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일부터는 서울에서 마을버스를 탈 때 환승 할인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적자를 감당하며 운행을 해 왔지만, 더는 못 하겠다는 겁니다. 환승에 따른 손실금을 전액 보상하지 않으면, 수익을 갉아먹는 환승 시스템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서울시는 할 만큼 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고려해 2024년에는 361억 원, 올해는 412억 원의 재정 지원금을 지급했습니다. 게다가 마을버스 회사들이 임의로 운행 대수를 줄이는 등 편법 운영을 하거나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서울시는 지적합니다. 이걸 먼저 개선해야 세금을 더 투입할지도 계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을버스만 예외가 된 이유
서울시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004년부터입니다. 버스 전용 중앙 차로가 생기고, 무엇보다 ‘환승’ 시스템이 도입됐습니다. 버스 배차 간격이 예전에 비해 잘 지켜지게 되었고, 여러 번 갈아타도 요금 부담이 적어졌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이 늘 그렇듯 잠시 혼란이 있기는 했지만, 시민이라면 누구나 반길 만한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개편에서 결정적이었던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버스 준공영제’ 도입입니다. 민간 버스 회사가 노선 운영을 담당하되, 적자가 발생하면 서울시가 세금으로 보전해 주는 시스템입니다. 반발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정착되었습니다. 사실, 준공영제 도입이 없었다면, 환승 시스템 자체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시민이 요금을 절약하게 된 만큼, 버스 회사는 요금 수입 감소를 감당해야 하니까요.
준공영제로 전환하면서 버스는 환승 제도 도입뿐만 아니라 서비스 자체도 좋아졌습니다. 세금이 들어가니 서울시가 운영을 감독합니다. 그래서 돈이 안 되는 노선도 회사가 마음대로 폐지하거나 운행 대수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 결과 배차 간격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으로 정해 놓은 대중교통의 첫 번째 조건이 ‘일정한 노선과 운행 시간표를 갖출 것’입니다. 이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2004년에 대다수의 마을버스는 이
준공영제에 편입되지 않았습니다. 고유의 특성 때문에 준공영제 편입이 불리하다고 본 겁니다. 강남 사거리에서 광화문을 오가는 노선은 누가 봐도 수요가 확실합니다. 그런데 독립문 전철역에서 종로 문화 체육 센터까지 이어지는 좁고 가파른 언덕길은 그 동네 사정을 잘 알아야 버스 노선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이 좁은 길로 버스를 운행할 수 있는지, 노선을 어떻게 짜야 승객도 편하고 수익도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계산해야 하죠. 마을버스 노선은 일종의 ‘개척지’입니다.
Homestead Act
실제로 노선은 일종의
사유 재산입니다. 법에 그렇게 정해 두었습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마을버스 회사가 노선을 일단 개척하면, 해당 노선을 독점적으로 운영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이 권리는 팔 수도 있고, 상속할 수도 있습니다. 사유 재산입니다.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일반 시내버스는 다릅니다. 노선권을 인정하지만, 세금을 투여하는 만큼, 서울시가 노선 조정권을 갖습니다. 이렇게 되면 완전한 사적 권리라기 보다는, 사유 재산의 형태를 서울시가 결정하는 모양새입니다. 애당초 공영도, 민영도 아닌 준공영으로 시작하다 보니 좀 기괴한 형태가 된 겁니다.
마을버스 회사들은 개척한 노선으로 돈을 벌기 위해 수십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고 나올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회사도 노선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서울시도 252개에 달하는 마을버스 노선의 운영과 관리를 당장 떠안기 힘듭니다. 각각 짧은 노선이 지역마다 다른 특성을 반영해 설계되어 있습니다. 데이터만 보며 관리할 수 없으니 투여해야 할 사람도, 돈도 부담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을버스는 2004년 개편에서 준공영제에서 대부분 빠졌습니다. 당시에 편입된 일부 노선은 현재 노란색 버스로 운영되고 있고요.
그렇다면 마을버스는 시장 경제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고 있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대중교통이기 때문에 공공성을 담보해야 합니다. 그 책임은 사업자에게 있는데, 운영의 권리는 온전히 가지지 못합니다. 대표적으로 요금을 서울시가 결정합니다. 새로운 노선을 개척해도 그 노선을 허가해 주는 곳이 역시 서울시와 관할 구청입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 노선을 마음대로 폐지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정치적인
압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중교통 노선은 기본적으로 인프라입니다. 집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지에 따라 집값이 달라집니다. 마을버스 정류장이 새로 생기면 주민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지역 정치인들은 특정 지역에 버스 노선을 신설하거나 연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민원도 많아집니다. 결국 이 압력은 버스 회사에 영향력을 미치고, 원하지도 않았던 노선 신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버스 3~4대 규모의 영세한 마을버스 회사가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노선을 늘리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는 겁니다. 그 결과 서울시 마을버스 업체 수는 과거 100여 개에서 현재
140개 수준까지 증가했습니다.
이런 구조가 마을버스의 공공성을 끌어올리는 것도 아닙니다. 민원과 정치적 목적이 작용해 생기는 노선은 소위 말하는 ‘입김’이 작동하는 곳입니다. 적어도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몰리는 신규 아파트 단지 주변 같은 곳 말입니다. 반면, 고령자 위주의 작은 골목 쪽으로는 노선을 새로 만들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하더라도, 서울시 입장에서는 이미 부담이 되는 마을버스 재정 지원을 더 늘릴 요인을 만들
이유가 없죠.
아무도 원치 않는 시스템
회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간 뒤, 집 근처 역에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환승하면 마을버스에는 439원이 돌아갑니다. 1500원 중 30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서울시는 적자를 내는 노선에 한 해 마을버스 1대당 하루 수익이 48만 원에 미치지 못하면 23만 원 한도 내에서 지원합니다. 흑자가 100원, 1000원 나는 노선도 전혀 지원받지 못하는데, 이자부터 각종 비용 등까지 생각하면 적자나 다름없다는 것이 업체 측의 주장입니다.
반면, 전문가들은 마을버스 업체들이 회계 장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 운영을 신고한 대로 했는지 등을 따져야 제대로 된 지원금을 산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2023년 서울시 마을버스 요금은 900원에서 1200원으로 인상됐습니다. 그 결과 수익성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개선되었다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입니다. 보조금을 포함하면, 70퍼센트 이상의 업체가 흑자를 보고 있다는 조사도 나와 있습니다.
다만, 마을버스 사업이 안정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만약 사업이 잘된다면,
외국인 기사 도입 등과 같은 논의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을버스 노선의 운전 난도는 높은데,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시내버스와 급여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기사 지원자가 없어 사람이 모자라지만, 업체들은 급여를 올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결국, 이주 노동자 논의까지 나온 겁니다.
승객 안전 등을 이유로 무산되었지만, 마을버스의 현실을 보여 줍니다. 어느 쪽도 행복하지 않은 시스템입니다. 업체들은 경영난을 호소하고, 승객들은 20분씩 마을버스를 기다립니다. 서울시는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노선을 조정할 수도 없는데 세금은 많이 씁니다. 그래서 나오는 논의가 마을버스 공영화입니다.
도시의 조건
저는 몇 년 전까지 독립문역 근처 가파른 언덕길의 빌라촌에 살았습니다. 월세도 저렴하고 당시 다니던 직장까지 꽤 가까웠죠. 원룸의 상태는 형편없었지만, 서울 한복판에 있는 데다 직주근접이 매력적이어서 선택했습니다. 다만, 그곳에 살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을버스 때문이었습니다. 독립문역에서 15분 가까이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마을버스가 있어 마치 역세권인 것처럼 지낼 수 있었습니다. 골목은 좁고 가팔랐지만, 마을버스는 마치 곡예를 하듯 매일 운행했습니다.
딱 하루 운행을 멈췄던 날이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때였는데, 사람도 다니기 힘든 날씨였습니다. 출근하기 위해 언덕길을 내려오는 데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몇십 분을 엉금엉금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날 그 동네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버스가 다시 다닐 때까지 병원에도, 관공서에도 갈 수 없었겠죠.
마을버스는 역세권 아파트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언덕 위 빌라촌에 사는 사람도 서울을 누릴 수 있게 해 줍니다. 어쩌면 대중교통 수단 중 공공성이 가장 강한 종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의 미덕은 밀도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곳에 몰려 생각하고 일하고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효율이 올라가고 혁신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밀도를 끌어올리는 가장 중요한 기반 시설이 대중교통입니다. 마을버스는 대중교통도 가 닿기 어려운 곳에, 사람에 가 닿는 대중교통이고요.
서울 자치구별로
공공 순환버스를 운영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종의 변형된 공영화입니다. 마을버스가 채우지 못하는 공공성을 자치구가 채우는 겁니다.
경기도는 마을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교통 취약 지역이 많은
비수도권에서는
완전 공영화 논의가 활발합니다. 서울시가 대중교통의 목적을 제대로 정의하고 있다면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취약 노선부터 차례로 인수하는
방식으로 연착륙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돈이 드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마을버스 논의와 함께 ‘한강 버스’ 이야기가 소환됩니다. 서울에 멋진 대중교통 수단이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엄청난 관광 수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을 상징하는 명물이 될 수도 있겠죠. 멋진 일입니다. 그리고 지자체장의 상징으로 남겠죠.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공의 자원을 꼭 필요한 곳부터 배분해야 한다는 정치 철학을 견지해 왔습니다. 무상 급식에 관해서도, 기본 소득에 관해서도 일관된 정책을 주장했죠. 정책의 일관성은 정치인에게, 그리고 행정가에게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대중교통에 관해서는 어떨까요. 우선순위의 기준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