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전략적 딜레마
라이브러리 중심으로 재편되는 스트리밍 시장에서 콘텐츠 카탈로그의 규모와 다양성은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라이브러리를 충실히 꾸리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워너처럼 102년 역사를 갖고 있어 누적된 IP가 많거나, 신규 오리지널을 대량 생산하거나, 타사 인기작을 라이선스로 수급하는 겁니다.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동시에, 남의 히트작도 빌려오는 이원 전략을 펼쳐 왔죠.
그런데 이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히트작을 빌려주던 회사들이 거의 모두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넷플릭스는 협상의 주도권을 잃게 되었고, 오리지널 제작은 가성비가 좋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는 지난 10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오리지널을 생산하는 물량 공세를 폈습니다. 2024년에는
170억 달러를 투입해
589개의 새로운 오리지널 타이틀을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오리지널이 시청 시간 확보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는 작품을 탄생시킬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어쩌다 역대급 히트작이 나왔다 해도 장수 시트콤 〈빅뱅 이론〉이나 〈프렌즈〉만큼 시청 시간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역대 시청 상위 기록을 보면, 수천 편의 오리지널 중에서 전 세계 1억 가구 이상이 시청한 히트작은 수십 편 수준입니다. 오리지널 대부분은 몇 주간 톱10에 올랐다가 이내 사라집니다.
넷플릭스는 지난 10년간 오리지널 제작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 왔지만, 정작 시청 시간의 절반은 외부에서 라이선스로 들여온 구작이 차지합니다. 이런 상황은 재무적 비효율성을 초래합니다. 외부에서 빌려온 구작은 소비자가 많이 볼수록 추가 비용 부담 없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은 투입한 제작비가 자산으로 잡힌 뒤 수년간 비용으로 상각 처리됩니다.
짧게 소비되고 금세 사라지는 오리지널이 너무 많아지면 이상한 회계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용자는 비용 부담이 적은 라이선스 구작을 주로 보는데, 넷플릭스 재무제표에는 상대적으로 덜 보는 오리지널 자산의 상각 비용이 해마다 쌓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용자의 실제 시청 행태와는 동떨어진 기형적 재무 구조가 심화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고객들은 저렴한 뷔페 메뉴만 먹는데, 주방에는 팔리지 않는 비싼 고급 코스 요리의 재료가 잔뜩 쌓여 있어서 매년 강제로 폐기(상각) 비용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용자들이 실제로 뭘 보는지와 관계없이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제작 때문에 비용 부담을 계속 안게 되는 이상하고 비효율적인 구조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이 관점에서 워너 인수를 보면 기가 막힌 딜입니다. 이번 거래로 넷플릭스가 얻게 될 워너의 사업은 스튜디오 및 스트리밍 부문입니다. 워너의 영화 스튜디오, TV 스튜디오, HBO 채널, HBO 맥스, DC 스튜디오, 일부 게임 부문 IP가 여기에 속합니다. 인수가 확정되면 넷플릭스는 〈소프라노스〉, 〈더 와이어〉, 〈왕좌의 게임〉, 〈석세션〉, 〈프렌즈〉, 〈빅뱅 이론〉, 〈섹스 앤 더 시티〉, 〈해리포터〉, DC 슈퍼히어로물을 다 가져오게 됩니다.
워너는 HBO와 워너브러더스 영화 등을 통틀어 20만 시간이 넘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024년 말 기준으로 넷플릭스의 라이브러리에는 7400개의 타이틀이 있습니다. 이 둘을 합하면 경쟁 불가능한 깊이와 다양성을 갖추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