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2025년 11월 15일까지 국내 논문 중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어 논문 게재가 철회된 사례가 204건으로
나타났습니다. “개인 맞춤 제작 논문, 침대에서 받아 보세요”라고 홍보하는 ‘논문 공장’도 등장했습니다. 석사 논문은 1200만 원, 박사 논문은 3000만 원이랍니다. 결제를 마치면 2주 내 완성됩니다.
연구 윤리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업체 측이 아마도 실제 소요 시간보다 훨씬 넉넉하게 제시했을 ‘2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1] AI 도구는 과거에는 며칠부터 몇 주 걸리던 일을 몇 시간 또는 몇 분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저 역시 AI를 파트너처럼 활용하면서 생산성이 크게 올랐습니다. 그런데 의사 결정의 리드타임이 급속히 압축되면서 시간 감각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전까지 창작이란 시간을 들이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글을 잘 쓰려면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정리하고 초고를 작성하고 다시 읽고 고쳐 쓰는 과정을 순서대로 거쳐야 했습니다.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작업도 마찬가지였죠. 콘셉트를 잡고, 러프 스케치를 하고, 수정하고, 색상과 서체를 테스트하고, 디테일을 보완해 ‘final_251117_4’를 뽑아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좋은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시간을 많이 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이 깊었고 그만큼 완성도가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10년을 공들인 작품’이라는 말처럼 시간 자체가 학습, 숙련, 사고의 심화를 뜻했습니다. 창작이란 결과물에다, 그 결과물을 얻기까지 들인 시간을 더한 말이었습니다.
창작의 재정의
생성형 AI가 나오고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창작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창작은 시간을 얼마나 들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줄이느냐의 문제로 바뀌고 있습니다. 기획서에 담을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보고서의 구조를 설계할 때, 디자인 시안을 잡을 때, 우리는 AI에 참고 자료를 던져 주고 프롬프트를 몇 줄 입력합니다. 예전 같으면 최소 몇 시간에서 며칠은 걸렸을 초안이 몇 분 안에 생성됩니다.
이 놀라운 경험이 더 이상 놀랍지 않고 당연한 일상이 되는 순간, 창작이 재정의됩니다. “내가 이걸 직접 하는 게 중요한가?”, “어떻게 해야 더 빨리 완성할 수 있을까?”를 묻게 됩니다. 즉 창작이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얼마나 시간을 덜 쓰고 결과에 도달하느냐의 문제로 바뀝니다. 우리는 점점 뭔가를 ‘한다’는 감각보다 예상 작업 시간을 ‘단축한다’는 감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사고하는 방식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AI 시대 이전에는 문제를 맞닥뜨리면 뇌를 이런 순서로 움직였습니다. ①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구상한다. ②구조를 설계한다. ③자료를 찾는다. ④내용을 작성한다. ⑤계속 고치면서 답에 접근한다.
그런데 AI 시대로 접어들며 뇌는 처음부터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최단 경로를 찾게 됩니다. ①어떻게 프롬프트를 구성해야 가장 빠르게 결과가 나올지 생각한다. ②생성된 여러 버전 중 하나를 선택한다. ③거기에 내 색깔을 살짝 입힌다.
2022년 11월 30일 이전의 인간은 “이 문제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같은 내용 중심 질문을 먼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간은 수단 중심 질문을 합니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써야 최대한 손 안 대고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를 먼저 묻습니다. 질문의 출발점부터가 다릅니다. ‘무엇이 옳은가’에서 ‘어떤 경로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가’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뇌는 깊이 파고드는 추론형 사고보다 경로 최적화된 사고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시간 효율을 우선하는 사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챗GPT에 여러 모델이 있듯, 내 생각의 기본 모드가 추론형에서 최적화형으로 고정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뇌는 챗GPT처럼 클릭 몇 번으로 모델을 바꿔서 쓰기가 어려우니까요.
사라지는 중간 단계
생각하는 기관인 뇌는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뇌의 무게는 체중의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우리 몸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씁니다.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 소모가 막대한데, 추론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하면 에너지가 더 들어갑니다. 그래서 뇌는 노트북으로 치면 ‘배터리 최적화’를 선호합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 뇌에 두 가지 시스템이 있다고 말합니다. 시스템1은 빠르고 자동적이고 직관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에너지를 적게 씁니다. 시스템2는 느리고 분석적이며, 논리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인간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능한 한 시스템2를 가동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편향은 생각을 덜하기 위한 전략인 거죠.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시간 단축’이 최우선 과제가 되면, 자동으로 뇌가 싫어하는 구간이 생깁니다. 중간 단계입니다. 우왕좌왕하는 시간, 되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막혔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 맞는지 스스로 의심하는 시간입니다. 뇌가 가장 활발히 작동해야 하니 뇌가 싫어하는 단계이자, 경로 최적화 사고에서는 비효율처럼 보이는 시간입니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라면 인지를 왜곡할 만큼 제멋대로인 우리 뇌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태를 본능적으로 회피하려 합니다. 경로 최적화 사고에 익숙해진 인간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겠죠. “이 중간 과정을 그냥 AI가 대신 해주면 안 될까?”
모호함에 대한 내성은 창의적 사고와 양의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모호한 상황을 견디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불확실하고 복잡한 문제를 조급하게 끝내려 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해 더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모호한 중간 단계가 생성형 AI의 블랙박스 속에서 처리되고 있습니다.
커서가 깜빡이는 빈 화면을 마주하지 않고 순식간에 생성된 것 중에서 괜찮은 것을 고르고 조금 손보는 방식에 익숙해지면, 우리의 인지 구조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창작자라기보다 가격 비교 사이트의 사용자처럼 사고하게 됩니다. 1부터 10까지 직접 만드는 뇌에서, 여러 옵션을 비교해 가며 7~9 사이에서 선택하는 데 최적화된 뇌가 될 수 있습니다.
시간 감각의 변화
생성형 AI는 중간의 시간을 거의 제로로 만듭니다. 사라져 가는 중간 단계를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꼭 붙잡고 시간을 태우다 보면, 한번씩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게 이렇게 오래 붙들고 있을 일인가?’
‘AI에 시켜도 되는 일인데, 내가 직접 하는 건 비효율적이지 않나?’
이 묘한 죄책감이 저를, 그리고 어쩌면 여러분을 더 편하고 빠른 방식 쪽으로 밀어붙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반나절 만에 그럴싸한 보고서를 뽑아내는데, 나만 일주일 넘게 기다려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느림은 ― 실은 적정 시간인데, AI로 인해 느림이 되어 버린 이 속도는 ― 더 이상 깊이나 장인 정신 같은 것으로 해석되지 않고, 비효율과 뒤처짐으로 여겨집니다.
실제 작업 현장에서도 시간 감각의 변화가 체감됩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책 표지 디자인을 디자이너에게 의뢰하면 한 달쯤 지나 시안 두어 개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좀 급하다고 하면 일주일 만에 네댓 개가 도착합니다. 예비 저자에게 목차 구성을 요청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길면 한 달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킥오프 미팅을 하고 사나흘이면 초안이 도착합니다.
AI 활용이 기본값이 되면서 인간답지 않은 속도가 표준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창작이 시간을 들이는 과정에서 시간을 줄이는 기술로 바뀌면, 한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이 전보다 늘고 속도도 빨라질 겁니다. 다만 이 속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을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AI가 정한 작업 패턴에 종속되는 존재로 변해 갈 겁니다.
인간은 AI의 코파일럿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