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에서 탈출한 사람들

bkjn review

쇼핑에서 도박까지, 우리는 어떤 것에든 중독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GLP-1이 등장했습니다.

갈망에서 탈출한 사람들

2026년 1월 20일

미국 주요 항공사들이 올해 최대 5억 8000만 달러까지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투자은행에서 내놓은 전망인데,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GLP-1 제제 비만 치료제 덕입니다. 탐승객의 체중이 줄면서 연료를 덜 소모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성인 비만율은 3년 연속 감소 중입니다. 전에 없던 현상이죠. 비만 치료제 상용화에 따른 나비 효과가 항공 운수 업계에까지 가 닿았습니다.

이런 변화는 더 다양한 형태로 곳곳에서 나타날 전망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환자 스스로 주사를 찔러 넣어야 하는 현재의 방식은 아무래도 편리하다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먹는 위고비가 미국에서는 이미 출시되었습니다. 마운자로도 경구형 제품을 임상 시험 중이고요. 여기에 붙이는 형태, 반 년짜리 임플란트 등 편의성을 키운 제품 개발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가격도 가벼워집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 달 치 주사를 처방받아 구입하려면, 최소 용량 기준으로 25만 원에서 40만 원 정도 듭니다. 미국에서는 보험 적용 없이 주사형 위고비를 구입할 경우 월 349달러부터 시작입니다. 우리 돈으로 50만 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먹는 위고비 가격은 한 달 기준 약 22만 원 수준입니다. 복제약이 시판되기 시작하면 더 저렴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겠죠. 망설이던 사람들도 마음을 먹게 될 겁니다.

더 많은 사람이 GLP-1을 경험할수록 변화는 커지겠지요. 이 변화의 시작은 결과를 종용받지 않는 연구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변화란, 항공사의 수익성이 좋아진다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생각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비만 치료제는 우리의 상식과 표준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그게 꼭 나쁘지는 않습니다.

R&D의 의미

지금까지의 비만 치료제는 뇌의 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미쳐 입맛을 떨어뜨리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펜터민 성분의 ‘나비약’을 들 수 있습니다. 신경계에 작용하는 만큼, 중독성이 있고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위험이 큽니다. 오래 복용하면 부작용도 크고요. 반면 GLP-1 제제는 주로 장에 호르몬처럼 작용합니다. 위장 운동을 늦춰 소화 속도를 조절하고, 우리 뇌가 포만감을 느끼도록 합니다.

이 분야의 선구자로 꼽히는 조엘 하베너 교수는 GLP-1 호르몬을 1980년대 발견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R&D 투자 덕분이었죠. 하베너 박사는 당시 하워드 휴즈 의학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는데, 연구소의 요구사항은 ‘4~5년마다 새롭고 흥미로운, 놀라운 발견을 가지고 나타날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베너 교수는 그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결과를 냈고요. 다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본래 우리 몸이 만들어 내는 천연 GLP-1 호르몬은 반감기가 2~3분 정도라는 점입니다. 이래서는 우리 몸에 투여해도 의미 있는 효과를 얻기 힘듭니다. 

이걸 해결한 것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기초 과학 연구였습니다. 다양한 동물의 독을 연구해 인체 생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찾는 프로젝트에서 ‘힐라 몬스터’라는 이름의 독도마뱀이 주목받은 겁니다. 이후 힐라 몬스터의 침에서 인간의 GLP-1 호르몬과 유사하지만, 반감기가 늦은 성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위고비, 마운자로가 탄생할 수 있었고요.

비만 치료제의 발명은 돈을 벌거나 업적이 되고자 시작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탐구와 발견을 존중하는 투자가 있었습니다. 그게 아마도 R&D(Research and Development)의 ‘R’에 해당하는 것이겠죠. 폭넓은 연구 끝에 엄청난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당뇨와 비만은 지금까지 제약 회사들에게 황금의 땅이었습니다. GLP-1이 그곳으로 가는 길을 완전히 열었고요. 돈을 벌고자 시작한 연구는 아니었지만, 2030년까지 GLP-1 제제 매출은 전 세계 처방 약의 10퍼센트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 정도면 경제적으로 따져도 엄청난 혁신입니다.

의외의 부작용

그런데 이 혁신이 좀 다른 곳에서도 발휘되는 것 같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심근을 강화해 심장 질환을 예방한다거나 간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체중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효과가 아니라고 합니다. 체중 감소의 영향 이상으로 건강이 호전됩니다. 그냥 GLP-1 제제가 그런 결과를 낳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정확한 의학적 작용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신체 전반의 염증을 줄여 주는 것 아니겠냐는 정도의 추론이 가능한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주목받는 예상외의 효과는 중독을 치료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알코올 중독에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성인에게 주 1회 저용량으로 GLP-1 제제를 투여했더니 알코올에 대한 갈망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식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약물 중독 치료에도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소득 수준이나 학력 등이 유리할수록 중독에서 회복되기 쉽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와 같은 변수를 제외한 임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나 노숙, 수감 생활을 겪은 마약 중독 환자를 대상으로 GLP-1 제제를 투여하여 회복을 돕는 겁니다. 현재까지 결과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코카인에 중독되어 사랑하는 아이들까지 입양 보내야 했던 한 여성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GLP-1 제제 치료 이후 자신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의 양부모로부터도 인정받고 있다고, 마약상이 거래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유혹을 느끼기는커녕 역겨웠다고 증언합니다. 물론, 이 여성은 연구 기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약물을 복용할 수 있었습니다.

중독을 완화하거나 치유하는 효과에 관해서도 그 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유력한 가설은 GLP-1이 뇌의 보상 경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약물이 음식에 대한 매력을 떨어뜨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알코올에 대한 욕구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입니다. 실제로 동물 실험에서 GLP-1 제제가 알코올 섭취에 따른 도파민 분비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한때 그렇게도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 도파민 말입니다.

중독에 관하여

인간은 유약한 존재입니다. 쇼핑에서 도박까지, 우리는 어떤 것에든 중독될 수 있습니다. 한 때는 이런 증상이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으로 치부되었습니다. 마치 비만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쩌면 인간은 살기 위해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불안을, 불행을, 불안정을 견디기 위해 뇌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쾌락을 좇는 겁니다. 대개는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가장 저렴한 옵션을 선택하게 됩니다.

비만도 일종의 중독의 결과 아닐까요. 특히 대사 질환이나 유전 때문이 아니라, 과식이나 영양 불균형 때문에 발병한 비만이라면 음식 중독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초가공식품과 중독 물질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죠. 우리의 미각과 후각을 속이는 화학 물질, 미리 씹어서 나온 것 같은 부드러운 식감, 자연에 있는 그 어떤 재료로도 구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고소하고 달콤한 맛 등은 우리의 뇌가 즉각적으로 그 음식을 원하게 만듭니다.

중독이 유약한 개인에게 발생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은 과학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중독은 뇌 기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뇌가 지나치게 활성화될 때 시작합니다. 이 경우 우리 주변 환경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자극에 끌립니다. 이를테면 액상 과당이 잔뜩 든 음료수 같은 것 말입니다.

FDA(미국 식품의약청)에서 국장으로 오랜 기간 일했고, 의과대학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데이비드 케슬러 박사 또한 그러한 음식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마트의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초가공식품의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면서 말이죠. 케슬러 박사는 이런 음식들이 갈망을 불러일으키며, 뇌의 보상 시스템을 조작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조작을 멈추는 것이 바로 GLP-1 제제고요.

자책이 미덕인 사회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건강에 해로운 것들이 가득 찬 세계에 살게 되었을까요? 건강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규정하면서일지도 모릅니다. 1970년대 말 미국 정부는 ‘건강한 사람들(Healthy People)’ 계획을 수립합니다. 생활 습관 개선을 목표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습관을 바꾸면 만성 질환을 해결할 수 있다는 프레임을 바탕으로 합니다.

식품 사막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이들에게 제대로 식사를 챙겨줄 보호자가 없는 가정을 지원하려면 막대한 규모의 경제적 재분배가 필요합니다. 70년대 말부터 고개를 들던 신자유주의와는 좀처럼 결이 맞지 않습니다. 대신 개인의 행동에 주목하는 정책은 쉽습니다. 개인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이용하면, 설사 건강 증진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정부나 사회, 시스템을 탓하는 목소리는 잦아듭니다.

이런 방식은 기업에도 면죄부를 부여합니다. 초가공식품을 만드는 식품 기업, 담배 제조 회사는 물론이고 청소년에 중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소셜 미디어 빅테크까지, 그들은 ‘소비할 권리’를 지켜 주는 공급자일 뿐, 건강을 해치는 가해자의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몇십 년간의 영향이 쌓이고 나서야 우리는 음식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만 먹고 싶은데 멈출 수 없는 현상이 유쾌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심각한 증상일 수 있다는 사실도요. 드디어 중독에서 벗어날 방법이 생겼습니다. 비만 치료제 말입니다. 어쩌면 곧 중독 치료제로 불리게 될 수도 있을 약물입니다. 다만, 탈출은 선착순이 아닙니다. 한 달에 몇십만 원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부터 그 문이 열립니다. GLP-1에서 중독 치료의 희망을 보는 연구자들은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더 저렴하게 위고비나 마운자로를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Body Positive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빠르게 적응하는 업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음식점에서는 양을 줄이는 대신 단백질 등 중요한 영양소를 강화한 메뉴를 선보입니다. 아직은 고소득층이나 직장인이 주로 들르는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 중이라고 합니다. 영국 금융가에서는 수선집이 호황입니다. 예전 몸에 맞춰 장만했던 고급 정장을 달라진 몸에 맞게 고치는 겁니다.

헬스장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고객이 감소했을 것 같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만 치료제로 효과를 본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을 더 두게 되고, 근육량을 키우기 위해 헬스장을 찾는 경우가 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고객들은 러닝머신보다는 덤벨 등 근육 운동에 집중합니다. 플래닛 피트니스, 크런치 피트니스 등 미국의 대형 헬스클럽 기업들은 물론이고, 퓨어 짐, 더 짐 그룹 등 유럽 업체들도 새로운 지점을 열거나 기존 지점을 리모델링할 때 유산소 운동 기구는 줄이고 근력 운동 기구를 강화합니다.

약품의 가격 장벽 때문에 한계는 있지만, 비만이라는 질병이 품었던 사회적 함의도 조금씩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바로 ‘내 몸 긍정하기(body positive)’에 관한 새로운 정의입니다.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의지와 비용이 필요했던 시대에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이 강조되었습니다. 내 몸을 부정하는 일은 분명 정신 건강에 좋지 않고 고통스럽죠. 가장 간편한 방법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웰빙(well-being)입니다. 내 안에서 평화를 찾는 방법이죠.

하지만, 누구나 내 몸을 긍정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불어난 체중 때문에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음식에 대한 갈망을 이기지 못할 때마다 자괴감에 휩싸이면서도 여전히 내 몸을 긍정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는 너무 절망스럽습니다. 강요된 아름다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과 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는 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다릅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그 둘이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체중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은 더 이상 자기 부정이 아닙니다. 어떤 해결책은 내 몸 밖에 있습니다.

페니실린은, 경구 피임약은 삶의 방식을 바꿨습니다. 옳고 그름의 철학도 바꿨죠. 어쩌면 비만 치료제도 그만큼의 변화를 동반할지 모르겠습니다. 변화는 과학과 산업이 만들었습니다. 이제 그 변화가 격차를 더욱 벌리지 않도록, 오히려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향하도록 방향타를 잡을 책임에 관해 생각할 때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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