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범죄와의 전쟁
2010년대 중국은 꽤 많이 변했습니다. 사회의 룰이 변했거든요. 시진핑 주석이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정책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새로운 중국을 만들기 위한 개혁이었지만, 동시에 시 주석 본인이 중국의 진정한 권력자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이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가 ‘호랑이 때려잡기’입니다. 부패한 고위 관료를 척결하자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시 주석의 정적들이 숙청되었습니다만, 중국 공무원들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것도 사실입니다. 여전히 중국은 ‘꽌시’의 나라지만, 2000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천지 차입니다.
다음은 ‘마약과의 전쟁’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물론, 홍콩과 마카오에 뿌리내렸던 범죄 조직들이 꽤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일부는 소탕되었고, 일부는 근거지를 해외로 옮겨야 했죠. 이때 세계 최대 범죄 조직으로 꼽혔던 삼합회(三合會)도 단속 대상이 되었습니다.
시진핑 집권 2기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것은 ‘
소흑제악(掃黑除惡)’입니다. 흑사회(黑社會)를 청소하고 악(惡)은 제거하자는 의미인데요, 여기사 흑사회란 범죄 세력 전체를 지칭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조폭’ 정도일 텐데, 조직폭력배보다도 훨씬 더 범위가 넓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방 정부 세력이나 공무원과 결탁하여 부조리한 이득을 취하는 세력부터 3인 이상 몰려다니며 지역 주민들에게 협박과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 모두 포함됩니다.
가까이에 있던 ‘주먹’의 힘을 약해지고 중앙 정부의 힘이 강해집니다.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패권이 작은 골목 안까지 미치기를 원했습니다. 범죄와 부패에 대한 단호한 정책 덕분에 중국 범죄 세력은 변화해야 했죠. 그래서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게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중에서도 최빈국으로 꼽히는 캄보디아와 미얀마가 주무대로 부상했습니다.
일대일로, 범죄가 흘러든 길
이들이 동남아 지역으로 흘러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때마침 물길이 그리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사실 캄보디아와 미얀마, 라오스는 물론이고 베트남과 태국까지 중국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콩강입니다. 강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등을 관통합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강에 생존을 기대어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가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업 또한 메콩강에 의지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메콩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면서 강 하류가 말라붙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항의하지 못합니다. 중국이 벌이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 때문입니다.
캄보디아나 미얀마, 라오스같이 경제 기반이 취약한 국가에서는 중국의 투자는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중국으로서도 캄보디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고요. 일명 ‘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s) 전략’ 노선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남부에서 출발해 말라카 해협을 지나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이어지는 항만, 기지 등 기반 시설 네트워크를 확보하겠다는 겁니다. 진주를 꿰듯 하나씩 말이죠.
실제로 돈과 사람이 중국으로부터 흘러들었습니다. 캄보디아의
중국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항구와 철도 등 기반 시설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시아누크빌항(Sihanoukville Port)이 눈에 띕니다. 시아누크빌은 캄보디아 제2의 도시입니다. 유일한 심해 항구이자 국제 상업 항만이기도 하고요. 중국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약 1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프라 말고도 지어 올린 것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카지노’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시아누크빌에는 중국 자본 기반의 카지노가 60곳 이상 확인되었습니다. 돈만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공사를 진행한 근로자, 자재 모두 대부분
중국에서 공수해 왔습니다. 그리고 돈도 사람도 캄보디아에 정착했습니다. 지금은 도시의 인구 3분의 1 정도가 중국인일 정도라고 합니다.
시진핑의 강력한 범죄 소탕 작전으로 공중에 떴던 중국 범죄 조직이 캄보디아로 흘러들어 온 경로가 바로 이것입니다. 특히 삼합회가 주요 세력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이들은 불법과 합법 경계에서 어엿한 사업체로 등록해 지역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습니다. 중국 정부의 투자를 등에 업고 들어와 현지 정부와 결탁하는 겁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카지노 업계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여행이 금지되었으니, 중국에서 캄보디아로 건너와 카지노를 찾을 수 없게 된 겁니다. 결국 이들은 피봇을 감행합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으로 시작해 범위를 넓혔습니다. 온라인 사기 범죄 쪽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