요.
저 역시 처음 칸 라이언즈에 갔을 때 전시장에 빼곡히 진열된 본선 진출작들을 둘러보느라 즐거웠습니다. 시상식장에서 상영되는 수상작들을 보면서 내내 감탄했습니다. 무대 위에 오르는 이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칸 라이언즈를 바라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릅니다. 오래전 한 선배는 칸에서 수상한 광고들을 굳이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시장 상황도, 소비자 성향도 전혀 다른데, 그들의 결과물이 우리 일에 어떤 실질적 도움이 되겠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다른 이는 기발한 광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들의 광고 산업 환경이 부럽다고 했습니다. 과감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받아들이는 광고 회사와 브랜드, 그리고 보다 넓게 용인되는 표현의 범위 같은 것 말입니다. 환경 차이로 인해 한국 소비자는 칸 수상작처럼 재미있고 기발한 광고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덧붙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칸에서 수상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 내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칸의 트로피는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칸 라이언즈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분명한 건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축제라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리더들이 이곳에 모여 좋은 생각과 크리에이티브를 공유하고 함께 발전해 갑니다. 만든 이들은 수상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업계의 리더로 성장합니다. 대형 광고 회사들은 칸을 계기로 자신들의 역량을 광고주들에게 입증하고, 비즈니스 기반을 더욱 단단히 다집니다. 도전적인 신생 회사들은 칸에서의 활약을 통해 새롭게 자리를 잡아 갑니다. 칸 라이언즈는 크리에이티브 산업 전반이 꿈틀거리며 비즈니스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곳입니다.
2010년대 들어 ‘국제 광고제(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였던 칸 라이언즈는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축제(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로 확장되었습니다. 광고 산업에서 영역을 넓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크리에이티비티 축제로 변모한 것이죠. 그에 걸맞게 열 개 남짓이던 수상 부문도 서른 개로 늘어났고, 부문의 구조도 많이 변화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큼, 매년 새로운 칸 라이언즈 계획이 발표되기 시작하면 준비할 일이 많습니다. 카테고리를 정리하고, 추가되거나 변경된 부문, 프로그램의 구성, 심사 위원의 면면, 세미나 주최사와 연사 등을 살펴봅니다.
6월 행사 기간에는 현장을 돌며 다양한 요소를 파악합니다. 행사장의 구성, 세미나 관객들의 반응, 무대에 자주 오르는 수상작, 각 수상작에 대한 청중의 반응, 심사 위원장의 심사 과정과 그랑프리(Grand Prix) 선정 이유에 대한 연설, 행사장 밖에서 이뤄지는 브랜드들의 활동까지 주의 깊게 관찰합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수상 리스트를 정리하고, 부문별 수상작과 공식 리포트 등을 찬찬히 뜯어봅니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해마다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고, 그만큼 쌓여 가는 것도 있습니다. 새로 얻는 지식과 노하우에 신이 나기도 합니다. 빛나는 크리에이티브들과, 그것들을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제출한 자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아내는 커다란 그릇인 칸 라이언즈를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전 세계 시장이 서로 더 많이 소통하면서도,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저들의 시장에서 어떤 생각과 크리에이티브가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고 놀라게 하는지 살펴보는 일은 우리의 크리에이티브를 더욱 성장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선을 세계로 넓혀, 그들이 품고 있는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어떤 도구를 빠뜨리지 말아야 할지, 크리에이티브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특히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시대에 크리에이티브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어야 하는지 차근히 펼쳐 봤습니다.
어떤 내용은 공감이 되겠지만, 어떤 것은 다소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서 있는 지점과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테니까요. 다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에 닿는 것 몇 가지만 챙겨 가셔도 충분합니다.
각기 다른 시선과 함께, 칸에서 인정받은 뛰어난 크리에이티브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이 사례들은 캠페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들 사이를 어떻게 더 촘촘하게 구조화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캠페인의 배경부터 아이디어, 전략, 실행, 결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가능한 한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수상자들이 심사 위원에게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를 실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드릴 겁니다.
칸 라이언즈가 지닌 축제로서의 다양한 모습들도 함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은 크리에이티브만 보면 되지, 굳이 행사의 운영 방식까지 살펴야 하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칸 라이언즈의 변화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산업 전반의 흐름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행사 자체의 구조와 방향성을 들여다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업계에 몸담고 계신 분들뿐 아니라, 앞으로 크리에이티브 분야로 진입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흥미로운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여, 본문에서 사례로 소개한 수상작들의 출품 카테고리들을 따로 모아 부록으로 엮었습니다. 이를 통해 캠페인을 만든 이들이 자신들의 강점을 어떤 부분으로 보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카테고리에서 수상했다는 것은, 만든 이들의 관점이 심사 위원들과 통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면, 그 관점이 통하지 않았거나 혹은 다른 사정이 있었을 테고요.
여러 현장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광고인들이나 학생들을 자주 만납니다. 크리에이티브에는 교과서나 불변의 원칙 같은 것이 없으니 그들에게는 궁금한 것이 참 많습니다.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신해 온 칸 라이언즈, 그리고 심사 위원들이 ‘세계 최고’라며 인정한 캠페인들이 그들의 궁금증에 꽤 많은 답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처음 칸에 갔을 때 대한민국은 구경꾼이었습니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크리에이티브에 감탄하고, 손뼉을 치며 부러워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의 존재감도 커졌습니다. 꽤 많은 연사가 무대에 올라 우리의 생각을 펼쳤고, 전 세계 내로라하는 크리에이티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수상작 리스트 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서울, 코리아’가 호명되는 순간도 많아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무대에서 조연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주연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이 일을 해오면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못 할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머지않아 주연이 될 것입니다. 무대 위에서 더 많이 수상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세미나를 들으려면 한 시간 전에는 줄을 서야 할 겁니다. 심사 위원장도 종종 배출할 겁니다. ‘올해의 광고 회사 상’이나 ‘올해의 네트워크 상’도 받을 겁니다. 주연이 될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