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봉이 김선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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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케이블카를 한 회사가 63년간 운영해 왔습니다. 작년 남산 사용료는 1억 원, 영업 이익은 90억 원입니다.

남산의 봉이 김선달

2025년 12월 23일

서울시가 건설하고 있던 남산 곤돌라 계획이 멈춰 섰습니다. 남산 케이블카 사업자와 인근 학교 학생들, 환경 단체 등이 함께 소송을 제기했는데, 여기서 진 겁니다. 남산 곤돌라는 명동과 충무로 부근부터 남산 정상까지 800여 미터를 오르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케이블카와 모양도, 운행 방식도 비슷합니다. 단, 케이블카가 지정된 인원을 채워야 출발하는 방식인 데 비해 곤돌라는 캐빈 25대가 쉬지 않고 궤도를 빙글빙글 도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2024년 9월 첫 삽을 떴는데, 한 달여 만에 공사는 중단되고 법적 다툼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1심 판결이 지난 2025년 12월 19일 나온 겁니다.

곤돌라가 학교 근처를 지나간다며 학습권 침해를 우려하는 인근 대학 학생과 생태적 영향을 우려하는 환경 단체도 함께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번 사건의 중심에 남산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한국삭도공업’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무려 63년간 독점적으로 남산 케이블카 사업권을 행사해 온 곳이죠.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60년간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고 있다며, 특정인에게 특혜에 가까운 이익이 주어지는 게 타당하냐고 질타할 정도였고요. 하지만 법원은 서울시가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한국삭도공업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직 1심입니다. 서울시는 곧바로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는 공사인 데다 곤돌라 건설이 특정 민간 업체의 ‘독점’을 바로잡기 위한 정책이라는 겁니다. 분위기는 서울시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60년 넘게 ‘봉이 김선달’식 장사를 해 온 기업의 독점을 끊어 내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사업 수완

남산 케이블카는 1962년 5월 12일 첫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20인승 캐빈 ‘은하수’와 ‘무지개’ 두 대가 차례로 로프에 매달려 남산을 오르내렸죠. 요금은 왕복 40원, 우리나라 최초의 케이블카였기 때문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업을 추진한 것은 대한제분 사장 출신인 고 한석진 대표입니다. 1958년에 한국삭도공업을 설립했습니다. ‘삭도(索道)’란 케이블카를 일컫는 한자어입니다. 처음부터 케이블카 사업을 하려고 만든 회사라는 뜻입니다. 남산의 상업적 가치를 일찍부터 알아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완도 꽤 좋았던 것 같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로부터 약 3개월 만에 당시 교통부로부터 국내 최초 사업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처음에는 3년 단위로 면허를 갱신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정부가 심사를 통해 허가를 연장할지를 결정할 수 있었죠. 그런데 1978년부터는 면허 갱신이 필요 없어집니다. 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단순한 수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번 케이블카 사업권을 따 내면, 영원히 같은 자리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대통령이 ‘특혜’라는 단어를 꺼낸 이유입니다.
당시 남산 케이블카는 4분 만에 남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수학여행 단골 코스였다고 합니다. / 출처:KBS 뉴스
이 사업은 3대째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불법은 아닙니다. 창업자와 당시 정권과의 관계를 포함해 자세한 내막이 밝혀진 것도 없습니다. 법에 허점이 있어 사실상 한 가족 기업이 영구 면허를 갖게 되었고, 선견지명이 있었던 창업자의 투자가 대대손손 황금알을 낳아 주는 거위로 변신했을 뿐입니다. 케이블카 시설은 한국삭도공업이 지어 올린 것이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남산이 우리 모두의 장소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남산의 환경을 개선하고 편의 시설을 확충할 때 세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투자는 한국삭도공업의 이윤에 기여하고요. 예를 들어, 남산 3호 터널 부근에서 남산 케이블카 매표소까지 운행하는 ‘남산 오르미’라는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서울시가 21억 원을 들여 건설한 시설입니다. 유지 관리에만 연간 2억 원이 소요됩니다. 한국삭도공업은 돈 한 푼 들이지 않은 이 시설을 통해 더 많은 관광객이 남산 케이블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매표소 근처 거리를 정비하는 사업도, 남산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버스와 승용차 출입을 제한한 정책도 모두 케이블카 업체에 간접적인 이득으로 돌아갔습니다. 시민들이 남산을 아끼는 마음 중 몇 퍼센트씩은 꼬박꼬박 수수료로 떼여 한 회사의 이윤이 되는 겁니다.

한국삭도공업의 2024년 매출은 220억 원, 영업 이익은 90억 원이었습니다. 물론, 남산이 법적으로는 나라가 점유한 땅, 즉 ‘국유지’인 만큼, 케이블카 업체도 사용료를 냅니다. 연간 1억 원 안팎입니다. 토지 사용료와 공원 점용료를 합친 겁니다. 노점상이 국유지에서 장사할 때 납부하는 사용료를 기준으로 책정된 금액이라고 합니다. 매출 대비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입니다. 그렇다고 남산 케이블카만 사용료를 비싸게 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있었습니다. 2015년 서울시의회가 특별위원회를 꾸려 행정 사무 조사를 벌였습니다. 독점 운영과 인허가 특혜 의혹을 규명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시의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대표를 불러 ‘지금이라도 허가를 반납할 생각은 없는지’ 추궁하는 정도였죠. 시의회에 출석했던 이기선 공동대표는 ‘생각해 보겠다’라고 답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사실상 영원히 영업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는 1978년 도입된 ‘궤도 운송법’의 구멍 때문입니다. 이걸 고쳐 사업자의 운영 기한을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국회에서 있었죠. 민자 고속도로 건설처럼, 일정 기간 민간 기업에서 운영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수익을 낸 뒤에는 공공에 귀속하는 식으로 법을 개정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습니다. 반대 의견 중에는 민간사업자에게 줬던 권한을 애당초 약속과 달리 뺏는 것이 시장 경제 질서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서울시의 복안

그래서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이 곤돌라 건설입니다. 공공 자본으로 남산 케이블카에 경쟁자를 붙이자는 겁니다. 노약자나 장애인 등 이동 약자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고, 명동역 부근에서 바로 남산 정상까지 가 닿을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웠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케이블카 사업자가 누리고 있는 독점적 지위를 해소하고, 남산을 시민이 다 함께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계획이죠.

다만, 서울시가 계획한 곤돌라 구간이 ‘도시자연공원 구역’을 지난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 구역 안에서는 높이 12미터 이상의 구조물을 세울 수 없습니다. 35미터 높이의 기둥 두 개는 세워야 정상까지 곤돌라를 올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이 구역의 용도를 ‘도시계획시설 공원’으로 변경합니다. 이걸 한국삭도공업을 비롯한 원고 측이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서울시는 시민의 편익을 위해 공원의 용도를 바꿀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곤돌라 건설이 바로 그런 경우고요. 1심에서는 졌지만, 2심에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 공원녹지법 시행령을 서둘러 개정해달라고 촉구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까지 나서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 상황이니, 서울시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이 풀릴 가능성이 큽니다.

궤도 운송법 개정안도 다시 발의됐습니다. 케이블카와 같은 궤도 사업 허가 유효 기간을 20년 이내로 정하는 내용입니다. 상임위는 통과했고, 이제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법이 개정된다면, 한국삭도공업은 재허가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남산 케이블카 사업자가 교체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그런데, 만약 서울시의 바람대로 곤돌라가 설치되고, 현재의 케이블카 사업자도 바뀐다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일까요? 물론, 남산의 가치를 한 기업이 독점해 영업을 무기한으로 지속하는 현 상황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걸 위해 법을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겠죠. 단, 서울시의 곤돌라 건설 계획은 이와 분리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5년 12월 기준으로 남산을 오르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또, 남산을 운행하는 전기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언덕길을 조금 걸어야 하지만 말이죠. 마지막으로 남산을 처음부터 걸어 올라가는 방법도 있죠. 정상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작은 산입니다.

이 셋 중 케이블카가 가장 매력적인 방법인가요? 물론 남산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은 특별합니다. 하지만 케이블카는 이미 너무 많습니다. 전국적으로 41곳이 운영하고 있고, 각 지방 정부는 북한산, 설악산, 치악산, 지리산 등 각 지역의 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죠.

그런데 남산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케이블카는 적자 사업입니다. 운행을 시작하고 얼마간은 반짝 관광객이 찾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케이블카는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선택지일 뿐, 여행이나 관광의 궁극적 목적이 되는 시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악산과 지리산은 다릅니다. 남산과 인왕산도 다르죠. 걸어 올라가 보면, 산행길에 보이는 풍경도, 공기도, 바위와 흙도 다릅니다. 그런데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면 비슷합니다. 아무리 풍경이 달라도 이곳의 케이블카와 저곳의 케이블카의 경험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깁니다.

서울의 책임

영국의 산악인 앨버트 머메리는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산을 진심으로 마주하는 태도로 살아가기에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어느 도시든 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습니다. 서울엔 좋은 산이 몇이나 뻗어 있고요. 그래서인지 우리는 산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지난 2021년 산림청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78퍼센트가 등산이나 트레킹을 즐기는 아마추어 ‘산악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산처럼 작은 산에 굳이 케이블카를 두 대씩이나 설치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굳이 케이블카를 타고 조급하게 정상에 닿지 않아도 남산은 충분히 아름다운 산입니다. 오히려 중턱까지만 기분 좋은 산책을 하는 편이 남산을 더 잘 즐기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전국적으로 243개나 설치된 출렁다리로 건너지 않아도 강과 계곡은 늘 즐겁고 아름다운 휴식인 것처럼 말입니다.

서울시는 전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지자체입니다. 뭐라도 해야 해서 케이블카라도 놓아 보려는 다른 지방 정부와는 입장이 다르다는 얘깁니다. 시민과 관광객, 그리고 생태에 모두 이로운 인프라를 고민할 여력이 있습니다. 전기 버스를 늘리거나, 관광객을 위한 특별 버스를 편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도 남산의 역사와 풍경, 자연을 즐기며 천천히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생태 트레킹 가이드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도 있겠지요.

남산 케이블카는 자연을 인간이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20세기식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철학은 21세기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죠. 남산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어떤 기업의 것도 아니고 서울시의 것도 아닙니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무언가를 더 짓고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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