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역학과 조절 T세포

bkjn review

따지고 보면 그렇게 뜬금없는 해명은 아닙니다.

양자 역학과 조절 T세포

2025년 11월 6일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의 일입니다. 2017년 9월 11일 국회에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이 후보자에게 물었습니다.

“지구의 나이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성진 장관 후보자는 한국창조과학회 이사였습니다. 창조과학회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과학의 언어로 재구성한 창조론을 믿는 개신교 계열의 유사 과학 단체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성경 속 등장인물의 나이를 합산해, 지구가 기원전 400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청문회에서 박성진 후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창조 신앙을 믿는 입장에서는, 교회에서는 6000년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탈을 쓴 유사 과학을 믿는 사람이 국가의 중소기업·벤처 정책을 총괄하게 될 판이었습니다. 야당은 물론이고 국민 여론까지 임명 반대로 기울자, 여당마저 후보자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는 인사 검증 부실을 인정하며 박 후보자가 “그런 독특한 사상 체계를 가졌는지는 몰랐다”라고 했죠. 박 후보자는 결국 후보 지명 22일 만에 사퇴합니다.

양자 역학과 조절 T세포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연일 화제입니다. 최 위원장은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에서 딸 결혼식을 열고 피감기관으로부터 축의금을 받았습니다. 국민의힘은 최 위원장을 뇌물죄로 경찰에 고발했죠. 최 위원장은 해명 과정에서 “양자 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 “암세포의 위장에 세뇌당한 조절 T세포의 혼미를 막아야 한다”라고 말해서 논란을 키웠습니다.

‘양자 역학’과 ‘조절 T세포’를 두고 뜬금없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 위원장의 ‘독특한 사상 체계’를 고려하면 그에게는 일상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입자의 상태를 바꾼다거나, 에너지가 병든 세포를 치유한다는 식의 주장은 대체 의학과 스피리츄얼(Spiritual) 산업의 단골 메뉴입니다. 최 위원장의 표현이 단순한 실언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는 이유입니다.

2010년대 중반 ‘안아키’라는 인터넷 카페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인 육아 커뮤니티였는데, 줄여서 안아키라고 불렀습니다. 이 카페의 설립자는 의학적 근거 없이 아이가 아파도 약과 병원을 멀리하고 자연 치유력으로 병을 이겨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겉으로는 자연주의 육아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아동 학대에 가까운 의료 회피였습니다.

이 카페는 홍역 백신 같은 필수 예방 접종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이염으로 귀에서 고름이 나는 아이는 소금이나 간장을 섞은 물로 비강을 세척시키고, 열이 아는 아이는 해열제를 쓰지 말고 자연 치유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했습니다. 카페 설립자가 집필한 육아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카페는 급속히 세를 불렸고, 한창때 회원 수는 6만 명에 달했습니다.

극단적 자연 치유법을 6만 명에게 전파했으니, 탈이 안 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39도 고열에 시달리는데도, 안아키에서 알려 준 대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사흘간 매실과 죽만 먹이더니 느닷없이 관장을 시킨 부모의 사연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습니다. 이후 여러 커뮤니티에서 안아키 피해 사례가 속속 올라왔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안아키 논란을 다뤘죠.

사회적 파장이 커지면서 결국 안아키 운영자는 보건 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 유예 3년,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2013년에 생긴 안아키보다 10여 년 일찍 자연 요법 운동을 전개해 온 사람이 있습니다. 최민희 위원장입니다.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

최민희 위원장은 시사 월간지 《말》 기자 출신입니다. 1991년 8월호에서 당시 최 기자는 33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남파 공작원의 삶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의료 기관에서 위암 3기 판정을 받아 길어야 3개월을 더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식과 채식 요법만으로 7년을 건강하게 살다 갔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최 위원장은 자연 요법에 입문합니다.

최 위원장은 일본의 ‘건축 기술자’ 니시 카츠조(1884~1959)가 독학으로 수립한 ‘니시 건강법’을 역시, 독학했습니다. 니시가 쓴 책을 모두 구해 탐독했죠. 그러다 1999년 마흔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자연 요법을 출산과 육아에 적용했고, 2000년 자연 육아법을 나누는 모임 ‘수수팥떡아이사랑모임’을 설립합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늦둥이를 낳고 키운 경험을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라는 책으로 펴냅니다. 저자 본인에 따르면 2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최 위원장은 ‘자연건강법 전도사’를 자처하며 전국 강연을 다니고 여러 권의 책을 냈습니다. 책에는 물을 많이 마셔라, 생선을 곁들인 채식을 해라, 술과 담배를 끊어라 같은 상식적인 건강법도 있지만, 과학적·의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도 담겨 있습니다. 최 위원장은 여러 저서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송아지의 먹을거리를 먹고 큰 세대의 아이들, 가공식을 먹고 큰 아이들은 성질이 난폭하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합방한 후 낳은 자식은 머리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경험적으로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확인된 사실이다.”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새벽에 잉태한 아이가 똑똑하다.”
“아들을 낳고 싶은 경우에는 어머니 배란일을 전후하여 3~4일간 아버지는 야채 죽을 먹어 영양을 낮추고, 딸을 낳고 싶은 경우에는 배란기 전후로 어머니의 영양 섭취를 줄이면 된다.”
“잉태 후에도 바른 생활을 하면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으므로 기형 검사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부부 관계를 맺고 나서 2퍼센트의 매실 엑기스 농축액으로 질을 세척하는 피임법이 있다.”
“출산 직후 100분간 아기를 나체로 두어 피를 정화시켜라.”
“출산 직후 3일간은 아기를 굶기고 보리차와 소금만 먹여라.”

안아키 사건 때 대한의사협회는 이런 성명을 냈습니다. “질병 치료와 예방에 반의학적인 요법을 적용해 '자연 치유'라는 말로 아이들과 부모들을 현혹하고 우리 아이들의 생명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자들은 불법 의료 행위는 물론 아동 학대, 더 나아가 헌법의 기본 정신을 위배하는 인권 침해 행위 혐의까지 가중 처벌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최 위원장의 지론은 안아키의 극단적 자연 치유 육아법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비과학적 치료법을 전파했다는 점은 같습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문제는 최민희 의원이 인터넷 카페의 운영자가 아니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라는 겁니다. 국회 과방위는 정부의 과학, 기술, 정보, 방송, 통신 정책을 총괄 감독합니다. AI부터 반도체, 바이오, 양자 기술까지 국가 과학 기술의 최전선을 다룹니다. 중소기업과 벤처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유사 과학을 믿는 사람은 부적절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면, 같은 논리를 국회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최 위원장이 내세운 자연 요법은 단순한 대체 의학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기저에는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현대 의학의 과학적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신앙과도 같은 고집 혹은 신념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의 장을 흔듭니다. 백신 거부 운동과 기후 위기 부정론은 검증되지 않은 신념이 과학의 자리를 대체할 때 나타난 현상입니다.

국회 과방위원장 자리가 인사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직위였다면, 최 위원장은 그 자리에 오르기 못 했을 겁니다. 지금 논란이 되는 도덕성이나 언론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 기술을 감독해야 할 자리에 유사 과학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 앉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 교수 해리 프랭크퍼트는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에서 거짓말보다 개소리가 더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려면 적어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만, 개소리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다.”

최민희 위원장의 양자 역학과 조절 T세포 발언은 그래서 거짓말보다 더 위험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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