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언젠가 환자가 됩니다.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살면서 한 번은 병상에 누워 전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되죠. 사고나 큰 질환을 만나지 않더라도 대부분 그렇게 됩니다. 노화 때문입니다. 현대 의학은 우리를 더 오래 살도록 허락했지만, 늘어난 여생의 활력 여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지금과는 가족 구성도, 삶의 방식도 달랐던 예전에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그 돌봄의 영역을 책임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환자를 돌보는 일, ‘간병’의 무게는 그 누구도 온전히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무게는 한 가족의 경제적 기반을 흔들기도 하고, 결속을 무너트리기도 합니다. 급기야는 ‘간병 살인’이나 ‘간병 파산’과 같이, 법의 영역으로까지 염증이 번져 곪아 터지기도 합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모든 주요 후보자가 간병비 관련 공약을 내놓았던 이유입니다. 정치권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당시 이재명 후보도 간병비를 건강 보험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공약 이행이 시작됩니다. 일단 보건복지부가 대략적인
정책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2026년 하반기부터 요양병원 간병비 본인 부담을 현재 100퍼센트에서 30퍼센트 내외로 낮추겠다는 겁니다. 간병을 개인의 영역에서 사회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첫발입니다. 이제 시작이지만, 논의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간병이 잔인해지면
노화에 따른 간병 수요는 ‘효도’라는 이름으로 처리됐습니다. 예순만 넘겨도 장수를 축하하며 마을 잔치를 열던 세상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효도는 특별한 일이었고, 길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말입니다. 게다가 경제 활동에서 소외된 여성이 간병과 같은 돌봄 노동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걸 ‘자연스럽다’라고 느끼기도 했죠. ‘효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더라도, 사회적 윤리를 거스르며 변화를 주장할 목소리가 실질적인 돌봄 제공자에게는 없었습니다.
시대는 달려 21세기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윤리적 관성은 아직 농경 중심의 대가족 사회에 머물러 있죠. 우리는 간병이 개인에게 주어진 관계적 의무라는 생각에 너무 오래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그런 개인적 선택과 희생에 기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증거는 불행한 사건이 되어 나타납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강도영(가명) 씨
사건입니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강 씨는 제대로 된 경제 활동도, 사회 활동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극심한 빈곤이 덮쳤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강 씨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를 테니 그전에는 아버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강 씨는 ‘간병 살해자’가 되었습니다. 4년 형을 선고받은 뒤 복역하다 지난 2024년 가석방되었습니다.
강 씨의 아버지처럼 뇌출혈로 쓰러지면 ‘급성기 환자’로 분류됩니다. 종합병원 이상의 상급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습니다. 어느 정도 치료를 받고 나면 회복기나 만성기 환자가 됩니다. 요양하며 관리하면 나을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한 경우엔 회복기, 앞으로의 회복은 불투명하지만, 더 치료한다고 나아질 수도 없는 경우가 만성기입니다. 이런 환자들은 요양 병원이나 요양원과 같은 요양 시설에서 치료 및 돌봄을 받습니다.
일반적인 병원에서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간병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겁니다. 단, 이걸 제공하는 병원은 많지 않습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통합 서비스는 정말 운이 좋아야 받을 수 있죠. 요양원의 경우 장기 요양 급여 대상자라면 간병비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장기 요양 등급 2등급 이상을 받아야 요양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요양 병원으로 향합니다. 여기서는 간병비를 환자가 100퍼센트 부담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간병비는 하루
10만 원 전후입니다. 거동의 불편이 클수록, 체격이 큰 남성 환자일 수록 간병비는 더 비싸다고 합니다. 간병인이 환자를 안아 올리고 부축하는 등의 간병 활동이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10만 원으로 가정했을 때 환자 한 명에 매달 300만 원의 간병비가 든다는 계산입니다. 병원비는 별도입니다. 대부분의 가계에는 치명적인 부담입니다. 그리고 이 지출은 꽤 오래 지속됩니다. 2018년 기준으로 사망 전 요양 병원 재원 기간은
평균 460일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임종을 맞이하는 곳
노화로 거동이 불편해지고 치매 등 인지 장애까지 오게 되면 간병이 필요해집니다. 처음에는
낙상이나 교통사고 등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만, 수술 및 입원 생활은 건강한 청년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다친 곳은 나을지언정 몸은 더 쇠약해집니다. 노령층도 마찬가지입니다. 골절은 낫지만, 몸이 눈에 띄게 더 쇠약해집니다. 뇌졸중,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이 나타나거나 악화합니다. 결국 돌봄이 필요해지고 요양 병원 입원까지 이르게 됩니다.
정부는 이 마지막 단계에서 환자와 가족이 짊어지게 되는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습니다. 2030년까지 요양 병원 500곳을 선정해 8만여 명의 간병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겁니다. 선정을 위해 요양 병원은 6인실에서 8인실까지의 다인실을 4인실로 바꿔야 합니다. 간병인 인력도 늘려 1인당 환자 4명을 돌보도록 합니다. 하지만 요양 병원이 마냥 환영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1300여 곳의 요양 병원이 있습니다.
선정되지 못한 곳은 대책이 없습니다. 게다가 8인실을 4인실로 바꾸려면 공간이 더 필요합니다.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돈이 들 것이고, 그만큼 수익을 뽑아내야 합니다. 간병인 이외의 부분에서 어떻게든 아껴야겠죠. 환자와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병비 부담이 너무 심하니, 암암리에 환자 여러 명을 동시에 간병하는 ‘공동 간병인’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7~8명의 환자를 한 명의 간병인이 돌보니 돌봄의 질은 낮습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에겐 궁여지책이 되어 줍니다. 그런데 새로운 제도하에서는 기준을 지켜야 할 테니, 결과적으로 들어가는 돈은 똑같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이 정책이 진작에 시행되었다면, 강도영 씨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요양 병원에 모실 경제적 능력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6년 《한겨레 21》의 취재에 응한 노 아무개 씨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매달 병원비 100만~150만 원이 들고, 여기에 간병비가 추가됩니다. 강 씨의 아버지도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동할 수 없게 되었죠. 강 씨와 아버지는 병원비도 부담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방 안에 스스로를 가뒀습니다. 2006년부터 2023년까지 ‘간병 살인’으로 집계된 사건은 228건이었습니다. 가족 간의 일이니, 숫자가 담지 못한 불행은 분명 더 있겠지요.
그 돈은 어디에 있나
게다가 우리 사회는 아직 준비가 부족합니다. 돈을 준비 못 했습니다. 건강 보험 재정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허약합니다. 올해 적자 전환 예정입니다. 재정에 구멍이 뚫린다는 얘깁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준비금’이라는 것을 모아 뒀습니다. 이 준비금은 2028년 바닥납니다. 어디까지나 현재 상황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가정하에서 그렇습니다. 간병비 급여화가 시작되면 건강 보험 재정은 더 빠르게 소진될 겁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업으로 2030년까지 6조 5000억 원이 추가로 지출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결국 보험료를 올리거나 세금을 더 걷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도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부족한 간병인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막막합니다. 현재 간병인의 상당수가 중국 국적으로 파악됩니다. 주로 옌볜 출신의 조선족입니다. 간병비 급여화를 추진하려면 필요한 교육을 이수한 자격 있는 간병인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2024년 외국인 돌봄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한편, 이들에 대한 최저 임금 차등 적용을
제안했습니다. 개별 가구가 돌봄 노동자와 직접 사적 계약을 맺는 방식을 취하면 현행법상 최저 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겁니다. 당장 노동계에서는 반발이 나왔습니다. 노동 인권의 사각 지대를 만들 수 있으며, 돌봄 서비스의 질을 떨어트릴 뿐이라는 겁니다.
물론 정부도 무작정 일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무엇보다 현재의 요양 병원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 자체에 변화를 도입하면서 간병비 급여화를 병행하게 됩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변화의 이름은 ‘지역 사회 통합 돌봄’입니다. 2026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 같은 시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던 지역에서 일상생활, 의료, 요양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받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잘 된다면, 환자도 행복하고 의료 시스템의 부담도 줄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게 구체적으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재가 요양 서비스, 재활 운동 지도, 기능 회복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방문 진료 등 재택 재활 서비스도 진행한다는데 이런 그림이 가능해지려면 역시 사람이 필요하고 돈이 듭니다. 뚝딱 될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통합 돌봄의 주체는 지방 정부입니다. 내년 3월부터 시행하려면 6개월도 남지 않은 지금부터 관련 내용을 홍보하고 안내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소식을 들은 분이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안내할 만큼
준비가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지방 정부는 돈도 사람도 중앙 정부보다 더 부족합니다. 지역 간 격차도 큽니다. 통합 돌봄 시행 날짜는 다가오는데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유입니다.
병원 밖을 보면
결국 우리는 간병 대란을 마주하고도 요양 병원 중심의 시스템을 벗어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간병비 급여화는 현재의 시스템이 붕괴하는 시점을 약간 미루는 정도의 미봉책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완벽한 해결책이 지금 당장 뚝딱 나올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모든 환자와 고령자, 그 가족의 고통이 멈췄겠지요.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아야 합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중위연령은
46세입니다. 전체 인구를 나이순으로 줄 세워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을 찍으면 46살이라는 얘깁니다. 2049년에는 55세, 2072년에는 65세에 이를 전망이고요. 지금처럼 노화의 부담 대부분을 각 가정과 의료 시스템에 지울 수만은 없습니다. 적자로 돌아서는 건강 보험 재정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국토교통부가 나설 수는 없을까요? 고령자 교통사고와 낙상 사고 등을 최대한 예방하는 겁니다. 겨울철 빙판길 미끄럼 사고를 막기 위해 골목마다 열선을 깔고, 스쿨존에 해당하는 고령자 보호 구역을 지정하는 겁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이용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계단을 최소화하거나 낮추는 방안도 있겠지요. 문화체육관광부도 할 일이 있습니다. 노쇠의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도록
고령자 체육 활동을 지원하는 겁니다. 청년층도 근력 운동을 부상 없이 배우기 위해 개인 지도를 받거나 시설을 이용합니다. 고령층에게 지원을 늘릴 수는 없을까요? 국가 대표 선수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어르신 근력 교실을 짓는 일의 중요성이 올림픽 금메달보다 작지는 않을 겁니다.
보건복지부는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고령자를 위한 의료에 관한 사회적 논의도 일으킬 필요가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노쇠한 고령자가 동네 의원을 꼬박꼬박 방문해 3분 진료를 받고, 복용 약만 나날이 늘어가는 행태가 건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의료 재정에 부담은 늘어가는데 환자와 가족의 삶이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연명 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에 관을 삽입하고 독한 약을 계속 맞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 다행히 회복해도 몸과 의식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집니다. 그런데 죄책감에 가족들은 어떻게든 생물학적 수명을 연장해 달라고 합니다. 가족도 최선을 다했지만, 중환자실에서 퇴원한 후 요양 병원으로 옮겨진 환자의 삶은 결국 이상적인 노년과는 멀어집니다.
간병을 사회의 부담으로 끌고 나온 정부의 정책은 반갑습니다. 하지만 이건 계기일 뿐입니다. 논의하고 바꾸고 새로 짜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이 빠르게 늙어가는 만큼 데드라인이 촉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