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우주

bkjn review

원래 탐험은 전쟁 준비의 과정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의 우주

2025년 9월 24일

2025년 9월 10일 NASA(미 항공우주국)가 기자 회견을 열었습니다. 화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았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화성을 조사하고 있는 탐사 로봇이 채취한 암석에서 특별한 무늬가 발견되었는데, 그 무늬가 고대 생명체가 살았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입니다. NASA는 공식적으로 ‘화성에서 잠재적인 생명체의 징후를 발견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라니,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인류가 우주로 나아갈 이유임과 동시에 우주 개발의 위험성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소식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꽤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2004년 3월 NASA는 ‘중대 발견’을 발표했습니다. 화성에 생명체의 가능성을 품은 물의 존재 징후가 있다는 내용이었죠. 2008년에는 화성의 토양이 식물을 길러내기에 적합할 정도로 지구와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고요.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화성에 사람이 직접 착륙해 곳곳을 뒤지며 탐색한 것도 아니니까요. 화성에서 보내온 이미지와 데이터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 그러니까 화성 생명체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만 맴돌 뿐이죠. 무려 20년도 넘게 말입니다. 당장 화성의 올림푸스산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외계 생명체 영상이라도 나오면 모를까, ‘생명의 흔적’이라니, 듣는 입장에서는 시큰둥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NASA의 발표를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맥락에서 읽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화성 위의 샘플들

현재 화성에서는 두 대의 탐사 로봇이 활동 중입니다. 큐리오시티 (Curiosity)는 2012년부터 활동해 왔습니다. 화성 지표면에서 흙을 채취해 간단한 분석 수행합니다. 이번 발표의 주인공은 퍼서비어런스 (Perseverance)였습니다. 2021년 화성 예제로 크레이터(Jezero Crater)에 착륙하여 활발히 탐사 임무를 수행 중이죠. 과거 물이 흘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 지역입니다. 삼각주와 같은 지형적 특성이 뚜렷이 관찰됩니다.

퍼서비어런스는 기존 로봇과는 달리 로봇 팔에 드릴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암반을 깨고 들어가 샘플을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현재까지 예제로 분화구에서는 총 8개의 샘플을 수집했습니다. 수집된 샘플은 튜브에 넣어 본체 내부에서 사진을 촬영한 후 바닥에 그냥 떨어트려 놓습니다. 로봇 내부 저장 캡슐이 있지만, 자리가 한정적이라 나중에 수거해 갈 수 있도록 샘플 수집 장소 주변에 튜브를 놓아두는 겁니다.

NASA가 아주 오랜만에 흥분하며 발표한 ‘생명의 흔적’은 퍼시비어런스가 예제로 크레이터 지역의 네레트바 계곡(Neretva Vallis)에서 채취한 25번째 샘플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네레트바 계곡은 예제로 크레이터에서 물줄기가 강하게 흐르면서 형성된 지형입니다.
퍼서비어런스는 화성에 이런 방식으로 착륙했습니다. / 출처: NASA Jet Propulsion Laboratory
지구에서는 물이 흐르는 곳부터 생명이 탄생해 자리를 잡습니다. 화성에서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릅니다. 25번째 샘플 암석에 하얀 줄무늬가 보입니다. 물이 흘렀다는 증거입니다. 물이 흐르는 동굴에 석회 지형이 생기듯, 화성의 암석에도 물이 흔적을 남겼습니다. 표범 무늬 같은 독특한 패턴도 발견되었습니다. 픽셀 (PIXL)과 셜록 (SHERLOC)이라는 장비로 검사한 결과 이 작은 점들은 유기 화합물의 흔적이었습니다. 지구에서 발견된 미생물의 흔적과도 매우 유사합니다.

일 년 사이에

그런데 NASA의 이번 발표 내용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2024년 7월에 이미 정리되어 짧은 논문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동료 심사를 거치기 이전의 프리프린트(pre-print) 버전이긴 하지만 말이죠. 당시 NASA의 연구진들은 꽤 고무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논문의 제목을 보면 그 흥분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퍼서비어런스가 채취한 예제로 크레이터 서부 퇴적 선상지 암석의 천체생물학적 잠재성〉입니다. 명시적으로 ‘천체생물학적(Astrobiological)’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뜻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생명의 증거를 거의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퍼서비어런스 팀 소속 과학자인 모건 케이블(Morgan Cable)은 화성에서 발견된 특정 암석이 고대 생명체 탐사 연구에 있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샘플을 어서 지구로 가져와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출처: NASA Jet Propulsion Laboratory
당시엔 조용했습니다. 과학계에서는 주목했지만, NASA라는 기관 차원에서 엄청난 발견이라는 식의 홍보를 하지는 않았죠. 그러다 1년도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기자 회견이 열린 겁니다. 2024년의 논문도 기자 회견 당일 학술지 《네이처》에 정식으로 개재되었습니다. ‘천체생물학적’이라는 직접적 용어 대신 ‘산화환원 반응(Redox-driven)’이나 ‘유기물(organic)’과 같은 간접적인 용어로 제목은 순화되었고요.

연구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려면 수많은 수정이 필요하고요. 하지만, 이 소식이 지금 전해진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정치적인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2024년 7월과 2025년 9월의 NASA는 전혀 다른 조직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2025년 8월부로 NASA의 지위를 변경했습니다. NASA는 원래 우주 탐사 기관이었습니다. 일종의 연구 조직이죠. 하지만 이제는 국가 안보 기관입니다. 방위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백악관의 의중에 따라 언제든 핸들을 꺾을 수 있는 기관 말입니다.
NASA의 이 발표 내용은 분명 획기적입니다. 하지만 메시지의 시기와 방법은 또 다른 함의를 갖기 마련이죠./ 출처: ABC News
NASA 임시 국장의 업무 지침

기자 회견장에서 달뜬 얼굴로 화성 탐사의 성과를 발표한 인물은 숀 더피 미국 교통부 장관입니다. 2025년 7월부터 공석인 NASA 국장 자리를 임시로 맡고 있습니다. 이례적인 일입니다. 언뜻 생각해도 교통부 장관과 NASA 국장의 일 사이에 어떤 공통 분모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더피는 교통 전문가 출신도 아니거든요. 검사 출신으로 공화당 하원 의원을 지냈고, 폭스 뉴스에서 방송 진행자로 활동했죠. 한마디로, 트럼프가 아끼는 스피커란 얘깁니다.

더피가 NASA의 임시 국장 자리를 맡고 벌인 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달에 원자로를 건설하겠다는 긴급 계획을 발표한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만, 이유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됩니다. NASA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우주인을 다시 달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 일이 진행되었지만, 기틀을 잡은 것은 트럼프 1기 행정부입니다. 트럼프가 다시 사람을 우주에 보내기로 한 이유는 과학의 발전이나 인류의 번영 같은 것이 아닙니다. ‘중국’ 때문입니다.

트럼프 시대 공공의 적은 중국입니다. 지지 기반을 공고히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절대 중국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죠. 1957년 10월 4일은 미국이 구소련에 뒤처진 날이었습니다. 스푸트니크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2030년까지 달에 기지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러시아 등과 협력하에 미국보다 먼저 달을 정복하고자 하는 겁니다. 기지를 건설하게 되면 깃발을 꽂고 돌아오는 식의 달 탐사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땅을 발견했어도, 그곳에 성을 짓고 사람이 정착해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죠. 달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기지 건설과 함께 달에서 또 다른 영토 분쟁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기지를 건설해 운영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낮과 밤이 각각 14일씩 지속되는 달에서 태양광 발전은 효율이 떨어지고요. 그러니 원자로 건설은 달 정복의 기본 전제입니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그렇습니다. 실제로 더피가 내놓은 ‘달 표면 원자로 지침’에는 ‘달에 원자로를 처음으로 갖게 되는 국가가 미국에 출입 금지 구역을 선포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출입 금지’ 팻말을 달에서 만나지 않으려면 달 기지 건설을 서둘러야 하고, 이를 위해 원자로 건설이 급선무라는 얘깁니다. 이제 NASA의 임무는 중국보다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America First in Space

NASA의 새로운 임무는 지난 8월 공식화했습니다. 국가 안보 기관 목록에 NASA가 추가된 겁니다. 이를 두고 노조와의 갈등을 돌파하려는 방법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 목록에 들어간 기관의 노조와는 적극적으로 협의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NASA는 일종의 민간 외교 사절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우주에 관한 국제 공동 연구를 이끌며 전 세계 우주 과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도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등에 함께 참여하고 있죠.

하지만 트럼프가 생각하는 미국의 나아갈 길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 일종의 ‘경찰 국가’ 역할을 하면서 남의 나라 전쟁에 돈을 쓰는 것은 빠르게 중단되어야 할 낭비라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니까요. 우크라이나 전쟁도, NATO 방위비 분담도, 심지어는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도 그 기조에 따라 흔들고 뒤틀고자 합니다.

과학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미래나 학문의 발전 같은 것은 미국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NASA가 돈을 쓴다면 그 열매는 미국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NASA는 국가 안보 기관으로 기능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달을 중국으로부터 지키고 미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일 같은 것입니다. 또, NASA의 연구 결과도 국가 안보 활동의 결과이니 학계에 널리 공유하는 손해 볼 일은 하지 않아야 할 테고요.

문제는 돈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미 과학 연구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있습니다. 과학을 미워해서는 아닙니다. 진짜로 미국 정부가 쪼들려서 그렇습니다. NASA의 2026년도 예산안도 전년 대비 약 25퍼센트 깎였습니다. 그런데 달에 원자로를 중국보다 빨리 건설하려면 돈이 듭니다. NASA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는 중단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미 4000명에 가까운 인력이 해고당했습니다.

트럼프의 높은 성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성 표면 여기저기에 놓인 샘플들을 지구로 다시 가져올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도 강해졌습니다. 원래는 그 샘플을 지구로 운송하는 데에 50억 달러 정도의 예산을 예정했습니다. 하지만 일정은 늘어지고 비용은 치솟아 이제 110억 달러 수준이 들 것으로 추정됩니다. 4000명을 해고하는 조직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싼 비용입니다. 엄청난 과학적 발견을 하고도 구체적인 분석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사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화성에 빨리 사람을 보내고 싶어 하죠. 중국이 달이나 태양계 바깥에 집중하고 있으니, 미국은 화성을 먼저 차지하겠다는 겁니다. 일론 머스크와 트럼프의 동맹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입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깎여 나간 2026년도 NASA 예산안에서 유일하게 예산이 증액된 분야가 ‘유인 화성 탐사’입니다. 그리고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사람이 가서 샘플을 가져오면 된다는 것이 트럼프 진영의 발상이고요.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 싼 가격에 샘플을 가져다준다면 NASA가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번 기자 회견이 돈 때문에 엄청난 연구를 우주로 날려버릴 위기에 처한 NASA의 궁여지책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더피가 일종의 시그널을 보낸 겁니다. 이 문제를 누군가 해결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신호 말이죠. 그리고 그 신호를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 스페이스X에 밀려 NASA의 우주 프로젝트에서 지분이 깎이고 있던 록히드 마틴 얘기입니다. 제시한 가격은 30억 달러 수준입니다.

이제 우주는 인류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이 싸움에서 이기는 누군가의 높은 성입니다. 트럼프는 이 새로운 정복 전쟁에서 승리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 전쟁에서 손해를 볼 생각은 없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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