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다보스 포럼 연설이 화제다. 카니 총리는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가 깨졌다”며 중견국들이 패권국의 총애를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대신 힘을 합쳐 ‘제3의 길’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의 약탈적 패권주의는 트럼프 임기 동안의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그 이후에도 지속될 새로운 국제 질서의 시작인가?
미국 외교의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시적 일탈이라기보다는, 카니 총리가 지적했듯 단순한 정책 전환을 넘어선 역사적 단절에 가깝다. 이제 국제 질서는 ‘대분열의 세계’를 기본값으로 전제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기존의 규칙 기반 질서는 미국이라는 압도적 패권국이 제공하는 공공재에 동맹국들이 편승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지도자들이 이런 불평등을 감수해 왔다는 인식이 있다. 그렇기에 이를 집단적 자기기만의 시대로 규정하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국제적 의무를 한꺼번에 내려놓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과거처럼 비용을 혼자 부담하기보다, 다른 국가들과 부담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더 이상 국제 문제에 적극 개입하며 비용을 감당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트럼프라는 개인의 등장이란 변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네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물론 트럼프와도 연관이 있지만, 그가 없었더라도 변화의 방향 자체는 일정 부분 불가피했을 가능성이 크다.
첫째는 시기적인 요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 위기는 미국과 서구식 정치·경제 시스템의 우월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낳았고, 미국 사회 내부의 자신감 저하를 촉발했다. 반면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응을 통해 위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관리했다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 대비는 한쪽의 자신감 하락과 다른 한쪽의 자신감 상승으로 이어졌다.
둘째는 전쟁 피로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가까이 이른바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국력과 자원이 소진됐고, 대외 개입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됐다. 특히 미국 사회 내부에서는 왜 자국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크지 않은 전쟁에 계속 개입해야 하느냐는 회의가 확산됐다.
셋째는 경제 규모의 변화다. 2008년을 기점으로 세계 GDP 2위 자리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흔들며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미국 내부의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이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인프라 노후화, 공교육 붕괴 등 국내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대외 개입보다 내부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졌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국의 반국제주의적 움직임은 이런 흐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외교 대전략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을까. 여러 틀로 설명할 수 있지만, 현재의 논의는 대체로 세 학파의 경쟁 속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첫째는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전통적 국제주의다. 둘째는 해외 개입을 최소화하고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자제주의다. 한국 언론에서는 고립주의라고 표현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restraint(자제)’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셋째는 제한된 자원을 전제로, 국제·경제·무역 네트워크에서 완전히 이탈하지는 않되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 지역만을 방어하자는 전략이다. 최근 특히 주목할 만한 접근이다. 구체적으로는 서반구와 아시아에 역량을 집중하자는 구상이다.
실제 최근의 흐름을 보면 미국은 서반구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강대국이 자국 인접 지역을 우선 통제하려는 행태는 역사적으로 반복돼 온 패턴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서반구와 중남미를 최우선시하는 선택은 도덕적 판단과 무관하게 전략적으로 당연한 선택이라고 본다.
아시아 역시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반도체와 AI 같은 최첨단 산업의 핵심 거점이며,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이라는 세계 무역의 동맥을 품고 있다. 인구와 자원을 바탕으로 한 성장 잠재력도 크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무리 예측 불가능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아시아를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제외하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약탈적 패권국은 모든 양자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본다. 동맹국이든 적대국이든 가리지 않고 공급망, 관세, AI, 반도체, 핵심 광물 등 자신이 쥔 모든 패를 활용해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끌어내려 한다. 이런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텐데, 약탈적 패권주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는 임계점은 무엇이고 언제라고 보는가?
임계점은 강압의 비용이 효용을 초과하는 순간이다. 요즘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말이 자주 회자되는데, 이 원칙은 패권국의 지도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가장 큰 강점이자 힘의 원천은 전 세계에 촘촘히 연결된 시장, 그리고 그 개방성에서 나온다. 물론 현재 미국이 구사하는 전략적 무역 통제나 산업 정책, 대중국 디리스킹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상당히 크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뿐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이 흐름을 일정 부분 따라왔다.
그러나 인위적 통제가 글로벌 시장의 효율성을 과도하게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내 경제 성장까지 저해하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이 전략은 명확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외부 환경의 변화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브릭스 플러스의 확대, 현지 통화 결제 비중의 증가는 미국 중심 네트워크의 독점력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카니 총리는 다보스 연설 직전에 중국을 방문해 중국산 전기차를 포함한 일부 상품을 캐나다로 수입하는 합의를 체결했다. 그보다 앞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중국과의 무역 협력을 추진했고, 스타머 영국 총리 역시 중국과의 교역 확대 흐름에 합류했다. 중국이 직접 개입한 사례는 아니지만, 인도와 유럽 연합(EU)은 10년이 넘는 협상 끝에 자유 무역 협정(FTA)을 체결했다. 일련의 움직임에는 미국의 정책이 만들어 낸 불확실성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이 흐름이 이어져 미국이 지배하는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의 이동이 가속하면, 미국 입장에서도 현재의 노선은 점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관건은 연결된 시장의 힘과 정부가 개입하는 경제·안보 사이의 줄타기다. 어느 하나를 선, 다른 하나를 악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두 요소 사이에서 현실적인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 향후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도나 브라질처럼 미국과 느슨하게 연결된 중견국들은 애초 미국 의존도가 그리 높지 않아, 미국 외 외교·경제적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이나 캐나다는 미국과 깊이 얽힌 동맹국이라 오히려 불리하다. 캐나다는 수출의 약 3분의 2를 미국에 의존하고, 안보 의존 역시 역시 높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카니의 구상은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
부분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후나 보건 같은 영역에서는 조금이나마 실현 가능할 것 같다. 중견국들이 블록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하드 파워 안보 영역으로 들어가면 한계가 명확하다. 캐나다는 정보, 공중 급유, 위성 정찰, 표적 획득 등 핵심 군사 역량에서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견국들이 아무리 연대하려 해도, 초강대국이 작정하고 안보 카드를 앞세워 압박하면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이다. 최근 독일 외무 장관이 독일은 미·중 간 등거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꽤 직설적으로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브룩스와 마이어가 〈
자율성의 환상(Illusions of Autonomy)〉에서 이 문제를 통렬하게 지적했다. EU가 말하는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표현은 현재로서는 수사에 불과하다. 유럽은 미국의 지휘·통제 체계, 공중 급유, 첨단 정찰 자산 같은 것들 없이는 러시아의 핵무기는 고사하고 재래식 위협조차 장기간 막아낼 수 있는 통합된 방위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미국의 안보 역할이 여전히 절대적인 상황에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는 ‘제3의 길’은 미국과의 결별이라기보다, 경제력과 시장 규모, 핵심 자원을 레버리지로 삼아 미국의 일방주의를 조금 완화하고 협상력을 조금 높이는, 이슈별로 유연한 연합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마크 카니의 구상이 국제 질서의 대대적인 재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국 압박이 커지면서 캐나다, EU, 영국 등 전통적 우방들이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의 지속적인 동맹국 압박은 미·중 경쟁의 판세에서 중국에 유리한 변수로 작용하는가, 아니면 의외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강화하는 요인인가?
미국의 동맹국 압박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은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동맹국들의 대미 신뢰가 약화될 수 있다. 이 지점에 대해 부정하거나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동맹국들이 자체적인 군사 역량과 경제적 파워를 강화하면서 결과적으로 진영 전체의 억지력이 높아지는 역설적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마이클 베클리 같은 학자는 미국만이 서반구라는 세력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그런 세력권을 갖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획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구조는 미국에 두 가지 중요한 이점을 제공한다. 하나는 중국과 러시아가 따라오기 어려운 압도적인 국력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 필요할 경우 유라시아에서 발을 빼고 서반구, 특히 중남미에 집중할 수 있는 일종의 출구 옵션이다. 미국의 압도적인 힘과 떠날 수 있다는 선택지는 이미 동맹국들의 재무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최전선 국가들은 군사력과 산업 공급망을 재건하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더라도, 미국의 압박이 파트너 국가들을 더 유용한 존재로 회복시키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들을 이처럼 거칠게 압박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 국가가 안보 측면에서 미국을 대체할 현실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맹국들이 아무리 베이징이나 모스크바를 방문하더라도, 경제적 숨통을 트기 위한 단기적이고 전술적인 헤징일 뿐이지, 중국 중심의 안보 질서로 편입되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유럽 동맹국들은 미국 경제와 깊이 얽혀 있고,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며, 안보 자체를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외교 대전략이 성공하려면 파트너들과의 거대한 지정학적 분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각국이 비교 우위를 극대화해 가장 적합한 지역에서 적절한 역할을 맡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강력한 조선업과 방산업을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양 안정을 도모하고, 독일은 막대한 산업력과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해 유럽 대륙의 방패가 된다면, 결국에는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이런 흐름을 가장 빠르게 가속화하는 요인이 바로 트럼프가 동맹국들에 가하고 있는 압박이다. 방식은 거칠고 파괴적이지만, 동맹국들이 각성해 자체 역량을 키우고 지정학적 분업이 현실화한다면, 차기 미국 대통령은 더 강력한 연합을 이끌게 된다. 미·중 경쟁에서 더 유리한 출발선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뛰어난 전략가들은 이런 구상을 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에게 이런 노림수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설령 이런 구상이 존재하더라도, 미국이 파트너를 동반자가 아니라 속국처럼 대한다면 이 전략에도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카니 총리의 문제 제기를 한국 외교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실제로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을 두고 청와대는 “안미경중 구도를 벗어나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 전환하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캐나다와 한국은 모두 중견국이지만 지정학적 위치와 안보·경제 구조가 다른 만큼 전략 역시 달라야 할 텐데, 한국의 ‘중견국 외교’는 캐나다와 어떤 점에서 달라야 할까?
한국의 외교는 캐나다와 다를 수밖에 없다. 북한이나 북핵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가장 큰 변수가 있다. 중국이다.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일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이 일본, 호주, 대만과 힘을 합친다 해도, 경제력과 군사력, 핵무기,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미국 없이는 중국을 견제하기가 벅차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처럼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국가를 견제하는 데 있어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은 대체 불가능하다. 한중 관계의 성격 자체가 이미 크게 변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체제와 이해관계가 다른 국가의 지역 패권 추구를 바로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한중 관계는 비교적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첨단 산업과 제조업, 미래 먹거리를 둘러싸고 전방위적으로 경쟁하고 충돌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추구하는 패권의 성격이다. 군사력으로 영토를 점령하고 식민 통치를 하는 구시대적 방식은 물론 아니다.
대신 중국이 희망하는 패권 질서는 그들이 교역로를 장악하고, 경제·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주변국의 외교 노선과 국내 정치에 상시 간섭하며, 고부가 가치 산업 혁신의 중심을 서울이 아니라 상하이 같은 중국 도시로 끌어들이는 형태의 경제적 종속 체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지도부가 1941년 일본 군국주의자들처럼 국가 팽창을 곧 정권 생존과 동일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면, 패권 추구를 자제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중국의 아시아 패권을 저지하는 일이 반드시 물리적 전쟁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한국은 공격적인 레토릭을 앞세워 전면적인 경제 디커플링이나 이데올로기적 대결로 치닫는 전략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큰 방향에서는 중국의 패권화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중심의 연합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미국 없이 일본이나 호주와의 연대만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 주도의 수직적인 지역 질서가 현실화하면, 대한민국의 실리에도 부합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라는 가치와도 충돌한다. 한국이 말할 수 있는 ‘제3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중립이나 미국을 배제한 중견국 연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방산업과 조선업, 첨단 기술을 레버리지로 삼아 서방 연대의 핵심적인 안보 제공자로 자리 잡는 전략이 필요하다.
카니 총리가 제시한 ‘제3의 길’은 단기 대응이라기보다 중견국 외교의 장기 노선에 가깝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 기조가 크게 바뀌어 왔다. 국가 외교 전략의 방향성이 정권을 넘어 지속되려면 갖춰야 할 최소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대외 전략, 특히 대전략을 설정하려면 대내 정책과 대외 정책을 분리하지 않고 융합하며, 지역별 전략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외교에서는 거대하고 통합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이 한미 동맹의 중요성 정도인데, 이마저도 다소 단편적이고 희미한 컨센서스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정권을 넘어 지속되는 전략은 결국 공동의 노선에서 나온다. 중국을 대하는 태도만 보더라도, 과거 한국은 보수 진영 일부에서는 반공주의라는 이념적 잣대로 접근했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른바 ‘안미경중’의 모호한 편의주의적 접근을 반복해 왔다. 이제는 이런 이분법을 넘어서 더 명확한 외교 기조를 세워야 한다.
반패권주의 노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느 세력이든 아시아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강압적 외교를 추구하거나, 특히 그것이 대한민국의 경제적 생명선인 대만 해협이나 남중국해의 무역로를 위협하는 행위라면,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이건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가장 순수하고 현실주의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반패권주의가 좌파 이념인지 우파 이념인지 묻는다면 어색한 질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반패권주의는 세계 질서를 힘의 균형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좌우의 가치 논쟁과는 거리가 멀다. 상당히 현실주의적 접근이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에서만 이런 주장을 하면 강경 보수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직면한 경제·안보 위협과 지정학적 과제는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특히 중국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기술적인 차원에서는 외교·안보를 행정부만의 영역으로 보는 시각을 넓혀야 한다. 물론 외교부와 국가안보실이 외교·안보 정책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다른 기관들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 국회, 싱크탱크, 언론 등이다. 특히 국회 외교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행정부는 다뤄야 할 사안이 많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국회가 행정부가 챙기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고, 때로는 정부가 나서기 어려운 ‘배드 캅’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이처럼 외교 전략을 뒷받침하는 구조적 틀이 자리 잡는다면, 대한민국도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비교적 일관된 외교 노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