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의 요람은 비어가고 남반구는 넘쳐납니다. 북반구는 수축하며 늙어가고, 남반구는 폭발적으로 팽창합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인적 자본의 재배치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경사는 21세기 후반까지 세계 질서를 결정할 강력한 변수가 됩니다. 지정학적 권력과 부의 지도가 다시 그려집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최근
전망에 따르면, 아프리카 인구는 2023년 14억 명에서 2100년경 거의 40억 명으로 증가합니다. 반면, 아시아는 2050년 50억 명을 정점으로 하락해 2100년에는 44억 명으로 줄어듭니다. 유럽과 동아시아는 급격히 고령화됩니다. 세계 권력의 중심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합니다.
텅 빈 용: 중국의 조로(早老)
중국 인구는 2022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25년 현재 인구 곡선이 가파른 절벽을 향해 있습니다. 캐나다 저널리스트 대럴 브리커와 존 이빗슨은 저서 《텅 빈 지구(Empty Planet)》에서 중국의 인구 감소는 흑사병 이래 그 어떤 사건보다 빠르게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고 예견한 바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흑사병은 무덤을 채웠지만, 중국의 인구 절벽은 요람을 비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심각한 건 속도입니다. 프랑스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퍼센트에서 14퍼센트로 늘어나는 데 115년이 걸렸는데, 중국은 이걸 단 20여 년 만에 해치웠습니다. 서구 국가들은 부유해진 뒤에 천천히 늙어갔는데, 중국은 부자가 되기도 전에 늙어버리는 함정에 빠졌습니다. 사람도 국가도 모아 놓은 돈 없이 노인이 되면 불행해집니다.
통계는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중국의 합계 출산율은 1960년대 6명에서 2024년 1.08명까지 떨어졌습니다. 인구 유지선인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상하이 같은 대도시 합계 출산율은 0.6명입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현재 14억 명인 중국 인구가 2100년이면 6억 6200만 명까지 줄어들 거라고 전망합니다.
중국의 조로는 세계 경제에 치명적입니다. 지난 30년간 중국이 세계에 공급해 온 것은 단순한 공산품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었습니다. 9억 명에 달하던 중국의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세계가 더 이상 값싼 중국산에 의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구조적인 고비용 시대를 예고합니다.
회색빛 요새: 동아시아와 유럽
한국과 일본의 상황은 더욱 극적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 0.75명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페스트 창궐 시기를 제외하고는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수치입니다. 한국 인구는 2025년 5168만 명에서 2100년에는 1999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일본 인구는 현재 1억 2000만 명인데, 2100년에는 7200만 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유럽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이민자 유입이 없다고 가정하면 유럽 연합(EU)의 전체 인구는 2026년 4억 53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점점 줄어 2100년에는 3억 명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EU는 2050년까지 유럽이 매년 100만 명의 노동력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퇴직 연금, 건강 보험에 대한 재정 압박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계는 숙련 노동자 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인구가 줄어들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늙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퍼센트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20년 전에 초고령 사회가 되었고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남유럽 국가들은 이미 ‘수축 사회’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했습니다. 이 국가들은 노년 부양비가 급등하면서 혁신보다는 연금 개혁과 의료비 지출 방어에 모든 정치적 자본을 소진하고 있습니다.
수축 사회의 국가들은 출산 장려책과 로봇,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추진하고, 부족한 인력을 이민자로 일부 대체하려 합니다. 다만 고령층은 이민 확대에 비판적인 경우가 많아, 북반구 선진국에서는 정치가 더 험악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이민은 늘겠지만, 20세기식 이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시민권은 주지 않고 5~10년짜리 순환 노동 계약이 일반화되는 거죠.
사자의 포효: 아프리카
북반구가 저무는 동안, 아프리카 대륙은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재 14억 명인 아프리카 인구는 2050년 25억 명, 2100년에는 40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30년간 세계 인구 증가의 절반 이상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발생할
전망입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콩고민주공화국은 2030년 1억 3900만 명에서 2100년이면 5억 8400만 명으로 인구가 폭증합니다. 같은 기간에 나이지리아 인구는 3억 명 가까이 늘어납니다. 2050년에 나이지리아의 인구는 4억 명을 돌파할 전망인데, 미국을 추월해 세계 3위가 됩니다.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도 21세기 말까지 각각 1억 명의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구가 늘면 외교 무대에서 아프리카의 발언권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UN 총회 등 다자 회의에서 아프리카 대표단의 위상이 강화되고, G77 같은 개발 도상국 연합 내 협력도 강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아프리카의 인구 폭증이 세계 질서를 바꿀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불안 요소도 있습니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의 중위 연령은 19세입니다. 유럽의 44세,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49세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청춘의 대륙’입니다.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15~24세 인구의 3분의 1이 아프리카인이
됩니다. 인구 배당 효과를 누리면 다행이지만, 일자리 없는 인구 폭발은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매년 15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데, 현재 공급이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아프리카가 제조업 기반을 닦지 못한 채로 인구만 계속 늘어난다면, 그 에너지는 경제 성장으로 가지 못하고 대규모 난민 사태나 정치적 불안으로 분출될 수 있습니다. 지중해를 건너려는 보트 행렬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경사에서 살아남기
이러한 인구 불균형은 세계 경제를 어떻게 바꿀까요. 찰스 굿하트와 마노즈 프라단은 기념비적 저서 《인구 대역전(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에서 지난 30년간 우리가 누린 저물가, 저금리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합니다. 한국판의 부제부터 “인플레이션이 온다”입니다.
그들의 논리는 명쾌합니다. 지난 30년은 중국과 동유럽에서 수억 명에 달하는 젊은 노동력이 세계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며 임금을 짓누른 ‘노동 과잉’의 시대였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누린 싼 물건과 낮은 금리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파티는 끝났습니다. 그 거대한 노동 군단은 이제 은퇴해서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계층이 되었습니다. 노동 공급은 줄어드는데, 의료와 요양을 포함한 소비 수요는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었습니다. 일할 사람은 줄었는데, 쓰는 사람은 그대로라면? 결과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입니다.
자본의 시대가 가고, 노동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21세기 중반으로 향할수록 노동자가 귀해집니다. 자본 대비 노동의 가치가 올라가고, 선진국에서는 임금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겁니다. 결국 기업 이익률 저하와 주식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구는 권력입니다. 인구 중심축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지정학적 무게 중심을 글로벌 사우스로 옮겨 놓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 1위 인구 대국인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들은 더 이상 서구 주도 질서의 조연이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시장이자 공장으로서의 지위를 무기로 국제기구에서 발언권을 높이고 있습니다. 늙어버린 서구와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이 젊은 국가들에게 기술과 자본을 대는 시혜자가 아니라, 노동력과 자원을 구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구애자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북쪽은 가라앉고 남쪽은 솟아오릅니다. 이 거대한 경사의 변화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늙어가는 부자 나라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기술로 사라지는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사활을 걸고 있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민의 빗장을 여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인기가 없지만, 경제적으로는 불가피한 길입니다.
국가의 운명은 요람에서 결정됩니다. 하지만 북반구에선 지금 그 요람이 비었습니다. 청춘이 넘치는 남반구로 겸손하게 고개를 돌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21세기가 4분의 1쯤 지났습니다. 사반세기를 주도한 건 미국과 중국과 유럽과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75년의 역사는 늙은 베이징이나 워싱턴이 아니라, 젊은 델리와 라고스에서 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