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에 나타난 포드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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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베네수엘라 사이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카리브해에 나타난 포드 항공모함

2025년 11월 13일

또 하나의 전쟁이 일어날 위기입니다. 미국 해군은 11월 11일 제럴드 R. 포드 항공모함이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해에 진입했다고 밝혔습니다. 포드함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입니다. 4000명 이상의 해군과 수십 대의 항공기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동쪽의 아드리아해에 배치되어 있다가, 지난달 24일 이동 명령을 받고는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왔습니다.

미국에 마약을 밀매하는 베네수엘라의 마약 카르텔을 해체하기 위해서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런 마약 카르텔들을 테러 단체로 지정해 군사 작전의 근거를 마련하고, 9월 초부터 미군 자산을 카리브해로 보냈습니다. 베네수엘라 앞바다에서 미군은 마약 운반선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최소 19차례 공습했습니다. 사망자 수는 최소 76명입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진짜 목적이 정권 전복이라고 의심하고 있죠. 그렇지 않다면 고작 마약 운반선을 단속하겠다고 항공모함까지 동원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은 미국의 침공에 대비해 병력 20만 명에게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정규군뿐만 아니라 민명대까지 소집해 작전 대비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친미에서 반미로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관계는 30년 전만 해도 원만했습니다. 미·소 냉전 때는 함께 자유주의 진영에 서기도 했죠. 그러나 ‘21세기 사회주의’를 천명한 우고 차베스가 1999년 집권하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차베스에게 미국은 중남미를 ‘뒷마당’ 취급하는 패권 국가이자,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실험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차베스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2013년까지 집권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정치, 경제, 산업, 외교 전반에 걸쳐 반미 노선을 채택했습니다.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고, 석유 회사의 국유화를 추진하고, OPEC 팀워크를 강화해 유가 인상을 부추겼습니다. 모두 미국이 반대하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차베스는 특유의 거친 입담으로 미국 속을 계속 긁었죠.

양국 관계가 갈수록 악화했지만, 미국은 베네수엘라 제재 카드를 빼들지 않았습니다. 석유 때문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원유 수입에서 베네수엘라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10~15퍼센트였습니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미국의 3대 원유 공급국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껄끄럽기는 해도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잘 가져다 쓰고 있어서, 경제적 제재를 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 들어 미국에서 셰일 혁명이 일어납니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의 폭발적 생산으로 미국은 순식간에 에너지 독립국이 됩니다. 베네수엘라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이즈음부터 미국은 자신의 ‘뒷마당’에서 겁도 없이 반미를 외치는 베네수엘라를 옥죄기 시작합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오바마부터 트럼프까지

2013년 차베스 사후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인물이 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입니다. 마두로는 차베스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낸, 차베스의 정치적 후계자입니다. 마두로는 석유를 팔아 복지를 강화하는 차베스의 사회주의 정책은 물론이고 반미 성향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였습니다. 셰일 혁명에 힘입어 오바마 정부는 베네수엘라에 제재를 가합니다.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인권 침해와 부패에 연루된 베네수엘라 고위 관료들의 미국 내 자산과 은행 계좌를 동결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미국 정부의 제재는 개인을 향했습니다.

2017년 출범한 트럼프 1기는 양국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몰고 갑니다. 오바마 정부는 베네수엘라의 원유 부문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는 하지 않았습니다. 국제 사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탓이었죠. 트럼프는 달랐습니다. 베네수엘라는 국가 전체 수출의 90퍼센트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원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반미 정권을 뒤흔드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2019년 트럼프 정부는 마두로 정권의 자금줄로 지목된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기업에 대해 자산 동결과 송금 금지 등 강력한 제재를 부과합니다. 게다가 이때는 미국과 사우디가 원유 생산을 늘려 국제 유가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국영 석유 기업의 시설 노후로 원유 생산량이 줄고, 수출이 막히고, 유가까지 떨어져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됩니다.

‘위 아 더 월드’를 외치는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며 일부 제재를 완화하기는 했지만, 베네수엘라 경제가 살아나기에 4년은 너무 짧았습니다. 2025년 1월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왔죠. 트럼프는 1기에서 미완에 그친 베네수엘라 정책을 완수할 작정입니다. 게다가 지금 트럼프의 곁에는 1기 때 그를 막아 세웠던 원로 그룹이 없습니다. MAGA 정신으로 똘똘 뭉친 ‘예스맨’뿐입니다.

트럼프의 명분

트럼프는 왜 마두로를 몰아내려 할까요. 세 가지 명분이 있습니다. 첫째, 민주주의 수호입니다.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마두로 정권이 대규모 선거 조작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야권에 따르면 투표 전산 자료 82퍼센트를 분석한 결과, 야권 후보의 득표율이 67퍼센트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선관위는 개표 결과 마두로가 승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트럼프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 마약 카르텔 소탕입니다. 트럼프는 마두로를 포함해 정권 고위급이 ‘로스 솔레스 카르텔’을 구축해 마약 유통에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카리브해 선박 폭침은 이 프레임 위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지난 8월 미국 정부는 마두로를 아예 “세계 최대의 마약 밀매업자”로 지목하면서 현상금 5000만 달러를 걸었습니다.

셋째, 불법 이민 방지입니다. 미국으로 넘어오는 남미 이민자 중 상당수가 베네수엘라 출신입니다. 트럼프 정부는 마두로 정권이 미국에서 송환되는 베네수엘라 국적의 불법 이민자 수용에 비협조적이고, 베네수엘라 범죄 조직이 미국 내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미국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 해도, 마약을 운반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외국 선박을 폭침하는 건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영국, 캐나다, 프랑스 같은 자유주의 진영마저 미국의 군사 작전을 불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예 영국은 미국과 카리브해 마약 밀매 의심 선박에 대한 정보 공유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미국과는 동맹이지만, 공범은 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전통적인 우방국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앞바다에 항공모함까지 배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진짜로 원하는 건 마약 밀매 단속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미국이 정말 원하는 건 가이아나 유전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미국 석유 기업 엑손모빌은 2015년 가이아나 해상에서 대형 유전을 발견했습니다. 총 추정 매장량이 110억 배럴이 넘습니다. 매장량 기준 세계 17위입니다. 그런데 가이아나 바로 옆에 있는 나라가 베네수엘라입니다. 마두로는 유전이 발견된 지역이 베네수엘라 영토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트럼프가 1기 때보다 더 강경하게 나오는 또 다른 이유로 중국을 꼽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정권 이래 중국과 거리를 좁혀 왔습니다. 미국의 제재로 돈줄이 막힌 뒤에는 밀착 속도가 더 빨라졌죠. 중국이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면 베네수엘라가 석유로 갚는 식입니다. 미국이 중동으로 눈을 돌린 사이, 중국은 베네수엘라를 포함해 중남미 여러 국가와 십수 년간 협력 관계를 강화해 왔습니다. 중국의 중남미 진출 교두보인 베네수엘라를 미국이 되찾으려면, 일단 마두로를 축출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미국은 정말 공격할까?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그러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이 공격을 감행한다면 아주 짧고 집중된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기습할 수는 있지만, 장기전은 없다는 것이죠. 2025년 6월 미국이 이란 포르도 핵시설을 기습 타격한 방식과 유사합니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군사 기조는 명확합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장기 주둔은 하지 않고, 따라서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전후 재건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트럼프 정부는 강력한 위협을 가하고, 필요하면 핀셋 타격을 감행하고, 그 이후 바로 철군하는 모델을 선호합니다. 미군이 베네수엘라에 투입되더라도, 임무는 수일 내 종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직접 타격하지 않고 마두로 정권이 내부에서 무너지는 겁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코앞에 항공모함을 배치해 마두로 정권과 군부를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군부가 마두로를 몰아내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사건은 의외의 곳으로 불똥이 튀거나, 의외의 곳에서 불똥이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뒤 감옥에서 사망한 제프리 앱스타인의 이메일 세 통이 11월 12일 공개되었습니다. 트럼프가 자신의 집에서 피해자와 시간을 보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형 이슈입니다. 트럼프에게는 대형 이슈를 덮을 초대형 이슈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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