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개미들이 술렁였습니다. 역대급 밈 주식이 등장했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주당 0.5달러였던 종목이 4거래일만에 1300퍼센트 이상 급등했습니다. 제 때 올라탄 사람들은 속속 수익 인증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한 발 늦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 적 없는 무서운 속도로 그래프가 곤두박질 쳤기 때문입니다. 10월 22일 하루만에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주가는 다시 1달러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종목은 ‘비욘드 미트’입니다.
비욘드 미트의 현재 주가는 0.9 달러입니다(2026년 1월 7일 기준). 한 때 주당 240달러를 넘겼던 기업입니다. 식물성 재료만으로 버거, 소시지, 너겟, 미트볼 등 다양한 식품을 만듭니다. 건강에도 좋고 환경에도 이로운 식품 회사를 지향하며 등장했습니다. 초반 성적은 좋았습니다. 상장 첫 해였던 2019년 한 해동안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의 매출이 전년 대비 185퍼센트 증가했습니다. 레스토랑 등을 대상으로 한 제품의 경우에는 312퍼센트라는 증가율을 기록했고요.
하지만 ‘건강한 대체육’을 이야기하는 비욘드 미트의 광고 문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육이 건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은 원재료의 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복잡한 가공 과정을 거친 ‘가공 식품’이며, 대체육이야말로 현대 식품 공학이 탄생시킨 궁극의 가공식품 아니냐는 겁니다.
이런 의구심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과 같이 극단적인 ‘MAHA(Make America Healthy Again)’ 세력들만의 주장은 아닙니다. 미국의 식물성 고기 및 해산물 산업은 지난 2023년 이후 28퍼센트 감소했고 매출은 18퍼센트
감소했습니다. 건강한 먹거리의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에는 굉장히 낯설고 당황스러운 흐름도 포함되어 있고요. 바로 사냥입니다.
그 스타트업의 착오
만약 비욘드 미트의 도전이 성공했더라면, 상황이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맛이 좋았다면, 화학적 성분이 덜 했다면, 그리고 가격이 일반적인 육류만큼 저렴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미욘드 미트의 기술적 성취는 그정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드셔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비욘드 미트를 선택한다는 것은 맛없는 음식을 비싸게 사는 행위였습니다. 그 비합리적인 선택에는 음식의 본질과는 다른 이유가 따라 붙어야 했습니다. 건강에 좋기 때문에, 환경에 이롭기 때문에, 공장식 축산을 멈추는 행동이기 때문에.
팬데믹 기간 돈이 워낙에 많이 풀렸고, 이후 고용 상황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경향은 지속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으니, 비욘드 미트와 같은 사업 모델이 더욱 주목 받았고요. 하지만 좋은 날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GLP-1 제재들의 대유행을 들 수 있습니다. 미국인 5명 중 1명은 사용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20세기 식품 공학의 발달은 인간을 ‘먹는 존재’로 규정했습니다. 온갖 화학 첨가물과 강력한 당류가 몸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음식을 원하도록 조종했죠. 그런데 위고비나 마운자로를 사용하면 그런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몸에 좋은 것을 필요한 만큼만 먹을 수 있습니다. 허기짐에 못 이겨 햄버거를 선택할 일이 없어지는 겁니다.
실제로 GLP-1 약물을 사용하기 시작한지 6개월 이내에 식료품 구입에 사용하는 지출은 5.3퍼센트, 식당에서 쓰는 돈은 8퍼센트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짭짤한 스낵류나 고열량 가공식품의 소비가 큰 폭으로 줄어드는 반면, 영양 밀도가 높은 식품의 소비는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요. 식품 소비의 축이 고단백, 저당, 소용량으로 옮겨 가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식품 소비 경향은 전체 시장으로도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굳이 위고비나 마운자로를 맞지 않더라도 혈당 스파이크를 걱정하고 단백질을 챙겨 먹는 사람들은 많죠.
이러한 추세 속에서 비욘드 미트의 상품은 일종의 ‘비싼 가공 식품’으로 비춰지게 됩니다. 비욘드 미트의 주력 상품은 햄버거 패티나 미트볼 같은 육류 가공 식품의 식물성 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햄버거나 미트볼 같은 음식 자체를 욕망하지 않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회피하는 경향이 증가하는 시장 상황에서 그런 제품들은 상품성을 잃게 됩니다. 어차피 햄버거를 먹을 것이 아닌데 비욘드 미트의 햄버거 패티를 살 이유가 없습니다. 식물성 단백질에 대한 완전성 논란도 거듭니다. 무엇보다, 포장지 뒷면에 적인 화학 성분들이 신뢰를 떨어트립니다. 비욘드 미트는 더이상 건강한 선택이 아니게 된 겁니다. 건강한 선택은 위고비나 마운자로입니다. 그 다음은 단백질 음료와 샐러드고요. 비욘드 미트는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윤리학
우리가 먹는 육류는 대부분 공장식 축산을 통해 공급됩니다. 도축을 목적으로 교배가 이루어진 뒤, 출생한 동물은 특정 시설에서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사육됩니다. 육질이나 크기 등을 소비자 선호에 최대한 맞출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이후 상품성이 가장 높은 시기가 도래하면 가공 공장에서 도축 및 포장되어 소매점으로 오게 되죠.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 육류를 거부하고 야생 동물을 직접 사냥해서 얻는 고기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역시 계기는
팬데믹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육류 공급망에 차질을 빚었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가격 충격도 있었죠. 그래서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육류의 대안으로 ‘직접 구한 단백질’을 찾는 경우가
발생한 겁니다. 전염병은 잦아들고 공급망은 복원되었지만, 누군가는 직접 사냥해 얻은 고기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생 단백질(wild game protein)’의 가치 말입니다.
마트에서 잘 포장된 소고기 한 팩을 사는 것은 손쉽습니다. 그러나 직접 총을 들어 동물과 대면하고, 사냥한 동물을 직접 손질하여 저장하는 수고를 들이면 공장식 축산으로 희생된 동물에 굳이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야생 동물의 고기가 더 깨끗한 단백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살찌운 지방은 없고, 자연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단련한 근육이이라는 겁니다.
사냥총을 드는 사람들은 이 행위가 환경에도 이롭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이라고 누구나 자유롭게 사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면허가 있고, 면허료와 제반 세금을 내야 합니다. 이런 수익원은 야생동물 관리 재정에 사용되고요. 게다가 언제든 자유롭게 사냥할 수 있는 개체는 외래종으로 한정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개체수 조절에도 사냥 문화가 기여한다는 겁니다.
더 극단적으로는 사냥이 종 보전의 이유가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야생 동물의 고기를 원하는 수요, 사냥을 지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지불하는 수수료를 위해 무분별한 퇴치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죠. 예를 들어, 농장에 피해를 입히는 사자가 있다면, 농부들은 주변 지역의 사자를 퇴치하고자 할 겁니다. 그러나 사냥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농부들에게 수수료를 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면 농부들이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가장 강한 동기는 바로 윤리 문제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난 사회에서 사냥은 일종의 과시적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보다 육체적으로 우월하며 아름다운 짐승의 목숨을 직접 앗아간 뒤, 박제나 뿔, 가죽 등을 전시합니다.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전시하는 겁니다. 그런데 야생 고기를 얻기 위한 사냥은 다릅니다.
‘내가 먹는 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어 식탁까지 오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른 방식의 답변이
등장한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질문에 대한 윤리적인 답변은 비거니즘 뿐이었습니다. 비욘드 미트도 그 답변의 일부였고요. 그런데 팬데믹을 전후로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우리의 몸, 건강은 물론이고 진실의 정의까지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 결과 사냥이 ‘지속 가능한 로컬 육류’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설명되기 시작한 겁니다.
정치적인 한 접시
총기를 사용해 직접 사냥을 하고, 그 결과물을 일용할 식량으로 삼는다는 서사는 매우 정치적으로 다가옵니다. 민주당 성향보다 공화당 성향이 총기를 소유하고 있을 확률이
두 배 이상입니다. 당연히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농촌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총기 소유 비율이 높고요. 이런 성향은 사냥 경험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2025년도
조사에서 사냥을 해 본적 있느냐는 질문에 공화당 지지자의 40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는 20퍼센트에 그쳤고요.
사냥이 전통적으로 ‘힘’이나 ‘강인함’, ‘남성성’ 등을 상징했다는 점도 정치성을 더합니다. MAGA 세력의 가장 강력한 스피커로 꼽히는 우익 성향 팟캐스터 조 로건도 직접 사냥한 야생 고기만을 섭취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힘의 논리를 중심에 두고 미국 중심의 세계관을 세우고 있는 MAGA 세력에게 사냥과 야생 고기는 일종의 이념적 기재로 작동합니다. 특히, 전통적인 남성성을 강조하지 않는 진보 성향의 남성을 ‘liberal snowflake(진보적인 눈송이)’라고
멸칭하는 그들 입장에서 사냥은 자신들의 문화적 우위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고요.
다만, 이 시대의 정치적 헤게모니가 아무리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해도 사냥을 통한 야생 고기 확보가 식생활의 주류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잘 포장된 고기를 구입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끊고 죽은 육신을 해체하는 과정은 몹시 충격적이며 고됩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육가공 산업에 외주 주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쉽사리 육류 요리를 만들고 먹습니다. 사냥은 그 과정을 전부 먹는 사람에게 돌려 줍니다.
그럼에도 저 개인적으로는 야생 고기의 윤리성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이 사냥을 통해 개체수를 ‘관리’한다는 생각부터 자연을 관리의 대상으로 상정하는 오만함의 발현으로 느껴집니다. 개체수나 서식지 등의 변수에 인간이 개입해서 인간에게 가장 유리한 목표 상태로 맞춘다는 개념은 시대 정신과 동떨어져 보입니다.
또한 먹을 것을 직접 획득한다는 개념보다는 사냥이라는 행위에서 오는 쾌락이 더 큰 동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지우기 힘듭니다. 야생 고기를 일컫는 용어부터 ‘game’ meat입니다. 사슴의 뿔을 걸어 두는 것보다 사슴의 고기를 먹는 생활 양식이 더욱 상징적이고 과시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소셜미디어의 시대에는 말이죠.
사냥꾼들이 돌아온 것만은 분명합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냥꾼이었고, 그것을 멈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이들의 음식보다는 이들의 삶이 몰고 올 논쟁이 더욱 궁금합니다. 과연 인류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