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통합은 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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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20조 원’ 말고 정작 왜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행정 통합은 왜 하는가

2026년 2월 2일

광주·전남, 대전·충남, 대구·경북이 행정 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 곳 모두 2월 말까지 통합 특별법을 국회에서 처리할 계획입니다. 목표대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6월 지방 선거에서 통합 광역 단체장을 뽑습니다. 7월 1일 전남광주특별시, 충남대전특별시, 대구경북특별시가 출범합니다.

행정 통합을 둘러싼 뉴스가 쏟아집니다. 논점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 광역시와 도가 통합하면, 도의 낙후 지역은 광역시에 흡수당할 수 있다. 그러면 지역 내 불균형이 심화한다.
  • 통합 단체장에게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주면 국토가 난개발될 수 있다.
  • 통합 광역 단체의 이름은 어떻게 되나, 기존 공무원 조직은 어떻게 재편되나.
  • 행정 통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선거를 4개월 앞두고 졸속 추진하는 것 아니냐.

모두 통합 전에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 통합을 왜 하는가’입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분명합니다. 정부는 지난 1월 16일 행정 통합을 추진하는 지역에 4년간 최대 20조 원 규모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과 지위를 부여하고, 공공 기관 우선 이전 혜택도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4년간 20조 원 준다니까 하는 거냐?”

솔직히 말하면, 맞습니다. 그 인센티브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행정 통합 논의는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닙니다. 수도권 집중 완화, 지방 소멸 대응, 자치 분권 강화 차원에서 언젠가는 해야 할 선택이었습니다. 2019년 대구와 경북이 전국 광역 단체 중 최초로 행정 통합을 추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정치적 부담과 이해관계 충돌로 미뤄져 왔을 뿐입니다.

이번에는 정부가 강한 유인책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지방 정부들은 이렇게 판단한 거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조건이 가장 좋을 때 하자.” 그 결과가 지금의 빠른 속도입니다.

왜 하나?

행정 통합의 본질은 규모가 아니라 권한입니다. 행정 통합은 단순히 지자체를 합치는 일이 아닙니다. 핵심은 행정 구역의 크기가 아니라 권한의 이동입니다.

광주와 전남, 대전과 충남, 대구와 경북이 통합되어 하나의 광역 단체가 될 때, 단순히 시·도의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닙니다. 중앙 정부가 쥐고 있던 행정·재정 권한의 상당 부분이 지방 정부로 내려옵니다.

이번에 발의된 세 곳의 통합 특별법을 보면, 조문이 수백 개에 이릅니다. 대부분이 ‘특례’ 조항입니다. 기존 법체계에서 중앙 정부만 할 수 있었던 일들 ― 예컨대 예비 타당성 면제, 그린벨트 해제, 특목고 설립 권한 ― 을 지방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입니다.

경북 영양군은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립니다. 왕복 4차선 도로가 없는 전국 유일의 지자체입니다. 고속도로와 철도는 당연히 없습니다. 병원에 갈 때는 이웃 지자체로 가야 하는데,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왕복 2차선 도로로 1시간 걸립니다.

그런데 왕복 4차선 도로를 내달라고 해도 중앙 정부에서 내주지 않습니다.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면 인구가 적어서 비용 대비 편익이 안 나와서 그렇습니다. 영양군 입장에선 답답합니다. 도로가 없으니 주민이 떠나고, 주민이 떠나니 편익은 더 낮아집니다. 인구가 밀집되어 예타 프리 패스인 수도권에만 SOC가 계속 집중됩니다.

그런데 행정 통합을 하면, 예타 면제를 포함해 지방 정부가 중앙의 권한을 상당 부분 넘겨받습니다. 중앙 정부가 정한 단일 기준을 따르는 게 아니라, 지역을 잘 아는 지방 정부가 지역에 맞게 지역 살림을 꾸려 나가게 됩니다.

예컨대 무안과 양양은 둘 다 해양 도시지만, 산업 생태계가 다릅니다. 그런데 해양에 관한 중앙 정부의 규제는 전국 공통입니다. 지방 정부가 중앙의 권한을 가져가면, 지역 특색에 맞게 해양 규제를 다르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양식장 위주냐, 해양 레포츠 위주냐에 따라 규제가 달라지는 식입니다. 쉽게 말해, 이게 지방 분권입니다. 지역 사정에 맞게 알아서 할 테니, 중앙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걸 하려고 행정 통합을 하는 겁니다.

5극 3특

지방 분권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5극 3특’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냈습니다. 지방 정부에서 뭘 해보려고 해도 중앙 정부의 규제에 막혀 못했던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겁니다. 이재명 정부는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벗어나 전국을 5개의 광역 경제권(극)과 3개의 특화 지역(특)으로 재편하고자 합니다. 5극은 수도권, 충청권, 동남권(부울경), 대구·경북권, 광주·전남권이고, 3특은 강원, 전북, 제주입니다.

가진 게 없을 때는 ‘원툴’에 집중하는 게 빠른 성장에 유리합니다. 한국은 ‘수도권 원툴’로 고속 성장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이 새로운 한계가 되었습니다. 수도권 과밀은 주거, 교통, 교육, 환경 문제를 키웠고, 비수도권은 인구 유출과 산업 공동화로 소멸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더 이상 ‘수도권 원툴’로는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파이브툴’로 가자는 겁니다. 지역 균형 발전과 자치 분권 강화로 저성장의 터널을 뚫고 나가는 전략입니다. 정부의 행정 통합 인센티브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대학의 연구 역량과 자원이 서울대 한곳에 집중된 구조를 깨고, 지역마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거점 대학을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지금 한국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획일성입니다. 학교 이름만 다릅니다. 학과 구성도, 커리큘럼도, 평가 기준도 비슷합니다. 심지어 교재까지 비슷합니다. 그러니 대학 서열이 생깁니다. 학생과 교수와 연구 자원이 전부 서울로 몰립니다. 지방대가 서울대를 이기려면 특정 분야에 특화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교육부 규제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행정 통합 특별법에는 대학의 설립, 정원 조정, 지도·감독 권한을 중앙 정부에서 지방 정부로 이양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예를 들어, 대구·경북권은 로봇과 전자, 광주·전남권은 AI와 에너지 산업에 특화된 대학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생태학을 제일 잘하는 대학이 강원대가 되고, 해양을 제일 잘하는 대학이 제주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학문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서울대 안 가고 지방 거점 국립대에 갑니다.

기업 유치

이번 특별법에는 기업 유치를 위한 세제 특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법인세, 상속세 감면이 대표적입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 조항들이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미지수인데, 만약 상당 부분 유지된다면 기업의 지방 이전이 전보다 확실히 늘어날 겁니다. 잘하면, 한국판 텍사스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법인세 유무, 소득세 구조, 규제 수준, 노동법, 인허가 속도, 산업 정책, 인프라 투자까지 기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주정부가 결정합니다. 기업들은 마치 어느 나라로 생산 기지를 옮길까를 고민하듯, 어느 주로 갈까를 고민합니다.

미국 텍사스주는 법인세가 없고, 주 소득세도 없습니다. 기업 친화적인 법·행정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인허가도 빠릅니다. 에너지 비용과 토지 비용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친기업적 정치 문화도 있습니다. 그래서 테슬라, 오라클 같은 기업들이 텍사스로 본사를 옮겼습니다. 단순히 세금만 깎아준 게 아니라, 주정부가 규제·세제·산업 정책을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해 주 단위 경쟁 체계가 작동한 결과입니다.

행정 통합은 지방 정부를 이런 경쟁의 주체로 만드는 시도입니다. 같은 조건이면 기업들은 전부 수도권에 터를 잡습니다. 사람과 인프라가 전부 수도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수도권에 본사든 공장이든 지어 놓으면, 가만히 있어도 땅값이 올라서 돈 법니다. 하지만 통합 광역 단체가 기업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면, 기업들이 비수도권 이전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결국 돈 벌리는 곳으로 갑니다.

지방의 시대

가야 할 방향인 건 분명한데, 문제는 속도입니다. 행정 통합은 한번 하고 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지방 선거까지 넉 달 남았습니다. 이런 커다란 구조 개편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행정 통합을 하고 나서, 기초단체들에서 통합 괜히 했다는 소리가 나오면 지역 갈등만 커집니다. 이런 통합은 안 하느니만 못 합니다.

그래서 2월 국회가 중요합니다. 국회에서 이 특별법들이 어떻게 손질되고, 어떤 권한이 실제로 넘어오고, 지역 내 균형 발전을 보장할 어떤 안전장치가 마련되느냐에 따라 행정 통합의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대로 설계된다면, 지금의 중앙 집권 구조로는 풀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4년 20조 원”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돈 잔치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이번 행정 통합은 수도권 집중이라는 대한민국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한 마지막 수술입니다.

특별법의 조항 하나하나가 향후 수십 년간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디서 공부하고 어디서 일하고 어디서 살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방에 서울만큼 좋은 일자리가 있고, 서울보다 집값도 싸고, 공기 좋고 차 안 막혀서 살기도 좋다면, 저부터 지방에 살 겁니다. 우리는 지금 서울 일극 체제에서 지방 다극 체제로 전환되는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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