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범죄 도시가 생기기까지

bkjn review

과정만 놓고 보자면, 중국이 범죄를 수출한 겁니다.

캄보디아에 범죄 도시가 생기기까지

2025년 10월 20일

2023년 할리우드는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로 뜨거웠습니다. 팬데믹으로 닫혔던 극장 문이 열리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대작 두 편이었으니까요. 전 세계가 두 영화를 기다렸고, 결과 또한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선 달랐습니다. 2023년 중국을 휩쓴 영화는 따로 있었습니다. 시장의 특성상 2023년 중국 박스 오피스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중국 영화가 차지했거든요.

그중 눈에 띄는 한편이 있습니다. 3위를 차지한 〈NO MORE BETS〉입니다. 가상의 동남아시아 국가를 배경으로 온라인 사기 범죄 조직의 실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문제로 떠오른 캄보디아 범죄 단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내용입니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범죄 단지로 온 인물들은 협박과 폭력 속에서 자연스럽게 범죄에 물들어 갑니다. 돈을 벌지 못하거나 반항하면 무자비하게 고문당합니다. 이들의 범죄에 당한 피해자들이 다시 범죄 단지에 유입되어 새로운 가해자가 됩니다.

대체로 평가는 좋았습니다. 만듦새가 꽤 괜찮다는 겁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건전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감상평이 많습니다. 관객들이 정확히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일종의 ‘캠페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실제 피해자들의 증언, 극 중 ‘완벽한 공권력’으로 묘사되는 중국 공안의 모습 등을 통해 관객은 영화가 픽션이 아닌 사실임을, 영화 속에 묘사된 납치와 감금, 폭력과 사기의 위험이 실재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파장은 꽤 컸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NO MORE BETS〉가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는 겁니다. 어딘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이 어디를 연상할지 잘 알았던 겁니다. 태국에서는 공포감 확산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타격을 받았습니다. 범죄가 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일어나는데, 태국이 괜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정서가 퍼졌습니다. 중국 공안부는 미얀마 경찰과 협력해 온라인 사기 범죄 조직 소탕 작전을 벌였습니다. 모두 2023년의 일입니다. 범죄와 연루된 중국인 5만 7000명 이상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은 우리보다 먼저 동남아시아의 범죄 조직에 경계의 날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 범죄의 뿌리가 중국으로부터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NO MORE BETS〉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 출처: TGV Cinemas
중국판 범죄와의 전쟁

2010년대 중국은 꽤 많이 변했습니다. 사회의 룰이 변했거든요. 시진핑 주석이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정책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새로운 중국을 만들기 위한 개혁이었지만, 동시에 시 주석 본인이 중국의 진정한 권력자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이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가 ‘호랑이 때려잡기’입니다. 부패한 고위 관료를 척결하자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시 주석의 정적들이 숙청되었습니다만, 중국 공무원들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것도 사실입니다. 여전히 중국은 ‘꽌시’의 나라지만, 2000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천지 차입니다.

다음은 ‘마약과의 전쟁’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물론, 홍콩과 마카오에 뿌리내렸던 범죄 조직들이 꽤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일부는 소탕되었고, 일부는 근거지를 해외로 옮겨야 했죠. 이때 세계 최대 범죄 조직으로 꼽혔던 삼합회(三合會)도 단속 대상이 되었습니다.

시진핑 집권 2기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것은 ‘소흑제악(掃黑除惡)’입니다. 흑사회(黑社會)를 청소하고 악(惡)은 제거하자는 의미인데요, 여기사 흑사회란 범죄 세력 전체를 지칭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조폭’ 정도일 텐데, 조직폭력배보다도 훨씬 더 범위가 넓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방 정부 세력이나 공무원과 결탁하여 부조리한 이득을 취하는 세력부터 3인 이상 몰려다니며 지역 주민들에게 협박과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 모두 포함됩니다.

가까이에 있던 ‘주먹’의 힘을 약해지고 중앙 정부의 힘이 강해집니다.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패권이 작은 골목 안까지 미치기를 원했습니다. 범죄와 부패에 대한 단호한 정책 덕분에 중국 범죄 세력은 변화해야 했죠. 그래서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게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중에서도 최빈국으로 꼽히는 캄보디아와 미얀마가 주무대로 부상했습니다.

일대일로, 범죄가 흘러든 길

이들이 동남아 지역으로 흘러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때마침 물길이 그리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사실 캄보디아와 미얀마, 라오스는 물론이고 베트남과 태국까지 중국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콩강입니다. 강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등을 관통합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강에 생존을 기대어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가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업 또한 메콩강에 의지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메콩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면서 강 하류가 말라붙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항의하지 못합니다. 중국이 벌이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 때문입니다.

캄보디아나 미얀마, 라오스같이 경제 기반이 취약한 국가에서는 중국의 투자는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중국으로서도 캄보디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고요. 일명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s) 전략’ 노선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남부에서 출발해 말라카 해협을 지나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이어지는 항만, 기지 등 기반 시설 네트워크를 확보하겠다는 겁니다. 진주를 꿰듯 하나씩 말이죠.

실제로 돈과 사람이 중국으로부터 흘러들었습니다. 캄보디아의 중국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항구와 철도 등 기반 시설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시아누크빌항(Sihanoukville Port)이 눈에 띕니다. 시아누크빌은 캄보디아 제2의 도시입니다. 유일한 심해 항구이자 국제 상업 항만이기도 하고요. 중국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약 1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프라 말고도 지어 올린 것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카지노’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시아누크빌에는 중국 자본 기반의 카지노가 60곳 이상 확인되었습니다. 돈만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공사를 진행한 근로자, 자재 모두 대부분 중국에서 공수해 왔습니다. 그리고 돈도 사람도 캄보디아에 정착했습니다. 지금은 도시의 인구 3분의 1 정도가 중국인일 정도라고 합니다.

시진핑의 강력한 범죄 소탕 작전으로 공중에 떴던 중국 범죄 조직이 캄보디아로 흘러들어 온 경로가 바로 이것입니다. 특히 삼합회가 주요 세력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이들은 불법과 합법 경계에서 어엿한 사업체로 등록해 지역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습니다. 중국 정부의 투자를 등에 업고 들어와 현지 정부와 결탁하는 겁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카지노 업계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여행이 금지되었으니, 중국에서 캄보디아로 건너와 카지노를 찾을 수 없게 된 겁니다. 결국 이들은 피봇을 감행합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으로 시작해 범위를 넓혔습니다. 온라인 사기 범죄 쪽으로 말이죠.
이들 중 일부는 암호 화폐와 결재 시스템 등 핀테크 분야로 진출해 자금 세탁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 출처: Bloomberg
마치 쓰레기를 수출하듯

팬데믹은 끝났지만, 범죄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납치와 감금, 강제 노동과 사기 피해자가 돌고 돌았습니다. 다만 한동안 주요 타깃은 중국이었습니다. 당연합니다. 감언이설로 속이고 뜯어내려면 말이 통해야겠지요. 그런데 중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에 대해서는 중국 공안이 직접 나서 수사를 벌이는 등 강경 대응이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워낙에 수익이 잘 나오다 보니 일본이나 한국 등 국제 범죄 조직들도 가담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도 캄보디아의 비극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엔 추산에 따르면 이러한 범죄 수익은 연간 125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입니다. 캄보디아 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국제 인권 단체 앰네스티는 이와 같은 범죄 조직의 활동에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가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적극적인 가담까지 확언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태국 등 주변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캄보디아를 향한 비난 여론이 높은 까닭입니다. 정부의 묵인하에 캄보디아가 범죄의 소굴이 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주변국은 물론 한국, 일본 등까지 납치와 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캄보디아 곳곳에 들어선 범죄 단지는 캄보디아인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중국이 시작했죠. 정확히는 중국으로부터 밀려난 범죄 조직이 건설했습니다. 과정만 놓고 보자면, 중국이 범죄를 수출한 겁니다. 중국의 투자를 원했던 캄보디아 권위주의 정권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규모를 더 키울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이 대거 피해를 당했다는 ‘프린스 그룹’의 천즈 회장은 캄보디아 총리의 자문 역할까지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유엔에서는 여러 차례 캄보디아 범죄 단지의 실상을 고발했습니다. 주변국을 중심으로 인신매매가 잦아지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그러나 세계는 그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문제가 커지고, 불법 자금으로 영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 세계 경제에도 영향이 미치고서야 각국이 움직이기 시작했죠.

역사적으로 강대국은 그렇지 않은 나라를 다양한 방법으로 수탈해 왔습니다. 정복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 불평등 조약을 맺기도 했죠.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전히 그런 시대입니다. 캄보디아는 중국 당국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범죄 세력을 떠안은 꼴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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