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경기를 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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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동계 올림픽은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TV를 틀어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 경기를 볼 권리

2026년 2월 10일

지금 밀라노와 코르티나 등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는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벌써 한국 선수단의 경기 소식도 속속 전해지고 있죠. 스포츠는 승부이기도 하고,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결과와 관계없이 모든 경기 안에 좌절과 실패, 성취와 영예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스포츠가 매력적인 콘텐츠일 겁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콘텐츠 말입니다.

그런데 올해 동계 올림픽은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일단, TV를 틀어도 경기 모습이 자주 보이질 않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이나, 탄성이 절로 터지는 경기 명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게 되었던 예년과는 달리, 뉴스 프로그램 외에서는 동계 올림픽 현장을 접하기 어렵습니다. 비난의 화살은 JTBC를 향합니다. JTBC는 이번 올림픽 단독 중계사입니다.

머니 게임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 중계권을 둘러싼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방송사도, OTT도 더 매력적인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열광적인 팬덤을 안고 있는 스포츠 이벤트는 더할 나위 없는, 실패할 리 없는 콘텐츠고요. 사실, JTBC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운을 건 결단을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대형 중계권을 사 왔습니다.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뿐만 아니라 오는 2032년까지 열리는 총 4번의 동계, 하계 올림픽, 2026년 6월 막이 열릴 북중미 월드컵, 2030년 월드컵의 단독 중계권까지 확보했습니다. 여기 들인 비용이 최고 5000억 원, 많게는 7000억 원에 이르리라는 것이 업계의 추정치입니다.

독점 중계권을 확보한 방송사는 다른 방송사에 중계 방송권을 재판매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으로 치면 전대차 계약 비슷한 겁니다. 집을 빌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다시 집을 빌려주는 것처럼, 중계 권리를 사 온 JTBC가 KBS나 MBC, SBS에 중계권을 재판매할 수 있습니다. 지상파 3사(KBS, MBC, SBS)는 JTBC와 협상에 나섰습니다. 당연히 이 협상이 어떻게든 타결되어 예전같은 올림픽 중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고요.

하지만 결과는 결렬이었습니다. 지상파 3사는 JTBC 측이 금액을 너무 높게 부른 데다, 월드컵 중계권 등과 묶어서 판매하려고 했다고 주장합니다. JTBC 측은 지상파 3사가 담합을 시도했다는 입장이고요. JTBC의 중계권 재판매 방식이 ‘보편적 시청권’을 침해한다며 지상파 3사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까지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JTBC 단독 중계로 결론이 납니다.

이건 누구에게도 좋은 것 없는 결말입니다. JTBC는 중계권 재판매로 어떻게든 들인 비용을 충당해야 합니다. 지상파 3사에도 올림픽과 같은 이벤트는 절호의 광고 판매 기회고요.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채널이 줄어드니 이번 동계 올림픽에 노출될 기회가 적습니다. 개막식 시청률은 1퍼센트대였습니다. 올림픽 하는 줄도 몰랐다는 얘기가 과장이 아닙니다.

지상파 방송사가 엄격한 규제를 받는 이유

하지만, 여기까지 보면 그저 머니 게임의 결과일 뿐입니다. 가격이 서로 맞질 않아서 중계권 재판매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JTBC만 올림픽을 중계합니다. 이상할 것이 없죠. 그런데 자꾸 JTBC가 보편적 시청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비난은 정당할까요? 아닐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사를 향해 19세기의 지식으로 21세기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전적인 의미의 ‘방송’은 전파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방송사가 이 전파에 콘텐츠를 담아 송출하면, TV든 라디오든 수신기기를 통해 콘텐츠를 받아 소비하는 방식입니다. 수신 기기를 구매하는 비용 외에 따로 시청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없습니다. 전파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공공재’이기 때문입니다.

단, 전파는 수용할 수 있는 채널 개수에 한계가 있습니다. 채널별로 일정 대역폭의 주파수를 확보해 둬야 혼선 등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송 사업자의 자격을 따내는 일은 일종의 권력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흥미로운 드라마를 방영해 광고 수익을 올릴 권력,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특정 문제를 제기할 권력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방송 사업에는 규제가 걸렸습니다.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사업자인 만큼,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공익’에 부합하는 방송을 할 의무를 지운 겁니다.

그럴듯한 논리입니다. 다만, 여기서 공익이라는 가치의 정의가 무척 애매하고 추상적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80년대 어느 순간에는 전두환 씨의 국정 운영을 잘 포장해서 전달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른바 ‘땡전 뉴스’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저녁 9시를 알리는 시보와 함께 시작하는 뉴스의 첫 내용이 늘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익’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도 꽤 많았을 겁니다. 공익의 정의를 권위주의 정부와 그 산하 기관이 정했기 때문입니다. 공익이 실현되는 방식이 방송사에 대한 규제를 통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요.

JTBC와 KBS의 차이

우리 정부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를 전 국민이 시청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도 일종의 ‘공익’이라고 봅니다. TV만 있으면 누구나 시청할 수 있는 ‘지상파’ 채널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을 중계하면,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으니,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보편적 시청권’이라고 합니다. 한때 권위주의 정부에서 악용했던 ‘3S(Screen, Sports, Sex)’의 일환인가 싶을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관련 논의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두고 있는 곳도 많습니다.

호주는 1992년부터 ‘안티 사이포닝’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주요 스포츠의 무료 지상파 중계 우선권을 보장합니다. 영국은 ‘리스티드 이벤트’ 규정이 있습니다. 국민적 스포츠 행사의 목록을 작성해 시청 가구 95퍼센트 이상이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중계합니다. 유럽연합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죠. 관련해서 법정 다툼까지 번진 일도 있습니다. 영국과 벨기에 등이 월드컵과 유로피언 챔피언십 전 경기를 무료 방송 대상으로 지정하자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법원은 무료 방송 원칙에 손을 들어 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시청권을 담보하기 위해 요구되는 커버리지는 가구 기준 90퍼센트입니다. TV를 틀었는데 JTBC가 나오지 않는 경우는 당연히 10퍼센트 미만이고요. 법원이 JTBC의 독점 중계권 획득과 재판매 과정을 합법으로 본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비난이 나오는 이유는 JTBC가 ‘유료 방송’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상합니다. 우리는 JTBC에 수신료를 낸 적이 없는데 말이죠.

동계 올림픽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JTBC는 전파를 통해 방송을 송신하지 않습니다. 케이블 TV나 IPTV 서비스를 통해 채널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JTBC는 유료 방송으로 분리됩니다. 지상파 3사처럼 TV만 산다고 공짜로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건 20세기에나 통할 만한 논리입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국내 유료 방송 가입자 수는 약 3623만 명입니다. 가입률은 91퍼센트가 넘습니다. ‘지상파’라는 이름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전파만으로 TV 방송을 수신해 보는 가구는 한 자릿수 퍼센트입니다. 애당초 산이 많고 아파트도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전파가 효율적인 수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JTBC든 KBS든 돈을 내고 보는 채널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죠.

게다가 JTBC는 네이버에 온라인 중계권을 판매했습니다. 네이버의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에서 모든 경기를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인플루언서와 함께 보기, 다양한 클립 영상 등 부가적인 콘텐츠와 서비스도 제공됩니다. TV가 없어도 각자의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얘깁니다. 게다가 TV에서는 중계되지 않는 비인기 종목도 예선부터 본선까지 시청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디지털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고령층 등 빈자리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시청 약자에는 고령층만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 TV는 없는데 스마트폰은 있는 1인 가구도 있습니다. 8시간 시차에도 새벽에나 중계되는 경기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시청자들에게는 치지직 중계를 통해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기기로 경기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입니다.

올림픽이 전 국민에게 꼭 전달되어야 할 국민적 ‘관심’ 행사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때 우리는 스포츠 선수의 성취와 국가적 위상을 동일시하는 이야기에 쉽게 고양되곤 했습니다. 그 감정이 지나쳐 메달을 따지 못하면 책망하고, 메달의 색깔을 따져 명예의 크기를 차별하곤 했죠.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스포츠도, 선수들도 그 자체로 멋진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승부와는 관계없이 기어이 도전하여 넘어진 선수에게서 더 큰 영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태극 전사’들이 잘 싸운다면 참 좋은 이야기입니다. 4년간 흘린 땀에 기꺼이 응원도 보냅니다. 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반드시 봐야 할 행사인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보편과 시청권의 정의

그 결과가 이번 시청률입니다. JTBC가 생중계한 올림픽 개막식 시청률은 가구 기준으로 1퍼센트대를 기록했습니다. 새벽 시간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실망스러운 결과입니다. 이후 몇몇 경기를 제외하면 여전히 비슷한 결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지상파 3사에서 중계를 하지 않아서일까요?

물론, 여러 채널에서 중계팀 경쟁도 하고, 다양한 관련 프로그램도 편성하면 분위기가 고조되는 효과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애당초 우리가 동계 스포츠에 그렇게 열광하는지를 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림픽 시즌을 제외하고 스피드 스케이팅이나 컬링 등 동계 스포츠 중계를 일부러 챙겨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요? 야구나 축구와는 다릅니다. 동계 스포츠는 원래 시청 타깃이 좁고 깊습니다.

법이 정한 보편적 시청권의 범위에는 FIFA 주관 월드컵,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올림픽과 함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가 출전하는 축구 A매치 등이 포함됩니다. 이 기준은 합당한가요? 볼거리가 많지 않던 19세기, 20세기라면 합당할 수 있습니다. ‘모두의 오락’이랄 것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콘텐츠가 흐르는 플랫폼도 너무 많고 시청자의 취향도 한껏 분화되어 있습니다. 아니, 애당초 스포츠에는 큰 관심이 없는 시청자도 적지 않겠지요. 2026년 기준으로 시청권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콘텐츠란 과연 무엇일까요?

2036년, 넷플 뭐 봄?

JTBC는 동계 올림픽 중계권 판매에 실패하면서 경영적으로 큰 부담을 지게 되었습니다. 올림픽 중계 관련 광고는 완판되었지만, 투자금을 회수하기에는 턱없는 수준입니다. 이런 모험이 필요했던 이유는 OTT의 부상 때문입니다. 실시간 중계라는 시간적 맥락이 중요한 스포츠 중계야말로 전통적인 의미의 TV 방송사에 보루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 애플TV는 물론 국내에서도 티빙과 쿠팡플레이 등이 스포츠 중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나마 가입자와 이용자 증가를 달성했고요. 당연히 플랫폼에 이용자를 붙잡아 두는 ‘록인(lock-in)’ 효과도 누렸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번 동계 올림픽은 사실 패키지에 포함된 옵션이었을 겁니다.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이야말로 JTBC가 원하는 본품이었겠죠. JTBC가 투자한 만큼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 몇 년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만약 쿠팡플레이가 2034년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한 뒤 재판매를 거절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넷플릭스가 2036년 올림픽 한국 중계권을 독점한 뒤 매우 높은 가격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지상파 3사에 재판매한다면요?

이미 콘텐츠 시장에서 지상파 방송사는 글로벌 OTT의 ‘을’입니다. 종합편성채널도 마찬가지고요. 방송사에 규제와 의무를 지우는 방식으로 공익을 지킬 수 있었던 시대는 10년쯤 전에 끝났습니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다소 잔인하며 선정적인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KBS에서는 그런 드라마를 기획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운동장은 점점 기울어 국내 방송사들은 드라마 제작 편수를 줄이고 연중 기획 대하드라마와 같은 콘텐츠의 제작비를 대폭 감액하고 있습니다.

공익은 무엇이고, 보편적 시청권은 무엇일까요. 정말 우리 모두 WBC 중계를, 월드컵을 꼭 봐야 하는 것일까요. 이번 동계 올림픽은 이런 질문을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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