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에선가 AI 모델은 ‘악마’와 ‘파멸’이라는 키워드에 딱 맞는 레퍼런스로 하비의 연설을 고른 것 같습니다. 1960년대의 사회상을 2024년으로 번역하기만 하면 그럴듯한 답변이 생성되니 영리한 선택이긴 합니다. 그리고 1965년 하비의 연설을 듣고 충격에 빠진 사람들처럼, 2024년에도 챗GPT의 답변에도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죠.
그런데 정말 소셜 미디어가 그렇게까지 해로운 것일까요? 인플루언서의 부러운 일상을 조금 엿보는 일이, 귀여운 강아지가 재롱을 부리는 숏폼 동영상을 몇십 분 스크롤 하는 일이 이 사회를 파멸로 이끌게 될까요? 《
불안 세대》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ADHD가 급증한 이유
하이트는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 전두엽이 아직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의지력이 약하고 조종에도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스크린’에 엄청나게 끌린다는 겁니다. 텔레비전의 시대에는 집 밖으로 화면을 가지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다릅니다. 어디든 가지고 다닙니다. 심지어 잠을 자는 순간에도 멀리 떨어뜨려 놓지 않는 물건이 되었죠. 문제의 시작입니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의 십대 중 70퍼센트 이상이 터치스크린 기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법이 소셜 미디어 중심으로 재편되었죠. 그런데 소셜 미디어에서의 관계 맺기는 현실 세계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특징을 지닙니다. 먼저, 몸이 없고 언어만 있는 관계입니다. 실시간 상호 작용 없이, 텍스트 기반 게시물과 댓글을 통해 비 동기화된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일대다 의사소통이 많고, 동시에 여러 상호 작용이 병렬적으로 발생합니다. 마지막으로, 관계 맺기와 관계 끊기가 모두 손쉽습니다. 친구 추가, 혹은 취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죠.
이런 관계에 익숙해지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아동기에 겪었던 발달 과정을 제대로 거칠 수가 없게 됩니다. ‘놀이 기반 아동기’라는 것인데, 실수의 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은 자유 놀이 활동을 통해 물리적인 세계와 공동체의 작동 원리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특히 9세부터 15세 사이에는 ‘문화 학습’에 민감해집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고, 교감과 공감의 의미를 체득합니다. 또래 집단이나 친족 집단에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합니다. 집단의 문화를 수용하고, 자신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학습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의 전환이 발생했습니다. 문화 학습을 시작해야 할 나이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는 겁니다. 새로운 현실 세계의 경험이 차단됩니다. 타인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동기화될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표정이나 눈짓을 읽는 법을 배울 수도, 친구들과 ‘모험’을 감행할 기회도 없어집니다. 이렇게 물리적인 세계에서 유리되어 좌절과 실패, 충격과 실수에 노출되지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새로운 세계 속에서 기회를 찾고 스스로 생각하며 성장을 원하는 ‘발견 모드’는 꺼집니다. 위험을 경계하며 의존적이고, 안전만을 챙기는 ‘방어 모드’가 켜집니다.
2014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부터 ADHD 등의 심리적, 정신적 장애를 호소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진 주요 원인이 안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양육 문화와 함께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에 있다는 것이 하이트의 주장입니다. 온라인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활동만으로는 공포에 대항하는 힘을 길러주지 못한다는 것이죠.
우울의 시작점
세계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방식에 세대 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차이의 저변에 ‘결핍’이 있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사회적 관계 맺기, 수면 시간, 집중의 경험 등이 소셜 미디어 중독으로 인해 결핍됩니다. 그리고 그 중독은 아주 치밀하게 설계된 장치입니다. 내부 고발자에 의해 폭로된 페이스북 사내 문건에는 십 대의 뇌가 아직 미성숙하다는 점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보상과 새로운 것, 감정 등을 이용해 십 대 이용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