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특히 누군가를 해하려는 마음을 먹고 거짓말을 한다면 절대 안 되겠죠. 그런 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입니다. 악의적인 허위 보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합니다. ‘허위 조작 정보 근절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언론과 유튜버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면,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통과될 확률이 높습니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개혁 법안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명분도 충분합니다. 2024년 연말의 내란 사태 이후 가짜 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스카이데일리》라는 언론사가 ‘중국인이 한국 선거에 개입했다’는 식의
허위 사실을 보도했던 일이 있습니다. 근거 없는 거짓이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해당 언론사는
문을 닫았고요. 하지만 이 보도의 생명력은 끈질겼고, 계엄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대안적 진실이 되었습니다. 이 보도가 발생시키고 부추긴 사회적 갈등의 비용은 제대로 계산할 수도 없을 만큼 큽니다. 가짜 뉴스는 나쁩니다.
그럼에도, 이 법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언론 노조부터 시민 단체까지 나서 반대 뜻을 밝혔습니다.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막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말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죠. 다만, 이 법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구글이 만든 진실의 개미지옥
21세기를 정의할 발명품으로 ‘구글’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구글은 단순한 검색 엔진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정보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 구글의 진정한 미덕입니다. 그 범위가 생각보다 넓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세계적인 명화를 고해상도로 스캔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클릭 한 번으로 반 고흐의 강렬한 붓터치까지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구글은 학술 논문 전용 검색 엔진을 따로 운영하고 있어 누구든 전 세계의 논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글 스칼라’라는 서비스입니다.
멋진 일입니다. 세계 어디서나 최신 연구를 바로 접할 수 있습니다. 지역과 학제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구글 스칼라가 이상적이기만 한 시스템은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용 집중 현상입니다.
학문 연구는 사실에 근거한 논증 과정을 기본으로 합니다. 여기서 ‘사실’이란, 이미 엄정한 검증을 거쳐 과학적인 연구 결과로 인정받은 기존 연구를 말합니다. 기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연구가 신빙성을 얻는 식입니다. 그래서 논문을 작성할 때 ‘인용’이 중요합니다. 어떤 선행 연구를 가져와 내 연구의 바탕을 깔았는지 꼼꼼히 밝히는 겁니다. 이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표절’이 되겠지요.
자연스럽게 유명한 논문일수록 인용의 횟수가 많아집니다. 그런데 구글 스칼라가 등장하면서 더 적은 숫자의 논문들로 인용이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즉, 논문 인용에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논문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정작 예전보다 피인용 되는 논문의 숫자가
줄어들었습니다. 남들이 인용하는 논문을 나도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많이 인용된 논문일수록 더 정확하고 믿을 만한 논문으로 간주합니다. 믿을 만한 논문만 인용하면 내 연구도 학계에서 더 안전하게 인정받기 쉽죠. 그런데 부작용도 있습니다. 인용되는 논문의 폭이 좁아지면, 연구자들의 시야도 좁아집니다. 다양한 관점이 고려될 기회가 점점 작아지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한번 인정받은 연구 결과가 뒤집히기 힘듭니다. 그 연구를 인용하면서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뢰와 정합성이 갈수록 강화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언론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자들이 받아쓰는 이유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받아쓰기 보도’입니다. 받아쓸 소스는 다양합니다. 정부나 기업이 내놓은 보도자료일 수도 있고, 다른 언론사가 보도한 내용일 수도 있죠.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힙니다. 취재나 팩트 체크 없이, 그대로 받아쓴 내용이 기사로 나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렴하고 안전해서 그렇습니다. ‘보도자료’의 형태로 제공된 내용이나 정치인 등의 발언을 그대로 싣는 것은 추가 취재나 탐사 보도, 데이터 분석 등에 비해 시간과 인력이 적게 듭니다. 게다가 ‘정부가 발표했다’거나 ‘정치인 아무개가 이렇게 이야기했다’라는 단서가 달리기 때문에 오보의 책임 소재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받아쓰기 보도가 많아질수록 다양한 관점과 시각,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이 담긴 기사가 적어집니다. 한 달짜리 탐사 보도로 작성된 기사와 받아쓰기로 작성된 기사의 무게는 공정하게 측정되지 않습니다. 어떤 독자는 전자의 가치를 알아볼지 모르지만, 많은 경우 단편적인 헤드라인으로 압축되어 빠르게 소비됩니다. 그래서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야가 좁아집니다. 마치 소수의 논문만 반복해서 인용되는 학계가 겪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가짜 뉴스가 퍼지기 쉽습니다. 애당초 제공 받은 보도자료에 잘못된 내용이 섞여 들어가 있으면 이걸 걸러내고 검증해 보도하기 쉽지 않습니다. 받아쓰기 보도의 미덕 중 하나가 바로 신속성입니다. 엠바고가 풀리자마자 포털에 띄우고 소셜미디어에 링크가 올라가야 클릭 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경쟁 언론사보다 1초라도 빠르게 올려야 클릭 하나라도 더 붙잡습니다. 그러니 언론사가 담당해야 할 팩트 체크의 기능이 약화합니다.
정치인들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쓰는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팬데믹 기간, 그 누구도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의사들도, 과학자도 확실한 근거가 부족해 말을 아끼던 때였죠. 그런데 정치인들은 달랐습니다. 전염병이 국가적 위기로 확산하자 정파별로 기회와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년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코로나19 관련 허위 정보를 접한 경로로 정치인을 꼽은 비율이 40퍼센트가 넘습니다. 방역의 정쟁화가 낳은 결과입니다. 정치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뱉은 허위 정보를 열심히 퍼다 나른 것은 언론사입니다. 발언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고, 빠르게 받아써 기사로 올려야 클릭을 놓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위 조작 정보의 조작적 정의
다시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허위 조작 정보 근절법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정보 전달을 직업으로 삼는 주체를 ‘게재자’라는 개념으로 정의했습니다. 언론사뿐만 아니라 유튜버 등도 규제 대상으로 보겠다는 겁니다. 게재자가 악의적으로 허위 조작 정보를 보도할 경우 최대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이 가능합니다. 5000만 원 한도입니다. 반복적으로 허위 조작 정보를 유통했다면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도 부과됩니다.
그런데 ‘악의적’이라는 단어는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농담이나 장난도 악의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풍자는요? 그래서 ‘악의’라고 판단할 만한 요건을 정의해 놓았습니다. 그중 첫 번째가 ‘사실의 근거로 인용한 자료를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도 불구하고 제출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즉, 어디선가 근거를 인용해 올 수 있어야 악의가 아니라고 본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되면, 탐사 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이익을 두려워해 신원을 밝히기 꺼리는 취재원을 통해 입수한 정보로 기사를 쓰려면 징벌적 손해 배상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천이 오염되어 피해를 본 주민 기사를 쓸 때 하천 옆에 새로 들어선 대기업의 공장을 언급하며 의혹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악의적인지 판단하는 기준에는 ‘고의와 타인을 해할 의도가 있었음이 인정되는 경우’도 해당합니다. 언론사에 근무하는 사람 대다수는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상충하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면, 보도에서 비판받은 주체는 언중위에 일단 문제를 제기합니다.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때도 많습니다. 그들 모두 그 보도가 자신을 ‘해할 목적’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실 여부는 관계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언중위나 법정에 보도 내용을 문제 삼아 놓으면 이후에는 보도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추가 취재를 다닐 시간에 의견서를 작성하고 회의나 법정에 출석해야 합니다. 후속 기사를 썼다가 또 다른 꼬투리를 잡힐까 싶어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법이 통과되고 나면, 이런 위축의 정도는 더 심해질 겁니다. 게다가 지금은 소송에서 ‘해할 목적’이란 것을 판단하게 되는데, 허위 조작 정보 근절법이 통과되면 그 판단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나라 언론사 중에 5000만 원의 배상금과 10억 원의 과징금을 내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요? 방심위가 언론사의 생살여탈권을 쥐게 됩니다.
언론은 ‘말’입니다. 말은 의심하고 의혹을 제기하고 주장을 펼칩니다. 그중 어떤 말은 거짓입니다. 혹세무민합니다. 어떤 말은 합리적인 의혹입니다. 부패한 권력을 고발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논의를 일으킵니다. 어느 쪽인지 판단할 칼자루를 누가 쥐여야 할까요? 현재의 허위 조작 정보 근절법은 이 칼자루를 정부가 쥐도록 합니다.
개혁의 주체
결국 안전한 논문만을 계속해서 인용하게 된 학계처럼, 언론사들은 안전한 받아쓰기에 더욱 몰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법은 가짜 뉴스를 막겠지만, 고발하는 목소리도 막을 위험이 큽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스카이데일리》가 가짜 뉴스라는 것을 철저히 취재해 밝힐 또 다른 언론사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기사 속에서 허위와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건강한 독자들입니다. 설령 자신의 신념과 다른 주장이라 하더라도, 합당한 근거와 공들인 취재로 완성한 기사라면 눈길을 줄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가짜 뉴스를 일삼는 매체가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자연스럽게 세력을 잃어버리도록 말이죠.
그리고 정부가 정말 걱정해야 할 문제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뉴스를 비롯한 정보를 얻게 되는 통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생성형 AI와 AI 챗봇입니다.
오픈AI가 AI 브라우저를 출시했습니다. 아직은 윈도우 운영 체제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곧 윈도우 버전도 출시되겠지요. 우리가 정보를 얻는 방식이 급격하게 달라질 겁니다. 뉴스도 포함해서 말이죠. 이제 인간이 뉴스 헤드라인을 읽고 클릭하는 형태의 뉴스 선택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생성형 AI 모델이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해 뉴스를 대신 선택하고 요약해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 언론사 광고 수익을 지배했던 ‘클릭’의 멸종입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구글이 AI 검색을 도입하면서 언론사로 유입되던 트래픽이 최근 3년간 55퍼센트 감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챗GPT 사용률이 높은 우리나라에 오픈AI의 브라우저가 널리 보급된다면,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AI 챗봇에 언론사의 기사만을 검색해서 정보를 달라고 지시하지 않는 이상, AI 모델이 ‘알아서’ 답변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AI 기업들은 최근 정치적으로 편향되거나 선정적인 대화를 막는 ‘정렬’에서 힘을 빼는 분위기입니다. 지금 사용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영원히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조바심 때문입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진실이 아니라 이용자가 클릭할 만한 ‘대안적 진실’을 보여 주는 것처럼, AI 챗봇도 마찬가지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행법상으로 AI 챗봇이 보여 주는 가짜 뉴스는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챗GPT 사용 행위는 ‘개인 간 통신’에 해당하기 때문에 규제 기관이 들여다볼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용자는 개인이 맞긴 합니다. AI 챗봇은 개인일까요? 이걸 아직 정의하지 못했습니다. 정의하자는 움직임도 크게 없죠. 정책과 법이 기술에 뒤떨어지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지금 우리의 뉴스 생산과 소비는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향과 방법이 무엇이야 하는지는 뉴스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자와 수용자가 중심이 되어 정해야 합니다. 역대 모든 집권 여당은 언론 개혁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개혁하고자 한다면, 논의 테이블에 앉혀야 할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걱정해야 할 문제도 따로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