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을 끊을 결심

bkjn review

죄악세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달콤함을 끊을 결심

2025년 9월 30일

세금이 하나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회가 ‘설탕세’ 논의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9월 24일 관련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습니다. 국회에서 열리는 토론회는 〈100분 토론〉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입법부가 국민 세금으로 여는 만큼, 목적이 뚜렷합니다. 관련 법안을 새로 만들거나 고치기 위한 작업의 시작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나온 논의는 아닙니다. 지난 2016년 정부가 ‘당류 저감 종합 계획’을 발표한 이후 2021년 ‘국민 건강 증진법’의 일부로 설탕세 도입이 발의된 바 있습니다.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간 음료 등에 추가로 세금을 부과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이후 논의는 이어지지 못했죠. 업계 반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컸습니다. 보건 복지 분야의 모든 이슈를 덮어 버렸으니까요. 최근 건강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슈가 다시 재점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논의가 늦은 편에 속합니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설탕세 도입을 권고했고, 이에 따라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설탕세가 속속 도입되었습니다.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서울대 건강 문화 사업단의 조사에 따르면 약 60퍼센트의 응답자가 설탕세 도입에 찬성했고요.

하지만 질문하게 됩니다. 설탕세가 정말 우리를 비만으로부터, 달콤한 독으로부터 해방해 줄까요? 과자나 초콜릿, 콜라의 가격이 오르면 우리는 예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도 있습니다. 그래서 설탕세 논의를 두고 건강으로 포장된 증세 방안이라는 의심도 나옵니다.

죄와 악에 매기는 세금

국가가 국민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세금을 이용한 역사는 유구합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개혁을 꿈꾼 군주입니다. 과거를 넘어 현재로,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죠. 표트르 대제에게 러시아의 전통은 과거였고 미래는 유럽이었습니다. 국가를 ‘유럽화’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폈죠. 그중 하나가 수염세입니다. 말 그대로 수염에 세금을 매겼습니다. 세금을 납부한 사람에게는 수염 토큰(beard token)을 지급했고요. 일종의 세금 납부 증명서 같은 겁니다. 토큰 없이 수염을 길렀다간 벌금을 물거나 강제 면도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언뜻 구시대적인 발상처럼 느껴지지만, 전 세계의 정부는 아직도 세금을 통해 납세자의 행동을 바꾸고자 합니다. 주류세, 담뱃세 등으로 말이죠. 건강에 해롭고 중독성까지 있는 물질의 섭취를 억제하고자 하는 겁니다. 세금을 매겨 가격이 비싸지면 접근성이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자제할 수밖에 없다는 원리입니다.

이런 세금을 ‘죄악세(sin taxes)’라고 합니다. 그리고 죄악세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한 연구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의 경우 담배주류 가격이 1퍼센트 상승할 때 판매량은 0.5퍼센트 감소한다고 합니다. 이걸 경제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면 ‘가격 탄력성’입니다. 가격이 1퍼센트 변화할 때 수요가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나타냅니다. 술이나 담배는 -0.5입니다. 탄력성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효과가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빵이나 쌀과 같이 대체하기 힘든 주식에 관해 생각해 보죠. 없으면 못삽니다. 대체재도 마땅치 않죠. 이런 품목은 가격이 올라도 소비가 줄어드는 폭이 작습니다. 가격 탄력성이 낮습니다. 반면, 과일은 가격이 오르면 선뜻 집어 들기 어렵죠. 먹고 싶지만, 비싸면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가격 탄력성이 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품목입니다. 담배나 술은 쌀과 과일의 중간 정도의 탄력성을 보입니다.

역진세의 단점

그렇다면 설탕은 어떨까요. 연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10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설탕 음료의 경우 가격 탄력성이 식품 중에서는 높은 편입니다. 과일과 비슷한 수준이죠. 따라서 설탕 음료가 비싸지면 소비는 줄어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38년에서 2007년 9월 사이에 출판된 연구를 종합한 결과, 가격 탄력성은 0.79 정도였습니다. 즉, 술이나 담배보다도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 감소율이 높다는 얘깁니다.

더 명시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설탕세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영국의 음료 기업들은 제품을 리뉴얼했고, 전체적인 당 함량이 46퍼센트 감소했습니다. 멕시코도 2014년 고열량 설탕 음료에 대한 세금을 도입했습니다. 2년 만에 설탕 음료 소비량이 6.8퍼센트 감소했고요.

하지만 설탕세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치명적인 결함이 있죠. 대부분의 죄악세가 그렇듯, 설탕세도 ‘역진세(regressice tax)’에 해당한다는 점입니다. 소득세는 많이 번 사람이 돈을 더 냅니다. 설탕세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소득이 아니라 소비에 따라붙는 세금이기 때문입니다.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더 큰 부담이 됩니다.

콜라 회사가 설탕세를 내게 되면, 가격을 올리게 됩니다. 수익률을 맞춰야 하니까요. 따라서 설탕세는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부담하는 세금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과된 세금 전체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수도 있고요. 설탕세 도입으로 콜라 한 캔당 가격이 100원씩 올랐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월 소득이 100만 원인 사람이 한 달에 10캔씩 사 먹는다면, 소득의 0.1퍼센트를 설탕세에 지출하게 됩니다. 반면, 월 소득이 10만 원인 경우라면 소득의 1퍼센트를 설탕세로 쓰게 되겠죠.

게다가 수많은 연구가 저소득 계층이 고소득 계층보다 설탕 음료를 더 많이 구매한다고 보고합니다. 닐슨의 2014년에서 2018년 사이의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같은 경향이 관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고소득 계층은 설탕 음료 대신 무엇을 소비했을까요? 생수나 과일 주스를 더 많이 구매했습니다.

죄악세의 목적은 건강에 해로운 상품을 상대적으로 더 비싸게 만드는 것이지 저소득층에게 부담을 더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됩니다. 부작용입니다. 게다가 설탕세의 경우 과세의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백반집의 김치찌개에도 설탕은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백반집에 설탕세를 물릴 수는 없겠죠. 결국, 설탕 음료나 스낵류 등의 가공식품으로 과세 대상이 한정됩니다.

설탕세를 위한 변명

일주일에 술을 한두 잔 마시는 사람에게 술은 덜 해롭습니다. 과음하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죠. 하지만 주류세는 누구에게든 똑같이 부과됩니다. 과음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서는 효율이 떨어집니다. 설탕세는 더합니다. 먹는 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과식만이 문제입니다. 비효율적입니다.

그럼에도 설탕세가 논의되고,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설탕이 유발하는 문제를 해결할 효율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해 중독에 가까운 현상을 만들어내는 식품을 시장 경제 체제는 결코 제어할 수 없습니다. 수요도 공급도 충분한 상품을 억지로 덜 생산할 동기가 시장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 정책으로 제어하게 됩니다. 시장 경제 논리로 해결이 안 되는 일이니,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어렵고요. 그나마 행정의 영역에서 가능한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설탕세입니다. 억지로 먹지 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팔지 못하게 할 수도 없죠. 대신 너무 많이 먹거나 팔 수 없도록 비싸게 만드는 겁니다.

게다가 정부 입장에서는 설탕세 시행으로 재정 건전화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세수 증대 얘기가 아닙니다. 공공 의료 보험 이야기입니다. 영국이 비교적 이른 시기 설탕세를 도입했던 까닭은 과도한 당분 섭취로 인한 대사 질환이 영국 공공 의료 시스템에 막대한 부담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설탕세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열린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는 2023년 기준으로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이 당류를 권고치보다 많이 섭취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한국 보건 경제 정책 학회의 2024년 연구는 당류 과다 섭취로 인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2021년 기준으로 15조 60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고요. 물론, 그 비용이라는 것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포함하는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식품 회사에서 같은 연구를 했다면 숫자는 훨씬 작아졌겠지요. 다만, 같은 연구에서 밝힌 흡연의 사회적 비용이 11조 4000억 원, 음주의 경우는 14조 6274억 원이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연구는 달콤한 식품이 흡연이나 음주보다 우리 사회에 더 큰 부담을 안긴다는 얘깁니다.

의지의 문제

다만, 설탕세 도입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흔히 ‘식탐’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먹는 행위를 일종의 ‘탐욕’으로 규정짓는 겁니다. 이런 관점은 편견을 만듭니다. 비만과 같은 대사 질환은 개인적인 문제라는 편견 말입니다. 스스로의 탐욕을 절제할 능력이 부족해 건강을 망쳤다는 식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한 날 저녁에는 유독 치맥이 당깁니다. 달콤한 디저트에 손이 갑니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본능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탐욕이 아니라요. 살기 위해 산소를 호흡하고자 하는 본능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환경적 영향도 있습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미국에는 6500곳의 식품 사막이 존재합니다. 마트에서 신선식품을 구하기는 어렵고 대신 초가공식품만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끼니를 스스로 챙겨야 하는 아이를 생각해 보죠.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편의점 도시락과 콜라로 식사를 때웁니다. 그 아이는 식품 사막에 사는 겁니다. 근로 시간이 길어 거의 매일 밤 10시에나 집에 들어오는 직장인도, 부엌이 없는 고시원에 사는 사람도 사실상 식품 사막에 삽니다.

게다가 식품 회사는 일종의 화학 회사입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행복을 제공할 화학 물질을 끝없이 연구하죠. 편의점에서 간편식품을 무작위로 선택해 뒷면을 살펴보면, 읽기도 어려울 만큼 길고 수많은 식품 첨가물의 목록과 만나게 됩니다. 우리 뇌가 ‘맛있다’라고 느끼는 맛과 식감을 만들기 위한 화학 물질입니다.

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의 저자인 영국의 의사 크리스 반 툴레켄은 장기간 초가공식품만을 섭취하며 자신의 몸을 관찰했습니다. 4주간의 실험 이후 촬영한 뇌 MRI 이미지에서 툴레켄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뇌에서 식품 섭취 호르몬 조절에 관여하는 영역과 욕망이나 보상에 관여하는 영역 사이의 연결이 늘어난 겁니다. 이 결과를 보고 툴레켄은 뇌가 한창 성장할 나이의 10대 청소년들을 걱정합니다.

맛이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식품은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런 음식들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누구든 ‘식탐’을 부리게 되죠. 결국, 식품 산업 전체를 완전히 개편하거나 사회의 과도한 경쟁을 줄여야 합니다. 매우 어려운 일이겠죠. 하지만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합니다.

Gin Craze

영국은 18세기 초 저렴한 술인 진(gin)이 급격히 보급되면서 심각한 알코올 문제를 겪게 됩니다. 프랑스산 브랜디 수입을 막기 위해 영국 국내의 증류 규제를 확 풀어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때마침 인클로저 운동에 따른 대규모 상업 농장이 발달하는 등 농업 생산성도 훌쩍 뛰어올랐고요. 규제는 풀리고 원료 가격은 내려가니 시중에 값싼 술이 넘치게 됩니다. 특히 진은 대규모 증류가 가능해지면서 서민들의 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결과 과음과 중독이 영국 사회를 덮칩니다.

당시를 ‘진 광풍(Gin Craze)’이라 명명할 만큼 지독한 병폐였습니다. 상황이 너무 심각했던 탓에 전 사회적인 각성 운동이 일어납니다.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1751년 판화 시리즈 〈Gin Lane〉과 〈Beer Street〉를 보면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맥주를 마시는 사회와 독주인 진을 마시는 사회를 비교하면서 ‘진은 파멸, 맥주는 건전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시대의 추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던 화가 윌리엄 호가스는 맥주를 절제의 미덕으로, 진을 타락의 원인으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영국 의회는 여러 차례 진 규제 법을 통과시켜 가격을 올리고 유통을 조였습니다.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지만 국면 전환의 결정적인 계기는 1750년대 초의 엄청난 흉작이었습니다. 진을 만들 원료가 부족해지고 소비자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진의 소비량도 꺾인 겁니다.

설탕세는 합리적인 차선책일 수 있습니다. 영국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할 경우 연간 약 2000억 원의 추가 세수도 기대할 수 있고요. 이 돈을 대사 질환 예방과 청소년 급식 지원 등에 사용한다면 설탕세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사회가 불행하고 손쉬운 위안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한 우리는 먹을 것의 중독으로부터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 1750년대의 영국이 겪은 것과 같은 엄청난 충격이 없다면 말이죠.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