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카카오는 사실 가난한 축에도 못 낍니다. 지금 진짜 돈이 급하게 필요한 회사가 있거든요. 바로 오픈AI입니다. 생성형 AI 시대의 주인공이지만, 돈은 못 법니다. 챗GPT의 주간 활성 사용자 숫자는 약 8억 명입니다. 페이스북과 맞먹는 수준이죠. 그러나 유료 사용자 비율은 약 0.2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구독료를 받아 서비스 비용을 메꾸기 어렵습니다. 올해 오픈AI의 매출은 약 127억 달러 수준으로 예상됩니다. 페이스북의 모회사인 메타의 2024년 매출은 1640억 달러였습니다.
진짜 문제는 써야 할 돈이 너무 막대하다는 겁니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수많은 투자자가 기대하고 있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일반 인공지능)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컴퓨팅 성능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 더 많은 GPU, 더 많은 데이터센터가 필요하죠. 여기에 2025년에만
160억 달러가 들 것으로 보입니다. 2030년까지는 총 1000억 달러의 추가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고요. 오픈AI가 주도하고 있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무려 5000억 달러 규모입니다.
그래서 오픈AI도 카카오톡과 비슷한 선택을 했습니다. 카카오톡이 인스타그램과 같은 UX를 차용한 것처럼, 오픈AI도 메타의 길을 가기로 한 겁니다. 2025년 5월 오픈AI의 애플리케이션 부문 CEO로 영입된 피지 시모의 존재가 상징적입니다. 시모는 실리콘 밸리에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수익 창출’로 명성을 얻은 인물입니다. 2021년까지 10년간 메타에 재직했습니다. 친구의 친구를 연결하던 페이스북을 최고의 광고 플랫폼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시모는 오픈AI에서도
명성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소라 2입니다.
오픈AI에 메타가 묻으면
카톡 팝의 뮤직비디오는 물론이고 꽤 많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의 영상들도 생성형 AI를 이용해 제작되었습니다. 그 중 소라 2를 사용한 것도 꽤 많고요. 사실, 쇼츠나 릴스, 틱톡 등 숏폼 플랫폼에서는 AI로 만든 ‘슬롭(slop)’ 동영상이 이미 꽤 많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의미도 맥락도 없는데 기괴하고 조금 웃기는 영상들입니다. 유명인의 데뷔 시절부터 최근 모습까지를 담은 영상이나 동물을 소재로 한 영상, 특정 성별이나 계층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하는 영상 등 정형화된 패턴도 눈에 띄고요.
하지만 소라 2의 등장은 판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포토샵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사람도 소라 2로 원하는 동영상을 정말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전작과는 비교가 되지 않죠. 더 빠르고 쉽습니다. 완성도도 있습니다. 마치 챗GPT처럼 프롬프트를 대충 입력해도 그럴싸한 영상이 생성됩니다. 다만, 소라 2가 정말 중요한 이유는 기술적 발전 때문이 아닙니다. 시모가 오픈AI에 도입한 페이스북의 영혼, ‘피드’가 핵심입니다.
오픈AI가 생성형 AI 시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어떤 경쟁자들보다 빠르게 AI 모델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전 인류가 챗봇을 통해 생성형 AI의 존재를 경험했습니다. 이성과는 별도로, 우리의 감성은 생성형 AI 모델을 일종의
인격체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AI에 감정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소라 2는 챗봇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단순히 영상을 생성하는 ‘기계’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틱톡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 앱을 지향하죠. 앱의 디자인부터 동영상을 게시하고 공유하는 방법까지 너무나 익숙합니다. 앱을 열면 동영상 피드가 등장하고, 내가 프로필 페이지에 게시하는 모든 동영상은 다른 사람의 피드에도 표시됩니다.
비용 구조의 차이
생성형 AI로 우리는 글과 음악, 이미지와 동영상까지 모두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언가 만들어내는 도구로서 챗봇이란 형태는 꽤 유용합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고객이 장인에게 물건을 주문하듯 대충 이야기해도 결과를 내놓는 방식 말입니다. 장인의 품삯도 저렴합니다. 한 달에 20달러 수준이니까요. 하지만 고객은 장인이 만든 물건을 다른 곳으로 가져가 전시합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곳 말입니다.
메타 출신의 시모 CEO와 같은 사람들 눈에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전시할 공간만 여기에 만들면, 틱톡이 가져가던 광고 수익을 오픈AI가 차지할 수 있겠다는 계산을 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만약 소라 2의 흥행이 쭉 이어져 실제 광고 수익 창출까지 달성한다면, 오픈AI는 아주 오랜만에 소셜 미디어 업계에 새로 등장한 유의미한 플랫폼의 주인이 됩니다.
다만, 이 시도가 과연 얼마나 돈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메타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까닭은 많이 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위 비용이 매우 저렴한 까닭도 있거든요. 메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스레드, 왓츠앱 등 수많은 플랫폼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습니다. 운영 비용이든, 데이터센터 비용이든 규모의 경제가 실현됩니다.
오픈AI는 다릅니다. 소라 2는 아직 신생 플랫폼입니다. 단위 비용이 훨씬 많이 들 수밖에 없죠. 결정적으로,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의 경우 콘텐츠 제작 비용을 온전히 제작자가 부담하는 시스템입니다. 인스타그램에 릴스를 열심히 올린다고 메타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일은 없습니다. 크리에이터는 플랫폼이 선심 쓰듯 지급하는 광고 수익의 일부를 지급 받을 뿐이죠. 반면, 소라에서는 사용자들이 영상을 만들 때마다 그 추론 비용을 오픈AI가 감당합니다.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컴퓨팅 비용이 증가하는 구조입니다. 결국, 소라는 페이스북처럼 수익성 높은 광고판이 될 수 없습니다. 광고판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그럼에도 소라는 오픈AI에 있어 일종의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학습 허가
소라와 비슷한 앱을 메타도 선보였습니다. ‘바이브스(vibes)’라는 이름으로 소라 2보다 조금 앞서
공개했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소라 2보다는 말이죠. 바이브스에는 없고 소라 2에만 있는 것이 있거든요. 바로 ‘카메오’라는 기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