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미래를 향한 상상력

bkjn review

안 그래도 대학의 가성비는 점차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의 미래를 향한 상상력

2025년 11월 14일

대학가에서 연이어 부정행위가 적발되고 있습니다. AI 때문입니다. 지난달 연세대에서는 비대면으로 치러진 시험에서 생성형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적발되었습니다. 수강생 600여 명에 달하는 대형 강의였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목명은 ‘자연어 처리와 챗GPT’였고요. 서울대학교에서는 ‘통계학 실험’ 과목 중간고사에서 일부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다 적발됐습니다. 재시험을 치를 예정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2023년에 실시된 조사에서 대학생의 90퍼센트 정도가 챗GPT를 활용해 숙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노트 필기, 시험 대비, 요약, 에세이 작성 등 학습 과정의 많은 부분을 AI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대학은 각종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대면 시험, AI 탐지 기술 등입니다. 하지만 한계가 명확합니다. 오픈북으로 치러지는 시험에서 AI 사용을 완전히 틀어막기 힘듭니다. AI 사용 감지 소프트웨어도 완벽하지 않고요.

문제입니다. 학교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특히나 대학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번이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에 관해 처음부터 다시 고심해 볼 기회 말입니다.

속임수와 혁신 사이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한국계 학생 ‘Chungin Roy Lee’는 친구들과 함께 숨겨진 창으로 AI를 띄워 문제를 풀게 하는 도구 ‘Interview Coder’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홍보하는 영상을 올렸죠. 아마존 인턴 면접에서 실제로 AI로 답을 입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학교 측은 이것을 ‘부정행위 도구’라고 판단했고, Lee에게 징계를 내렸습니다. 결국 Lee와 친구는 자퇴했습니다.

Lee와 같은 학생들에게 어차피 대학은 지식의 전당이 아닙니다.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업에 성공하기 위한 발판 같은 곳이죠. Lee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대학 과제의 대부분은 의미가 없다. AI로 ‘해킹’ 가능하고, 직접 하기엔 재미가 없었다.”

생성형 AI의 활용은 이제 ‘속임수’가 아니라 도전과 혁신, 생산성 증대입니다. Lee는 결국 VC들로부터 530만 달러의 창업 자금을 투자받았습니다. Lee가 설립한 스타트업 ‘클루리(Cluely)’의 선언문은 ‘속임수(cheating)’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계산기나 맞춤법 검사기처럼 클루리 앱도 곧 표준 도구가 될 것이라면서 말이죠.

채점이 형벌이 될 때

시대가 2025년으로 와 닿는 동안 인류가 지식과 정보를 생성해 유통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100년 전에는 위대한 학자만이 알 수 있었던 지식을 5초면 검색해서 바로 찾아볼 수 있죠.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라도 생성형 AI가 쉽게 풀어 설명해 줍니다. 만약, 어떤 대학에서 계산기로 간단히 풀 수 있는 문제를 과제나 시험으로 낸다고 가정해 보죠.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일이 지금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물론, 대학이 게을러서라고 하기엔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대학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기술을 다시 빠르게 따라잡아야겠죠.

교육 현장에서는 많은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 강사는 교실에 벌어지는 생성형 AI 때문에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과의 관계가 변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채점과 피드백 과정이 함께 지성을 쌓아 올리는 ‘협력’의 과정이 아니라 부정행위를 적발하려는 적대적 행위로 변질되었다는 겁니다. 또, 인간적 교감이 부재한 AI 생성 에세이를 읽고 평가하는 과정은 정신적으로 고갈되는 일이라고도 토로합니다. 한 소설에 등장하는 형벌과도 같다는 겁니다. 일관성 없는 텍스트를 끝도 없이 읽어야 하는 형벌입니다.

이렇다 보니 아날로그로의 회귀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와이 마노아대학에서 50년 동안 강의를 해 온 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노트북을 치우고 손으로 에세이를 쓰도록 합니다. 일부 학생이 AI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버클리대학 등도 대면 필기시험으로 회귀하고 있고요. 이것도 분명 방법입니다. 아무리 계산기가 흔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초등학교에서는 사칙연산을 배워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대학 교육에서도 연필로 사칙연산을 하도록 요구받아서는 곤란할 겁니다. 이제는 대학이 어떤 교육 기관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되짚어야 합니다.

블루칼라 프리워커

안 그래도, 대학의 가성비는 점차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식 습득의 효율은 제쳐두고, 미래를 위한 투자처라는 관점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에서는 보통 학자금 대출을 전부 상환하는 데 20년가량이 걸립니다. 전반적인 교육 비용은 실질 임금 대비 8배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요. 1980년 이후 등록금은 1184퍼센트 증가했습니다. 평균적으로 볼 때 가계 소득의 80퍼센트를 지출해야 합니다. 돈을 쓴 만큼 소득을 늘리려면 취업 전선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AI가 일자리를 먹어 치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롭게 취업 시장에 진입하는 대학 졸업생들의 일자리가 말이죠. 고졸미만의 실업률은 안정되거나 감소하는 반면, 학사 이상의 직무에 대한 채용은 상대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조사가 적지 않습니다. 포드의 CEO 짐 팔리는 AI가 미국 사무직 근로자의 절반을 사실상 대체할 것이라고 장담했죠.

이런 시대에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본능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숙련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교육 기관의 인기가 상승하는 겁니다. 물론,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와는 사회 구조가 다르죠. 그럼에도 대학의 쓸모에 대해서는 의심이 늘고 기술직에 대해서는 선호가 늘어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지금의 경향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한 설문 조사에서 미국 청년층의 절반가량이 숙련 기술 직종에서 경력을 쌓는 데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AI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소멸할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대학 교육의 가치가 교육의 질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서울대학교에서 7학기까지 성실하게 공부했다고 가정해 보죠. 마지막 8학기째에는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최종 학력은 ‘중퇴’에 그쳤습니다. 이 학생이 같은 학과의 졸업생 평균 소득의 8분의 7을 벌 수 있게 될까요?

대학의 가치는 많은 경우 ‘양가죽 효과(Sheepskin effect)’에서 비롯됩니다. 예전에는 대학 졸업장을 양가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입니다.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했는지보다는 학위 그 자체가 소득을 결정합니다. 즉, 학위가 사회적 지위를 구성합니다. 그렇다면 완전히 새로운 지식의 시대에는 대학이 이 역할에 더욱 충실할 수도 있습니다. 학생의 교육 수준과 자질을 평가해 인정하는 ‘학위 수여’의 기관 말입니다.

단어를 뱉어내는 계산기

지나치게 비관적인 이야기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대학이 향후 ‘지식 전달 기관’보다는 노동 시장의 진입과 분류를 위한 ‘인증 기관(credentialing institution)’으로 남게될 수 있다는 논의는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연구의 기능은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해야 하겠지요.

또, ‘Flipped classroom’이라는 개념도 있죠. 학습 활동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학교에서는 감독하에 문제 풀이나 토론 등을 하는 겁니다. 생성형 AI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사람이 평가해 학위 수여라는 인증 과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훨씬 자연스러워질 겁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과연 무엇을 평가하게 될 것인지가 과제로 남습니다. 적어도 챗GPT로 간단하게 풀 수 있는 시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챗GPT에 어떤 프롬프트를 넣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시험 문제가 이 시대에 맞는 평가 방식이겠죠. 샘 올트먼은 LLM을 ‘단어용 계산기’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계산기는 이미 최고급 공학용 계산기의 수준을 뛰어넘었습니다. 이것도 지금 당장의 얘기입니다. 메타를 떠나는 얀 르쿤처럼 LLM은 한계가 명확하다며 ‘월드 모델’로 방향을 트는 선구자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대학이 지식을 둘러싼 권위를 독점하는 기관이라면 이제 ‘지식’과 ‘지성’의 재정의부터 서둘러야 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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