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코르티나의 겨울

bkjn review

올림픽은 130년이나 이어 온 행사입니다. 이제 변화하거나 소멸할 수밖에 없겠죠.

이탈리아 코르티나의 겨울

2026년 1월 15일

요즘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가 무척 분주합니다. 2026년 2월 6일 개막하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준비 때문입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두 도시의 이름을 병기하는 대회입니다. 새 경기장을 되도록 짓지 않고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밀라노와 주변 여러 도시에서 경기가 분산 개최됩니다. 그중 대표 격으로 이름을 올린 곳이 코르티나담페초, 줄여서 코르티나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아마도 역대급으로 아름다운 경기가 될 겁니다. 경기가 열리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은 아름다운 풍광과 유서 깊은 역사적 장소들로 무척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코르티나 등 설상 경기가 열리는 도시들의 경우 극소수의 부유층이 즐겨 찾았던 고급 휴양지였던 곳입니다. 폐회식은 베로나의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에서 치러집니다. 

올림픽은 전통 행사입니다. 굳이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습니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때가 1896년입니다. 인류는 130년 동안 4년에 한 번씩 모여 스포츠 실력을 겨룹니다. 국가라는 시스템과 국제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입니다. 다만, 130년은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1896년과 2026년의 우리 삶이 같지 않듯,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가지는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도 새로운 시대 담론을 품고 있습니다.

유명인들의 거실

밀라노는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기에는 너무 낮고 평평합니다. 도시에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22미터입니다. 스키나 스노보드 등 설산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감당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죠. 그래서 밀라노에서는 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 등 빙판 위에서 겨루는 종목만 치러집니다. 나머지 경기들은 알프스산맥 곳곳에 위치한 도시들에서 나누어 개최될 예정이고요.

이 중 코르티나는 밀라노에서 42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자동차로 5시간 정도 걸립니다. 1956년 이미 한차례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경력직’입니다. 당시 사용했던 경기 시설을 되도록 재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다만, 일부 경기장은 새로 짓게 되면서 환경 단체 등의 반발을 사기도 했죠.

사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국제적인 ‘제트족’의 휴양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제트족은 전용기(Jet)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리조트, 파티, 패션, 예술, 스포츠 이벤트 등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부유층이나 유명인, 사교계 인사가 대부분이죠. 할리우드 전성기의 스타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도 코르티나의 겨울을 즐겼다고 합니다.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코르티나는 더욱 주목받게 되었고, 오드리 햅번, 브리짓 바르도, 로저 무어 등 화려한 스타들로부터 사랑받는 휴양지로 떠오르면서 ‘유명인들의 거실(il salotto dei famosi)’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007시리즈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는 겨울 스포츠와 본드의 액션이 어우러지는 배경으로 코르티나가 등장합니다.
부자를 유혹하는 방법

이탈리아 정부는 이 화려한 도시를 다시 한번 세계에 자랑하고자 합니다.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자들을 이탈리아로 끌어들이기 위해섭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17년부터 해외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정액제’로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10년 기준으로 이탈리아 거주자가 아니었던 사람을 대상으로 하니, 해외의 부유층을 끌어들이겠다는 노골적인 계산입니다.

정액으로 내는 세금의 규모는 연간 10만 유로로 시작해 현재 20만 유로 수준이고, 곧 30만 유로로 인상될 예정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30만 유로만 내면 되니, 꽤 매력적인 정책입니다. 공식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실제로 이 제도가 시작된 이후 자산가들이 이탈리아로 유입되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 이탈리아 정부의 분석입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1000명 넘게 이 제도를 이용했다는 집계도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불만이 나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밀라노를 중심으로 세제 특혜로 유입된 고소득층이 집값과 임대료를 높이고, 도시 내 불평등 인식을 심화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정부는 적극적입니다. 초부유층 유치는 악화하는 재정을 어떻게든 떠받칠 궁여지책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960년대 부유층을 사로잡았던 코르티나를 이용해 이탈리아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코르티나에는 엄청난 회원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초고가 클럽이 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도 속속 문을 열고요. 고급 레스토랑이라도 방문하려면 몇 주 전부터 예약을 잡아야 합니다. 오랫동안 지역을 지켜 온 주민들은 이러한 변화에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엄청난 세수 확보와 소비 진작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번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교통편이 아쉬웠던 코르티나는 도로를 정비하는 등 기반 시설을 확충할 수 있었습니다. 밀라노와 같은 국제도시와 더욱 가까워진다면, 코르티나의 매력도는 높아질 겁니다. 또, 전 세계로 생중계될 경기 장면은 아름다운 도시의 매력을 홍보할 수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광고 영상이 되겠죠. 이번 올림픽을 통해 이탈리아는 제대로 세일즈에 나설 작정입니다.

녹아내리는 올림픽

한때 올림픽은 전 세계에 개최국의 발전상을 자랑하는 수단이었습니다. 혹은 개최국의 ‘정상성’을 담보하는 자리이기도 했고요. 권위주의 정권이 올림픽과같이 값비싼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고자 열망했던 이유겠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완벽한 ‘부흥’을 강조하기 위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도 도쿄 올림픽에 퍽 공을 들였습니다.

다만, 성장의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이기도 했을 겁니다. 도쿄 올림픽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이제 올림픽은 기피 행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굳이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나라와 도시를 뽐낼 기회는 많습니다. 반면, 국제 스포츠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설 투자가 필요하고요. 저성장 시대에는 수지가 도무지 맞지 않는 장사입니다. 이탈리아는 꽤 영리한 전략을 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홍보의 대상을 아주 정확히 타깃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변한 것은 또 있습니다. 날씨 얘깁니다. 1956년 경기 모습을 보면 눈 덮인 코르티나의 아름다운 설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돌로미티산맥에서 트럭으로 눈을 좀 공수하긴 했지만 말이죠.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를 겁니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 조직위원회는 약 240만 세제곱미터의 인공눈을 만들어 뿌릴 예정입니다. 눈이 충분치 않은 것이죠.
1956년 코르티나 올림픽 피겨 스케이트 부문 경기 장면입니다. / 출처: IOC
인공눈은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보조적인 용도로 사용되다가 급기야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거의 인공눈만으로 치러지게 되었죠. 코르티나가 위치한 이탈리아 북부는 알프스산맥을 접하고 있어 겨울이 무척 춥고 눈이 많습니다. 하지만 알프스 지역 전반에 걸쳐 강설량은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때문입니다. 

기후 위기는 언젠가 올림픽을 멈춰 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동계 올림픽 후보지 93곳을 기준으로 평가를 진행했는데, 2050년대에는 경기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3월에 치러지는 패럴림픽의 경우에는 개최 가능 지역이 22곳에 불과하고요. 인공눈 없이는 경기를 치를 수조차 없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동계 올림픽을 지속해야 할 명분은 지금보다 더 허약해질 겁니다. 올림픽은 130년이나 이어 온 행사입니다. 사회도, 경제도, 기후도 달라졌다면, 올림픽도 변화하거나 소멸할 수밖에 없겠죠.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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