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사과는 왜 비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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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가락동에 메기를 풀겠다고 합니다.

내가 사는 사과는 왜 비쌀까?

2025년 9월 16일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었습니다. 풍요롭고 배부른 계절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20세기의 레토릭입니다. 수확이 1년 내내 이어지는 시대로 접어든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겨울에도 신선한 채소가 유통되는데, 굳이 가을의 수확만 축하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대신, 가을은 물가의 계절입니다. 추석과 김장이라는 커다란 이벤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차례상도, 김장김치도 옛이야기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을 부치고, 김장독을 묻는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엔 물가 관련 뉴스가 주목받습니다. 다행히 2025년의 추석 차례상 물가는 안정세입니다. 그래도 수요가 많아지는 철입니다. 올해도 정부는 사과나 배 등 추석 성수품 17만 톤을 공급한다는 ‘추석 민생 안정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정권과 상관없이 모든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에 꽤 신경을 씁니다. 민심과 직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 몇 년 새 체감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농산물이나 축산물, 수산물 등입니다. 그러니까, 장바구니에 담기는 식재료 말입니다. 지난 30년간 소비자 물가는 2배 상승했지만, 사과와 오징어 가격은 5배나 치솟았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입니다. 신선 식품 가격이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유가 뭘까요. 정부는 그 원인을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 시장’에서 찾았습니다.

가락 시장은 왜 생겼나?

원래 서울로 향하는 농산물은 주로 서울역 인근의 중림동에서 거래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가 식품 가격을 통제하고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운영했던 도매 시장이 중림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복 이후에도 시장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운영의 주체는 서울시로 바뀌었지만 말이죠. 그러던 것이 근방의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이 확장하면서 중림동 도매 시장의 입지가 좁아집니다. 아무래도 관의 통제하에 있었으니, 경쟁력이 부족했지요. 도매상들은 중림동을 벗어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섭니다. 그래서 발견한 곳이 용산이었습니다.

‘용산 시장’이 공식적으로 문을 연 것은 1968년이었습니다. 이후 용산 전자 상가가 들어섰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1970년대까지는 서울에서 가장 큰 김장 시장이 열렸죠. 당시 농가의 수입을 결정했던 주체는 바로 이 용산 시장의 상인들이었습니다. 서울의 배춧값을 알아보려면, 직접 서울의 시장까지 가 봐야 했던 시절입니다. 농가는 도시의 가격 정보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정보의 불균형을 무기로 위탁 상인들은 가격 후려치기, 계약 불이행, 정산 대금 지연 등 횡포를 일삼았습니다. 농가에서 헐값에 사서 소매상에게 비싸게 팔아 폭리는 취하는, 이른바 ‘칼질’의 시대였죠.

당시 정부도 이런 유통 구조가 문제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85년 새로 출범시킨 것이 가락 시장 시스템입니다. 농산물을 ‘경매’ 방식으로 거래하도록 한 겁니다. 좋은 물건에는 좋은 값을,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에는 싼값을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경매 가격이 결정될 테니, 정보 불균형으로 농가에 불이익이 가는 일도 줄일 수 있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가락 시장 시스템이 농산물 가격 급등과 급락의 주범이라는 비난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위탁 상인을 유통 단계에서 제거했더니 이번에는 민영 도매 법인이 폭리를 취한다는 겁니다. 사실, 정부가 설계한 가락 시장 시스템에는 결정적인 결점이 있긴 했습니다.

영업 이익률 20퍼센트가 보장되는 사업이란?

전국적으로 32곳의 농수산물 공영 도매 시장이 있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이 중 가락 시장이 서울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죠. 국내 최대 농수산물 거래 시장입니다. 우리나라 농산물의 약 40퍼센트가량을 유통합니다. 연간 거래 물량이 약 230만 톤, 거래 금액이 약 6조 원에 달합니다. 우리가 농산물 가격의 기준으로 가락 시장의 시세를 이야기하는 까닭입니다.

가락 시장이 문을 열기 이전에는 수확 전에 밭 단위로 헐값에 미리 물건을 사 두는 수확 전 입도선매, 즉 ‘밭떼기’가 성행했습니다. 100만 원을 치르기로 하고서는 작물이 상태가 좋지 않다며 50만 원만 주는 때도 있었고요. 결제를 차일피일 미루는 일도 잦았습니다. 가락 시장에서는 달랐습니다. 농가에서 직접 시장에 물건을 내놓으면, 경매를 통해 적절한 시장 가격을 산정하니까요.

이러한 가락 시장 시스템의 중심에는 도매 법인이 있습니다. 가락 시장에는 총 6개의 법인이 있는데, 농협과 5곳의 민간 도매 법인입니다. 이들은 낙찰가의 4~7퍼센트를 수수료로 받습니다. 물가가 올라도, 경기가 나빠도 밥은 먹어야 삽니다. 서울의 식탁을 책임지는 가락 시장에 불이 꺼질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도매 법인들은 늘 안정적으로 돈을 법니다. 2024년 기준으로 가락 시장 5대 도매 법인의 영업 이익률은 몇 년째 20퍼센트를 넘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업 이익률 20퍼센트씩 기록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SK하이닉스가 2025년 2분기에 40퍼센트를 기록했는데, 말 그대로 기록입니다. 전체 통계를 뒤틀 정도의 이례적인 일이죠. 같은 기간 우리나라 상장사 영업 이익률 평균을 보면, 7퍼센트를 조금 넘습니다. 그러니 가락 시장의 도매상들이 장사를 잘해도 너무 잘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풍년인데 농부는 왜 가난해질까?

장사하기 쉬워서 그렇습니다. 전국 공영 도매 시장의 경매는 정부가 지정한 도매 시장 법인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자본이 있다고 해도 가락 시장의 경매 판에 뛰어들 수 없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현재 가락 시장의 5대 도매 법인들이 사실상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경매에 관한 전권도 갖고 있습니다. 특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1985년 당시에는 기존 유통 관행을 무너뜨리고 빠르게 가락 시장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비책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매 법인의 실제 소유주는 농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기업들입니다. 건설사, 철강사, 무역 회사 등이 법인을 소유하고 있는 겁니다. 크게 관리할 것도 없이 돈이 되는 장사다 보니, 큰 기업이 법인을 사들여 일종의 ‘캐시 카우’로 삼는 겁니다. 2023년에는 이들 5개 회사가 281억 원 수준의 배당액을 챙겨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하기만 한다면, 시장 경제 체제에서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렇지가 않아서 문제입니다. 경매제는 근본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가격 변동성에 취약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작년처럼 사과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품질 좋은 사과를 충분히 수확했다고 해보죠. 저로서는 당장 오늘 가락동으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가격은 더 오르기 때문입니다. 어디든 잘 보관해 두었다가 최대한 늦게 시장에 내놓아야 이익입니다. 다들 이런 생각이니, 물량은 더 줄어들고 가격은 더 오릅니다.

경매 법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손해는 아닙니다. 물량이 줄어도 가격이 올랐으니, 결과적으로 수수료 수익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중간 유통 과정에서 수급 조절, 가격 조절에 어떤 역할을 자처할 필요가 없습니다. 먹거리는 필수재인데, 시장에서 가격 조절이 되지 않으니, 정부가 때마다 나섭니다. 대개 외국산 대체품을 시장에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가격 안정을 달성하면 정부는 할 일을 한 셈이 됩니다. 다만, 농가는 손해를 봅니다. 흉년이 드는 해는 그럴 만해서 흉년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작황이 좋다면 노력과 투자의 결과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니 보상받지 못하는 겁니다.

만약 너무 풍년이 들면 어떨까요. 가락동에서 물건을 비싸게 사 줄 리는 없습니다. 쌀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사들이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풍년이라 좋은 해입니다. 농산물은 쌀 때 사재기 해 쌓아 두는 성격의 상품이 아닙니다. 상하고 썩습니다. 벌레도 먹고 냉동 보관은 비쌉니다. 그래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 방어가 잘 안 됩니다. 가격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집니다. 가락동으로 물건을 보내지 않는 편이 나은 상황입니다. 물건을 포장하는 것도, 운송하고 하차하는 것도 다 돈이 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농촌에서는 밭을 갈아엎습니다.

경매는 공정할까?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도매 시장에서 경매로 물건을 낙찰받은 ‘중도매인’이 각 지역의 소매점과 유통업체, 가공업체 등에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거래 구조가 4단계로 복잡하고, 이 과정에서 마진이 너무 많이 붙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농산물 가격의 절반이 유통 비용입니다. 또, 독점 시장이다 보니 암암리에 불공정 행위가 발생합니다. 같은 물건인데 법인에 따라 낙찰가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경매’라는 시스템을 거치려면 모든 농산물이 일단 도매 시장으로 집결해야 합니다. 즉, 배추밭에서 우리 동네 채소 가게로 물건이 바로 올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이 과정에서 신선도가 떨어지고 탄소 발자국이 남습니다. 소비자에게, 지구에게 손해입니다.

유통망을 제외하고 모두가 손해 보는 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것이 ‘시장 도매인’ 제도입니다. 농가와 소매점, 소비자 사이에 도매인 한 명만 있는 구조입니다. 농가와 도매인이 신뢰 관계를 맺으며 거래하기 때문에 풍년이든 흉년이든 가격 방어 기제가 어느 정도는 작동합니다. 농가가 너무 싸게 팔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 의견이 반영되는 식입니다. 반대로 도매인이 너무 비싸게 사기 힘들다고 하면 가격 조정의 여지가 있고요. 대표적으로 강서 시장이 시장 도매인 방식으로 거래합니다.
시장 도매인 제도가 정착한 강서 시장의 위탁 섹터에서는 경매 없이 물건이 바로 소매상과 소비자에게 갑니다. / 출처: 유튜브 리어카를 탄 과일장수
예전 같으면 정보 비대칭으로 농가에서 일방적인 손해를 입을 수도 있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누구나 서울 대형 마트에서 파 한 단이 얼마인지, 사과 한 박스에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시장 도매인 방식은 지금까지 도매 법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확대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신중한 입장입니다. 대신 정부는 이번에 다른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온라인과 AI입니다.

독점을 깰 수 있을까?

AI 앱으로 가격 투명성을 높이고 온라인 도매 시장으로의 전환을 통해 가락동에 메기를 풀겠다는 겁니다. 농촌과 도시의 직거래가 늘어나면, 도매 법인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또, 40년을 이어 온 독점을 깰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도매 법인의 성과가 부진하면 퇴출하고, 신규 법인을 진입시켜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게끔 한다는 계획입니다. 도매 법인이 기금을 마련해 농산물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방안도 나왔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런 정책 기조를 ‘농퓰리즘’이라며 비판하기도 합니다. 농촌에 또 보조금을 퍼준다는 얘깁니다. 양곡법을 통한 쌀값 유지 정책을 비판해 온 논조의 연장선상입니다. 물론, 우리 농업이 심각한 고령화 등으로 시대에 맞는 변화에 뒤처진 것은 맞습니다. 특히, 쌀농사는 거의 완벽한 기계화가 이루어져 고령자 농민이 쉽사리 포기하지 않아 쌀 생산량 조절이 수요에 맞춰 진행되지 않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먹거리를 생산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일이 기후 재난과 같이 통제 불가능한 변수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크다면, 어느 정도의 안전망은 필요합니다. 그래야 누군가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쌀과 같은 작물도 언제나 생산 과잉이 유지되란 법은 없습니다. 당장 올해가 그렇습니다.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도 쌀값 상승을 겪고 있습니다. 밥을 지을 쌀 말입니다.

우리는 농부의 일과 수확을 시장 논리에만 맡겼던 적이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이니 가격이 너무 오르지 않도록 늘 경계해 왔죠. 아무리 흉년이어도 도시가 비싸게 밥 먹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나마도 성공적이지 못했고요. 이번 ‘농산물 유통 구조 개혁’에는 농촌이 너무 싸게 팔지 않을 방법도 함께 마련됐으면 합니다. 농사를 짓는 일이 손해가 아니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농사를 지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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