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모노폴리

bkjn review

우주에 의존하는 시대로 진입합니다. 기술 격차가 지금과 같다면, 스타링크는 새로운 시대의 결정적 존재가 됩니다.

스페이스 모노폴리

2025년 12월 9일

이제 한국에서도 스타링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통신망이 닿기 힘든 곳에서도 위성 통신을 이용해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요즘 같은 때에 그런 곳이 어디 있겠나 싶지만, 바다 한복판이나 하늘 위, 사막 한가운데 같은 곳에서는 꽤 유용합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인 ‘스페이스X’가 제공하는 서비스라 우리나라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죠.

하지만, 좀 낯설게 느껴집니다. 한국에선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는 곳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수요가 탄탄한 모양입니다. 스페이스X는 무섭게 성장해 이미 NASA 한 해 예산보다도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올해 매출은 155억 달러가량, 그중 80퍼센트를 스타링크 위성 통신 서비스 사업으로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놀라운 성과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괜히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스타링크는 이런 숫자들을 뛰어넘는 미래를 품고 있는 기술입니다. 희극도, 비극도 예정된 미래 말입니다.

장면 1.

2031년, 사람이 화성이 도착합니다. 스페이스X 소속 연구진들입니다. 이미 2026년과 2028년에 지구를 출발해 화성에 먼저 도착한 옵티머스들이 연구진을 맞이했습니다. 화성의 이곳저곳을 탐사하는 임무를 맡은 이들은 일단 장비를 펼쳐 지구의 스페이스X 사무실로 착륙 보고를 보냅니다.

화성에서 보낸 보고 내용은 지구에 15분 정도 후에 도착합니다. 화성의 스타링크M(Starlink Mars) 서비스 덕분입니다. 그동안 옵티머스가 보내온 화성의 이미지나 토양 데이터 등도 스타링크M을 통해 지구 근처까지 전송되었고, 그 내용은 지구 저궤도에 위치한 AI 데이터센터로 보내져 추가 분석 과정을 거쳤습니다. 우주에 건설된 이 데이터센터는 자체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습니다.
머스크는 2025년 12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우주 데이터센터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 출처: Sky News
물론, 상상 속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될 가능성을 아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일론 머스크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옵티머스에 이어 사람을 화성에 보내겠다는 계획은 이미 2025년 5월에 구체적인 시간표와 함께 발표한 것입니다. 이어 11월에는 젠슨 황과 함께 참석한 투자 포럼에서 우주 데이터센터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지구에서 데이터센터를 지어보니, 한계가 명확했다며 우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머스크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엔비디아의 최상급 GPU 10만 장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묶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AI 훈련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콜로서스(Colossus) 데이터센터’입니다. 그런데 벌써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초기 가동에만 150MW 규모의 전력이 필요했습니다. 멤피스 지역의 전력망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데이터센터 주변으로 엄청난 대용량 배터리를 배치하고 가스 발전기까지 동원해 가동 중입니다. 규모를 더 키우면 전력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데이터센터 냉각에도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슈퍼마이크로(Supermicro)와 협력하여 대규모 수랭식 냉각 시스템을 도입했죠. 앞으로 GPU 100만 장 규모로 확장할 계획인데, 멤피스에서 가능할지 불투명합니다.

우주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머스크의 주장입니다. 차가운 우주 공간에서는 GPU 냉각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복사열로 방출됩니다. 또, 우주에는 흐린 날도 맑은 날도 없습니다.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태양이 비추니 배터리도 필요 없이 지속적인 태양광 발전으로 필요한 만큼 전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 태양광 패널에 유리나 프레임 등도 필요 없어 인프라 구축이 더 저렴해집니다. 머스크는 테라와트(TW)급의 전력 확보가 지구상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우주에서는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장면 2.

2032년 여름, 전 세계에 기후 재난이 발생합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여럿도 폭염이나 가뭄, 폭우 등으로 인해 멈춰 섰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물 폭탄에 가까운 집중 호우가 며칠이고 이어지면서 데이터센터 곳곳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를 표방하며 전남 해안가에 야심 차게 건설된 정부의 ‘AI 특화 제3 정부통합전산센터’가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되었습니다. 비상 발전기마저 물에 잠기며 한국형 소버린 AI 기반의 대국민 서비스, ‘AI 국민 비서’가 블랙아웃 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예전 주민센터의 공무원이 주로 담당했던 일상적인 민원 업무나 문의 사항 등을 처리하는 시스템입니다. 또, 기본적인 수준의 AI 에이전트 역할도 제공하기 때문에, AI 소외계층인 고령층과 저소득층의 의존도가 높습니다. 

시스템이 멈추자 당장 일상이 마비됐습니다. 노령 연금이 들어오는 날짜가 궁금한 어르신도, 내 집 마련을 앞두고 서류를 발급받아야 하는 매수인도 발만 동동 구르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AI 에이전트 서비스 의존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AI 없는 삶으로 떨어졌습니다. 10년 전으로 치자면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고립감, 무력감입니다. 다른 데이터센터에서도 피해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때 오픈AI로부터 제안이 왔습니다. 한시적으로 AI 서비스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오픈AI는 우주 데이터센터 확보를 통해 지구상의 기후 재난에도 큰 문제 없이 대응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픈AI의 제안이 공짜는 아닙니다.
샘 올트먼도 머스크와 비슷한 미래를 봅니다. / 출처: Starcloud
우주 데이터센터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은 머스크뿐만이 아닙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도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데이터센터를 우주에 두어야 할 가능성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 세계 곳곳이 데이터센터로 뒤덮일 것이라며 우주가 대안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올트먼은 최근 로켓 스타트업 스토크 스페이스(Stoke Space)의 인수를 검토한 바 있습니다. 스페이스X처럼 재활용이 가능한 로켓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아마존의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CEO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상의 데이터센터가 비용이나 재난 상황 등으로 멈추어 선다면, 우주 데이터센터 보유 여부가 서비스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시기와 기술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AI가 일종의 ‘필수재’로 자리 잡게 되면 통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한때 온디바이스 AI가 주목받았지만, 인간이 AI에 요구하는 능력은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기계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거대 AI 모델은 통신 시스템과의 결합이 필수적입니다. 만약 올트먼이나 머스크, 베이조스의 생각처럼 우주 AI 데이터센터가 필연적인 수순이라면, 스타링크와 같은 저궤도 위성 통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겁니다.

이쪽 시장은 현재 스타링크가 거의 독과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독과점이 지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1만 여대의 위성을 쏘아 올렸고, 그중 8800여 기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위성이 많을수록 통신 품질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스페이스X보다 위성을 더 많이, 더 싸게 띄워 올릴 수 있는 회사는 없죠. 로켓을 재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어떤 AI 모델이 최후의 승자가 되든 우주 데이터센터는 스타링크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나리오에서처럼 오픈AI가 우주 데이터센터를 확보해 운영하고 있다고 해도, 지구와의 데이터 송수신은 스타링크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장면 3.

2033년 가을, 누리호-2033 발사가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누리호가 실어 올린 위성들도 궤도에 순조롭게 진입했습니다. 이로써 한국도 1000여 대의 저궤도 통신 위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불안정하고 종종 끊기지만, 독자적인 저궤도 위성 통신망을 구축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는 이릅니다. 올해에만 두 번이나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사용이 중지된 스타링크의 위성이나 그 잔해에 한국이 쏘아 올린 통신 위성이 부딪친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과학자들은 ‘케슬러 신드롬’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경고하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 NASA의 도널드 케슬러 박사가 경고한 위험입니다.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파괴된 위성의 파편이 산탄총처럼 흩어지며 멀쩡한 옆 위성을 부수고, 그 잔해가 또 다른 위성을 타격하는 죽음의 연쇄 반응 끝에 토성의 고리처럼 파손된 인공위성 잔해들이 지구를 감싸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GPS의 정확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스타링크와 같은 위성 통신 기술이 멈춥니다. 케슬러 박사는 인류 문명이 1960년대 수준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너무 디스토피아적인 상상 같지만, 누리호-2033 발사가 성공한 그날 저녁, 또다시 재난 문자가 발송되었습니다. “[긴급재난문자] 21:20 영종도 주변 서해안 일대 우주 파편 추락 위험. 외출 자제 및 안전한 곳으로 대피 바랍니다.”
지구는 이제 인간이 쏘아올린 물체로 완전히 뒤덮여 있습니다. / 출처: LeoLabs
현재 550킬로미터 상공 주변의 저궤도는 빠르게 혼잡해지고 있습니다. 전 지구 궤도에서 추적되는 물체는 약 4만 개 수준이며, 이 중 1만 2000여 개는 인공위성, 나머지는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궤도를 떠도는 우주 쓰레기들입니다. 저궤도가 이렇게 붐비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스타링크를 필두로 한 저궤도 통신용 위성입니다. 비교적 낮은 높이인 저궤도에 통신 위성을 올려놓아야 지연 없이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높이가 낮은 만큼 하나의 위성이 한 번에 커버할 수 있는 지역이 좁습니다. 그래서 스타링크는 1만여 대의 위성을 쏘아 올렸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위성 통신 품질의 비결입니다.

저궤도가 이렇게 붐빈다니, 스타링크가 이미 쏘아 올린 위성들을 다 같이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통신 주권 때문입니다. 당장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스타링크 서비스가 끊기면 한 국가가 절멸의 위기로 몰립니다. 우크라이나가 이렇게까지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스타링크에 의존한 전투 드론 전력 때문이었으니 말입니다. 결국, 저궤도 통신망 확보는 안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주는 더욱 붐빌 예정입니다. 교통사고도 잦아질 수 있습니다. 운영 주체가 확실한 위성끼리는 서로의 궤도를 공유하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장 난 위성이나 파편이 문제입니다. 이들과의 충돌은 막을 방법이 없으며 예측도 어렵습니다.

냉전 시대였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뭐든 규칙을 만들었을 겁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미국은 저궤도 위성이 임무를 종료한 후 5년 이내에 반드시 대기권에 재진입해 타버리도록 하는 규정을 확정했습니다.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에 진입하려는 모든 외국 위성에도 이 룰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위성의 작은 파편 등은 추적도 되지 않아 통제 바깥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21세기는 미국의 시대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 규제를 적용받는 것은 미국 시장에 진입하려는 위성뿐입니다. 

즉, 중국이나 인도 등 팍스 아메리카나 바깥의 국가들은 미국의 규제를 신경쓸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중국은 약 250기 수준의 통신 위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스페이스X와 같은 재사용 로켓 기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아직은 한참 뒤떨어져 있지만, 무서운 속도로 발전 중입니다. 앞으로 우주 공간에서 미·중 간의 교통사고가 발생한다면, 상상 이상의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습니다.

스타링크는 이렇게 우주 공간에 의존하는 인류의 미래를 쥐고 있습니다. 이런 날들이 진짜 올까 싶지만, 이미 인류는 인간의 공간이 아니었던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 상하수도 시스템을 깔고 교통망을 건설했습니다. 이제 지하 공간 없이 지속 가능한 도시는 북반구에 거의 없습니다. 우주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곧 우주에 의존하는 시대로 진입합니다. 기술 격차가 지금과 같다면, 스타링크는 새로운 시대의 결정적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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