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똑똑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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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분야에서는 다른 그 어떤 능력치보다도 경쟁에서 살아남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그 똑똑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26년 1월 27일

때가 되면 나오는 기사가 있습니다. 김장철 배춧값 기사 같은 겁니다. 봄철이 되면 산불의 심각성을 알리는 보도가 쏟아집니다. 혹서기와 혹한기를 앞두고는 기후 취약 계층의 주거지를 방문하는 리포트가 제작되고, 가을이 되면 국회 국정감사 제도를 되짚는 기획이 보이는 식이죠. 요 몇 년 새엔 1월과 6월 말엽에도 이런 계절성 기사가 보입니다. 졸업 시즌에 따라 나오는 학점 인플레이션 얘깁니다.

매년 똑같은 내용을 ‘복붙’할 수는 없지요. 2025년 기사의 중심에는 서강대학교가 있었습니다. 수업은 물론 평가도 상대적으로 엄격한 것으로 유명했던 서강대조차 A 학점 비율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타 대학과 비교해 평균적으로 학점이 낮아 취업이나 로스쿨 진학 등에서 불리하다는 학생들의 요구 때문입니다.

올해도 비슷한 기사가 보입니다. 《조선일보》는 특히 인문계에서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이유로 로스쿨 열풍을 꼽았습니다. 사실, 의대 입시만큼 어떤 ‘광기’까지 포착되는 것은 아니지만, 로스쿨 진학 희망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입시 전형에 학부 학점이 반영되다 보니, 학생들이 학점 잘 주는 강의만 골라서 수강하고 학교도 학점을 잘 주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대학가에는 ‘올 A’ 학점의 로스쿨 지망생이 드물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왜 한국은 의사와 법조인이라는 직업에 그렇게까지 욕망을 품는 것일까요? 직업의 보람은 물론이고 소득 면에서도 더 큰 기대를 걸 수 있는 직업이 분명히 있을 텐데 말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다른 나라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인재 깔때기

우리나라에서는 인재들이 의대와 로스쿨로 몰립니다. 이에 관해 사회적 우려도 나오고 있죠. 해외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와는 분야가 좀 다릅니다. 영미권에서는 금융, 경영 컨설팅, 기업 법률 분야 쪽으로 인재가 집중되는 현상에 주목해 왔습니다. 뉴욕의 월스트리트나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 지역이 인재를 빨아들인다고 봅니다. 요즘에는 여기에 빅테크까지 가세했습니다. 이런 직군을 ‘인재의 버뮤다 삼각지대’, ‘인재 깔때기(career funneling)’ 등으로 칭합니다.

하버드대학교를 예로 들어보죠. 1970년대에는 졸업 후 바로 취업한 사람 중에 금융이나 컨설팅 분야에 자리 잡은 경우가 20명 중 1명꼴이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가 되면 5명 중 1명, 1990년대에는 4명 중 1명으로 늘어났고요. 급기야 2024년 졸업한 취업자 중 절반이 금융, 컨설팅 및 기술 분야로 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쯤 되면 캠퍼스는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입니다. 기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죠.

동아리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컨설팅, 투자 등 전문직 진출을 목표로 하는 곳이 인기입니다. 일부 동아리는 지원자 중 극소수만 선발해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활동 성과에 따라 ‘파트너’나 ‘이사’ 등의 임원 직급을 달아주기도 합니다. 월스트리트의 삶을 미리 체험하는 셈입니다. 학생들은 이런 동아리 활동을 통해 시타델 같은 유명 헤지펀드나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 은행에 인맥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배들이 다니고 있는 회사로 이미 목적지를 정해 놓은 겁니다.

그 회사가 멋있지는 않지만

최고의 인재들이 가장 돈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죠. 그런데 이걸 좀 의심해야 한다고, 다른 선택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습니다. 2012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예일대학교 학생 ‘마리나 키건’입니다. 사망 당시 22살이었습니다.

키건은 당시 소소한 유명세를 얻고 있었습니다. 예일대 교내 신문에 기고한 기사와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에 기고한 칼럼 때문이었죠. 왜 나의 친구들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곳으로 향하지 않는지, 예술이든, 사회 운동이든, 과학 발전이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향하지 않는지 질문하는 글이었습니다.

막 입학한 학생 중에 은행가를 꿈꾸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졸업생의 25퍼센트는 월스트리트로 향하는 것일까요? 답을 얻기 위해 키건은 20명의 예일대 학생을 인터뷰합니다. 그렇게 발견한 이유는 조금 의외였죠. 학생들이 금융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높은 연봉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저 어디서, 어떻게 직업을 구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투자 은행이나 컨설팅 회사 등은 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행사를 마련해 관계를 쌓습니다. 개별적으로 이메일을 보내면서 특별한 존재, 필요한 존재라는 보상감도 안겨줍니다.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는 경력이라는 인식도 심어주죠. 장래 희망이 막막한 우등생들에게 해답을 제시하는 겁니다. 꿈이 있었던 학생 중에는 두려움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벌써부터 억대 연봉을 받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을 보면 너무 무섭다’라는 겁니다. 

물론,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명문대학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평가, 혹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키건은 이를 “60년대와 70년대의 기업 혐오증을 물려받았다”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학생들에게 JP모건이나 모건스탠리와 같은 곳이 경력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설득합니다. 이후에 무슨 일을 하게 되든 말이죠. 비록 나중에 비영리 단체에서 일할 계획이라도, 일단은 모건스탠리에 합류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지가 됩니다. 사실, 다른 선택지에 관해 제대로 모르기도 하고요. 결국, 학생들은 월스트리트를 향한 경쟁에 뛰어듭니다.

강요된 창업가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을 질문받으면 대답이 쉽게 나옵니다.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 직업에 관해서도, 나 자신에 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유튜버가 되겠다’, ‘아이돌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10대 중반만 되어도 쉽지 않습니다. 당장 진학할 대학과 학과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내가 어떤 직업을 갖길 원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를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 여전히 그렇습니다. 자신의 직업적 의지와 재능에 관해 확신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죠. 성실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자신이 속한 사회가 제시하는 답안지는 분명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간 사람들이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 일자리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답안지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인간은 불확실성을 싫어합니다. 아이비리그에서는 골드만삭스가, 한국 사회에서는 의대와 로스쿨이 확실한 답안지입니다.

여기에 위험에 대한 회피가 더해지면 편향은 더욱 심해집니다. 최근 생성형 AI의 등장 등으로 미국에서는 대졸자 고용 시장이 한파를 겪고 있습니다. 모든 분야의 취업 문이 좁아지면, 금융계와 같이 재정적 안정을 보장해 주는 일자리가 더욱 안전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로스쿨 열풍도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는 취업 시장 때문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인디애나대학교 연구진이 약 64만 명의 미국 대학 졸업자들의 고용 기록 및 이들이 설립한 기업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대학 졸업 시점의 실업률이 높아서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창업을 선택하게 된 사람들을 추려 ‘강요된 창업가(Forced Entrepreneurs)’로 정의하고, 이들의 성과를 추적한 겁니다.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강요된 창업가들의 회사는 경기가 좋을 때 자발적으로 창업한 이들의 회사보다 훨씬 높은 생존 확률을 기록했습니다. 특허 출원 등 혁신을 더 많이 만들어 냈으며, VC로부터의 투자도 더 잘 받았습니다. 고용도 더 많이 창출했죠. 연구진은 불황으로 대기업이나 고액 연봉 직종의 채용이 줄어들면서 능력 있는 고소득 잠재 인력들이 창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역설적으로 불황이 준비된 능력자들을 기업가 정신의 길로 밀어 넣어 혁신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의 도덕적 야망

미국과 한국은 특정 분야로 학생이 쏠리는 상황에 대해 좀 다르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학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클래스 액션(Class Action)’이라는 단체인데, 대학이 학생과 지역사회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금융, 컨설팅, 기술 분야의 적극적인 채용 시스템과 이를 지원하는 대학 당국이 더 큰 격차를 만들고, 대학과 사회를 유리시킨다고 주장하죠. 유럽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뛰어들겠다는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각종 연구를 수행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역사가 루트거 브레그만이 창립한 ‘도덕적 야망 학교(The School for Moral Ambition)’입니다. 의미 없는 직장은 그만두고, 도덕적인 야망을 품을 때라고 재촉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때라고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이 스스로 기업에 유망한 인재를 공급하는 기관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숨기지도 않습니다. 대학 당국은 그런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에 이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아예 없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대학의 역할이 학교가 아니라는 데에 암묵적인 동의가 되어 있습니다. 의대 쏠림 현상이나 학점 인플레에 관해 문제는 제기되지만, 그 담론 안에는 대학이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대학이 사회와 가까워져야 한다는 의식은 없습니다. 대학이 뭔가를 할 수 있다거나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 몰리면, 다른 분야에서는 혁신의 발생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분야에서는 다른 그 어떤 능력치보다도 경쟁에서 살아남는 능력이 중요해지고요.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이걸 해결해 보겠다는 주체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 불안합니다.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우리 사회에 없다는 점도요.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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