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 노동 시대의 새벽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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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위험하지만, 누군가에겐 마지막 남은 보루입니다.

‘새벽 배송’ 논쟁이 불붙었습니다. 시작은 국회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였습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자정에서 오전 5시까지는 배송을 하지 않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이것이 ‘새벽 배송 금지 주장’으로 보도됩니다. 오보는 아닙니다. 하지만 오해를 사기 좋은 축약입니다. 민주노총의 주장은 새벽 배송을 전면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0시에서 5시 사이에는 배송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5시부터 7시 사이에 새벽 배송 물량을 다 처리할 수 있을까요? 민주노총은 그렇다고 봅니다. 상품 및 보랭 백 정리 등의 업무에 5시간가량이 걸린다는 겁니다. 배송 기사는 개인 사업자입니다. 쿠팡의 하청 업체와 계약을 맺고 배송 업무를 해 주는 대가로 건당 돈을 받습니다. 그러니 이런 정리 등의 업무는 사실상 계약 외의 일이죠. 이걸 그동안 부당하게 배송 기사들이 담당해 왔는데, 이 업무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회사가 별도 인력을 확보하면 5시부터 일해도 새벽 배송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또, 새벽 배송이 가능한 품목에 제한을 두면 배송 물량 자체가 줄어들어 시간 안에 배송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죠.

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0시부터 시작되는 새벽 배송은 보통 3번의 배송을 돌게 됩니다. 5시부터 7시까지로 제한되면 1번을 다 돌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죠. 새벽 배송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5시부터 배송이 출발하는데 출근 전에 물건을 받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 노총의 주장은 좀 더 촘촘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꽤 많은 언론사에서 언급했던 것이 ‘기저귀’입니다. 새벽 배송이 사라지면 ‘워킹 맘’이 기저귀를 살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를 것이라는 얘기인데요, 빨간 머리띠를 질끈 묶은 택배노조의 이미지와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실제로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 나가는 부모 입장에서 새벽 배송은 유용합니다. 이 문제에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로서도 기저귀는 다급하고 설득력 있게 보일 수 있겠고요. 저출생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프레임을 계산해 짠 보도입니다.

왜 워킹 ‘맘’만 기저귀 문제에 발을 동동 구르는지, 편의점에 기저귀를 들여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보다 부모들이 밤 11시에나 집에 들어와 기저귀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도 괜찮은 것인지는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쪽에서는 배송 노동자들의 생명이 걸린 일인데 기저귀를 갖다 대느냐는 반발이 나오죠. ‘육아 문제에 있어서라면 이기적인 엄마들’이라는 혐오 프레임과도 아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 문제는 기저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달라진 시스템에 맞춰 노동의 형태가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법은 그에 맞춰 달라지지 못했습니다. 사회는 새로운 노동의 형태에 관해 숙의하고 논의하지 못했습니다. 기업과 노동자, 그 노동자들이 속해있지 않은 노동조합, 소비자, 정부가 모두 변화 앞에 늦었습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노동에 관해 먼저 이야기해 봐야 합니다. 이름부터 붙여야겠죠. ‘액화 노동(melting labour)’입니다.

의학적 소견

노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요. 그걸 정해 둔 것이 근로기준법입니다. 일의 방식이나 작업장의 범위, 노동시간과 고용의 형태 등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통적인 노동 개념을 구성하던 경계가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의 이승윤 교수는 액화 노동이라고 개념화합니다. 이 교수의 저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다양한 액화 노동의 현장을 연구자의 관점에서 아주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본 결과를 모았습니다. 데이터를 살피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 잘못 같다.”

고(故) 장덕준 씨의 아버지는 저자와 만나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장 씨는 칠곡 쿠팡 물류센터에서 오랫동안 새벽 노동을 했습니다. 여기에 장시간 노동까지 겹쳤고요. 2020년 10월 12일 퇴근 후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대로 사망했습니다. 급성심근경색이었습니다.

과로는 건강에 치명적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전문가들은 과로보다 심야 노동이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몸의 생체 리듬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쉬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야간 근무는 이 설계를 거스릅니다. 이 때문에 대사 기능에 과부하가 걸리고 손상이 일어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야간 근무를 심혈관질환의 위험인자로 꼽고 있습니다. 또, 야간 근무자의 경우 심혈관질환 위험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고요.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새벽 배송 시스템처럼 연속적이고 고정된 야간 노동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녹색병원의 임상혁 원장은 2024년 국회 토론회에서 ‘관련 연구 논문을 찾을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형태는 어느 나라도 시행하지 않고 있는 노동이라서 그렇다는 것이 임 원장의 설명입니다. 원래 야간 노동은 교대 근무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야간 근무를 한 달 하면 다음 달은 주간 근무를 하는 식입니다. 

이중 빈곤

그런데도 이번 새벽 배송 논란에서 쿠팡 배송 기사들은 새벽 배송을 ‘계속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건강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새벽 시간에 배송 업무를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며 편하다는 겁니다. 주민과 마주칠 일도 적고, 엘리베이터 사용도 자유롭습니다. 교통 체증도 없고 주차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송 기사들이 개인 사업자라는 겁니다. 자기 돈으로 치를 사고 세금을 내는데, 새벽 배송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24시간 편의점을 열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는 것이죠.

“육아나 간병을 해야 하는 등 개인 사유로 야간밖에 일을 못 하시는 분들이 저희 조합원 중에서도 굉장히 많이 계세요.”

쿠팡 노조 위원장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심야에 움직이는 새벽 배송이 누군가에겐 가장 좋은 일자리일 수도 있다는 얘기죠. 쿠팡 노조 측은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새벽 배송 제한’ 주장은 일종의 ‘보복’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쿠팡 노조가 민주노총 소속일 때에는 이런 주장을 하지 않다가 쿠팡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하자 새벽 배송이 도마 위에 올랐다는 겁니다. 

이 문제에 관해 배송 기사 당사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택배노조와 정치권의 목소리는 크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업계와 기업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아젠다를 제시하고 논의 테이블에 올렸으니, 긍정적으로 볼 일이긴 하지만, 아젠다와 논의 자체의 ‘의도’가 무엇인지 묻게 되는 부작용도 발생합니다. 동시에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는 보호와 규제를 이야기하는 이유에는 권력을 둘러싼 욕심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고요.

당사자는 제기하지 않는 문제에 관해 논의해야 할 필요가 정말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이중 빈곤’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중 빈곤은 소득 빈곤과 시간 빈곤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소득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자유시간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리지만, 소득 빈곤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동시에 시간 빈곤은 더욱 심화합니다. 육아나 간병을 하면서 야간에 일해야 하는 쿠팡 배송 기사는 이러한 이중 빈곤에 해당할 확률이 높겠죠.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일수록 이중 빈곤의 위험성이 더 크다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사를 상대로 임금을 올려달라, 근무 시간을 줄여달라고 요구하기 힘듭니다. 계약 해지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면 그에 맞춰야 합니다. 상황을 개선할 방법은 더 많이 일해 소득을 늘리는 것뿐이고요. 이 현상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불안정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휴식과 건강을 희생하더라도 더 많은 임금노동의 기회를 찾으려 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제도에 오히려 반발하며 더 장시간 일하고 더 많이 벌 수 있도록 선택지를 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쉬지 않고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뿐이죠. 낮에는 누군가를 돌보고 밤에는 택배를 분류하거나 새벽 배송에 나서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 일자리의 존재는 이들의 건강을 무너뜨립니다. 이 일자리가 없다면 이들의 생계가 무너집니다. 반드시 양자택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하면 됩니다. 왜 이들에게 선택지가 이 둘 뿐이냐는 질문 말입니다.

새로운 계급 사회

전통적인 ‘노동’의 시대에는 많은 것이 명징했습니다. 임금을 지불하는 고용주가 누구인지, 노동시간과 장소는 언제 어디인지, 그리고 얼마나 이 노동을 지속하며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인지와 같은 것들 말입니다.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입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으면, 투자도 소비도 굳어 버립니다. 경제적 주체로서의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처럼 내년에도 월급을 받으며 영등포로 출근한다는 보장이 있어야 내년의 삶을 계획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런 일자리는 일종의 ‘계급’이 되어 있습니다. ‘정규직’이라는 이름의 계급입니다.

이 계급으로 오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이걸 잘 알고요. 저자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시간당 업무량(Unit Per Hour, UPH)을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순위를 매기고, 이를 정규직 전환을 위한 경쟁과 압박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쿠팡은 UPH를 폐지했다고 밝혔지만, 업무량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없앤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여전히 노동자의 동선과 업무량을 확인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통제’란 어떤 형태일까요? 예를 들면 이런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위 카카오톡 대화는 쿠팡 새벽 배송을 담당했던 40대 택배 기사 정슬기 씨가 쿠팡CLS 직원과 주고받았던 카카오톡 대화입니다. 2024년 5월 사망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아직 수사중입니다. 노조 측은 사망 당시 고인의 노동시간은 야간 노동을 포함해 77시간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일해서 하루 평균 296개의 물량을 처리했고요. 이건 쿠팡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이나 로봇을 이용한 자동 분류 시스템 같은 것이 해낸 일이 아닙니다. 정 씨가 직접 뛰어 만든 숫자입니다.

저자가 만난 한 30대 청년은 1년 6개월 동안 낮에는 프리랜서로, 밤에는 새벽 배송 일을 해 왔습니다. 처음엔 부업으로 시작했지만, 배송 쪽의 수입이 더 높다 보니 점차 만성피로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계획, 그런 거 없고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 거예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서울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김승섭 교수와 저자가 함께 발표한 〈새벽 배송 노동자 1021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새벽 배송 노동자들은 일반 노동자보다 우울 증상을 겪는 비율이 3배에 달했습니다. 절반은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몸은 물론 마음마저 궁지에 몰리지만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응답자의 80퍼센트가량이 ‘태블릿이나 앱으로부터 업무 속도 관련 영향’을 받고, ‘최소한의 성과를 채우지 못하면 일감이 앱에서 자동 취소’되거나 ‘일을 잃을 수도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들이 ‘개인 사업자’라 가능한 일입니다. 동시에 이들을 개인 사업자로 보기 어려운 근무 환경입니다.

정책 표류

갑자기 새벽 배송이 멈추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빠질 겁니다. 이른 아침 오늘치 신선한 재료를 배송 받아왔던 카페 사장님, 아이의 크레파스 준비물을 밤늦게 챙겨야 하는 부모, 당장 새벽 배송을 나가지 않으면 아픈 가족의 치료비를 댈 수 없는 배송 기사 모두 곤경에 처합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도 그 일이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면, 안전하게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노동이었습니다. 아젠다는 테이블에 올라왔으니, 이제는 진짜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지 인터뷰이를 잘 골라야 하겠지요. 질문지도 잘 써야 할 겁니다.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주체는 기업이나 노조가 아니라 정부입니다.

사회 안전망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정부가 돈을 더 써야 한다,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돈으로 세상일이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액화 노동’을 반영한 법제 개정이나, 현실과 유리되지 않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당사자의 현실을 제대로 듣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저자는 책 말미의 ‘연구 노트’에서 우리나라에 일종의 ‘정책 표류’가 발생했다고 진단합니다. 외부 환경은 변화하는데, 정책이나 제도는 개혁되지 않아 사회보장제도의 목표 달성 기능이 약화하는 현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관련된 논의는 쉬이 감정적 대립이나 혐오로 치닫고는 합니다.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도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정치권이나 기업, 혹은 양대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상황이 묘사되는 경우는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연구자의 관점으로 일하는 우리를 비추어 보는 책입니다. 왜 변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논리를 갖추어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이런 관점이 필요합니다. 사실, 새벽 배송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제에 관해 이런 관점이 필요합니다.
bkjn book review는 단순 서평이 아닙니다. 원전을 해체해 다른 책, 기사, 논문과 연결합니다. 매월 한 권의 책을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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