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중독 사회

bkjn book review

우리의 몸에 관한 한, 정답은 없습니다. 적어도 아직 모릅니다.

요즘 우리의 소비가 향하는 곳을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건강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식품 진열대엔 온갖 ‘제로’ 제품이 넘쳐납니다. ‘단백질’이라는 수식어가 없으면 신제품을 낼 수 없다는 규칙이라도 생긴 건가 싶죠. 지금 가장 뜨거운 취미는 러닝입니다. 유튜브나 틱톡에는 건강과 관련된 콘텐츠가 넘쳐나죠.

하지만 잠시 멈춰 그 모든 것을 응시하면, 건강을 중심으로 한 담론들이 얼마나 얄팍한지 깨닫게 됩니다. 단정적입니다. 게다가 파편적입니다. 진실과 거짓, 추론과 허구가 미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고지혈증약은 대형 제약사의 음모’라던가, ‘일단 뛰어라’, ‘아니, 뛰면 당신의 건강이 무너진다’, ‘매일 아침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마시면 모든 염증이 사라진다’와 같은 식이죠. 그럴 리 없습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단호한 정답 같은 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건강 담론이 독으로 작동합니다. 이유는 돈입니다. 

관심 경제 사회에서 눈길을 잡아끌 썸네일을 만들려면 단정적인 레토릭이 필요하죠. 불안정성이 극도로 치닫는 세계에서 자신의 안녕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에 소구하려면, 아무리 인공 첨가물로 맛을 낸 음식이라도 ‘단백질’과 같은 마케팅 요소가 필요하고요. 건강을 앞세운 이야기가 잘 팔릴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우리는 쉬이 경도됩니다. 누군가는 건강 염려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게 됩니다.

인간의 주인

사실,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는 건강에 집착합니다. 인간뿐만이 아닙니다. 생명의 가장 큰 본능은 생존입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우리는 꽤 오랫동안 ‘이성’을 숭배하며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데카르트가 이 순간 모든 것을 의심하는 이성을 존재의 증거로 내세웠던 순간부터 그랬습니다. 물리적인 신체가 아니라 그에 깃든 숭고한 정신을 인간 존재의 실체로 봐 온 것이죠.

정말 그럴까요. 이번에는 데카르트를 의심해 보죠.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고통의 신체성 (The Bodily Nature of Pain)’을 이야기합니다. 큰 고통을 겪을 땐 이성적 능력이 무력화된다는 것이죠.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골절상이나 출산 등 엄청난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본 분들이라면 그 순간 머릿속이 깜깜해지는 경험을 해 보셨을 테니까요. 프랑스의 소설가 알퐁스 도데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매독에 의해 서서히 잠식되어 가는 가운데 자신을 장악한 통증 때문에 “모든 사람, 삶, 모든 것에 눈과 귀를 막고 오로지 내 비참한 몸뚱이에만” 신경을 쓰게 되었다고 하죠.

레비나스는 고통이야말로 우리의 이해력과 통제력을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현상이라고 봤습니다. 인간 존재에 있어 몸이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나 자신이 고통을 겪는 주체인 것 같지만, 동시에 나는 고통 앞에 무릎 꿇는 수동적 존재입니다. 내가 몸을 소유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몸은 나를 지배하는 주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인간은 역사를 통해 몸에 관한 지식을 쌓아왔습니다. 특히 근대 이후로 의학은 ‘과학’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빠르게 발전했죠. 인류는 몸을 해부했고 관찰했습니다. 주입하고 잘라내기도 했고요. 그 결과 예전보다는 몸에 관해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지식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최고 글쟁이가 인간의 몸과 몸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빌 브라이슨의 《바디》입니다.

메타 인지

빌 브라이슨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으로 이주해 커리어를 쌓은 인물입니다. 《런던 타임스》, 《인디펜던트》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논픽션 작가로는 스티븐 킹 급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글맛이 좋습니다. 재미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바디》의 첫 장은 ‘사람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우리 몸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하던 중 브라이슨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자기 존재의 영광을 어떻게 찬미하고 있을까? 음, 대다수는 운동을 최소로 하고 최대한 많이 먹음으로써 찬미한다. 당신이 온갖 정크 푸드를 목으로 집어넣으면서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빛을 내는 화면 앞에서 거의 식물인간 상태로 축 늘어져서 보내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어떤 친절하면서 기적적인 방식으로 우리 몸은 우리를 돌보고, 우리가 입으로 집어넣는 잡다한 음식물로부터 영양소를 추출하고, 수십 년 동안 일반적으로 꽤 높은 수준으로 어떻게든 계속 몸을 유지한다. 생활 습관을 이용한 자살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마도 빌 브라이슨의 책 중 가장 유명한 것을 꼽자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일 겁니다. 빅뱅에서 인류 문명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세월 대부분을 톺아 냅니다. 브라이슨의 장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입니다. 전문가도 인정할 만큼 전달하는 지식이 매우 정확합니다. 게다가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조금 비뚤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 유쾌한 사유를 던집니다. 그야말로 ‘인포테인먼트’의 미덕을 고루 갖춘 작가입니다.

그에 비해 《바디》는 재미가 좀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빌 브라이슨 특유의 재치 있는 문장과 독창적인 분석 틀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NPR〉의 서평은 이 책에 ‘주목할 만한 농담이 거의 없다’라고 지적하죠. 또, 의학계를 둘러싼 몇 가지 논쟁적인 주제들을 가볍게 언급하는 데 그치며 깊이 있는 비평을 회피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다만,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개구진 농담을 빵빵 터트리는 것은 힘들 겁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재미 있었습니다만,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좀 다른 곳에 있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자기 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준다는 점이죠. 마치 메타 인지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듯, 우리의 몸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과몰입 없이 바라보는 경험 말입니다.

인간 존재의 무게

예를 들면, 빌 브라이슨은 우리 몸을 이야기하며 ‘미생물’에 관해 하나의 챕터를 따로 할애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드문 존재입니다. 일단,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인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기술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은 지구가 미생물의 행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미생물은 인간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지만, 미생물이 없다면 인간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죽을 것이라면서 말이죠. 멀리 떨어져서 보면, 인간은 미생물에 비해 대단한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인간이란 우리의 상식보다도 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감각한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얘깁니다. 내가 나의 세계를 감각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스테론(androsterone)’이라는 호르몬이 그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사람들 중 3분의 1은 이 호르몬에서 소변 같은 냄새를 맡습니다. 3분의 1은 백단향 냄새를 느끼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죠. 인류는 350~400가지의 냄새 수용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은 절반 정도하고 합니다. 즉, 우리는 같은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시대의 상식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도 깨닫게 됩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성행했던 ‘이마엽(전두엽) 절개술’은 뇌의 일부분을 잘라 내면 사람의 성격이 조용해지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생겨난 치료법이었습니다. 미국의 월터 잭슨 프리먼이라는 의사가 이 치료법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지금 봐서는 말이 안 됩니다. 가정에서 주로 사용하던 얼음용 송곳을, 눈구멍을 통해 뇌 가까이에 들이민 다음 망치로 송곳을 쳐 머리뼈를 깨고 뇌 안쪽으로 진입시킵니다. 그런 다음 마구 휘저어 신경 연결을 끊어놓는 겁니다.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거리의 주정뱅이, 공포증 환자, 동성애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성소수자까지 이른바 ‘정상’의 좁은 선에서 비켜난 수많은 사람들이 프리먼 앞으로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약 3분의 2는 그 수술로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하거나 상태가 더 나빠졌습니다. 2퍼센트는 사망했고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인 로즈 케네디도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적 능력이 조금 떨어지고 고집이 셌다고 합니다. 이마엽 절개술을 받은 후 로즈 케네디는 말도, 성격도 잃은 채 64년을 요양원에서 지내다 사망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

《바디》는 이런 사실들을 꽤 ‘쿨’한 톤으로 이야기해 나갑니다. 그 태도 때문인지, 의학 서적이라기보다는 인간 존재에 대한 비평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고요. 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는 ‘우리 몸 안내서’입니다. 많은 독자에게 친절히 말을 건네는 부제지만, 저는 영문판 부제인 ‘A Guide for Occupants(거주자를 위한 가이드)’가 좀 더 빌 브라이슨의 의도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몸에 깃든 거주자일 뿐입니다. 몸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뜻대로 관리하지도 못하죠. 그러면서 몸의 특징이 곧 나 자신인 양 착각하며 혐오와 차별을 일삼기도 합니다. 19세기 영국의 의사 바너드 데이비스처럼 말입니다.

데이비스는 머리뼈를 측정하는 일에 몰두해 《서태평양의 특정 제도 주민들의 특이한 머리뼈》, 《인종별 뇌 무게에 관하여》와 같은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무척 잘 팔렸고요. 데이비스는 한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도덕성이 머리뼈의 윤곽과 구멍에 새겨져 있으며, 그것들이 인종과 계급의 산물이라고 믿었습니다. 제국주의의 광기를 논리로 포장했던 ‘과학’이라는 이름의 혐오입니다. 데이비스는 머리뼈에서 우월한 자아를 찾아낸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바디》는 인간이 몸을 둘러싼 담론을 만들어 내면서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했는지 수차례 강조합니다. 물론, 질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의사나 과학자들이 목숨을 걸었던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요.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그럼에도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앞으로 나아갔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몸에 관해 잘 모릅니다.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야말로 현대 의학의 성과가 아닐까요. 우리의 몸에 관한 한, 정답은 없습니다. 적어도 아직 모릅니다.

빌 브라이슨은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정말 많은 전문가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마지막 ‘결말’ 챕터에서 한 전문가는 인류가 1990년 이래로 증가한 수명 1년당 10개월만 건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삶은 더 나아진 걸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이 세계는 마치 건강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우리는 몸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
bkjn book review는 단순 서평이 아닙니다. 원전을 해체해 다른 책, 기사, 논문과 연결합니다. 매월 한 권의 책을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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