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I would love to do it).”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27일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3선 도전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한
말입니다. 트럼프의 책사로 활동했던 스티브 배넌이 그보다 며칠 전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3선 도전을 위한 비책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이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지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를 2회로 제한합니다. 그런데도 스티브 배넌은 “다양한 대안이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트럼프 본인도 3선 욕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아직 임기 초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면서도 “지금 내 지지율은 최고”라고 했습니다. 임기 말에 국민이 3선을 원한다면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트럼프는 백악관 집무실에 ‘트럼프 2028’이라고 적힌 모자를 갖다 놓기도 했죠.
수정 헌법 제22조
1951년에 비준된 미국 수정 헌법 제22조는 대통령의 3선을 금지합니다. “누구도 2회를 초과하여 대통령직에 선출될(elected)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2차 세계 대전 중에 관계를 깨고 4선에 성공하자 임기 제한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루스벨트 사후에 헌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트럼프는 2016년과 2024년, 두 차례 대선에서 당선되었습니다. 2028년에 3선 도전을 하려면 그 전에 헌법을 바꿔야 합니다. 수정안이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받고, 이후 미국 50개 주(州)의 4분의 3 이상의 주 의회에서 비준을 받아야 최종 통과됩니다. 지금 공화당은 상·하원에서 간신히 절반을 넘기고 있죠. 3선 도전을 위한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럼, 트럼프 진영의 전략가들이 말하는 3선 도전 비책이란 무엇일까요. 수정 헌법 제22조의 해석을 두고 다른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 조항은 2회를 초과해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없다”라고 했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라고 한 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즉 선출 방식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서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수정 헌법이 금지하는 것은 선거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는 횟수니까요.
미국 수정 헌법 제25조 1항에 따라 대통령이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하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됩니다. 이 조항을 활용하면 제22조를 우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①2028년 대선에서 JD 밴스 같은 트럼프의 측근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합니다. ②대통령 후보는 트럼프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지명합니다. ③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④새 대통령은 취임 직후 사임합니다. ⑤부통령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승계합니다.
헌법이 금지하는 3선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것이므로, 수정 헌법 제22조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수정 헌법 제12조
물론 이 주장은 소수 의견입니다. 수정 헌법 제22조를 피해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제12조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제12조는 제22조보다 100년도 더 전인 1804년에 제정되었습니다. 이 조항에서는 부통령의 자격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대통령직에 취임할 자격(eligibility)이 없는 사람은 부통령직에도 취임할 자격이 없다.“
정리하면, 제22조에 따라 대통령직에 2회 선출된 트럼프는 더 이상 대통령이 될 수 없고, 제12조에 따라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으니 부통령도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일부 법률가들은 ― 소수 의견이기는 합니다만 ― ‘자격’과 ‘선출’이 다르다는 점을 파고듭니다. 자격은 그 사람이 헌법적으로 그 직위를 맡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헌법 제2조 1항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이고, 35세 이상이며, 미국에서 14년 이상 거주한 자.” 이게 바로 자격입니다.
반면, 선출은 자격이 있는 사람 중에서 선거를 통해 유권자와 선거인단이 공직자를 뽑는 과정입니다. 즉, “당신은 대통령이 될 자격은 있지만, 이미 두 번 선출되었기 때문에 세 번째 선거에는 나올 수 없다”라는 것이 수정 헌법 제22조의 취지라는 것입니다. 그 직책을 맡을 자격은 여전히 있지만, 그 자리를 얻는 경로가 막혀 있다는 것이죠.
부통령의 자격을 규정한 수정 헌법 제12조의 입법 배경도 재선 대통령 출신의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꼼수를 막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12조가 제정되기 전까지 선거인단은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를 명시하지 않고 2표를 행사했습니다. 대선 1위 득표자가 대통령이 되고, 차점자가 부통령이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지난 미국 대선으로 치자면, 공화당 트럼프가 대통령, 민주당 해리스가 부통령이 되는 식입니다. 당이 다른 대통령과 부통령이 한 팀이 되면 손발이 맞지 않겠죠. 그래서 수정 헌법 제12조를 만들어 대통령과 부통령을 별도로 선출하게 하면서, 부통령의 자격을 명시한 겁니다.
수정 헌법 제25조 2항
아직 트럼프는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방안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너무 영리하다”면서 “옳지 않을 것”이라고 했죠. 쉽게 말해, 치사하다는 얘기입니다. 잠깐이기는 하지만 부통령 후보자란에 이름을 올리는 게 자존심 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굳이 정·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루트가 있습니다. ①차기 대선에서 JD 밴스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제3의 측근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합니다. ②공화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③부통령이 된 제3의 측근이 사임합니다. ④대통령 JD 밴스가 공석인 부통령직에 트럼프를 지명하고, 상·하원에서 과반이 동의해 트럼프가 부통령에 취임합니다. ⑤JD 밴스가 사임하고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승계합니다. 공화당이 상·하원 과반이면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이 시나리오는 1967년에 만들어진 수정 헌법 제25조 2항에 근거합니다. “부통령직에 공석이 생기면 대통령은 새로운 부통령을 지명하며, 그 지명자는 상원과 하원의 과반수 동의로 인준되면 부통령으로 취임한다.” 실제로 1973년 10월 닉슨 대통령은 부통령이 부패 혐의로 사임하자, 제럴드 포드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합니다. 포드는 상·하원 표결을 거쳐 그해 12월 부통령이 됐죠.
포드는 미국 역사상 의회 승인 절차를 거쳐 임명된 첫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8월 포드는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며 대통령직을 승계합니다. 제럴드 포드는 선거 없이 부통령과 대통령, 두 자리에 모두 오른 유일한 인물이 되었죠.
연방대법원의 선택
법적으로 명확하게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만, 제12조와 제22조를 종합해 해석할 때, 사실상 선출이든 승계든 세 번째 취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 법조계의 다수 의견입니다.
그래도 트럼프가 우회로를 통해 대통령직 승계에 나선다면, 이 사안은 연방대법원으로 가게 되겠죠. 아무리 보수 우위의 대법원이라지만, 트럼프의 3선을 헌법적 우회로 판단할 가능성이 큽니다. 수정 헌법 제22조가 의도한 것은 대통령직의 장기 점유 방지입니다. 대법원은 입법 목적과 입법 정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내릴 겁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극심한 대립과 충돌이 일어나겠죠.
트럼프의 3선 도전 운운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트럼프가 아무리 막무가내라지만, 정말 그렇게까지 하겠냐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레임덕을 차단하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협상가 기질을 발휘해서 헌법상 애당초 불가능한 일마저 하나의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상황은 계속 변합니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트럼프는 “헌법상 3선에 출마할 수 없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3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던 이틀 전 입장에서 물러난 겁니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3선 도전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뜻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말이 언제 바뀔지 모릅니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트럼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