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돈을 버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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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곰곰이 뜯어보면, 근본적인 방법론이 ‘약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돈을 버는 방법

2025년 10월 13일

지난 주말에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쉬지 않았습니다. 중국을 향해 테러에 가까운 발언을 이어갔죠. 관세 협상 관련 내용이었습니다. 현지 시각 기준 지난 10일 ‘중국산 제품에 100퍼센트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라고 밝힌 겁니다. 같이 죽자는 얘깁니다. 지금 미국으로 들여오는 중국산 제품에는 30퍼센트 정도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100퍼센트를 더 얹으면 130퍼센트의 관세를 물리게 됩니다. 중국에서 만 원에 수출한 티셔츠를 미국에서는 2만 3000원에 사 입는 꼴입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입니다.

당장 시장이 반응했습니다. ‘추가 관세 100퍼센트’ 발언 이후 S&P500지수와 나스닥 지수가 각각 4퍼센트와 3퍼센트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돈으로 치면 약 2조 달러입니다. 코인 쪽도 출렁였습니다. 비트코인은 주말 사이 6퍼센트 이상 급락했습니다. 이더리움은 8퍼센트 이상 주저앉았고요.

그런데 시장에서 좀 이상한 거래가 감지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전, 대량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공매도가 발생한 겁니다. 쉽게 말하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데에 돈을 건 겁니다. 투자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명의 거래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 사람이 챙긴 수익은 최대 2억 달러에 달합니다. 알고 했다면 사상 최대의 내부자 거래입니다.

해프닝입니다. 누군가 부정하게 큰돈을 벌었다 해도, 등락이 너무 심해 ‘도박’에 비유되는 코인 판에서 생긴 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코인은 단순한 투기 대상이 아닙니다. 스테이블 코인부터 차례로 암호화폐는 통화 시장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주도해 관련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코인 판을 교란하는 행위는 미래의 통화 시장을 담보로 한 진짜 도박일 수도 있습니다.

백악관 주식회사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장은 안정세를 찾았습니다. 중국이 강경 대응을 시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선 겁니다. ‘미국은 중국을 해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내부자 거래에 대한 의심은 남았습니다. 코인 시장의 각종 의혹을 파헤쳐 온 암호화폐 전문가 ‘coffeezilla’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100퍼센트 발언 1분 전까지 공매도 주문이 마무리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수상하긴 수상합니다.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근거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가족들에게는 전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2025년 1월 $TRUMP 밈 코인을 출시했습니다. 최소 3억 5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후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도 $Melania라는 밈 코인을 출시했습니다. 약 1억 달러를 벌었다는 추측이 나왔죠. 트럼프 가족과 연계된 한 암호화폐 기업도 $WLFI라는 코인을 발행해 50억 달러 이상 재산을 불린 것으로 알려졌고요.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당시와는 달리 암호화폐 친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 정책이 미국 경제의 미래에 득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트럼프 일가에게는 확실한 득이 되고 있죠. 이해 충돌입니다. 전통적인 정치인이라면 충분히 구설에 휘말릴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결이 다른 대통령입니다. 정치인 출신도 아니고, 청렴한 공직자의 탈을 쓴 적도 없습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미국을 살릴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표를 던졌습니다.

트럼프는 그 믿음에 관한 결과만 내면 됩니다. 즉, 지지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 호황을 미국에 가져오는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지상 과제입니다. 암호화폐는 그런 면에서 긍정적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사다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향한 강경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앗아갔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곰곰이 뜯어보면, 근본적인 방법론이 ‘약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을 주로 약탈했습니다. 식민지 정복과 수탈입니다. 트럼프의 약탈은 시간상으로 떨어진 세대를 겨눕니다. 현재의 유권자들이 눈치채기도, 반대하기도 어려운 방식입니다.

그 크고 아름다운 법안의 실체

아마도 ‘크고 아름다운 법(One Big Beautiful Bill Act)’은 트럼프 2기를 상징하는 정책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그리고 미래의 역사가들에게 이 법은 재앙의 시작으로 평가받을 확률이 꽤 높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법에 담긴 안티 오바마, 안티 바이든 성격의 내용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회복지, 기후 관련 지출 삭감이나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한 미국식 의료보장 제도인 ‘메디케어’ 예산 삭감 등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법의 골자는 ‘감세’입니다. 이민자 정책, 관세 정책처럼 ‘미국인’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의 일환이죠. 대신 부족한 세수는 미국에 물건을 수출하는 국가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여 메꾸겠다는 큰 그림의 일부입니다.

세금 깎아 준다는데 싫다고 할 납세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이건 감세가 아니라 빚잔치입니다. 주로 소득세에서 세금을 깎아 주는데, 팁이나 초과 근무 수당 등에도 감세가 적용되지만,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은 고소득자들입니다. 소득이 높을수록 소득세 감면 혜택을 더 많이 받습니다.

소득세 감면 문제는 계층 간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세대 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일생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게 되는 연령은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40대 이후입니다. 신입사원보다는 부장님 월급이 보통 더 많으니까요. 즉, 소득이 낮은 청년층은 이 법안이 내세우는 소득세 감면 혜택에서 소외됩니다. 대신 깎아 준 세금은 나라의 빚으로 돌아옵니다. 국채입니다. 미국 장기 국채는 주로 10년물, 30년물입니다. 즉, 빚을 내면 낼수록 10년 후, 30년 후의 미국 납세자들의 부를 끌어와 현재에 풀어 놓는 꼴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법안으로 인해 국가 부채가 3조 달러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원금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자도 생각해야 합니다. 눈덩이처럼 이자가 불어날수록, 미국 정부는 추가로 빚을 지기 어려워집니다. 미국 정부의 신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국채 금리가 더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시중 금리도 오릅니다. 2025년 태어난 신생아가 30년 후 직장을 잡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을 때 듣게 될 이자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 비용 청구서

비슷한 일을 꽤 많은 국가에서 겪고 있습니다. 사실상 국채를 발행해 현재의 복지를 메우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30년 후의 세대에게서 부를 빌려다 현재에 풀어놓고 있는 셈입니다. 그 갈등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곪아 터지고 있죠. 물론, 국가별로 사정이 있을 겁니다. 또, 각국 정부는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는 방법을 제각기 고심하고 있겠고요. 예를 들면 지금 통화 정책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이걸 미래 산업 육성에 투자하는 식입니다. 트럼프는 제조업 부흥과 AI에 걸고 있죠. 물론, 재원 마련 방법을 관세 협상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 몹시 불편하긴 합니다.

그런데 빼도 박도 못할 미래 세대로부터의 약탈은 또 있습니다. 한 번 뺏어 오면 되돌려 주기도 어려운 부입니다. 바로 기후 비용입니다. 트럼프는 의도적으로 기후 위기를 외면합니다. 그래야 지금 당장 화석 연료를 사용해 제조업도 살리고 전기도 생산해 AI도 키울 수 있습니다. 화석 연료 추가 개발에도 찬성합니다. 유가가 떨어지면, 관세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효과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우리가 쌓아 올린 부를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한 개인이 지어놓은 집이나 공장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인류적인 이야기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는 그 규모를 숫자로 계산해 냈습니다. 현재의 기후 변화 추세에 제동을 걸지 못하면, 2100년에는 전 세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15년 대비 4분의 1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전 세계가 4분의 1만큼 가난해진다는 얘깁니다. 연구진은 19세기 말에 비해 2010년 지구 기온이 약 4.4도 상승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했습니다.

지구가 더 더워지면 식량이 부족해집니다. 에어컨이 없는 실외에서의 작업 효율도 떨어지겠죠. 홍수와 폭풍, 산불이 자주 덮쳐오니 도로나 철도, 주택 단지 등 인프라 건설 비용이 증가합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이미 지어 둔 인프라 일부는 파괴되고요. 이 밖에도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변화들이 서서히 발생할 겁니다. 20년 전의 여름은 에어컨 없이도 살만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기후를 이겨 내려면 돈이 듭니다. 기후는 재난이 되어 매년 당연하게 인간을 위협합니다. 20년 후는, 75년 후는 더 다를 겁니다. 미래가 더 낡고 가난해질 것을 알면서도 기후 위기를 외면하는 정책은 기후 비용 청구서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일이 됩니다. 트럼프가 앞장서고 있고요.

불확실성 시대, 시민의 시야

트럼프는 미래의 통화 시장의 중심이 될지도 모르는 암호화폐 시장을 쥐락펴락하며 부를 축적합니다. 과감한 감세 정책을 펼치면서 미래의 부를 당겨 사용하죠. 얼마나 쌓이게 될지도 모를 기후 재난 청구서에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미뤄 둔 채 외면합니다. 그럼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수의 유권자는 왜 그의 행보에 찬성하는 것일까요.

암호화폐가 통화 시장에 공식적으로 편입되는 일도, 지금 찍어내고 있는 30년 만기 국채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도, 기후 재난으로 모두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가난해지는 불행도 모두 미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간 할인(time discounting) 효과입니다. 정책의 혜택이 미래로 멀어질수록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따라서 당장의 감세 정책은 환영하면서 기후 대응 투자나 부채 축소 같은 장기적 이익에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겁니다.

늘 그런 건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불신이 클수록 시민들이 장기적인 정책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집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깁니다. 오늘의 약속도 믿기 힘든데, 10년 후나 30년 후의 약속을 어떻게 믿나요. 그러니 정치인은 단기적 혜택을 내세웁니다. 지금 당장 세금을 깎아 준다는 약속은 곧바로 그 결과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믿지 않는 유권자는 지금 세금이 깎이고, 지금 일자리가 생기고, 지금 내 집값이 오르는 선택을 합니다.

지금 당장의 보상을 약속하는 리더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유권자는 미래를 담보 삼아 현재를 선택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고된 불행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잘못된 선택은 더 늘어날 겁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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