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둠 ― 스트리밍 전쟁의 끝

bkjn review

오리지널 절대주의는 끝났습니다. 영상 산업은 라이브러리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투둠 ― 스트리밍 전쟁의 끝

2025년 12월 10일

미국 성인의 83퍼센트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볼 사람은 이미 다 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스트리밍 전국 시대는 인수, 합병, 통합으로 귀결될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스트리밍 시장을 열었던 넷플릭스가 시장 통합에 나섰습니다. 12월 5일 넷플릭스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이하 워너)의 영화·TV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를 72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직 최종 확정은 아닙니다. 미국 규제 당국의 합병 심사를 받아야 하고 워너 주주들의 동의도 얻어야 합니다.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릴 전망입니다. 경쟁자도 물리쳐야 합니다. 파라마운트가 적대적 인수 합병 개시를 선언했거든요. 넷플릭스처럼 양사가 합의해서 합병하는 게 아니라, 워너 주주들에게 넷플릭스가 주겠다는 금액보다 돈을 더 주겠다며 주식을 넘기라고 하고 있죠.

넷플릭스의 워너 인수는 영화, 드라마 산업의 역사를 바꿀 만한 메가딜인데, 월가 반응은 썩 좋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주가는 인수 발표 후 오히려 2.89퍼센트 떨어졌습니다. 넷플릭스는 금융권에서 590억 달러의 단기 대출을 받아 인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인데, 스트리밍 피로와 포화 속에서 역대급 대출을 일으키겠다고 하니 시장이 불안감을 느낀 겁니다.

몇 년째 적자를 보는 회사를 빚까지 내서 106조 원을 주고 사겠다니, 과한 지출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나 스트리밍 산업이 실제로 굴러가는 구조, 넷플릭스의 전략적 고민, 워너가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모두 고려하면, 넷플릭스의 이번 딜은 충분히 경제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스트리밍 전국 시대를 끝낼 역사적 거래가 될 수 있습니다.
스트리밍 전국 시대
라이브러리의 힘

스트리밍 서비스의 초기 성장은 대형 히트작에 극도로 의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고 이탈률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대형 오리지널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실제로 〈기묘한 이야기〉, 〈오징어 게임〉 같은 화제작이 나오면 넷플릭스 주가와 구독자 수가 올랐고요.

그러나 스트리밍 시장이 성숙을 넘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가입자 수의 폭발적 증가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신규 가입자 유치보다 기존 가입자 유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었죠. 그럼, 떠나려는 가입자를 어떻게 해야 붙잡을 수 있을까요. 시청 시간 데이터에 답이 있습니다.

닐슨 집계를 보면, 스트리밍 시청 상위권을 장악한 작품들은 최신 오리지널이 아니라 과거 시리즈입니다. 2023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프로그램은 2019년에 시즌9를 끝으로 종영된 법정 드라마 〈슈츠〉였습니다. 577억 분의 시청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2~5위도 〈블루이〉, 〈NCIS〉, 〈그레이 아나토미〉, 〈코코멜론〉 같은 다년간 방영된 시리즈였습니다.

넷플릭스를 포함해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사들이 자랑하는 오리지널 신작 중에 연간 시청 시간 상위권에 오른 작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리지널 중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작품은 애플TV의 〈테드 래소〉였는데, 169억 분이 스트리밍되었습니다. 〈슈츠〉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연간 톱10에도 들지 못했죠.

요악하면, 이용자들은 새로운 화제작보다 옛날부터 봐온 익숙한 콘텐츠를 많이 봅니다. 이런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스트리밍은 히트작을 만들어 내는 사업에서,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관리하는 사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출발했던 DVD 대여점 방식으로 돌아가는 거죠.

〈슈츠〉를 다시 예로 들어 볼까요. 이 시리즈의 IP는 NBC유니버설이 갖고 있습니다. NBC유니버설은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인 피콕(Peacock)에서 이 시리즈를 스트리밍하는 동시에, 넷플릭스에도 비독점 라이선스를 제공했습니다. 피콕의 규모는 넷플릭스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최소 500억 분 이상이 넷플릭스에서 재생된 겁니다. 라이선스 비용은 비공개인데, 에피소드당 20~40만 달러 수준이었다는 업계 추정이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라이선스를 확보한 에피소드가 총 124개니까, 전체 계약 금액은 2500만 달러에서 5000만 달러 사이입니다.

3억 달러를 투입해 제작한 새 영화가 잠깐 인기를 끌었다가 사라지는 것보다는, 몇천만 달러를 들여 타사가 이미 제작한 수백 회의 에피소드를 빌려오는 것이 고객의 서비스 체류 시간과 이탈률을 관리하는 데 훨씬 더 결정적이고 경제적입니다.
2019년에 시즌9를 끝으로 종영된 미국 법정 드라마 〈슈츠〉
넷플릭스의 전략적 딜레마

라이브러리 중심으로 재편되는 스트리밍 시장에서 콘텐츠 카탈로그의 규모와 다양성은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라이브러리를 충실히 꾸리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워너처럼 102년 역사를 갖고 있어 누적된 IP가 많거나, 신규 오리지널을 대량 생산하거나, 타사 인기작을 라이선스로 수급하는 겁니다.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동시에, 남의 히트작도 빌려오는 이원 전략을 펼쳐 왔죠.

그런데 이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히트작을 빌려주던 회사들이 거의 모두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넷플릭스는 협상의 주도권을 잃게 되었고, 오리지널 제작은 가성비가 좋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는 지난 10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오리지널을 생산하는 물량 공세를 폈습니다. 2024년에는 170억 달러를 투입해 589개의 새로운 오리지널 타이틀을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오리지널이 시청 시간 확보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는 작품을 탄생시킬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어쩌다 역대급 히트작이 나왔다 해도 장수 시트콤 〈빅뱅 이론〉이나 〈프렌즈〉만큼 시청 시간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역대 시청 상위 기록을 보면, 수천 편의 오리지널 중에서 전 세계 1억 가구 이상이 시청한 히트작은 수십 편 수준입니다. 오리지널 대부분은 몇 주간 톱10에 올랐다가 이내 사라집니다.

넷플릭스는 지난 10년간 오리지널 제작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 왔지만, 정작 시청 시간의 절반은 외부에서 라이선스로 들여온 구작이 차지합니다. 이런 상황은 재무적 비효율성을 초래합니다. 외부에서 빌려온 구작은 소비자가 많이 볼수록 추가 비용 부담 없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은 투입한 제작비가 자산으로 잡힌 뒤 수년간 비용으로 상각 처리됩니다.

짧게 소비되고 금세 사라지는 오리지널이 너무 많아지면 이상한 회계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용자는 비용 부담이 적은 라이선스 구작을 주로 보는데, 넷플릭스 재무제표에는 상대적으로 덜 보는 오리지널 자산의 상각 비용이 해마다 쌓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용자의 실제 시청 행태와는 동떨어진 기형적 재무 구조가 심화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고객들은 저렴한 뷔페 메뉴만 먹는데, 주방에는 팔리지 않는 비싼 고급 코스 요리의 재료가 잔뜩 쌓여 있어서 매년 강제로 폐기(상각) 비용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용자들이 실제로 뭘 보는지와 관계없이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제작 때문에 비용 부담을 계속 안게 되는 이상하고 비효율적인 구조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이 관점에서 워너 인수를 보면 기가 막힌 딜입니다. 이번 거래로 넷플릭스가 얻게 될 워너의 사업은 스튜디오 및 스트리밍 부문입니다. 워너의 영화 스튜디오, TV 스튜디오, HBO 채널, HBO 맥스, DC 스튜디오, 일부 게임 부문 IP가 여기에 속합니다. 인수가 확정되면 넷플릭스는 〈소프라노스〉, 〈더 와이어〉, 〈왕좌의 게임〉, 〈석세션〉, 〈프렌즈〉, 〈빅뱅 이론〉, 〈섹스 앤 더 시티〉, 〈해리포터〉, DC 슈퍼히어로물을 다 가져오게 됩니다.

워너는 HBO와 워너브러더스 영화 등을 통틀어 20만 시간이 넘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024년 말 기준으로 넷플릭스의 라이브러리에는 7400개의 타이틀이 있습니다. 이 둘을 합하면 경쟁 불가능한 깊이와 다양성을 갖추게 됩니다.
HBO의 프레스티지 드라마
수익성 향상의 레버리지

이번 인수는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는 경쟁에서, 가입자를 유지하고 가입자당 수익을 극대화하는 경쟁으로 넘어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선진 시장에서 스트리밍 보급률은 80~90퍼센트에 달합니다.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성장은 타사의 시장 점유율을 뺏어오는 것, 기존 가입자당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 이탈률을 낮추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720억 달러라는 인수 대금은 엄청납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이 거래가 장기적으로 볼 때 합리적인 투자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성 향상의 레버리지가 간단한 산수처럼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신규 가입자 측면에서 워너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HBO 맥스와 디스커버리+ 통합 가입자는 1억 2000만 명입니다. 넷플릭스 가입자는 3억 명입니다. 워너 가입자의 절반이 넷플릭스에도 가입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미가입자의 3분의 1만 넷플릭스에 가입시켜도 2000만 명입니다. 2000만 명의 추가 구독자가 월평균 10달러씩 지불한다면 연간 매출이 24억 달러 늘어납니다.

가입자당 평균 수익(ARPU)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워너의 글로벌 D2C ARPU는 7.14달러이고, 넷플릭스는 11.70달러입니다. 넷플릭스가 워너를 인수하면 워너 서비스의 가격을 넷플릭스 글로벌 평균 가격에 근접하게 올리게 될 겁니다. 가격 정책만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의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또한 워너의 방대한 라이브러리가 넷플릭스에 추가되면, 넷플릭스도 가격 인상을 검토할 수 있게 됩니다.

넷플릭스와 워너의 결합은 고객 이탈률을 낮춰 LTV(고객 생애 가치)도 올릴 수 있습니다. 요즘 스트리밍 가입자들은 평균 3~4개씩 서비스를 이용하며 구독 피로를 느끼고 있습니다. 둘의 결합은 넷플릭스를 해지할 수 없는 필수재에 가깝게 만들 겁니다. 넷플릭스는 다양한 장르의 오리지널과 비영어권 히트작, 리얼리티 예능, 다큐 등에 강점이 있지만, HBO가 강한 프레스티지 드라마나 지상파 히트 시트콤 같은 영역은 약했습니다.

이제 HBO의 〈더 소프라노스〉, 〈왕좌의 게임〉부터 워너가 과거에 제작한 〈프렌즈〉, 〈ER〉, 〈섹스 앤 더 시티〉 등이 모두 넷플릭스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키즈 애니메이션부터 마니아층 성인물까지, 가족 모두가 보는 라인업이 완성되는 겁니다. 다른 서비스는 끊어도 넷플릭스만은 끊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에서만 연간 20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넷플릭스의 광고 매출도 덩달아 올라가게 되겠죠.

눈에 띄진 않지만 이번 인수로 또 득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콘텐츠 협상력입니다. 인수 전 넷플릭스는 〈영 쉘든〉을 얻으려면 파라마운트와, 〈빅뱅 이론〉을 확보하려면 워너와 일일이 협상해야 했습니다. 넷플릭스가 워너를 사버리면 다른 스튜디오와 협상할 때도 레버리지가 커집니다. 예를 들어 파라마운트가 라이선스를 너무 비싸게 부르면 “그 작품 없어도 워너 라이브러리가 있다”는 식으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겠죠.
트럼프와 인연이 깊은 파라마운트도 워너를 노리고 있습니다.
위험 요소

물론 아름다운 전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넷플릭스는 이번 인수를 위해 590억 달러의 브릿지론을 포함해 총 부채가 700억 달러 이상으로 급증하게 됩니다. 넷플릭스는 전략적 유연성이 제한되고, 향후 금리 변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규제 당국의 심사와 인수전 경쟁이라는 숙제도 남아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규제 당국이 스트리밍 산업의 거대 합병을 아주 꼼꼼히 들여다볼 겁니다. 벌써부터 트럼프는 티를 팍팍 내며 파라마운트를 밀어주고 있죠. 다만 시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스트리밍 시장으로 좁혀서 보면 둘의 결합이 파괴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유튜브 같은 무료 영상 플랫폼까지 포함해 ‘TV 시청 전체’로 보면 둘의 합산 점유율은 13퍼센트 수준으로 유튜브와 비슷해집니다. 독점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수치입니다.

또 극장 산업과의 관계에서도, 넷플릭스는 기존에 극장 사업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합병이 시장에 피해를 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넷플릭스 측도 “워너브러더스의 영화들은 앞으로도 극장에 걸겠지만, 더 친화적인 윈도우(짧은 독점 기간)로 진화할 것”이라고 밝혀 극장 업계의 반발을 무마하고자 했죠.

영상 산업의 노동자들 사이에선 찬반이 엇갈리지만,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할리우드 노조들은 2024년 컴캐스트가 워너의 일부 자산에 관심을 보였을 때 강하게 반발했지만, 넷플릭스의 워너 인수에 대해서는 덜 비판적입니다. 워너를 기존 미디어 공룡이 인수하면 중복 부서가 많아 대량 해고가 불가피하지만, 넷플릭스가 인수하면 유통 및 관리 부문 정도만 정리되면 되거든요.
스트리밍 전쟁의 끝

넷플릭스와 워너의 인수 합병 합의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규제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고, 파라마운트의 적대적 인수 합병이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제3의 경쟁자가 나타날 수도 있고요. 그러나 한 가지 흐름만은 분명하게 보입니다. 스트리밍 산업이 다음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겁니다.

스트리밍 시장을 열었던 넷플릭스는 독주를 꿈꿨습니다. 기성 스튜디오가 스트리밍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하자 “HBO가 우리처럼 되기 전에 우리가 HBO처럼 되는 것이 목표”라며 오리지널 제작을 늘려 독주를 이어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는 디즈니플러스도 보고 아마존 프라임도 보고 유튜브도 본다는 현실을 넷플릭스는 마침내 인정했습니다. 이제 넷플릭스의 목표는 구독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서비스가 되는 겁니다.

스트리밍 시장이 새 의자를 까는 싸움에서 있던 의자를 뺏는 싸움으로 바뀌면서, 오리지널 절대주의는 끝났습니다. 영상 산업은 라이브러리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20만 시간에 달하는 워너 라이브러리를 통합하게 된다면, 넷플릭스는 더 이상 히트작의 운에 기대는 서비스가 아니라, 취소하기 가장 어려운 디폴트 서비스가 될 겁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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