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6월 필리핀 루손섬에서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습니다. 9시간 동안 화산재와 가스가 솟아 올랐고 847명이 사망했습니다. 정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 커다란 칼데라가 생성되었죠. 무엇보다 엄청난 화산재가 흩날렸습니다.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수도 마닐라 하늘까지 어둡게 뒤덮었으니까요.
자연은 국경을 모릅니다. 화산이 뿜어낸 이산화황(SO₂) 약 2000만 톤은 지구 전체 대기로 섞여 들어갔습니다. 이게 성층권에서 황산염 에어로졸을 형성했고요. 쉽게 말해 태양 복사열을 반사하는 미세 입자가 성층권에 흩뿌려진 겁니다.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빛이 일시적으로 줄었습니다. 그 결과 2년 동안 지구 기온이
0.5도 떨어졌죠.
재난은 비극을 낳았지만, 누군가는 이 재난으로부터 희망도 봤습니다. 이산화황을 인위적으로 공중에 살포하면, 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입니다. 이 상상력은 과학이 되고 기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산업이 되었죠. 태양 지구 공학(Solar Geoengineering)으로 돈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태양을 가리는 방법
태양 지구 공학의 핵심은 태양을 가리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걸 태양 복사 조절(SRM, Solar Radiation Mod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지구로 향하는 태양 에너지의 크기를 줄여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 방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AI, Stratospheric Aerosol Injection)입니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 당시의 자연 현상을 인간이 인공적으로 재현하자는 겁니다. 성층권에 반사막을 씌우는 방식이죠.
구름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해양 구름 증백(MCB, Marine Cloud Brightening)입니다. 바닷물을 공중에 분사해서 구름 입자를 더 작고 촘촘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구름의 색깔이 더 밝아지고, 태양 빛을 반사하는 비율도 높아집니다.
마지막으로 인공 구름 씨앗을 뿌리는 방법입니다. 권운 얇게 만들기 (CCT, Cirrus Cloud Thinning)인데, 이 방법은 태양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열이 우주로 잘 빠져나가게 합니다. 높은 하늘에 생기는 가늘고 희뿌연 구름을 권운이라고 합니다. 지구가 덮고 있는 얇은 담요 같은 존재입니다.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 에너지는 통과시키고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열은 막습니다. 그런데 권운이 생기는 높은 고도에 인공 구름 씨앗을 뿌리면 씨앗 주변으로 수증기 모여 달라붙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담요가 얇아지거나 구멍이 뚫리는 효과가 생깁니다.
모두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습니다. 설득될 만합니다. 하지만 최근 태양 지구 공학이 주목받는 까닭은 이론적 정합성 때문만이 아닙니다. 과학 말고는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게 된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적 방법으로는 기후 위기를 멈출 수 없다는 패배 의식입니다.
온난화에 대응하는 가장 큰 정치 행사는 매년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 Conference Of the Parties)입니다. 거의 매년 새로운 선언이 발표되었고, 구체적인 내용이 보도됩니다. 교토의정서, 파리협정 등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그 선언들은 현실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후 위기는 담론의 중심에서 빠르게 밀려나고 있죠.
인심은 곳간에서
COP는 1995년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열렸습니다. 기후 위기를 정치가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가 살아 있던 시절이었죠. 미국이나 유럽 등 기후 의제에 적극적인 국가들의 경제 상황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늘 호시절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침체하기 전이었죠. 이들은 기후 변화를 막아설 경제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미국은 지구 온난화의 과학적 설명을 믿지 않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유럽도 빠르게 가난해지면서 기후 정책에서 발을 빼는 분위기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차 전환 이슈입니다.
최근 유럽 연합(EU)이 2035년까지 100퍼센트 전기차로 전환하기로 했던 목표를
포기했습니다. 목표치를 조절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상 앞으로도 내연기관 차량을 계속 생산 및 판매할 수 있습니다. 원래 완성차 업계의 최고급 브랜드는 유럽에 몰려 있습니다. 그러니 전기차 전환 국면에서도 유럽 기업들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었죠. 오만이었습니다. 테슬라 때문만은 아닙니다. 중국 때문입니다. 지금 유럽 시장은
중국산 저가 전기차에 공습당하고 있습니다. 2025년 10월 기준 유럽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12퍼센트, 하이브리드 차량은 13퍼센트입니다. 경제 논리 앞에 정치적 선언은 쉽사리 번복됩니다.
미국은 마음이 더 급합니다. 생성형 AI라는 새로운 아젠다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AI 경쟁에서 앞서 나가지 못하면 기업은 도태되고 국가는 안보 위기에 빠집니다. AI를 키우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죠. 반도체와 전기입니다. 미국은 반도체를 들고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만들고 있는 최고급 성능의 GPU입니다. 하지만 전기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기후 위기 해결에 앞장섰던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들이 RE100을 버리고
문 닫은 원전까지 다시 가동하고 있습니다. 발 빠른 재생에너지 투자로 풍부한 전력망을 갖추고 있는
중국에 따라 잡히지 않으려면, 석탄은 물론이고 나무라도 태워 전기를 만들어야 할 판입니다.
빌 게이츠의 비상 망치
정치가 경제 논리 앞에서 탄소 저감이라는 목표에서 멀어지는 동안, 회의장 밖에서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빌 게이츠도 그런 사람이었죠. 2006년 게이츠는 당시 캘거리대학 소속이었던 데이비드 키스 박사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분사해 태양 에너지를 반사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현상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키스 박사는 하버드대학으로 옮겨 아이디어를 실험으로 구현하고자 합니다. 스코펙스(SCoPEx, Stratospheric Controlled Perturbation Experiment) 프로젝트입니다.
게이츠의 후원으로 자금을 확보하면서 스코펙스 프로젝트는 2018년 실제 기구를 띄워 성층권에 탄산칼슘 에어로졸을 분사하기로 합니다. 이론이 현실적으로 작동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벽에 부딪힙니다. 당시 실험 장소였던 애리조나 지역의 선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기구를 쏘아 올릴 업체도 섭외되지 않았죠.
2021년에는 업체 섭외에 성공했습니다. 스웨덴 우주 기업이 실험 장비를 실은 풍선을 발사해 주기로 했습니다. 에어로졸 방출은 제외하고 플랫폼만 테스트하기로 했죠.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이번에도 막지 못했습니다. 해당 지역의 선주민인 사미족은 물론이고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반대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결국
실험은 중단됐고 키스 박사는 하버드를 떠나 시카고대학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게이츠는 하버드대학의 태양 지구 공학 연구를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탄소 감축만으로는 온난화를 멈추기에 시간이 빠듯한데, 태양 지구 공학은 시간을 벌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겁니다. 게이츠는 ‘비상시에 유리창을 깨는 것’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이를 위해 2029년까지 약 1억 6천만 달러를 투자할 예정입니다.
어차피 정해진 결론
게이츠는 낙관주의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지구 온난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죠. 그 과정은 과학 기술로 가능해 질 것이며, 태양 지구 공학은 임시 방편적인 조치로서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게이츠에게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인류는 탄소 배출량을 줄여 기후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결국 태양 지구 공학을 생존의 수단으로써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세계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설국열차〉와 같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성공한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각국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게 될 겁니다. 지금 생성형 AI가 돈을 빨아들이듯 말이죠. 사실, 이미 그런 움직임은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기후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분의 2가 2100년이 되기 전까지 대규모 태양 복사 조절이 시도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학계에서는 곧 일어날 일이라고 보는 겁니다. 태양을 가리는 일은 인류 전체의 생사와 직결되는 일입니다. 아니,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반이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죠. 그렇다면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주관할 기구는 어딜까요? UN일까요? 절반 이상의 연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움직이는 개별 국가나 민간 기업, 혹은 억만장자와 같은 ‘불량 행위자’에 의해 주도될 것으로 봅니다.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 말입니다.
최근 머스크는 자신의
X.com 계정에 ‘대규모 태양열 발전 AI 인공위성 군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의 양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26년 상반기 상장을 앞둔 스페이스X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발언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머스크의 상상은 때로 현실이 되곤 하죠.
키스 박사는 실험 단계에서 실패했지만,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분사하는 방식에도 엄청난 돈이 투자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을 개발 중인 스타트업
스타더스트는 6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습니다. 우주에 거대한 거울을 쏘아 올려 태양열을 반사하는 방법도 제시됩니다. 영국의 고등연구발명국 (ARIA, Advanced Research and Invention Agency)은 이러한 연구에 약 75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위험하고 불공평한 실험
아직은 반발이 거셉니다. 너무나 위험하고 불공평하다는 겁니다. 위험한 까닭은 인간의 무지입니다. 우리는 여태 지구의 기후 시스템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당장 내일 태풍의 경로 예측도 빗나가는 수준이죠. 2024년 여름, 중국 충칭 지역에서 극심한 폭염을 식히려
인공 강우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업 이후에 나무가 뽑혀 나갈 정도의 폭풍우가 갑자기 발생했죠. 폭풍우가 인공 강우로 인해 발생했는지는 모릅니다. 그것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은 무지합니다.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분사하고, 권운층에 구름 씨앗을 뿌리는 식의 태양 지구 공학이 어떤 나비 효과를 불러올지, 태양 에너지를 반사하는 거대한 우주 거울이 지구의 기후 시스템에 어떤 넛지 효과를 줄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반대 측의 주장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을 감수하다 멸망으로 향하지 말고, 탄소 감축에 더 힘을 쏟자는 겁니다.
불공평한 까닭은 인간의 욕심입니다. 모든 연구가 그러하듯, 태양 지구 공학 역시 인간의 욕심에서 추진력을 얻습니다. 그 욕심은 학문적 성취를 향한 것일 수도 있고 경제적 성공을 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기술이 발전하는 연료가 됩니다. 그런데 연구의 효과를 검증하려면 실험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태양을 가려 봐야 효과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위험하다해도 말이죠.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이 남반구로 향합니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하고 인구 밀도가 작은 곳을 찾는 겁니다. 키스 박사처럼 반발에 가로막혀 실패해선 안 되니까요.
기후 변화의 원인은 북반구에서 발생했는데, 이를 되돌리기 위한 위험한 실험은 남반구에서 이루어집니다. 돈과 기술은 북반구의 것입니다. 태양 지구 공학 관련 투자가 이루어진 34개국 중 북반구 12개국이 전체 투자의 98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불공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현장이 바로 2024년에 열린 제6차 유엔 환경 총회였습니다.
스위스가 주도해 채택된 태양 지구 공학 관련 결의안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요구에 따라 철회된 겁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더 이상 우리의 대륙을 당신들의 실험실로 삼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과학을 금지하자는 주장은 승리한 적이 없습니다. 유전자 변형, 핵공학 등 많은 사람들이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기술들은 결국 완성되어 굶주림을 줄일 식품이 되고 풍요를 생산할 전기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전쟁이 되고, 재난이 되기도 했고요.
2025년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 89초 전을 가리켰습니다. 2026년 1월 시곗바늘을 다시 맞출 때쯤엔 자정에 더 가까워졌을
가능성이 높고요. 어쩌면 이제 중요한 것은 태양을 가릴 것인지 말지의 여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태양을 언제, 어떻게 가릴 것인지의 문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