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프렌드가 내놓은 AI 펜던트가 장인 정신으로 가득 찬 물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실물을 만져 본 것은 아니지만, 디자인은 조니 아이브 시절의 애플을 연상시킵니다. 사용자의 대화를 듣고 도움을 주거나 공감하도록 설계되었지만, 마이크 성능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The Verge〉의
리뷰는 이 펜던트가 눈에 너무 띄고, 무엇보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심지어 이름을 불러도 못 알아듣는 때가 너무 많다고 하네요. 사용자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있는지,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지도 구분하지 못하고요.
《포춘》에는 이 펜던트가 ‘치매에 걸린 불안한 할머니’ 같다는
평가가 실렸습니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너무 늦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조용하면 조용해서, 시끄러우면 시끄러워 사용자가 ‘괜찮은지’ 걱정하고요. 확실히 친구라기보다는 보호자에 가까운 반응입니다. 아마도
초기 버전이 꽤 도발적이고 건방진 캐릭터였던 탓에 불만이 제기됐고, 그 피드백을 수용해 AI 모델의 캐릭터를 수정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음 모델이 등장하면
쉬프만은 이 펜던트를 총 3000개 제작했습니다. 2025년 10월 초 기준으로 1000개가 팔렸고요. 하지만 엄청난 반응 덕분인지 쉬프만은 이 결과를 실패라고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모델을 개선하고 수정하고 있으며, ‘최초’의 제품이 겪는 성장통이라고 설명하죠.
광고 포스터를 뒤덮은 낙서들을 생각하면, 기기의 성능이 아직 불완전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퓨 리서치가 내놓은 조사 결과는 아직 인류가 AI라는 비인간 존재에 마음을 열지 못했다는 점을 잘 보여 줍니다. 전 세계 25개국 성인 2만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AI에 대해 ‘우려’하는 감정이 ‘기대’하는 감정을 앞섰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50세 이상 장년층이 35세 미만 청년층보다 AI에 대한 우려가 더 컸습니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AI에 대한 경계심은 자연스럽게 낮아질 겁니다. 기술도 발전하겠죠. AI 업계에 뛰어든 영민한 인재는 쉬프만 혼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AGI 모델 개발에도 몰두하고 있지만, AI로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을 실질적인 방법을 궁리하고, 개발하고, 창업하고 있습니다.
쉬프만이 늘 함께할 수 있는 단짝 친구를 목걸이 안에 담아 팔겠다고 구상한 것처럼 말입니다. 프렌드의 AI 펜던트는 사실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느슨하고 부담없으면서 무한히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제공할 수는 있습니다. 펜던트가 사용자를 배신하고 일의 성과를 가로채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험담을 늘어놓지는 않을 테니까요.
마이크 성능 개선과 AI 모델의 튜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프렌드가 내놓을 다음 모델은 1000개가 아니라 1000억 개가 팔릴 수도 있습니다. 그 전에
오픈AI가 완전히 새로운 디바이스를 선보일지도 모르고요. 그런 시대에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같은 정부 부처에 관해 생각해 보죠. 앞으로 몇 년 뒤엔 KBS 9시 뉴스나 주말 드라마의 범죄 장면 같은 것보다는 AI 펜던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알고리즘과 정렬에 의해 작동하는지를 더 신경 써야 할 겁니다. 그게 가능할지는 미지수긴 하지만요.
프렌드 광고 포스터에 적힌 분노의 낙서들은 인간이 AI를 향해 외칠 수 있는 마지막 반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혁신의 상징이었던 YC의 방식은 이제 낡았다고, 혁신을 만들 수 없다고 비난받습니다. 22살의 청년이 뉴욕 지하철을 AI와 함께하는 미래에 관한 공론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직은 기술도 철학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는 생각보다 빠르게 완성되고 있죠. 이제 논의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제 곧 기술과 감정, 미디어와 관계가 뒤섞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