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대응이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

bkjn review

기후 문제는 정치 과목이 아닙니다.

기후 위기 대응이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

2025년 11월 11일

정부가 비난받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일이라는 것이 워낙에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지라 어떤 분야의 어떤 정책이라 해도 이 세상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죠. 아무리 신중하게 결정해도 손해를 보는 집단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부가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례적입니다.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으로부터 비난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얘깁니다.

NDC는 파리협정에 따라 각 나라가 스스로 정해 제출하는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입니다. 우리나라는 탄소 배출량이 정점을 찍었던 2018년을 기준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얼마나 줄일 것인지를 5년마다 정하는데, 이번에 우리가 정한 목표는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퍼센트 감축입니다. 목표 상한선인 61퍼센트는 국제 권고에 맞췄습니다. 하지만 실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는 53퍼센트를 기준으로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산업계는 들고일어났습니다. 너무 높다는 겁니다. 감당할 수 있는 상한선이 48퍼센트라고 주장합니다. 안 그래도 경제가 어려운데 탄소 배출까지 신경 쓰고 돈을 들여서는 국제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논리죠. 환경 단체들도 들고 일어났습니다. 실질적으로 적용될 53퍼센트라는 기준이 턱없이 낮다는 겁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아예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는 평가입니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할 결론을 들고 우리 환경 당국은 브라질로 향했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에서 이번에 정한 NDC 목표도 공식 발표합니다. 답답합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 문제는 원래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처럼 풀려 들면 말입니다.

기후 위기의 이상한 특성

누군가에게 기후 위기는 당면한 위기입니다. 당장 여름과 겨울이 너무 혹독합니다. 폭우와 가뭄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어느 나라에선가는 사람들이 기후변화로 고향을 잃고, 집을 잃고 일자리를 잃는다고 합니다. 곧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는 비극입니다. 지금이라도 지구 온난화를 멈춰 세워야 합니다. 생존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기후 위기는 머리로 이해해야 할 과학입니다. 나의 삶은 여전히 안온하며 어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여름이 덥다고 하는데, 여름은 원래 덥습니다. 어디선가는 기후 재난으로 목숨을 잃는다지만, 여전히 나의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자연은 원래 예측 불가능의 영역이기도 하고요.

둘 중 누구도 틀리지 않습니다. 기후 위기란 원래 그런 문제입니다. 비슷한 것처럼 보이는 환경오염과 비교해 볼까요. 어떤 기업이 폐수를 불법으로 유출해 강이 오염되었다고 가정해 보죠. 주민들은 당장 악취를 느끼고, 건강을 잃게 됩니다. 주변 농지까지 오염되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피해가 쌓여 보고되면 당국이든 환경 단체든 조사에 나섭니다. 강에서는 오염 물질이 검출되고 책임 소재를 따지기 시작합니다. 손에 잡히는 피해와 확실한 숫자, 책임의 경계가 분명합니다.

반면, 어떤 기업이 탄소를 너무 많이 배출하고 있다고 해 보죠. 정부로부터 규제도 받고 환경 단체로부터 비난도 받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후 위기의 위험은 미래에 존재합니다. 알아도 진심으로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탄소 감축을 위해 비용을 지출한다면, 그만큼 비용을 아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년도 임금 인상 폭을 줄이는 식으로 말이죠. 돈 문제는 현실입니다.

기후 위기는 지성을 통해서야 겨우 인식할 수 있는 위험입니다. 본능이나 감정적 반응으로 인지하는, 일반적인 위험 상황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인류는 기후 위기에 대한 공감각이 없습니다. 제각기 관심을 둔 만큼, 정보에 노출된 만큼, 애써 이해한 만큼 위기의 크기를 다르게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민하고 부서지기 쉬운 판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 대응의 중심에는 유엔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유엔 산하의 두 기구가 중심입니다. 그중 하나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입니다. 정치로 기후 위기를 완화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협약에 가입한 당사국들이 매년 회의를 열어 전 지구적 목표를 정합니다. 이 회의의 이름이 바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Conference Of the Parties)’입니다. 올해로 30번째입니다. 그래서 지금 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는 총회는 ‘COP30’입니다.

1997년 COP3에서는 ‘교토의정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선진국이 의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여 나가겠다는 약속입니다. 2015년 COP21에서는 ‘파리협약’이 나왔죠.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화하기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막아 내자는 약속이었습니다. 물론,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24년에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죠.

약속에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치로 문제를 해결하자면서, 정작 정치가들이 힘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특히 세계 제일의 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태도가 미온적이었죠.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약에서 탈퇴했고요.

당연한 일입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은 국제 무대에서 힘이 약한, ‘개발도상국’에 더욱더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기후 재난은 고위도 지역보다는 저위도 지역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투발루나 솔로몬 제도, 피지, 바누아투 등과 같은 태평양 도서국들 말입니다. 나라가 통째로 가라앉고 있는 이 섬나라들과 미국 워싱턴이 느끼는 위험의 정도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미국도 기후 재난을 겪고 있지만, 사회적 자본이 아직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체감하는 위험의 크기가 다른데 하나의 목표를 만들고 힘을 모으자니, 너무 순진한 이야깁니다. 특히나 정치판에서는 말이죠.

세계 2위의 탄소 배출국이 이러하니 총회의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회의장 밖으로 나갔으니, 다른 나라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COP에서는 판을 뒤집을만한 강력한 협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판을 뒤집으려다 판을 깰 수도 있으니까요. 꽤 많은 언론이 COP 소식을 전하면서 기후 대책보다는 경제적인 면에 주목합니다. 씁쓸하지만, 어찌 보면 합리적인 보도 방향입니다. 어차피 COP는 애초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기후 정책 잔혹사

그렇게 소심한 마음으로 내놓은 결과 중 하나가 바로 파리협약에 포함되었던 ‘NDC’입니다. 각 국가가 ‘알아서’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세워 제시합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알아서’ 규제하고 정책을 설계합니다. 물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체면은 좀 깎이겠지만, 애당초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 아닙니다.

다만, NDC는 탄소 정책의 기준점이 됩니다. 그래서 산업계도, 환경 단체도 주목하죠. 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는 ‘톱다운 방식’으로 결정했습니다. 2030년까지 40퍼센트를 감축하겠다는 것이었죠. 당시,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맞추겠다는 탄소중립을 선언했는데, 2030 NDC는 그 중간 다리 격에 해당합니다. 단, 사실상 선언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언제’와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선언의 의미마저 퇴색됩니다. 2023년 탄소중립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날치기 공청회’를 열며 반발을 사더니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대폭 깎아줬습니다. 전체 목표치는 그대로 두고 말입니다. 현실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을 세운 주체를 보면 이해는 갑니다. 당시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계획이 수립되었는데,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환경부, 기상청 등 20개 부처가 참여했습니다. 20가지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가 힘겨루기한 끝에 나온 결과이니, 비정상이 정상입니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제정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2024년 8월의 일입니다. 탄소중립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제대로 책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탄소 배출을 줄여 나갈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을 다시 만들라는 얘깁니다. 그로부터 기후 정책은 멈춰 서 있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숙제를 받아 들고 출범했습니다.

출제자의 의도

게다가 마침맞게 올해가 중간 과제 제출 기한입니다. 2030 NDC에 이은 2035 NDC를 COP30에서 제출하기로 되어 있던 겁니다. 이번 정부는 ‘공론화’로 이 문제를 돌파하고자 했습니다. 톱다운이 아니라 상향식으로 정책을 만들겠다는 야심이었죠. 새로이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중심으로 분야별 의견을 취합했습니다. 6차례에 걸친 토론회도 열었습니다. 하지만 토론회에서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기업가의 기후 위기와 생태운동가의 기후 위기는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정부 부처 간의 이견도 좁히지 못했을 테고요. 

결국 미래를 바라보는 부처에서는 61퍼센트를, 현재를 일구는 부처에서는 53퍼센트를 채택한 꼴이 되었습니다. 기후 대응 기술 개발 등에는 61퍼센트를, 기업 규제 등에는 53퍼센트를 적용하겠다는 겁니다. 2035 NDC가 53~61퍼센트라는 ‘범위’로 제시된 이유입니다. 합의가 되지 않아 제시된 이상한 목표입니다. 그마저 산업계와 환경 단체 모두 반발하고 있고요.

이제는 좀 의심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기후 문제가 과연 협의로 풀어갈 문제인지 말입니다. COP가 정치인들의 ‘그린워싱’ 축제로 전락한 이유도, 토론을 6번 해도 모두가 부정하는 NDC 수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합니다. 기후 문제는 정치 과목이 아닙니다. 사회 과목도 아닙니다. 토론해서 논술문을 작성할 것이 아니라, 계산해서 정해진 답을 내놓아야 할 과학 문제입니다.

유엔의 또 다른 기후 대응 기관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입니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모여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집대성해 보고서 형태로 발표합니다. 학자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문장만 보고서에 담아야 하니, 최대한 보수적으로 작성됩니다. 기후변화의 위험을 누군가는 3으로, 누군가는 9로 본다면 결과적으로 ‘3 혹은 그 이상’이라고 적는 식입니다.

가장 최근에 발행된 보고서는 2023년에 나온 제6차 보고서입니다. 이를 근거로 계산한 결과 우리나라의 2035 NDC는 61퍼센트, 혹은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1.5도 한계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건 토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저 결론에 관한 이해와 설득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숙의’나 ‘토의’라는 단어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납득하고 따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지동설을, 진화론을 숙의로 결론지을 수는 없습니다.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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