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차트

bkjn review

부의 분배뿐만 아니라 경력의 분배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차트

2025년 11월 4일

지금 전 세계의 돈은 AI 산업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중심에는 오픈AI가 있고요. 하지만 오픈AI는 비영리 단체였습니다. 그래서 2015년 출범 당시, 1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기부’ 받았습니다. 이 비영리 단체의 목표는 인간과 유사한 정도의 지능, 즉 AGI를 달성하는 것이었고요.

그런데 오픈AI의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AI 모델을 개발할수록 엄청난 컴퓨팅 능력이 필요했던 겁니다. 쉽게 말해, 엔비디아의 GPU 말입니다. 그래서 오픈AI의 CEO인 샘 올트먼이 꾀를 냅니다. 오픈AI는 비영리 단체지만, 그 산하에 영리 법인인 ‘오픈AI LP’를 설립한 겁니다. 이를 통해 투자는 투자대로 받되, 영리 법인의 지배권을 오픈AI가 가져가면서 공익성도 유지한다는 그림이었습니다.

이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받은 파격적인 투자 덕분에 오픈AI는 생성형 AI 모델 개발이 본격적인 ‘쩐의 전쟁’ 시기로 접어든 이후에도 선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추격자들과의 차이를 더 벌렸죠. 그리고 오픈AI의 도약은 제3막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세계는 한발 앞서 변화하고 있고요,

주식회사 오픈AI

AI 모델의 스케일이 커지는 만큼, 오픈AI의 스케일도 커졌습니다. 앞으로도 더 커질 계획입니다. 방법은 기업 공개(IPO)입니다. 시기는 2027년, 기업 가치는 1조 달러를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회사의 조직을 개편했습니다. 이제 오픈AI는 ‘공익 법인(Public Benefit Corporation, PBC)’입니다. 이름만으로는 회사 같지 않지만, 영리를 추구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단, 주주의 이익은 물론 공공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공익 법인의 지분 26퍼센트를 비영리 단체인 ‘오픈AI 파운데이션’이 소유합니다. 오픈AI는 PBC라는 흔치 않은 법적 존재 방식과 꽤 잘 어울리는 조직입니다. 영리 추구와 공익 고려가 같은 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위해 작동하는 AGI입니다.

회사의 조직을 개편했으니, 지금까지 애증의 관계를 유지해 온 마이크로소프트와도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의 지분 49퍼센트를 들고 있었습니다. 까딱하면 오픈AI를 인수 합병해 버릴 수도 있는 수준이었죠. 조직 개편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지분율은 27퍼센트로 조정되었습니다. 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AGI가 개발된 이후에도 오픈AI의 기술을 계속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실험에 돌입했습니다. 당분간은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보장된 어떤 기업이 어디까지 ‘공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이미 샘 올트먼은 엔비디아와 AMD로부터 돈을 빌려 그 돈으로 다시 GPU를 구매하는 식의 ‘순환 투자’ 기법을 선보였습니다. 2022년 11월 이전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이었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본 적 없는 물결에 올라탔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믿을 수 없는 주가 상승, 사상 최초로 시총 5조 달러를 달성한 엔비디아의 성장 등과 같은 물결입니다.

이 물결에 올라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미 쏟아부은 돈도 많고요. 오픈AI가 AGI를 개발하지 못한다면, 그 AGI가 생산성 폭발을 이루지 못한다면 모두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부풀어 오른 수치가 꺼집니다. 그러니 오픈AI는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돈이 더 몰립니다.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먼저 나서 투자합니다. 성공의 확률이 높아집니다.

비용 절감의 비법

다만 오픈AI는 여전히 스타트업입니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습니다. 만년 적자인데 엄청난 투자를 끊임없이 받아야 합니다. 진보와 혁신을 꾸준히 증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올트먼의 특기 분야입니다. 애당초 챗GPT-3.5는 성능 그 자체보다 폼펙터가 대단한 물건이었습니다. 실제 AI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성은 수준 미달이었지만, 이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어디까지 가능해 질 것인지 사람들은 끝없이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은 곧 현실이 되었고요.

올트먼은 이번에도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 혁신을 이야기했습니다. 2026년 9월까지는 인턴급 AI 연구자를, 2028년 3월까지는 혼자서도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AI 연구자를 양성한다는 겁니다. 인간 연구자가 아니라, 생성형 AI 모델 얘깁니다. 이제 AI 연구라는 첨단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오픈AI의 쓸모를 넓히겠다는 겁니다.

이 발표는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오픈AI가 쓰는 대부분의 돈은 크게 두 군데에 들어갑니다. AI 모델을 개발하고 돌리기 위한 데이터센터와 인건비입니다. 전자는 현재로서는 물리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효율을 극대화한 AI 모델을 만드는 방법이 있겠는데, 아직은 이른 얘깁니다. 쉽게 말해 자동차를 더 빠르고 강하게 달리는 기술부터 개발해야 할 때라는 겁니다. 아우토반이나 사막에서도 멈추지 않고 쌩쌩 달리도록 말이죠. 그래서 자동차로서 쓸모가 있으니까요. 연비를 개선하는 건 그다음 순서입니다.

인건비 부분도 딱히 줄일 방법이 없었습니다. 없던 기술을 만드는 일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고의 인재를 데려와야 진도가 나갑니다. 인재 영입 경쟁에서 밀리면, 기술 경쟁에서도 밀립니다. 오픈AI는 1등이 되지 못하면 죽습니다. 물결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도 돈을 아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AGI에 가까워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아주 일부이겠지만, 사람을 생성형 AI로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난 겁니다. 엄청난 비용 절감이 되겠죠.

K-차트는 이제부터

사실, AI 붐과 함께 일자리는 이미 줄어들고 있습니다. 공포감은 더 급하게 치솟고 있고요. 최근 다음 차트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습니다.
파란 실선은 S&P 500 지수를, 초록 점선은 채용 공고 수를 표시합니다. / 출처: X.com
이 차트에는 별명도 붙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차트(the scariest chart in the world)’입니다. 단순한 밈이나 과장 아닐까 싶지만, 아닙니다. 실제 수치가 맞다고 합니다. 챗GPT-3.5 모델이 모두에게 공개된 2022년 11월 이후 채용 공고는 30퍼센트 감소했고, 미국 주식시장은 70퍼센트 성장했습니다.

물론, 이 그래프가 디스토피아의 증거는 아닙니다. 얼핏 보면 AI 기업이 노동 계급을 파괴하고 경제 전반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차트 같습니다. 하지만 저 파란 그래프는 초록 그래프의 원인이 아닙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이 현상의 원인은 그래프 밖에 있습니다.

그래프가 꺾이는 시점을 자세히 보죠. 채용 공고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은 2022년 3월입니다. 연준이 팬데믹 종식 이후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던 시점이죠. 팬데믹 당시 인력을 과잉 채용했던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들도 인력 감축을 시작했고요. 고용 감소의 주요 원인은 AI가 아니라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시장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주식시장도 따라 내려갑니다. 그러다 성장을 시작하는데, 이건 챗GPT의 등장 시점과 맞물립니다. 이건 AI의 힘이 맞습니다. 2022년 11월 이후 AI 관련 주식은 S&P500 이익 성장률의 80퍼센트를 견인했습니다. 돈이 AI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이 그래프의 상승세로 나타난 겁니다.

그래프의 오른쪽, 그러니까 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일자리 그래프에도 AI의 영향력이 나타나기 시작할 겁니다. 예를 들면, 최근 아마존이 발표한 1만 4000명 규모의 감원 같은 것 말입니다. AI가 돈을 빨아들이니 다른 분야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기 어려운 영향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투자의 모멘텀을 옮기려는 시도가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파트 공급으로 돈을 벌던 건설사 주가는 빠지고, AI 반도체 쪽은 사상 최고 주가를 경신하고 있죠.

연공 편향 기술 변화

그중에서도 생성형 AI가 지식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기 시작했다는 통계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주니어급에서 그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미국에서는 2025년 3월 대졸자 실업률이 5.8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4년 만에 최고치입니다. 문제는 이들의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굉장히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JP모건은 AI의 영향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의 일자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청년층부터 40대까지의 일자리는 감소했지만, 50대의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AI의 영향력을 살펴봤더니 청년층 일자리 감소에 크게 기여했고, 그 밖의 연령대에서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한국은행은 이 결과를 AI 확산 초기 단계에서 발행한 ‘연공 편향 기술 변화’라고 성명합니다. AI가 청년층의 정형화된 업무를 대체하며 고용을 위축시키는 반면, 경험이 많은 장년층과 시니어의 경우에는 AI가 오히려 보완재로 작용해 고용을 늘리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매일 뉴스 클리핑을 작성하던 인턴사원을 더는 뽑지 않습니다. AI가 더 잘합니다. 하지만 넓은 인맥으로 깊이 취재하고 경험을 살려 인사이트를 녹여내는 50대 이상의 기자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기사를 적게, 느리게 쓴다며 후배들에게 밀렸지만, 생성형 AI를 활용하면서 기사 작성을 더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단기적으로는 오픈AI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턴급 AI 연구자’ AI 모델 말입니다. 올트먼은 10개월 후로 등장 시기를 언급했습니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는 얘깁니다. 다만 시니어급도 밀어낼 수 있는 정도의 AI 모델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오픈AI가 늘 그랬듯 공개 시기가 뒤로 밀릴 수도 있고, 의외로 빠르게 개발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시니어를 대체할 AI 모델, 즉 AGI에 준하는 모델이 나오기 전까지 생성형 AI는 주니어급 지식 노동자의 기회를 줄이는 쪽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매뉴얼대로,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의 쓸모는 소멸하고 매뉴얼을 짜는 사람, 일을 시키는 사람의 가치는 오르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속도는 오픈AI의 성장 속도와 비례할 테고요. 부의 분배뿐만 아니라 경력의 분배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합니다. AGI라는 기술이 정말 혁신이라면, 등장과 함께 이 격차의 방향을 역전시킬 만한 폭발력이 있어야 할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그래프가 현실이 되기 전에 말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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