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건 도박

bkjn review

예측 산업은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형태의 권력으로 부상하는 중입니다.

미래를 건 도박

2026년 1월 8일

2026년은 ‘마두로’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군에 의해 체포되어 미국으로 압송되는 과정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국제 정세 분석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 기존의 규범을 깬 작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예상한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미국의 베팅 사이트 폴리마켓(Polymarket)에 미래를 보는 인물이 나타난 겁니다. 작전이 시작되기 하루 전, 한 계정이 3만 달러 넘는 판돈을 걸었습니다. 마두로 대통령이 2026년 1월 31일까지는 권력에 축출될 것이라는 선택지에 말이죠. 이 과감한 타짜는 40만 8000달러 이상의 수익을 가져갔습니다.

레딧이나 X.com 등을 중심으로 술렁이는 목소리들이 나옵니다. 이 계정이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심지어 국방부 직원일 것이라는 추측도 돌고 있습니다.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누가 그 판돈을 걸었든, 폴리마켓은 미래를 건 도박이 어떻게 권력이 되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했을 뿐입니다.

가짜 뉴스와의 전쟁

폴리마켓의 창업자 셰인 코플란은 2020년 초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서 ‘Union.market’이라는 이름의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도시가 봉쇄된 상황이었고,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전염병에 관해 각종 억측과 가짜 뉴스가 난무하던 시절이었죠. 코플란은 코로나19 관련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말을 내뱉는 것은 쉽습니다. 돈에는 신중해집니다. 바로 그 점에 착안했습니다. 사실에 돈을 걸도록 하면 이용자들의 집단 지성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본 겁니다.

코플란의 생각은 무섭게 맞아 들어갔습니다. 돈이 걸리자 집단 지성의 효율이 높아진 겁니다. 그런데 그 효율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인류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된 본능, 도박 말입니다. 도박은 미래를 예측하는 게임입니다. 이 카드를 뒤집으면, 이 주사위를 굴리면 어떤 패가 나올지를 계산하죠.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돈을 겁니다. 코플란의 플랫폼에서 사람들은 미래에 돈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도 미국 대선이나 비트코인 가격 동향, 코로나19 확진자 수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돈이 걸린 판에서 집단 지성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웬만한 전문가 이상으로 적중률이 좋았던 겁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미래를 열어 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거나 권력자가 되고 싶은 욕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는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상황을 원하죠. 불확실성 앞에서는 생존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전망하고 예측합니다. 적중 확률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엄청난 자료를 분석하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라는 집단이 대개 전망과 예측을 도맡았습니다. 미래를 볼 능력은 소수 집단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폴리마켓은 이런 시스템을 바닥부터 뒤집었습니다.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보여주던 미래를 다수의 참여자가 함께 열어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코플란은 사람들이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뉴스나 시끄러운 전문가들의 코멘트에 지쳤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폴리마켓이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라고 선언하죠.

가장 믿을 만한 여론조사

돈을 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암호화폐 지갑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다양한 주제에 관해 그렇다(Yes) 혹은 아니다(No)의 ‘지분’을 사면 됩니다. 보통 1달러를 기준으로 사람들이 몰린 비율에 따라 지분의 가격이 정해집니다. 트럼프 60퍼센트, 해리스 40퍼센트면 각각의 지분이 60센트와 40센트로 정해지는 식입니다. 이후 실제 사건이 발생하고 돈을 건 쪽이 맞다는 결과가 나오면, 이긴 사람들은 지분당 1달러씩을 정산 받게 됩니다. 방식만 보면 전형적인 도박 사이트입니다.

하지만 폴리마켓은 단순한 도박 웹사이트가 아니라 미래의 뉴스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편견 없는 정보를 원하며, 그걸 폴리마켓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죠. 2024년 미국 대선 결과가 이를 증명했습니다. 36억 달러 이상의 돈이 대선 결과 예측에 몰려들었죠. 당시에는 미국 정부 기관의 규제로 미국에서 폴리마켓에 돈을 거는 것이 불가능했는데도 말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VPN 등 우회로를 경유해 돈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NBC〉 등 유수의 언론사들이 벌인 대규모 여론조사가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선거 결과를 정확히 맞춰 냈습니다. 언론사들이 끝까지 접전이 될 것이라며 ‘편견’을 보도하는 동안 폴리마켓은 트럼프가 대세라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프레임이 형성되었습니다.

집단 지성은 정말 지금까지 없던 혁신적인 미래 예측 시스템일까요? 이걸 하이에크(Hayek)의 ‘지식의 분산성’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 활동에 필요한 지식은 통계 데이터가 아니라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입니다. 이러한 정보는 현장의 개인들에게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죠. 제가 오늘 청소기를 사려고 생각하고 있다면 2026년 1월 8일 한국의 어딘가에 1대의 청소기 수요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분산된 정보가 하나의 값으로 집결되어 나타나면, 그것이 바로 ‘가격’입니다. 중앙 계획자는 이 분산된 정보를 하나로 집결할 수 없지만, 가격은 자연스럽게 정보의 결괏값을 나타냅니다. 폴리마켓에서 사건의 발생 확률을 베팅 금액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폴리마켓이 미래를 만든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밴드웨건 효과’입니다. 유권자들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겁니다. 인기 있어 보이는 후보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는 현상입니다. 사람들이 트럼프에 더 많은 돈을 걸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트럼프 쪽으로 민심이 더 급격히 기우는 식입니다.

진실에 관여하는 힘

물론, 이기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 지지자들이 투표장으로 향할 동기가 떨어져 오히려 불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뉴욕 시장 선거를 앞두고 번화가 한복판에 ‘맘다니 94퍼센트, 쿠오모 6퍼센트’라는 대형 전광판이 빛나도 괜찮은 것일까요? 실제로 벌어졌던 일입니다. 폴리마켓이 지금 돈을 걸라며 내건 광고판입니다. 아무리 베팅 사이트의 수치라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쿠오모에게 표를 던지는 일은 무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도박판의 승패를 뒤집기 위해 사실에 개입하는 경우도 우려됩니다. 폴리마켓에서 2025년 11월 15일 우크라이나의 미르노흐라드(Myrnohrad) 지역이 러시아에 점령될 것인지를 두고 베팅이 열렸습니다. 판정의 근거로는 미국의 한 싱크탱크가 제공하는 전황 지도가 사용되었는데, 판정 직전에 해당 지역으로 러시아가 진격한 것으로 표시되었다가, 정산이 끝난 직후 지도가 원상 복구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베팅 때문에 지도를 조작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2025년 하반기에는 미국 여자 프로농구(WNBA)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코트를 향해 성인용품을 던지는 사건이 반복해서 발생했습니다. 폴리마켓에는 ‘다음 투척은 언제 일어날지’, ‘어떤 색깔일지’ 등을 두고 베팅이 열렸고요. 거센 비난이 일었습니다. 사건을 일부러 일으켜 돈을 버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가짜 뉴스를 가려내기 위한 선의로 시작한 폴리마켓은 이제 진실에 개입할 힘을 갖게 된 겁니다.

최근 〈CNN〉은 폴리마켓의 경쟁 업체인 칼시(Kalshi)와 독점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제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도하겠다면서 말이죠. 선거 결과에 관한 폴리마켓의 베팅 상황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여론조사처럼 보도되고 있고요. 현재의 사실을 알리고, 미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언론의 역할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소셜미디어나 블로그 같은 매체가 대체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진실에 관여할 힘을 가로채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자본주의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예측 산업은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형태의 권력으로 부상하는 중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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