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내 세상
음반사나 기획사가 음악을 제작할 때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스타 탄생, 차트 1위 같은 트로피일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음악은 3분에서 5분 사이의 길이로 만들어졌습니다. 방송국에서 틀기에 딱 적당한 길이 말이죠. 음악이 너무 길면 한 곡을 다 틀기 어렵습니다. 공개 방송이라면 짧게 편곡이라고 해 오라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음악을 잘라야 합니다. 그러면 시청자, 청취자에게 아쉬움이 남거나 불만이 생깁니다.
방송국이 음악 산업에서 절대 권력을 잃어 가고 있는 요즘은 또 달라졌습니다. 1990년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음악들의 평균 길이는 4분 22초였습니다. 2024년에는 3분 34초로
약 18퍼센트 감소했죠. 기술 때문입니다. 스포티파이 기준으로, 아티스트는 청취자가 30초 청취하면 수익을 얻습니다. 노래를 몇 곡 들었는지를 기준으로 수익 정산이 되기 때문에 러닝 타임이 짧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방송국에서 틀기에 적당한 길이가 3분에서 5분 사이라는 얘기도 엄밀히 따지자면 선후 관계가 바뀐 것입니다. 음반 산업 초창기에는 바이닐 레코드 한 장 한 면에 3분에서 5분 분량의 음악만 담을 수 있었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은 이런 음악을 계속 틀면서 그에 맞게 구성이나 편성의 틀이 잡혔고요. 대중음악의 길이를 결정한 것은 기술이었습니다.
동아기획은 기술이 정한 표준을 그리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80년대의 대표적인 히트곡들이 대부분 4분 미만의 길이였던 것에 반해, 동아기획에서는 꽤 긴 곡을 많이 내놓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들국화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 시인과 촌장의 〈비둘기 안녕〉, 봄여름가을겨울의 〈못다 한 내 마음을...〉 등 6분을 넘기는 곡이 꽤 있었습니다. 가창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해 곡의 주제를 강조하거나 즉흥 연주, 리듬 섹션을 더하는 시도 등 때문이었다는 설명입니다. 곡의 길이를 음악의 목적에 맞춘 겁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시도는 음악을 ‘소유’하는 시대에 맞춰진 것이었습니다. 음반을 구입해 소유하는 시대에는 6분짜리 음악이든, 3분짜리든 관계없었습니다. 청자가 만족하느냐의 문제였을 뿐이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내가 가진 경제적 자원을 쪼개 얼마나 많은 취향을 구입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만족스러운 취향을 찾아낼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음반 가게에서 몇 개의 앨범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그런 문법이 완전히 해체됩니다. 처음에는 몇몇 음원을 다운로드 받아 파일의 형태로 소유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모바일 혁명과 함께 저렴한 비용으로 거의 모든 음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죠. 이제 청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 자원입니다. 그리고 그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개 알고리즘에 선택을 맡기죠.
동아기획은 일종의 알고리즘이자 플레이리스트로 기능했습니다. 장필순을 좋아했으니 박학기도 좋을 것이라는 알고리즘, 빛과 소금을 들었으니 다음에는 김현철을 듣는 식의 플레이리스트입니다. 큐레이션의 권력이 방송국에 과점 되었던 시절, 마이너를 위한 큐레이션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이 끝났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기계의 큐레이션은 더 정확합니다. 나를 파악할 다양한 수단이 있으니, 나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만한 음악을 무한히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기계의 성능이 더 좋아진다면, 나의 취향에 상황이라는 변수를 더해 최적의 음악을 실시간으로 만들어 들려줄 수도 있겠습니다. 음악 감상에 실패가 사라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