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에 진심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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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잡으려면 손이라도 뻗을 힘이 있어야겠죠.

신공항에 진심인 이유

2025년 10월 1일

참사가 일어난 다음에야 실감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 인간이 피할 수 있는 위험과 그렇지 않은 위험이 무엇인지와 같은 사실들입니다. 2025년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판결이 그렇습니다. 새만금 신공항 건설 기본 계획을 취소하라는 판결입니다. 1심 판결입니다. 뒤집힐 수 있단 얘깁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항소를 결정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무겁습니다.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토건을 이긴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토건은 돈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만금에서는 새가 토건을 이겼습니다. 조류 충돌 위험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이 신공항 취소의 주요 근거가 되었습니다. 새만금 공항을 반대해 온 환경 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전라북도 주민과 지방 정부는 생각이 다릅니다.

잼버리를 유치한 사람들

새만금 국제공항은 전라북도 군산시 새만금 인근에 지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지난 2019년 ‘국가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받았고, 2022년 6월 기본 계획이 확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맞게 됩니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파행 사태 때문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청소년들을 굳이 새만금으로 불러들인 사람들은 각자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치적을 늘리고자 하는 지자체장, 지역 사업에 공헌했다며 표심을 얻으려는 지역 정치인들, 그리고 개발 사업을 통해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건설사와 지역 세력 등입니다. 그들 중 누구도 한여름 갯벌 위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사실, 새만금 사업은 시작부터 정치였습니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이었거든요. 새만금은 원래 얕은 바다였습니다. 끝없는 갯벌이 펼쳐져 있었죠. 2025년의 누군가가 바닷물을 막고 갯벌을 말려 땅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는다면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환경적 손실이 얼마나 대단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87년은 그런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대다수의 유권자가 도시가 아닌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쌀이 모자라 굶주려본 경험도 있었고요. 그래서 바다를 메꿔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공약은 설득력을 가졌습니다. 쌀이 부족한 시대는 이미 지났지만, 굶주림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인간입니다. 바다를 메꿔 땅으로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1991년 11월 시작된 방조제 공사는 2010년 4월 완료되었습니다. 둑을 쌓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작입니다. 방조제 안쪽을 메꾸고 그 땅을 쓸모 있게 개발해야 합니다. 1987년에는 농지를 늘리겠다는 계획이 통했지만, 2010년도에는 아닙니다. 지자체는 부랴부랴 기업 유치에 나서지만 쉽지 않습니다. 각종 인프라가 빼곡해도 망설일 판인데, 새만금은 아직 허허벌판이기 때문입니다. 잼버리 당시 온 국민이 목격했듯 말이죠. 그래서 공항과 항만, 도로 등을 확충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통 인프라를 누가 공짜로 지어줄 리는 없습니다. 대대적인 개발을 시작할 명분, 계기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1988년도 서울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 같은 것이 되겠지요. 적어도 잼버리를 유치하겠다고 계획한 의사 결정권자들의 시대적 감각으로는 그러했습니다. 즉, 잼버리는 새만금을 어떻게든 활용해야만 했던 주체들이 발견한 최고의 아이템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동아줄인 줄 알았던 잼버리는 속 깊이 썩어 있었습니다. 파행 이후 국토부는 새만금 지역의 신공항 건설 계획은 물론 철도, 도로 등 예정된 사회 간접 자본(SOC)에 대한 적정성 재검토에 들어갑니다. 자연스럽게 신공항 계획도 보류되었죠. 물론 재검토 결과는 ‘문제없음’이었지만,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달라져 있었습니다. 계기는 2024년 12월 발생한 무안 국제공항 참사였습니다.

밀어붙인 결과

인간은 종종 지구상에 인간만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땅속 깊이 흘러드는 물의 존재를 잊고 집값에 해가 되는 도로와 물길을 모두 지하화하자고 합니다. 고라니와 멧돼지가 다니는 길을 가로질러 고속도로를 만들죠. 그리고 새들이 떼 지어 날아오르는 곳에 공항을 짓습니다.

무안 공항 참사의 원인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항공기가 비상 착륙을 시도하게 된 원인은 조류와의 충돌(bird strike)로 추정됩니다. 공항 주변에는 무안 저수지 등 철새 도래지가 6곳이나 있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문제일 뿐입니다.

새만금 신공항의 경우 2019년 사업 타당성 평가 당시 생태 문제에 관한 검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조류 충돌에 관련된 항목은 검토되지 않았죠. 이후 국토교통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조류 충돌 위험성을 측정하게 되는데, 그 기준을 세 차례나 변경합니다. 법원은 충돌 위험성이 높게 나오자, 국토부가 수치를 낮추기 위해 기준 변경을 시행했다고 봤습니다.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라고 지적했죠.

실제로 새만금 신공항 부지의 연간 잠재 조류 충돌 횟수는 최소 10.34회에서 최대 45.9회로 추산됩니다. 무안 국제공항의 수치는 0.07회였습니다. 새만금은 확실히 위험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신공항 건설 계획 취소 판결이 나오자, 조종사 협회에서 환영의 입장을 밝힐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국토부와 전라북도 지방 정부는 생각이 다릅니다. 충분히 보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수라 갯벌은 사실 ‘갯벌’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주장합니다. 방조제 안쪽에 위치해 물이 들고 날 수 없어 법적으로는 보호 대상이 아닌 것은 맞습니다. 판결문에서 수라 갯벌이 아니라 공항으로부터 7킬로미터 떨어진 ‘서천 갯벌’을 주로 언급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국토부의 보완 대책이라는 것이 미덥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서식지를 옮기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가 있으면 치우면 된다는 발상은 인간의 무지입니다. 사람도 살던 곳에서 나가라면 저항합니다. 다시 돌아옵니다. 새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지요.

서울 식민지

사실 새만금에 공항이 생긴다고 갑자기 전북 지역에 활기가 돌 가능성은 작습니다. 전주 지역으로의 외국인 관광객 유입을 기대하지만, 순서가 틀렸죠. 전주가 더 매력적인 장소로 거듭나야 관광 수요가 생길 겁니다. 그 수요가 단체 관광객을 태운 전세기로 시작하여 개별 관광객을 실어 나를 항공편 편성으로 이어질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공항에 활기가 돌 겁니다. 피라미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공항이 전주를 살릴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전북에는 이번 판결로 실망감이 감돕니다. 주민 간 갈등 조짐도 보입니다. 왜일까요. 공항이 지역을 살릴 것이라는 헛된 약속을 진짜 철석같이 믿어서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누군가는 의심하고 누군가는 조금의 기대도 걸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라북도만 고립되어 공항이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믿었을 리는 없지요.

시계를 돌려 다시 2023년으로 돌아가 보죠. 잼버리를 앞두고 아무도 문제점을 눈치 못 챈 것이 아닙니다. 지역 언론들은 이미 몇 달 전부터 문제점과 위험성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JTV 전주방송은 잼버리 3개월 전 이미 현장을 찾아 문제를 고발했습니다. 서울에서 신경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 출처: JTV뉴스
국제 행사가 열리는데 중앙 정부에서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부가 폐지를 예고했던 여성가족부에 형식적인 책임을 씌웠을 뿐이죠. 정부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의 언론사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몰려 삽니다. 한정된 취재 인력이라면 잼버리가 아니라 여의도 벚꽃 축제 현장으로 카메라를 보내는 결정을 하죠.

지역이 느끼는 소외감은 켜켜이 쌓입니다. 국제 행사를 열어도 지역 잔치입니다. 서울에서는 재건축이니 아파트 공급 대책이니 시끄러운데 지역은 자연을 파괴하지 말고 지금처럼 불편하게, 가난하게 머물라고 합니다. 몇십 년 전 시작된 간척 공사가 끝났는데 땅은 비어 있고 무리한 개발의 상처만 남았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는 말이 있지만, 기회를 잡으려면 손이라도 뻗을 힘이 있어야겠죠. 지방 재정은 파탄 났는데 개발해서는 안 될 이유만 자꾸 검토합니다.

신공항이 문제가 아닙니다. 전라북도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공항이라도 지어보자는 생각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실함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마다 신공항을 짓는 것에 반대합니다. 생태적인 손실이 너무 큽니다. 지역이 얻게 될 이득은 불투명하거나 충분치 않습니다. 다만, 지역에 산업을 앉히고 일자리가 생길 수 있도록 중앙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2025년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48.6퍼센트입니다. 좋지 않죠. 그런데 이 수치에는 수도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라북도만 떼 놓고 보면 재정자립도는 23.5퍼센트까지 떨어집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어떻게든 중앙 정부로부터 예산을 따오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국회의원도, 지자체장도 예산을 따왔다는 것이 가장 큰 치적이 되죠. 지역에서 신공항을 반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공항은 정부 예산으로 짓습니다. 지역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따내고 싶은 인프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새만금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훔쳐 온 땅입니다. 파괴를 멈출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새만금 신공항 문제는 인간과 생태의 구도와 함께 서울과 지역의 구도를 함께 두고 봐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말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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