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을 들여 얻은 9가지 지혜
완결

90년을 들여 얻은 9가지 지혜

당연한 이야기를 곱씹어 보면, 혼란스러운 지금을 통과하기 위해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보인다.

Self-portrait as the Apostle Paul,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 출처: Rijksmuseum
아흔 살 무렵에 이르러 내 인생을 돌아보며, 나는 길을 잘못 들었던 몇몇 순간들을 후회하곤 한다. 상처받긴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꽤 행복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끈기나 결단력, 현명한 조언 덕분이 아니다. 대부분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저질렀던 여러 차례의 실수를 떠올려 보면, 그 결과는 불운에서 참담함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몇 가지 기본 원칙을 일찍 깨달았더라면 대부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인생에서 배운 그 몇 가지를 이렇게 기록하고자 한다. 혹시 다른 이들이 미리 알고 싶어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나,  자기 구성(self-constituted)의 중요성

하버드대 교수이기도 한 철학자 크리스틴 코스가드(Christine Korsgaard)는 저서 《Self-Constitution: Agency, Identity, and Integrity》(2009)에서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자기 구성(self-constitution)’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일관되고, 통합되며,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통합성(integrity)’에 관한 것이다.

코스가드는 “좋은 인간이 되려면 칸트가 말한 ‘보편적 법칙(universal law)’에 따라 행동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을 ‘덕이 있는 도덕적 틀(virtuous moral framework)’로 바꿔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 틀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일부 철학자들은 도덕적 규범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으며, 문화나 종교가 만들어낸 사고방식의 산물일 뿐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적 관점과 달리, ‘모든 인간은 자명한 진리로서 스스로 인식한다’라는 전제에 기반한 원칙들도 있다. 즉, ‘고통과 불행을 초래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악하며, 기쁨과 행복을 가져오거나 그 가능성이 있는 것은 선하다’라는 것이다.

분노, 증오, 질투, 시기, 불성실, 비열함, 복수심, 잔혹함, 원망, 절망은 악한 것이며,
기쁨, 명랑함, 친절함, 공정함, 연민, 정직함은 선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정립한 도덕적 틀이다.

나는 인생을 시간이라는 강 위를 떠다니는 뗏목에 비유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나는 장대를 짚으며 최선의 항로를 잡으려 애쓴다. 때로는 모래톱에 걸리기도 하고, 깜빡 잠들었다가 바람에 밀려 원치 않던 강둑 근처에 닿기도 한다. 어떻게든 다시 강 한가운데로 돌아오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날씨 속을 흘러가며 결국 바다에 다다른다.

그래서 나는 허클베리 핀의 도덕적 틀을 존경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뗏목 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두가 만족하고 서로에게 올바르고 친절한 마음을 갖는 거야.”

코스가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움직임은 스스로에 대한 헌법적 통제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충동에 지배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내 의식에 깊이 스며들었다. 만약 당신이 자기 구성적이지 않고, 통합되지 않았으며, 내적 통일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혼란스러운 삶에 빠지게 될 것이다.

반면, 당신이 스스로를 완벽히 자기 구성한 나르시시스트라면 어떨까? 돈과 권력, 지배욕을 끝없이 추구하면서도 일관성과 통합성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런 자는 나의 도덕적 틀, 허클베리 핀의 윤리관, 그리고 칸트나 코스가드의 보편적 법칙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선한 인간이 되려면 자기 구성된 인격 안에 반드시 도덕적 요소가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덕스럽게 자기 구성된’ 인간이 되면,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된다.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무의미한 충동에 굴하지 않게 된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 본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

둘,  깨어 있고 자각하는 법

깨어 있고 자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몽유병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버렸다. 그래서 그게 어떤 상태인지 잘 안다.

몽유병 환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행동이 자신과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길을 잘못 들고도, 운이 좋지 않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몽유병 상태가 반드시 지적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단력에는 예외 없이 영향을 미친다. 많은 권력자가 그러하다.

크리스토퍼 클라크(Christopher Clark)의 저서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2014)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왜 그가 ‘몽유병자들(Sleepwalkers)’이라는 제목을 택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1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주요 국가들에서는 권위적이고 명예심에 사로잡힌 지도자들이 현명하고 사려 깊은 이들의 의견을 누르고 국가 정책을 결정했다. 그 결과, 대륙 전체를 휩쓸 참혹한 재앙의 위험성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남지 않았다.

클라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예로 든다. 국가 지도자들은 대공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암살 이후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결정했지만,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추측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등장인물 샤를 스완(Charles Swann)은 이런 몽유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스완은 지적이고 세련되며 사교적이지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해야 할 순간이 오면, “그의 뇌 속 모든 빛을 꺼버리는, 선천적이고 주기적이며 신의 섭리 같은 정신적 무기력”이 그를 덮친다.

몽유병은 불편한 사실을 외면할 수 있는 너무나 손쉬운 대안이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어느 날 당신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잘못된 행동을 할 것이다. 혹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이 깨어났다면, 그런 행동이 명백한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깨어 있고 자각하며 살아가려면 ‘부처(buddha)’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이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존경받는 불교 승려 틱낫한(Thich Nhat Hanh)과 나 자신의 일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

틱낫한은 그의 저서 《삶의 지혜》(2017)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특별한 믿음이나 수행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완전히 현재에 머물고, 이해하며, 자비롭고, 사랑하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부처로 사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

셋,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려야 할 이유

나는 말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그것이 내게 어떤 이익이 될지를 먼저 생각하거나, 아예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며 살아왔다. 인생의 대부분을 그렇게 보냈다. 내 말이나 행동, 혹은 침묵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장면이 있다. 대학 시절, 나보다 한 세대 위의 한 남성과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나는 그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 순간 그의 보트와 관련해 재치 있는 말을 떠올렸고, 그 말을 하면 내가 매우 세련되어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다였다. 나는 곧바로 그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만약 단 몇 초만 더 생각했더라면, 그가 내 이야기를 거칠고 모욕적인 농담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 일은 지금 돌이켜봐도 부끄럽다. 다시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을 정도다. 7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그 일을 겪은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내가 대화하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공감하는 법,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를 인지해 내는 것 모두 내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는 이런 일들이 쓰레기처럼 흩어져 있다. 누군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고, 그 사람을 설득하려고, 나를 존중하게 만들려고 뱉었던 말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수많은 순간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그들이 나의 말과 행동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지를 미리 반추한 뒤에야 비로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넷, 행복을 ‘기본 상태’로 만드는 법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페이스북을 스크롤 했다. 그러다 보면 가끔 달라이 라마의 글귀가 눈에 들어오곤 했다. 어느 날,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났다.

“우리가 일상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지닌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배운 사람인지, 배우지 못한 사람인지, 부처를 믿는지, 신을 믿는지, 어떤 종교를 따르든 혹은 전혀 따르지 않든 상관없다. 타인을 연민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절제하며 산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구부정했던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단 몇 가지 단순한 원칙만으로 행복이 보장될 수 있을까? 명상법을 마스터하거나, 복잡한 종교적 수행을 하거나, 고대 경전을 탐독할 필요도 없이?’

물론 달라이 라마처럼 실용적이며 과학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다행히도 잔혹한 공격 같은 사건을 겪을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달라이 라마가 권한 대로 느끼고 행동한다면, 우리는 평상시에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기본적인 마음 상태가 행복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후, 나는 그의 또 다른 글을 읽게 되었다.

“우리가 받는 따뜻함과 애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타인에게 주는 따뜻함과 애정이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 또한 기본적인 마음 상태를 행복하게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다섯, 영원한 관점의 획득

나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17세기 철학자 베네딕트 스피노자(Benedict Spinoza)는 그러한 관점을 한층 더 멀리 확장한 인물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관점까지 확장했고, 더 나아가 ‘신(God)’ 혹은 ‘자연(Nature)’이라 불리는 우주 전체의 관점으로 나아갔다.

스피노자는 지식과 이해를 통해 자연의 질서 속에서 기쁨과 평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관점은 불교와도 닮아 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불교의 핵심 사상을 ‘집착 없는 연민(compassion without attachment)’이라고 정의한다. 살아 있으면서도, 또 행동하면서도, 행위의 결과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그것이 곧 삶을 온전히 껴안는 방식이다.

스피노자는 이처럼 삶과 세계를 넓게 포용하는 ‘영원한 관점’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 내린다.

“강인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으며,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분개하지 않으며, 누구도 경멸하지 않고, 조금도 자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욕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감정적으로 초연한 상태에서도 정말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성취에 들뜨지 않고 실패에 낙담하지 않는다면, 삶이 너무 무채색으로 바래버리지는 않을까? 평정심은 분명 고귀한 덕목이지만, 감정을 멀리하는 순간 삶의 생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피터 매티슨(Peter Matthiessen)의 책 《신의 산으로 떠난 여행》(1978)에는 매티슨이 동물학자 조지 샬러(George Schaller)와 함께 히말라야에서 은둔하는 설표(snow leopard)를 찾아 떠난 여정이 그려져 있다. 그들은 설표의 배설물 흔적은 발견했지만, 끝내 그 장엄한 동물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기지로 돌아온 그들에게 한 불교 승려가 물었다. “설표를 보았습니까?” 매티슨이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하자, 승려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못 봤다고요! 그것참 멋지군요.”

스님이 안타깝다고 답했다면, 불교의 정신에 어긋나는 태도였을 것이다. ‘멋지다’라는 단순한 위로나 미화가 아니었다.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이 담긴 말이었기 때문이다. 탐험 자체가 멋졌고, 그 여정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 또한 멋졌다. 살아 있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멋졌으며,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그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멋진 일이다.

일부 철학자들은 ‘영원한 관점’을 추구하는 일이 개인의 정당한 이익 추구와 충돌한다고 말한다.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은 《The View from Nowhere》(1986)에서 이 문제를 ‘균형의 기술’로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목표는 개인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관점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피노자라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영원한 관점은 충족된 삶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족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라고 말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평정과 기쁨을 얻는다.

여섯, 자기기만 경계

“확신은 결코 확실성의 증거가 아니다.”
— 올리버 웬델 홈즈 주니어 (Oliver Wendell Holmes, Jr.)

자기기만은 비뚤어진 믿음이나 불안정한 감정, 혹은 바람직한 결과를 믿고 싶은 욕망에 의해 우리의 판단과 결정이 은밀히 왜곡될 때 일어난다. 인간은 터무니없는 결론을 정당화한다. 너무나도 능숙하고 교묘하게 말이다. 가장 흔한 예가 확증 편향이다. 이미 믿고 있는 생각을 강화하는 정보에는 더 큰 신뢰와 무게를 두는 반면, 그 믿음을 흔드는 증거에는 눈을 감는다.

지적이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 해서 이 함정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뛰어난 논리력으로 자기기만을 정교하게 포장한다. 뛰어난 언변만큼이나 그들이 빠진 함정은 더 깊다.

영국 철학자 갈렌 스트로슨(Galen Strawson)은 《불면의 이유》(2018)에서 시대를 달리한 두 사상가의 통찰을 인용한다. 그들의 말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이렇게 썼다.

“인간의 마음은 일단 어떤 견해를 선호하게 되면, 다른 모든 것들을 그에 맞춰 끌어들이고 지지하려 든다. 만약 그것을 압도할 만한 반대 근거가 나타나더라도, 마음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경멸하거나, 혹은 교묘한 논리를 만들어내 거부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이미 견지한 입장을 지키려 한다.”

그리고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2024)은 말했다.

“사람들은 아무리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도, 그것을 믿는 공동체 속에 있을 때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유지할 수 있다.”

신경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에릭 캔델(Eric Kandel)은 The Disordered Mind (2018)에서 “모든 의식적 지각은 무의식적 과정에 의존한다”라고 썼다. 결국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자각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의 판단을 왜곡하도록 길을 닦는다. 그 길의 끝에는 자기기만이 있다.

일곱, 죽음을 마주하는 법

“매일 죽음과 추방을 눈앞에 두어라.”
— 에픽테토스 (Epictetus, 서기 135년경)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을 가장 적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 베네딕트 스피노자 (Benedict Spinoza, 1632–1677)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죽음에 관해 미리 숙고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었다. 죽음을 앞두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면, 삶의 어느 순간부터는 그 가능성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스토아 철학을 단련하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기치 못한 소식을 들어도 더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스토아주의는 고결한 태도이지만, 나는 스피노자의 관점에 더 끌린다. 그에게 평정과 자기 통제, 그리고 죽음에 대한 무심함은 지식과 이해를 통해 얻어지는 ‘영원한 관점’ 속에서 가능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종교가 주장하는 모든 초자연적 신념을 거부했고, 의인화된 신이나 사후 세계에서의 보상과 처벌 개념도 인정하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절제된 삶을 살았지만, 금욕주의자는 경멸했다. 그에게 교리와 신화에 기반한 종교들은 미신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현실적이었다. 자신의 집주인이 종교적 믿음에서 위안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신앙을 굳이 흔들지는 않았다.

스피노자의 저서 《윤리학》을 영어로 번역했던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은 한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영원한 관점’이 인간 안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나는 내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그날에도 빛날 햇살을 기뻐하려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적인 나를 넘어선 삶이 더 큰 강렬함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에겐 작은 인생이라는 다발을 넘어선, 훨씬 더 넓은 독립의 가능성이 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도 같은 생각을 전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관심의 범위를 점점 더 넓히고, 점차 더 비인격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아의 벽이 물러나면, 개인의 삶은 점점 보편적인 삶 속으로 녹아든다.”

러셀은 저서 《서양 철학사》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이 불안을 압도하는 비인격적 감정을 만들어냈다고 봤다. 러셀은 스피노자가 죽음이 가까워진 순간에도 언제나 평온했고, 건강할 때와 다름없이 타인에게 친절한 관심을 보였다고 적었다.

“나는 망각을 고대한다.”
— 캐서린 헵번 (Katharine Hepburn, 1907–2003)

그녀는 시대의 가장 활기차고 강인한 영혼 중 하나였다. 노년의 병약한 몸으로 더 이상 앞날이 없던 순간에도, 그녀의 말 속에는 여전히 두려움 없는 생의 용기가 있었다.

“나는 죽음이 내게 다가올 때, 양배추를 심고 있기를 바란다. 죽음도, 다 하지 못한 정원 일도 걱정하지 않은 채로.”
—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

이 위대한 수필가는 아마도 역사상 누구보다도 현명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여덟, 운의 역할

배우이자 극작가, 에세이스트인 월리스 숀(Wallace Shawn)은 그의 책 《Night Thoughts》에서 자신을 ‘운 좋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부유하고 교양 있으며 지적인 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특권을 당연하게 여긴다. 션은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는 ‘운이 좋은 사람’과 ‘운이 나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운이 좋은 사람은 스스로 팽창한다. 자신의 운이 허락한 공간을 채우려 든다.”

우리는 매우, 매우 운 좋은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초고층 빌딩의 꼭대기에 펜트하우스를 사고, 정치인을 후원하는 억만장자들 말이다. 그 대가로 정치인들은 세금 제도를 억만장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꾼다. 그들은 육중한 팔꿈치를 정치의 저울 위에 얹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선순환’ 구조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하지만 부의 사다리에서 그들보다 훨씬 아래에 있더라도 역사상 대부분의 인간보다 훨씬 운이 좋은 이들이 많다. 숀은 당신이 비교적 평화로운 삶을 살았고, 폭격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겪지 않았으며 두려움 속에서 살 필요가 없었고, 하루에 두세 끼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이뤘다면, 그것은 대부분 운 덕분이라고도 이야기한다. 당신의 인생이 평탄하게 진행되었던 것,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 당신을 도왔던 일 모두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운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좌우한다. 유전적 구성, 성장 환경, 성격을 빚어낸 사건과 영향들, 그리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우연한 일들까지.

그렇다면 결론은 이렇다. 당신이 운이 좋았다면, 그만큼 겸손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반대로 운이 나빴다면, 그만큼 자신을 연민하고, 부당함 앞에 꺾이지 않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

아홉, 지금 가진 것에 관한 사유

일반적인 원칙이 있다. 활동적이어야 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세상에 안주하지 말아야 하며, 등등. 그건 분명 옳은 태도다. 하지만 때로는 행동하기에 앞서 잠시 멈추어 생각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 순간이 없었기 때문에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그때 단 1초 만이라도 생각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셰익스피어의 희곡 《헛소동》 속 한 구절은 그 진리를 오래전부터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그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깨닫게 된다.
소유했던 그 시간에는 보이지 않던 미덕이, 잃어버린 뒤에야 드러난다.
다 그런 법이다.”

— 《헛소동》 中 수도사 프란시스 (Friar Francis)
© Edward Packard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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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k, Christopher.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Harp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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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del, Eric. The Disordered Mind: What Unusual Brains Tell Us About Ourselves. Farrar, Straus and Giroux, 2018.
Korsgaard, Christine M. Self-Constitution: Agency, Identity, and Integrity.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Matthiessen, Peter. The Snow Leopard. Viking Press,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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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ler, Steven. Think Least of Death: Spinoza on How to Live and How to Di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21.
Nagel, Thomas. The View From Nowhere. Oxford University Press, 1986.
Proust, Marcel. In Search of Lost Time. Vol. 1, translated by C. K. Scott Moncrieff and Terence Kilmartin, revised by D. J. Enright, Modern Library, 1998.
Russell, Bertrand. Portraits from Memory and Other Essays. Routledg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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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wn, Wallace. Night Thoughts. Haymarket Books, 2009.
Strawson, Galen. Things That Bother Me: Death, Freedom, the Self, Etc. New York Review Books, 2018.
Twain, Mark.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Bantam Classic Editio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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