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고립주의 선언

bkjn review

미국도 지도 위에 방화벽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틱톡 아메리카는 그 첫 번째 벽돌입니다.

인터넷 고립주의 선언

2025년 9월 23일

틱톡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틱톡이 죽을 뻔한 적이 있었나 싶지만, 미국에서 틱톡은 한동안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였죠. 2024년 4월, 미국 연방 의회가 ‘틱톡 금지법’을 제정한 이후부터입니다. 틱톡의 모회사는 바이트댄스입니다. 중국 회사죠. 미국 정부는 바이트댄스가 2025년 1월 19일까지 틱톡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지 않는다면, 미국 내에서 틱톡을 아예 금지하겠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2025년 1월 19일, 틱톡은 실제로 ‘블랙 아웃’되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날 저녁부터 서비스가 중단되었죠. 하지만 시간표가 미묘했습니다.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합니다. 취임식과 동시에 트럼프가 무섭게 사인해 낸 수많은 행정명령 중에는 틱톡 금지를 유예하는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틱톡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오로지 트럼프의 의지에 따라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영원히 이런 방식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길고 긴 협상 끝에 답이 나왔습니다. 미국 틱톡 사업 지분의 80퍼센트를 미국 합작 법인이 인수하는 방안입니다. 확정은 아니지만, 미중 양국 모두 큰 틀에서는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것은 사인 뿐입니다. 트럼프는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맞습니다. 미국 기업은 오라클이 수혜를 입었습니다.  거래 수수료를 챙기겠다는 트럼프 행정부도 승자입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가장 중요한 것만큼은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블랙 아웃

틱톡이 서비스를 잠시 중단했던 2025년 1월 당시, 미국 내 틱톡 사용자는 1억 7천만 명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틱톡은 당황한 것 같지 않았죠. 오히려 미국 내 서비스 제공 중단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며, 사용자에게 개인 데이터를 다운로드할 옵션을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쉬운 것 없다는 듯 말이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틱톡의 CEO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받았습니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틱톡과 함께 갈 생각이었던 겁니다. 틱톡도 그걸 잘 알고 있었고요.

트럼프 1기 당시엔 상황이 달랐습니다. 틱톡을 금지하든, 미국 기업에 팔든 선택하라는 입장이었죠. 틱톡이 수집하는 위치 정보나 검색 이력, 시청 이력, 기기 및 네트워크 정보 등 방대한 데이터에 중국 정부가 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웠습니다. 실제로 중국 국가 정보법에는 중국 정부가 원할 경우, 기술 기업이 반드시 국가 정보 기관에 협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트럼프의 주장이 좀 허황하게 들렸습니다. 틱톡의 주 사용층이 매우 어리고, ‘챌린지’ 위주의 가벼운 동영상 위주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틱톡이 중국 공산당을 위한 선전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는데, 마치 틱톡을 이용해 중국이 미국을 세뇌라도 하려는 것처럼 들렸죠. 가수들의 춤동작이나 유행하는 밈을 따라는 30초짜리 동영상으로 중국이 미국을 지배하려 든다니,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았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틱톡의 잠재력을 제대로 봤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증거가 되었죠.

오라클의 혜안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에 소셜 미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캠프 측의 판단입니다. 그중에서도 틱톡의 영향력은 트럼프가 몇 차례 직접 언급한 바 있죠. 트럼프는 틱톡의 힘을 직접 느꼈고, 이용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사업가의 눈으로 보죠. 우리 회사 제품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에 신제품이 출시 됩니다. 후발 주자지만 꽤 전도유망합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상품보다 낫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술 개발에 투자해서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좀 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상대 회사를 인수하면 됩니다. 그게 힘들다면 적어도 해당 상품의 권리라도 사 오면 됩니다. 다시 시장 장악력을 틀어쥘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사업가입니다. 중국산 플랫폼이 아무리 위험해 보인다 해도, 이용 가치가 있으면 사들이면 되는 겁니다.

미국 정부가 틱톡을 금지하고자 했던 논리는 국가 보안이었습니다. 근거가 없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12월 바이트댄스의 중국 직원이 틱톡 사용자 일부의 개인 정보에 접근했던 사실이 탄로 난 적이 있습니다. 대상은 미국 〈포브스〉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자였습니다. 언론에 기업 내부 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의심되는 틱톡 직원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이 기자들이 접촉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위치 정보를 추적한 겁니다.

이 정도면 틱톡이 사용자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우려가 터무니없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사용자가 만약 군인이라면, 행정부 수뇌부의 인물이라면 진짜 국가 안보와 직결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러한 우려에 틱톡 측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프로젝트 텍사스’를 진행한 겁니다. 틱톡 미국 사용자의 모든 데이터를 텍사스의 오라클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관리하는 내용입니다. 20억 달러 이상을 들여 추진했습니다. 

거래의 조건

당시에는 이 선택을 두고 어리석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승인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추진했고, 그 결과 틱톡이 미국에서 금지될 경우 완전히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틱톡 거래 안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일단, 바이트댄스는 미국 내 사업을 위해 가칭 ‘틱톡 아메리카(TikTok America)’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하게 됩니다. 루퍼트 머독, 앤드리슨 호로비츠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되는 미국 투자자들이 분리된 법인 지분의 80퍼센트를 소유하여 과반을 확보합니다. 이사회 7명 중 6명을 미국 측이 임명할 수 있습니다. 바이트댄스는 지분 20퍼센트 미만을 소유하게 됩니다. 틱톡 금지법의 규정대로입니다.

하지만 돈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알고리즘이죠. 중국산 알고리즘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바이트댄스가 개인 정보를 얼마나 수집할 것인지나 무엇을 미국 이용자들에게 보여줄지 등이 여전히 중국 기업의 결정에 달린 상황 그대로 남게 됩니다. 틱톡이 미국의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우려는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죠. 이번 거래 안에서 이 부분이 좀 미묘합니다.

일단, 바이트댄스가 알고리즘의 소유권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그리고 틱톡 아메리카는 이 알고리즘을 빌려와 사용합니다. 오라클이 총대를 메고 알고리즘을 수정하거나 새로 학습시킬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텍사스로 이미 데이터가 오라클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으니, 알고리즘까지 오라클이 관리하는 겁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오라클 주가는 다시 한번 상승했습니다. 틱톡은 돈이 되는 사업이고, 오라클은 프로젝트 텍사스 덕분에 이 사업에 중요한 한자리를 보장받았기 때문입니다.

틱톡 입장에서도 일이 쉬워졌습니다. 틱톡 시스템을 크게 건드리지 않고, 즉 큰 비용 부담 없이 트럼프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성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고리즘이 여전히 바이트댄스의 것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얼마에 빌려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틱톡의 핵심은 여전히 바이트댄스가 소유하게 됩니다. 알고리즘의 블랙박스까지 활짝 열어 공개할 의무는 없습니다. 즉, 틱톡으로 번 돈의 80퍼센트는 미국 기업이 가져가지만, 틱톡의 영향력을 만드는 주체는 여전히 중국이라는 얘깁니다.

이데올로기 선전과 위협 사이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거래 안이 미국의 승리라고 이야기합니다. 틱톡이 이제 안전해졌고, 미국은 이에 따라 큰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요. 하지만 중국은 윈윈(win-win)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틱톡을 내어주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일리 있는 분석이지만, 관세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은 틱톡의 소프트 파워를 여전히 틀어쥐고 있습니다. 이건 사실 돈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크리스토퍼 레이 전 FBI 국장은 틱톡의 추천 알고리즘이 미국을 분열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비슷한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틱톡의 기울어진 알고리즘과 관련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학술지에 게재된 단계는 아니지만, 내용 때문에 회자되고 있죠. 틱톡의 중국 공산당 관련 콘텐츠에 사용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알고리즘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에 관한 연구입니다. 중국 공산당 반대 콘텐츠에 사용자들은 더 많은 ‘좋아요’와 댓글을 남겼습니다. 찬성 콘텐츠보다 약 4배 더 많은 숫자였죠. 반면, 틱톡 알고리즘은 중국 공산당 찬성 콘텐츠를 약 3배 더 많이 노출했습니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인 마크 워너는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과 미국 틱톡 간의 알고리즘 차이를 지적했습니다. 중국 아이들에게는 과학과 공학을 보여주는데, 미국 아이들이 보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겁니다. 과학적인 근거를 든 것은 아니지만, 틱톡의 영향력에 관해 미국에서 어떤 우려를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입니다.

때문에 의회의 강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려가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이 알고리즘을 끝까지 사수했다는 것 자체가 틱톡 알고리즘의 위험성을 증명한다는 겁니다. ‘정보 무기’로 기능할 수 있는 소프트 파워이기 때문에 중국이 양보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논리입니다. 결국, 이번 거래 안은 틱톡 금지법의 근본적인 목적인 ‘국가 안보’를 저버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새로운 국경의 시대

아마도 향후 틱톡의 사용 경험은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틱톡 아메리카 사용자가 올린 영상이 전 세계 틱톡 사용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일지, 얼마나 바이럴될 수 있을지부터 틱톡 아메리카 사용자가 유럽에서, 한국에서 틱톡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까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수두룩합니다.

정부의 플랫폼 장악 문제도 불거집니다. 틱톡 아메리카 이사진 중 1명을 미국 정부가 지명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미국은 지금 ‘표현의 자유’를 두고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커질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문제는 미국이 떠안게 될 숙제입니다. 미국 밖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달라진 시대겠죠. 이제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었던 시절은 끝났습니다. 디지털 세계의 만리장성은 중국만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미국도 지도 위에 방화벽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틱톡 아메리카는 그 첫 번째 벽돌입니다. 인터넷 고립주의가 다가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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