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내년 하반기 IPO를 위해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업 가치는 최대 1조 5000억 달러에 달할 전망입니다. 스페이스X는 IPO로 3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달하려 하는데, 자금 일부는 우주에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쓰일 예정입니다.
사상 최대 규모의 IPO가 예고되면서, 지금 시장에선 스페이스X의 상장 시기와 밸류에이션, 방산 기업 주가에 미칠 영향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자본의 이동 이면에는 중요한 지정학적 변화가 있습니다. 스페이스X의 상장은 미국 텍사스주의 주도 오스틴(Austin)이 테크 허브를 넘어, 미국 방위 산업의 수도로 등극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겁니다.
오스틴에서는 스페이스X와 안두릴(Anduril) 같은 방위 기술 스타트업이 국방부 산하의 혁신 조직과 맞물리며 새로운 방위 산업 생태계를 형성했습니다. 이 도시에 자리한 국방 스타트업 클러스터는 애국심과 사업 논리를 결합해, 무기 체계의 개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오스틴을 들여다보면, 국가가 민간 기술을 흡수해 군사력을 증폭시키는 경로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작은 펜타곤
오스틴의 기술 기반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갖춰진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 반도체 붐이 일었을 때 IBM과 델(Dell) 같은 기업이 자리 잡았고,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UT 오스틴)가 대규모 공학 인재를 배출하며 이 지역은 ‘실리콘 힐즈(Silicon Hills)’로 불렸습니다. 방위 기술 중심지로 도약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2016년 미국 국방부는 국방혁신부(Defense Innovation Unit, DIU)의 세 번째 거점을 실리콘밸리, 보스턴에 이어 오스틴에
마련했습니다. 오스틴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캐피털 팩토리(Capital Factory) 내에 자리 잡은 DIU는 국가 안보에 활용될 수 있는 민간 기술과 국방 수요를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DIU의 강점은 압도적 속도입니다. 기존 방산 사업은 전력화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데, DIU는 계약을 체결하고 12~24개월 내에 시제품을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DIU는 국방부 내 현안을 정해서 스타트업들에게 해법을 공모합니다. 적합한 회사와 기술이 있으면 계약을 맺어 실증 테스트를 합니다. 성과가 입증되면 계약 규모를 키웁니다.
실제로 DIU 프로젝트와 관련된 민간 투자만 2015년 이후 200억 달러에 달합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이 맹활약하면서, 드론 관련 기술에 자금이 집중되었습니다. 2023년 미국 국방부는 저비용 AI 무인 무기 체계를 도입하는 ‘레플리케이터(Replicator)’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구상은 오스틴의 국방 스타트업 없이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전쟁 수행 방식의 근본적 전환이 오스틴의 차고와 들판에서 시작되고 있는 겁니다.
2018년에는 육군미래사령부(AFC)가 창설되어 오스틴으로
왔습니다. 미국 육군의 미래 전투 능력을 개발하는 핵심 부처가 워싱턴의 관료주의를 벗어나 텍사스의 혁신 생태계와 결합한 거죠. 입지 선정부터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겁니다. 미래의 국방 기술은 군 내부의 폐쇄적인 연구소가 아니라, 민간의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현재 오스틴은 워싱턴 DC를 제외하고 미국에서 국방 관련 혁신 기관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지역입니다. NavalX(해군), AFWERX(공군), SpaceWERX(우주군) 등 각 군의 혁신 조직이 모여 작은 펜타곤을 형성하고, 스타트업과 군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방위 기술의 수도
오스틴이 방위 기술의 수도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군 조직의 이전에만 있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식 창업 문화가 텍사스의 널널한 규제 환경 그리고 보수적 안보관과 결합하면서, 하드테크 실험이 가능해졌습니다.
UT 오스틴은 이 흐름을 인재와 연구 측면에서 뒷받침합니다. 현재 UT 오스틴의 AI와 로보틱스 연구소들은 매년 수천만 달러가 넘는 국방부 연구를 수주하는데, 국방 연구 개발 자금 유치 규모에서 전국 대학 중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주는 법인세가 없습니다. 경영 전문지에서 선정하는 ‘비즈니스 하기 좋은 주’에서 거의 매년 1위에 오릅니다. 소득세도 없습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엔지니어들에게 매력적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소득세 최고 세율은 13.3퍼센트거든요. 또한 서부 해안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활비도 강점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간적 여유입니다. 텍사스에는 광활한 들판과 시골 지역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였다면 허가받기 어려웠을 실탄 실험과 드론 시험 비행을 이곳에서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일부 테크 기업은 무기 개발에 거부감을 갖지만, 텍사스에서는 국가를 지키는 명예로운 비즈니스로 여깁니다.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이자 유명 투자자인 조 론즈데일(Joe Lonsdale)은 오스틴으로 이주해 방위 산업과 국가 전략 사업에 자금을 집중 투자하고 있습니다. 애국심과 자본과 기술을 결합하는 겁니다.
오스틴의 국방 스타트업
오스틴에는 미래 전장의 모습을 바꿀 스타트업들이 즐비합니다. 앨런 컨트롤 시스템즈(ACS)가 개발한 ‘불프로그(Bullfrog)’는 AI와 센서를 이용해 적 드론을 탐지하고 기관총으로 격추합니다. 한 발당 비용이 10달러에 불과해 기존 미사일 요격 비교할 때 가성비의 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UAE도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