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촌 ‘새마을 식당’이 문을 닫았습니다. 2008년부터 17년 동안 자리를 지킨 곳이라 폐점 소식에 놀라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경영이 어려워 로또 당첨을 기원했으나 당첨되지 않아 영업을 종료합니다. 그동안 새마을 식당 신촌점을 찾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since 2008~2025.”
식당 출입문에는 점주였던 분께서 손수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안내문이 걸렸습니다. 신촌 주변에서 생활, 혹은 생업을 이어온 사람들에게는 쌀쌀한 안내문입니다. 이곳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촌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으니까요.
투썸플레이스의 1호 매장이었던 신촌점은 2023년 12월 문을 닫았습니다. 2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켰던 맥도널드 신촌점은 2018년 폐점했고요. 숫자를 보면 더 명확합니다. 2024년 4분기 기준으로 신촌과 이대 상권은 공실률 18.3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5곳 중 1곳은 비었다는 얘깁니다. 거리가 스산해 보일만 하죠.
무엇보다 아파트 단지들까지 신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신촌 숲 아이파크’는 주민 투표를 통해 ‘마포 아이파크 포레’로의 명칭 변경을 결정했습니다. 마포구 대흥동의 ‘마포 그랑 자이’도 지난 2023년 ‘신촌 그랑 자이’에서 ‘신촌’을 떼어 버리고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제 신촌은 집값을 끌어내리는 이름이 된 겁니다.
서울 최고의 번화가로 꼽혔던 신촌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서강대학교, 홍익대학교 등이 신촌 지역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20대 유동 인구가 밀집할 수밖에 없는 위치입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신촌의 주 소비자는 20대, 그중에서도 대학생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달라지면서 신촌 상권도 변화를 맞았습니다.
서울의 브로드웨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연세대학교의 ‘송도 캠퍼스 시스템’입니다. 거의 모든 언론과 부동산 입지 분석에 등장하는 신촌 상권 쇠퇴 주요 원인입니다. 2014년부터 연세대학교의 모든 신입생은 1년간 인천 송도에 위치한 ‘송도 학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RC(기숙형 대학, Residential College) 모델을 한국 실정에 맞게 개선해 구현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기존 학생회가 주도했던 대학 생활 가이드부터 많게는 2시간씩 걸리는 통학 시간을 절약해 학업의 기초를 탄탄히 하겠다는 겁니다.
학교 주변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밥도 먹고 술도 마실 신입생이 없으니 신촌 상권에 분명 영향은 있을 겁니다. 1학년보다는 2학년이, 2학년보다는 3학년이나 4학년이 학점과 취업에 더 신경을 쓸 테니 신촌 거리의 가장 중요한 소비 세력은 연세대학교 1학년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송도 RC 시스템하에서도 연세대 신입생들은 신촌으로 자꾸만 향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송도 캠퍼스를 ‘고립, 방치, 부유(浮遊)’의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송도 캠퍼스를 가상 도시나 유령 도시처럼 느끼게 되고, 그 결과 선배나 동아리 활동이 있는 신촌으로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겁니다. 논문에서는 이를 ‘신촌 바라기’ 현상이라 명명합니다. 이를 위해 대다수의 학생이 금요일 수업을 비우는 ‘금공강’, 심지어 목요일까지 비우는 ‘목공강’ 시간표를 짜 주 2~3회씩 신촌을 오가고 있습니다. 목요일부터 송도 캠퍼스는 비기 시작해 주말에는 건물이 텅 비어버린다는, 그래서 기본적인 식사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학생 인터뷰가 몹시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송도 캠퍼스만으로는 신촌 상권의 급격한 몰락을 설명하기에 부족합니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신촌이 한참 흥했던 1980년대를 돌아보죠. 정확히는 1980년대의 대학생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2024년 대학 진학률은 73.6퍼센트였습니다. 1985년에는 36.4퍼센트였고요. 절반 수준입니다. 대학 진학은 일종의 특혜였고 특권이었습니다. 대학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지식과 문화는 그 바깥과 경계가 뚜렷했고요. 같은 세대 안에서도 대학생은 굉장히 이질적인 소비 집단인 동시에 문화 집단이었습니다.
신촌의 전성기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입니다. 특히 1980년대부터는 신촌에 소극장, 카페, 클럽 등이 촘촘히 들어섰죠. 신촌 블루스나 들국화와 같은 전설적인 밴드들이 신촌의 라이브 클럽에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연극의 메카’도 당시에는 신촌이었습니다. ‘서울의 브로드웨이’로 불릴 정도였죠. 라이브 공연이나 연극 등의 공연을, 당시 소득 수준으로는 꽤 비싸게 값을 치르고서라도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신촌에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취향이 일종의 값비싼 ‘문화 자본’이었던 시대, 신촌을 둘러싼 4곳의 캠퍼스에는 그 자본을 원하는 학생들이 넘쳤으니까요. 신촌은 ‘취향의 용광로’였습니다.
유예된 사춘기
하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신촌의 ‘우드스톡’과 ‘롤링 스톤즈’를 드나들던 록 음악 마니아들은 홍대의 라이브 클럽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신촌의 높은 임대료와 정부 단속을 피해 문화예술인들이 홍대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 같은 곳이 되어버린 홍대 상권도 한때는 신촌에서 밀린 사람들의 안식처였던 겁니다.
대학생의 지위도 사뭇 달라졌습니다. 1980년대의 대학생은 ‘공부하는 어른’이었습니다. 대다수의 동년배는 이미 사회로 나가 일을 하고 있으니, 1980년대의 20대는 이미 어른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대학생이란 더 높은 계급을 향한 기회를 손에 넣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졸업 후 다른 계획이 없다면 좋은 직장에 취업해 중산층의 사다리를 오른다는, 그런 미래가 예약된 사람들 말입니다. 특히나 신촌 거리의 대학생이라면 더욱 그러했을 겁니다. 그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돈을 벌었습니다.
반면, 2025년의 대학생은 유예된 사춘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장의 가치는 떨어졌고, 약속된 미래는 없습니다. 대학생만 가진 ‘문화 자본’이란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문화 소비의 상한선이 대형 콘서트와 전시회, 뮤지컬 등으로 확장하면서 안정적인 소득을 가진 계층의 구매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70대 이상의 고령층 말입니다.
신촌의 음악이 홍대로 빠져나가고, 연극이 대학로로 빠져나가고, 고유의 분위기를 가진 가게들이 전국의 ‘○리단길’로 빠져나갔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도 있었고, 대학생의 사회, 문화적 계급 추락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학가는 사람이 몰리는 곳입니다. 그것도 잘 먹고 잘 놀 나이의 유동 인구가 넘치는 곳이죠. 그런데 신촌에서는 투썸도, 맥도날드도 망해 나갔습니다.
기숙사는 안되지만
다른 지역에서 진학한 학생들에게 월세는 부담입니다. 신촌과 같은 서울 대학가의 경우 그 부담은 더 큽니다. 비교적 깨끗한 방을 구하려면 월세는 80만 원선까지 뛰어오릅니다. 상황이 이러니 서울 출신 학생들이 부모님 댁에서 통학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일종의 ‘스펙’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곰팡내 나는 반지하 원룸에 자취하면서 월세를 보태느라 알바까지 뛰어야 한다면, 경쟁의 출발선이 멀어도 너무 멀리 그어져 있는 겁니다.
그래서 기숙사를 확보해 제공하고자 하는 대학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개 비슷한 장애물에 부딪힙니다. 비싼 땅값 때문이 아닙니다. 대학가 주민들의 반대가 문젭니다. 학생들에게 원룸을 세놓으며 생계를 이어 온 임대인들이 결사반대하고 나서니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지자체와 정부가 나서 임대인들에게 보상해 주는 조건으로 기숙사 건립을 겨우 시작하는 사례가 나옵니다.
대학이 학생들의 주거를 해결하고자 추진하는 기숙사가 대학가 원룸 수요를 빨아들이듯, 대학 안에 자리 잡은 각종 상업시설도 대학가 상권의 소비를 일정 이상 빨아들입니다.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신입생은 빠져나갔지만, 그 빈자리에는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왔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로 ‘생협’ 수준에 머물러 있던 캠퍼스 안 각종 편의 시설이 본격적인 상업화를 겪은 겁니다. 기업이 산학 협력 등으로 대학과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대학이 임대 수익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이런 현상이 심화했습니다. 이제 어느 대학을 가든, 각종 편의점은 물론이고 프랜차이즈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이 캠퍼스 안에 있습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시성비’를 생각하면 굳이 학교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죠.
그렇다면 기숙사는 왜 반대하고 이런 상업시설 건설은 상대적으로 반대가 눈에 띄지 않을까요. 저는 그 차이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힐 만해야 반대도 하고 나섭니다. 임대인은 집주인입니다. 신촌에 주민등록을 둔 신촌의 유권자죠. 원룸 월세가 떨어지면 집값이 떨어집니다. 원룸촌 집값이 떨어지면 그 주변 지역의 집값도 동반 하락 합니다. 지자체와 지역 정치인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월세를 내며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신촌 주민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가 공실률이 늘어난다고 상가의 건물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낭만의 소멸
상가 건물의 가치는 임대료로 정해집니다. 임대료가 높으면 건물 가격이 높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건물 가격이 저렴합니다. 그래서 한번 오른 임대료를 낮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건물 가격이 어떻든 공실을 그대로 두느니 임대료를 낮춰 월세를 받는 것이 이득 아닐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건물주라고 현금을 다 주고 건물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물을 담보 잡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샀습니다. 건물 가격이 떨어지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담보 가치가 떨어지고, 투자금이 깎여나가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촌은 연남동이나 망원동보다 임대료가 높습니다. 전성기에 올려놓은 임대료를 도저히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대료를 낮추느니 건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공실을 감내하는 쪽을 선택하는 겁니다. 종로나 명동 등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시장 경제 원리에 따르면,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상권의 임대료가 떨어지지 않는다니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시장 경제 원리에는 곳곳에 구멍이 있습니다.
결국 신촌은 2025년 기준으로 결코 매력적인 상권이 아닙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문화적 자산을 다른 지역에 빼앗겼습니다. 주 소비층의 성격도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가까운 곳, 아는 곳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한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상권을 살려보고자 지자체도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별 소득은 없었습니다.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봤습니다. 하지만 보행자의 경험이 획기적으로 좋아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냥 차만 없어졌습니다. 상인들의 반발로 다시 차가 다닙니다. 그렇다고 오지 않던 사람들이 차를 몰고 오지 않습니다.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훨씬 좋은 곳이 많으니까요. 이대 상권을 살린다고 패션 특화 지구를 조성했습니다. 지그재그와 에이블리의 시대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책은 시대를 거슬러 신촌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지 못했습니다.
신촌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사회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쇠락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전 학번이 기억하는 ‘캠퍼스의 낭만’이 소멸한 것처럼 말입니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제와 정치 시스템이, 계급 사다리를 오르기는커녕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청년의 삶이 그 쇠락에 가속을 붙이고 있을 뿐입니다. 신촌이 낡고 고단한 이유는 청년이 낡고 고단한 까닭과 맞닿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