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구달, 1934-2025

bkjn review

과거로 돌아가도 다시 밀림으로 갈 거냐는 질문에 그는 말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죠.”

제인 구달, 1934-2025

2025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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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환경 운동가인 제인 구달(Jane Goodall, 1934~2025) 박사가 10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했습니다. 구달 박사가 설립한 제인 구달 연구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구달 박사가 미국 강연 투어로 캘리포니아에 머물던 중 자연적 요인으로 세상을 떠났다”라고 밝혔습니다.

구달 박사는 침팬지 연구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상식처럼 여겨지는 침팬지의 도구 사용을 처음 발견한 연구자입니다. 구달 박사의 연구 성과가 탁월했던 이유는 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연구 방법, 관찰 태도, 그리고 장기적 헌신에서 동물행동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1960년 스물여섯의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밀림으로 들어가 10년을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침팬지가 막대를 가공해 개미를 잡아먹는 장면을 관찰했습니다. 이 발견으로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다는 통념이 깨졌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다시 그리는 계기가 되었죠. 진화론과 인지 과학 연구에도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주류 동물행동학은 동물을 번호로 식별했습니다. 본능적 행동을 기계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달 박사는 침팬지에 데이비드, 플린트 같은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감정과 성격, 사회적 맥락까지 기록했습니다. 동물을 의인화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수십 년의 연구가 쌓이면서 침팬지 사회도 인간 사회처럼 집단 간 전쟁을 벌이고 애도하고 협력하는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갖췄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구달 박사의 침팬지 연구는 과학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성찰을 촉발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구달이 “동물은 본능적 존재이고,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오만을 허물었다”라고 평했습니다. 구달의 연구는 이후 생명 윤리와 동물권, 생물 다양성 논의로 이어지며 사회 담론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구달 본인도 1970년대 후반부터 환경 운동가로 활동했고요.
1996년 고아가 된 침팬지 우루하라(Uruhara)와 함께 침팬지 소리를 내고 있는 제인 구달 / 사진: 미하엘 노이게바우어(Michael Neugebauer), 출처: Jane goodall’s wild Chimpanzee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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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5년 제인 구달 박사를 인터뷰했습니다. 구달 박사와 친분이 있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 교수(당시 국립생태원장)의 소개로 인터뷰가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인터뷰 원고를 옮깁니다.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늘 동물들이 가까이 있었나요?

“집에 꽤 큰 정원이 있었어요. 새들과 친해지려고 나무에 올라가 몇 시간씩 앉아 있곤 했지요. 정원에서 거미와 개미들도 만났어요. 애벌레를 잡아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걸 보기도 했고요. 애완견 러스티(Rusty)와는 열네 살에 만나 뗄 수 없는 사이가 됐어요. 러스티는 특별히 똑똑했기 때문에 동물 행동에 대해 많은 걸 느끼게 했어요. 어린 시절 내내 저는 동물에 관한 책을 읽으며 자랐습니다. 그땐 텔레비전이 없었거든요.

아프리카엔 어떻게 가게 되었나요?

“열 살 때 소설 《타잔(Tarzan of the Apes)》을 읽은 뒤부터 아프리카에 가고 싶었어요. 야생 동물들과 함께 살며 그들에 관한 책을 쓰는 게 꿈이었죠. 모두 웃었지만요. 아프리카는 너무 멀고, 우리 집은 돈이 별로 없었고, 전쟁이 한창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어린 소녀였죠. 소년들에게만 그런 모험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좋은 기회가 올 테니 절대 포기하지 마.’ 스물두 살 때 케냐에 살던 학교 친구로부터 놀러 오라는 편지를 받았어요. 그때부터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 호텔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습니다.”

왜 침팬지 연구를 결심했습니까?

“케냐에서 유명한 인류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루이스 리키(Loise Leakey) 박사를 만났고 함께 일할 행운을 얻었어요. 리키 박사는 침팬지를 연구할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그는 인간과 유인원이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지요. 아프리카 여러 곳을 다니며 연구를 했는데, 그중 한 곳에 저를 데려간 거예요. 그때 저도 침팬지 연구를 결심했어요.”

1960년에 연구를 위해 탄자니아 침팬지 보호 구역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탕가니카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곰베(Gombe) 국립 공원으로 들어가면서 울창한 숲과 골짜기, 급경사들을 봤어요. 여기서 어떻게 침팬지들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죠. 호숫가에 발을 담갔을 때는 마치 꿈을 꾸는 듯했어요. 그런데 ‘하얀 유인원(White Ape)’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침팬지들이 저를 보고 도망가기만 하는 거예요. 그게 가장 큰 문제였죠.”

젊은 여성으로서 밀림 생활이 두렵진 않았나요?

“제가 여성이라서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두려운 순간은 있었어요. 숲에서 야영할 때 가까이서 표범 소리가 들리기도 했죠. 실수로 버펄로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는데, 운 좋게도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불어 제 냄새가 그쪽으로 날아가지 않았던 적도 있고요. 침팬지들도 한동안 저를 마치 천적처럼 대했어요. 소리를 지르고, 나뭇가지를 휘두르고, 바위를 던지기도 했죠.”

침팬지의 마음을 어떻게 얻으셨어요?

“항상 같은 색 옷을 입었어요.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척했고, 땅을 파고 나뭇잎을 먹는 시늉을 했어요. 어느 날 남들보다 경계심이 덜했던 한 수컷이 제 캠프로 와서 테이블에 있던 바나나를 가져갔어요. 그에게 전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David Greybeard)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 후엔 제 손에 있던 바나나를 가져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데이비드가 숲속에서 나왔어요. 다른 침팬지들은 도망갈 준비를 하는데 그는 잠자코 있었죠. 그 후로 다른 침팬지들도 점점 저를 신뢰하게 된 것 같아요.”

침팬지들을 번호로 부르던 관습을 깨고 사람처럼 이름을 붙였습니다. 데이비드, 플린트, 그리고 플로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는 흰 수염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이름 붙였어요. 영국에선 흰 수염의 노인을 그레이비어드라고 부르거든요. 플로는 나이 든 여성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 붙였는데, 발정기 때 수컷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어요. 플린트는 그녀의 아들이라 역시 F로 시작하는 이름을 붙였죠.”

침팬지들과 5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언제 가장 행복하셨나요?

“첫째는 제가 가까이 가도 침팬지 무리가 도망가지 않던 그 순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저를 바라봤고 털 손질을 계속했어요. 둘째는 처음으로 침팬지들이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걸 봤을 때. 그때 전 리키 박사가 얼마나 흥분할지 생각했죠. 셋째는 침팬지들을 저를 받아 준 이후의 매일, 매주, 매달. 그때 본 모든 것들이 새로웠고 날마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어요.”

제인이라는 이름에서 타잔이 연상됩니다. 야생과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강의를 할 때마다 얘기해요. 열 살 때 《타잔》을 읽으며 제가 얼마나 격렬하게 그와 사랑에 빠졌는지. 그리고 타잔과 결혼한 ‘다른 제인’을 얼마나 질투했었는지. (웃음)”

《네이처》(2014)에 따르면 침팬지의 폭력은 인간이 서식지를 파괴했기 때문이 아니라, 침팬지의 선천적 특성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연구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침팬지에게 선천적인 폭력 경향이 있고, 인간에게도 있다는 건 확실히 알아요. 둘의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비롯된 거니까요. 인간과 다름없이 침팬지도 사랑과 연민, 이타적 행동들을 보여 줍니다.”

동물 권리를 신장하는 것이 아직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해요. 많은 동물들이 과학자들이 처음 발견한 것보다 더욱 지능적인 건 확실해요. 문어는 놀라울 정도로 똑똑하고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동물들도 고통, 행복, 슬픔, 두려움, 절망, 분노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점이에요. 유머 감각도 갖고 있어요. 우리는 이 행성을 파괴하고 있어요. 이대로 계속되면 우리 아이들을 멸종시킬지도 모릅니다.”
국립생태원의 ‘제인 구달 길’에 재현되어 있는 제인 구달의 텐트 / 사진: 국립생태원 제공
국립생태원에 당신의 이름을 딴 길이 있습니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 당신의 80세 생일 선물로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걸어 보셨는데, 어떠셨나요?

“‘제인 구달 길’을 걷는다는 건 엄청난 영광이었죠.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 선물이에요. 제 첫 텐트와 소품들을 세심하게 재현한 걸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건 단순한 길이 아니라 제가 걸어온 배움의 여정이고, 그 길을 걷는 아이들에게도 멋진 체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봉제 원숭이 인형은 누가 선물한 건가요?

“이 인형은 ‘Mr. H’예요. 21세에 시력을 잃은 개리 혼(Gary Haun)이 25년 전에 생일 선물로 줬어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는 많은 노력 끝에 마술사가 되었어요. 관객들은 그가 눈이 먼 줄도 몰라요. 쇼가 끝날 무렵 그는 얘기합니다.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 길은 열려 있습니다.’ 참 많은 영감을 주는 분이죠. 그가 이 인형을 주면서 말했어요. ‘당신이 가는 모든 곳에 이 인형을 데려가세요. 늘 제가 마음속에 함께하며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 후 Mr. H와 난 61개국을 함께 여행해 왔어요.”

환경 운동을 위해 1년에 300일 이상 세계를 누비고 계십니다. 다음 여정은 어디인가요?

“5월부터 전 네덜란드, 콩고, 오스트리아, 독일, 아부다비, 우간다, 케냐 그리고 아들 가족이 사는 탄자니아에 있었어요. 지금은 영국 윈저성이 주최하는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 연중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습니다. ‘뿌리와 새싹’은 세계 135개국의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환경 운동이에요. 한국에도 그룹이 있고, 최재천 원장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요즘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뿌리와 새싹’의 목표 중 하나인 인간과 대자연이 공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더욱 정진하기를. 인구 증가를 막고, 멸종 위기종을 구하고, 공기와 물과 땅의 오염을 멈출 방법을 찾기를. 다시 말하면, 정신 차리자!”

과거로 돌아가도 다시 밀림에 가실 건가요?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죠.”
2018년 제인 구달 박사 / 사진: Milken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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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의 저서 《인간의 유래》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적을 괴롭히며 즐거워하고 엄청난 희생을 바치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유아를 살해하고 아내를 노예처럼 취급하며 예절이라고는 전혀 없고 천한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미개인에게서 내가 유래되었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무서운 적에게 당당히 맞섰던 영웅적인 작은 원숭이나 산에서 내려와 사나운 개에게서 자신의 어린 동료를 구해 의기양양하게 사라진 늙은 개코원숭이에게서 내가 유래되었기를 바란다.”

제인 구달은 말합니다. “인간은 침팬지보다 조금 더 지적인 원숭이에 불과합니다.” 침팬지를 통해 인간과 자연을 다시 보게 만든, 그의 명복을 빕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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