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절벽
다카이치는 일본 정계의 유리 천장을 깼습니다. 그러나 유리 천장을 깨고 올라간 자리에서 마주한 것은 유리 절벽(glass cliff)입니다. 남성 리더가 이끌던 조직에서 심각한 문제가 터졌을 때, 여성이나 소수자를 리더로 파격 발탁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제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유타주립대 연구팀이 포천 500대 기업 CEO 데이터를 장기간 추적 조사한 결과, 경영 성과가 악화된 시점에 여성이나 소수자 리더가 임명될 가능성이 높았고, 이들의 재임 기간은 백인 남성 리더보다 평균적으로 더
짧았습니다. 물려받은 탄탄한 기반이 없으니 성공 확률도 낮을 수밖에 없겠죠. 여성 리더의 실패 후 후임은 다시 백인 남성에게 돌아가는 ‘구세주 효과’가 관측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누가 와도 소생시키기 어려운 ‘독배’ 같은 자리가 되어야 여성과 소수자에게 비로소 기회가 주어지는 겁니다. 테레사 메이 전 영국 총리가 대표적입니다. 메이는 브렉시트 국민 투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데이비드 캐머런의 뒤를 이어 집권했습니다. 극심한 혼란기에 취임해 3년간 우왕좌왕하다 물러났습니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보리스 존슨의 ‘파티 게이트’ 이후 취임해 49일 만에 사퇴했습니다.
다카이치의 부상 역시 자민당의 위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고, 지난해와 올해 치러진 선거에서 자민당은 잇따라 패배했습니다. 자민당 중심의 연립 여당이 양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것은 창당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당의 수명이 다했다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연이은 참패로 지도부 교체 요구가 커지자,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취임 1년도 채 안 돼 지난 9월 7일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온건파였던 이시바의 뒤를 이을 차기 총리 경쟁이 시작되자, 당심은 ‘강경 보수 여성’ 다카이치 사나에에게 쏠렸습니다. 궁지에 몰린 자민당이 쇄신 이미지를 내세우면서도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해 선택한 ‘이중 효과 카드’였던 셈입니다.
다카이치의 딜레마
보수 일색의 자민당에서 한 여성 정치인이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의제에서 멀어진 것’이었습니다. 다카이치는 여성의 권익 신장보다는 극우 민족주의와 가부장주의 수호에 철저히 복무해, 남성 중심의 정치 질서 속으로 편입될 수 있었습니다.
다카이치는 자민당 내 강경 우익 세력의 후원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해 헌법 개정, 군비 증강, 역사 수정주의 옹호 등을 앞장서 주장해 왔습니다. 보수적 남성 의원들보다 더 보수적인 충성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우익 세력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앞서 짤막하게 소개한 일본 민법상 부부 동성(同姓) 조항에 대한 입장입니다. 일본은 법적으로 부부가 결혼하면 반드시 같은 성씨를 사용해야 하는데, 결혼한 여성의 95퍼센트 이상이 남편의 성을 따릅니다. 이로 인해 직장에서 쌓아 온 이름의 신뢰가 단절되고, 사회적 정체성 상실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이 제도가 전근대적이고 차별적이라며 일본 정부에 법 개정을
권고했습니다. 일본 국민의 70퍼센트도 부부 별성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부부가 다른 성을 쓰면 가족의 결속이 약해진다”며 현행 제도의 유지를 주장합니다. 정작 다카이치 본인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을 유지하고 습니다. 남편이 성을 바꿨죠. 자신이 누린 권리를 다른 여성들에게는 허락하지 않은 셈입니다.
다카이치는 기혼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 박탈이라는 문제를 외면한 채, 전통적 가족 제도를 옹호하는 보수 진영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했습니다. 성 소수자 권리 확대에도 폐쇄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일본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 논의가 일자, 전통 가족 질서가 훼손될 수 있다며 반대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쟁점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죠.
요약하자면, 다카이치의 정치 의제에서 실질적 성평등을 진전시킬 만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기존 보수 세력이 불편해하는 변화를 저지하는 데, 여성 리더로서의 상징성과 권위를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백래시(backlash)
다카이치는 위안부와 강제 징용 문제에서도 일본 우익의 대변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이 전 세계를 향해 부정확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며 “일본의 역사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도 꾸준히 참배하고 있고요.
이러한 극우적 가치의 고수는 단순한 개인적 성향이라기보다, 자민당 내에서 다카이치의 정치적 신뢰와 권력 기반을 지탱하는 타협할 수 없는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파벌이나 조직적 기반 없이 집권한 만큼, 그는 자민당 우익 세력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카이치는 여성의 권익 신장을 목표로 하는 의제와는 거리를 두고, 보수 진영의 지지층 결집에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이 주는 진보적 이미지와 달리, 실제 정책 노선은 반(反)페미니즘에 가까운 보수 회귀로 귀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성 총리의 등장을 이유로 “이만하면 양성평등 정책은 충분하다”는 식의 논리가 보수 세력 내에서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다카이치 사나에의 등장은 표면적 대표성의 확보와 실질적 정책 변화 사이의 깊은 간극을 드러냅니다. 여성 정치인 한 명이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여성 일반의 지위가 자동으로 향상되지는 않습니다. 특히 다카이치처럼 전통적 성 역할에 도전하기를 주저하는 인물이라면, 간극은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자민당 총재가 일본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소수 야당과의 연정이 불가피합니다. 연정 파트너가 누구냐에 따라 다카이치의 강경 노선에도 일정한 제약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 아베 정부 시절, 중도 성향의 공명당은 자민당의 우경화 정책에 제동을 건 바 있습니다. 그러나 10월 16일 오후 5시 현재, 자민당이 연정을 협상 중인 상대는 일본유신회입니다. 공명당보다 오른쪽에 있는 정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